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람차에서 아름다운 밤풍경을 볼 수 있기를.
도서1팀 김도훈 (문학,인물 담당 / eyefamily@ye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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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02
가족. 문화권에 따라 그 범위와 성격은 다르지만, 가족은 여전히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가장 중요한 집단이자, 한 사람의 존재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공동체이다. 물질 중심주의와 가족간의 소통 단절 등으로 자식이 부모를 살해하고, 부모가 자식을 버리는 패륜적인 사건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현대사회, 많은 사람들이 가족의 붕괴를 말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뒤틀리고, 가장 강력한 생활-공동운명체인 가족이라는 공간이 흔들리고 있으니 사회의 모습도 이러한 가족의 양상을 반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고백』을 통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소재로 매혹적인 서술과 강렬한 흡인력을 선보였던 미나코 가나에가 가족 이야기를 가지고 돌아왔다. 관계를 기반으로 한 섬세한 묘사는 물론 가족과 마을, 그리고 사회 전반까지 점진적으로 확장되는 주제 구성은 왜 그가 주목 받는 작가인지 분명하게 보여준다. 히바리가오카의 한 가정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을 다양한 가족들의 시선으로 그려내면서 가족과 이웃, 관계의 불안정성과 인간 내면의 갈등에 대한 통찰을 드러내는 『야행관람차』. 그 관람차 속으로 들어가본다.
히바리가오카
집값이 비싸다고 행복한 것은 아니라네
도쿄의 고급 주택가인 히바리가오카. 어느 한 지역이 부와 명예의 상징이 되기 쉽지 않다. 경제적인 요인뿐 아니라 사회적?공동체적 요소, 그리고 재생산적 요소가 함께 어우러져 공고한 결집력을 가지게 될 때, 사는 장소 자체가 사회적인 지위를 획득하는 하나의 수단이 된다. 그렇게 되면 이미 그 곳에서 지역적 지위를 누리는 계층은 자신들만의 지위를 유지하려 폐쇄적인 집단성을 보이게 되고, 다른 이들은 지역적 신분상승을 노리며 부단히 그 곳에 들어가려 애쓰게 되는 법. 작가는 '히바리가오카'라는 특수한 현장을 배경으로 이러한 가족 공동체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먼저 엔도 가족. 후자에 해당하는 이 가족은 지리적으로는 언덕 위의 히바리가오카에 속해 있지만, 여전히 언덕 아래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다. 입학 자체 만으로 사회적 '성공'을 보장하는 사립학교 입시에 실패한 딸 아야카와 무능한 아버지, 그리고 딸의 공격성과 히스테리를 묵묵히 참아내기만 하는 어머니가 함께 살아가는 가족이다.
그리고 다카하시 가족.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의사 아버지와 우아한 어머니, 의대생 큰아들과 유명 사립학교를 다니는 딸, 그리고 유명 아이돌 스타를 빼닮은 막내까지, 누구나 부러워하는 '완벽한' 가족이다. 매일 딸의 히스테리로 바람 잘 날 없는 아야카네 가족과 달리 참 '히바리가오카스러운' 이 가족에게, 어느 날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살인사건의 당사자들과 이 사건을 바라보는 이웃들의 이야기가 이 소설의 뼈대를 이루고 있다. 이 완벽해 보이는 가족에게 살인사건이 일어나다니, 과연 무엇이 문제였을까.
작가는 이들의 모습을 통해 '열등감'의 문제를 이야기한다. 열등감은 비단 가지지 못하고 뒤쳐진 이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 작품은 신분상승을 위해 실패와 좌절 이후 자신의 모습을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하며 히스테리를 보이는 아야카의 열등감도 이야기하지만, 모의고사를 치르는 날마다 심리적 불안에 시달리는 신지를 통해 가진 자들의 열등감도 이야기한다. 주위의 기대와 자기 지위에 걸맞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부담감은 비교의식과 열등감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엄친아'라는 이야기에 시달리는 우리네 아이들과 축 처진 어깨로 살아가는 우리네 아버지들을 기억해본다. 소설은 잔인할 만큼 우리 사회를 그대로 묘사하고 있다. 스스로 자신의 길을 찾고 푸르른 청춘을 만끽해야 할 대학교 신입생들이 무엇이 중요한 가치인지 고민하기보다 치열한 스펙 경쟁 속에 허우적대는 우리네 세상. 작가는 '비교'가 자기 정체성의 가장 중요한 잣대가 된 이 세상의 면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어디에 사느냐가 중요한 것은 아닐 터.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자신만의 가치는 누구에게나 있다.
집단폭력, 그 무서움에 대하여
한 가정에서 발생한 살인사건과 이 사건에 대한 이웃, 그리고 사회의 반응을 살펴보면, 아주 그냥 '가관'이다. 아버지가 피해자이고 어머니가 가해자인, 어떻게 보면 가장 힘든 현실을 마주한 이들에게 살인자의 자식이라는 낙인을 찍어버리는 사람들, 자기 동네의 이권을 위해서라면 타인의 아픔과 상처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사람들에게, 요즘 말로 '이기심 종결자'라는 타이틀을 주고 싶을 정도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고자 하는 사람들이 집단을 이루게 되면, 더 과감하고 과격한 폭력성을 보이곤 한다. 최근에는 보다 다른 양상의 집단폭력이 성행하고 있는데, 그 주인공은 다름 아닌, '네티즌'이다.
사회적 소통의 방법이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쌍방적인 소통으로 변화해가고 있다. 그러면서 언젠가부터 뉴스나 여론의 동향을 살피면서 '네티즌'의 의견과 반응이 여론을 가늠하는 중요한 영역이 되었다. 더 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의견을 들을 수 있는 통로이지만, 때로는 집단폭력의 대표적인 도구가 되기도 하는 것이 바로 '네티즌'이다. 키가 작은 남자는 루저라는 발언을 한 어느 대학생을 범죄자보다도 더 잔인하게 