흔들리는 가정, 가장 참혹한 풍경 아동학대
인간이 태어나서 가장 먼저 접하는 곳이 가정이다. 비록 형태나 성격이 바뀔지라도 가정은 한 사람의 일생에 걸쳐 개인적이고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공동체이며 모든 생활습관과 문화를 가장 익숙하게 배워나가는 곳이다.
사람은 가족 구성원으로서 가치를 인정받고 존중받으며 뜻이 잘 통하고 규칙과 질서를 통해서 행복해질 수 있다. 그래서 프로이트는 어린 시절의 경험과 생활이 인생의 가장 중요한 부분들을 결정짓는다고 이야기한다.
초록이 가장 싱그럽고, 사람이 가장 행복해야 할 5월이다. 웃음꽃이 만발한 가족이 떠오르지만 우리 현실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배어 있다. 살다가 싫어지면 아이고 뭐고 다 내팽개쳐버리고 찢어지는 부부들, 사회에서 가장 보호해야 할 약자인 아동을 학대하는 잔혹한 어른들의 행위들, 원하지 않는 아이를 낳게 되었을 때 무참하게 버리거나 학대하는 부부들로 인한 악행들은 쇠사슬처럼 서로 맞물려 인간에게 가장 소중해야 할 가족의 안식처를 뿌리째 흔들고 있다.
아동학대는 보호자를 포함한 성인에 의해 아동의 건강이나 복지를 해치거나 정상적인 발달을 저해할 수 있는 신체적 · 정신적 · 성적폭력, 가혹행위 및 아동의 보호자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유기와 방임을 말한다.
신체적 학대는 구타, 폭력, 감금 등 아동의 신체에 직접적인 해를 입히는 행위를 말하고,
정서적 학대는 아동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주지 않고, 다른 아동과 부정적으로 비교하는 행위, 아동이 보는 앞에서 부부간의 싸움 등을 하는 행위를 말한다. 언어적으로는 아동에게 욕을 하거나 심하게 고함을 지르는 행위, 아동의 단점을 계속적으로 놀리는 행위, 성학대는 근친상간, 강간, 아동의 생식기를 가지고 놀리는 행위, 다른 성적행위, 아동의 의식주 등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행위, 적절한 수면과 안전 감독 등의 불이행으로 인한 의료적 치료 행위를 방치하는 것을 말한다.
내 자식 죽이기
극악무도함 중에 가장 악질적인 것이 어린아이를 학대하는 것이다. 때리고, 던지고, 굶기고, 납치하고, 성폭행하고 급기야 목숨을 빼앗는다. 아동학대가 비겁한 행위인 이유는 그것이 가장 약한 곳에 행해지는 일종의 분풀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매일 매를 맞거나 보살핌을 전혀 받지 못하는 등의 학대를 당하는 어린이가 1천 명 가량 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2003년 통계). 이 가운데 매일 매를 맞는 어린이는 33.4%인 976건이었다. 2~3일에 한 번이 16.9%인 497건, 일주일에 한 번이 14.2%인 415건으로 나타나 일주일에 한 번 이상 상습적인 아동학대를 당하는 경우가 전체 사례의 64.5%를 차지했다. 학대 유형으로는 돌보지 않는 방임형 학대는 35%, 때리거나 꼬집는 등 신체 학대 30.4%, 폭언 등 정서학대 27.1%, 성추행 등 성학대 4.7%, 아이를 내다버리는 경우가 2.9%로 각각 나타났다. 방임은 아동에게 의식주를 제공하지 않거나 장시간 위험하고 불결한 주거환경에 방치하는 경우가 많았고, 신체학대는 아동을 벽에 부딪치게 하거나 손발로 때리는 폭력이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피해 아동의 연령은 만 9~11세의 아동이 26.5%, 12~14세 18.4%, 3~5세 14.7%를 차지했다. 특히 초등학생 시기인 만 6~11세
사이의 아동들이 70% 이상을 차지해 초등학교 이하의 아동들이 무기력하게 학대 상황에 방치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피해 아동은 61.1%가 정서적 불안정과 학습부진 등의 특성을 보였고, 36.9%는 가출이나 도벽, 주의산만, 거짓말 등의 습성을 드러냈다. 가해자는 남성(65.6%)이 여성(33.4%)의 2배 가까이 됐고, 30-40대(78%), 부모(83.3%)가 대부분을 차지했다. 가학자의 직업은 무직(723건), 단순 노무직(534), 주부(362), 서비스 , 판매직(276), 기능직(155), 전문직 · 사무직(150), 자영업(119) 등으로 다양해 이 같은 경향을 뒷받침했다. 가학자와 피학아동과의 관계는 친부(1607), 친모(651), 계모(138), 친인척(93), 친조부 · 모(89), 이웃(64), 시설종사자(42) 등이었다. 가학자의 특성은 부적절한 양육태도(1467), 자녀 양육지식 · 기술 부족(1088), 생활고(1084), 알코올 · 약물중독(700), 스트레스(625), 성격 · 기질문제(619) 등이었다. 양육 태도나 지식에 문제가 있거나 부모 자신의 스트레스를 아동에게 화풀이하는 경우가 3180건으로 전체 8091건(중복 응답 허용)의 40%에 육박했다.
인간의 탈을 쓴 세기말 악마들
어린 의붓딸을 6살 때부터 7년간 상습적으로 성폭행한 혐의로 50대의 외국계 컨설팅 회사 대표가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 그는 세계적 명문 MIT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외국의 대학에서 교수까지 지냈다고 한다. 화려한 학력과 경력을 가진 지도층 인사가 이 같은 짓을 할 수 있는지 아연하다. 어린이에 대한 있을 수 없는 인면수심의 성적학대이다. 마치 지킬 박사와 하이드 같은 모습이다.
생후 14개월 된 딸과 아내를 폭행한 혐의로 전모(37)씨가 서울 중량경찰서에 의해 구속영장이 신청됐다. 전씨는 갓 돌 지난 딸의 온몸을 낚싯대로 때려 두개골 골절의 전치 2주 상해를 입히고 말리던 부인도 마구 때렸다. 이웃집 여자들이 ?남편이 무능해 아내가 어린 딸을 집에 두고 직장에 다닌다?고 수군대 화가 나서 아이를 때렸다는 것이다.
여관에서 처음 만난 아이의 상태는 처참했다. 이마는 5센티미터 정도 찢어져 있었고, 발바닥엔 담뱃불로 지진 자국이 확연했고 허벅지엔 화상의 흔적이 있었다. 온몸에 희미한 멍자국 위에 새로 생긴 멍자국이 겹쳐 있는 것으로 보아 오래 전부터 학대를 당한 것으로 보였다. 당시 아이는 영양상태도 심각해 마치 기아에 허덕이는 아프리카 소말리아 어린이 같은 모습이었다고 전한다. 오랫동안 기아상태로 방치돼 있었기 때문에 병원에 옮긴 후에도 우유조차 먹지 못할 정도로 장이 손상돼 그동안 아기를 굶겼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문제가 되는 것은 아동학대의 원인이 나이가 어리거나 정신적으로 미성숙한 부모들이 아동의 행동이나 욕구를 이해하지 못해서 쉽게 행해진다는 것이다. 이는 아동양육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여 어떻게 아동을 키울 것인가를 잘 모르거나 건전한 가족관계가 어떤 것인지 잘 알지 못하는 경우에 발생한다. 그래서 미성숙한 부모들은 자녀가 마치 어른처럼 행동해 주기를 기대하는데, 이처럼 높은 기대는 아동학대의 가능성을 높이는 원인이 된다. 또한 경제적 어려움이나 실직, 병치레, 가정불화 등 잦은 갈등으로 인해 부모들이 자녀를 학대하는 경우도 있다. 부모들은 자신의 욕구가 충족되지 못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을 때 아동에게 그 불만을 터뜨린다. 아동양육의 부담을 도와줄 수 있는 친척이나 친구 이웃이 주위에 아무도 없는 경우에 아동학대를 하기도 한다. 자녀를 학대하는 부모들 중 대부분은 자신들이 어릴 때 부모로부터 학대받은 경험이 있다. 알코올중독이나 약물중독에 빠진 부모들은 자신을 잘 통제하지 못해서 자녀를 학대한다. 이러한 학대의 원인이 뿌리 뽑히지 못하고 악순환을 되풀이 하고 있다.
아동학대,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우리나라는 세계 11위의 경제대국이다.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고도의 경제성장을 이룩해 ‘부자 국가들의 모임’이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으로 당당하게 가입돼 있다. 그러나 OECD 국가 가운데서 유일하게 해외입양을 보내는 나라이기도 하다. 올해도 미국으로 입양된 입양아 가운데 한국 입양아가 가장 많은 숫자를 기록했다. 이제 우리는 경제성장에 걸맞게 입양아 문제해결에 나서야 한다. 1989년유엔총회에서 만장일치로 채택된 유엔협약은 생존권리, 보호 받을 권리,발달의 권리, 참여의 권리를 아동의 4대 권리로 명시했다. 그리고 버려지는 아동의 보호 대안으로 수양가정(가정위탁), 입양, 그리고 시설수용을 제안하고 있다. 유엔이 아동문제 해결의 1순위로 수양가정을 언급한 것은 이 제도가 그만큼 아동의 권리를 보호해주기 때문이다. 자식은 자궁으로 낳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낳는 것이다. 수양가정은 입양과 달리 부모의 보호를 받기 힘든 아동이 다시 부모에게 돌아갈 때까지 가정적인 분위기에서 건강하게 성장하도록 돕는다. 이 제도는 버려진 아이뿐 아니라 비행 청소년들도 포용할 수 있어 청소년들의 재범률을 크게 낮추고 있다. 청소년 문제 해결에 중요한 열쇠가 되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해야 우리 아이들을 학대와 방임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나?
첫째, 우리 사회의 아동관에 대한 의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아이들도 태어나는 순간부터 하나의 인격체로서, 사회 구성원의 일원으로서 자신의 삶을 영위할 권리의 주체임을 인식해야 한다.
둘째,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예방 차원의 홍보는 물론 부모들에 대한 자녀양육법,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부모준비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셋째, 신고를 활성화해야 한다. 현재 발견되는 사례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아동복지법에 규정된 신고의무자들(교사. 보건의료인. 시설종사자 및 관련 공무원)의 신고조차 30%를 넘지 못하고 있다. 미신고시 처벌조항을 도입하는 것에 앞서 신고의무자들에 대한 교육과 홍보가 필요하다.
넷째, 예산을 과감히 배정해 제도개선을 해야 한다. 고위험군을 대상으로 하는 조기발견 시스템과 아동양육 기능이 허약해진 가정에 대한 우선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
다섯째, 학대하는 부모에 대한 의무적인 상담수강 명령과 필요시에는 언제든지 신속히 피해 아동을 그 부모로부터 격리 보호할 수 있도록 법원시스템을 고쳐야 한다. 2002년 5월 유엔에서 개최된 아동특별총회 석상에서 세계 어린이 대표들은 ?어린이는 미래인 동시에 현재이고, 어린이를 위한 예산배정은 지출이 아니라 투자?라며 어린이가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어 달라고 호소했다. 이들의 호소가 남의 나라 일이 아님을 우리 모두 깨달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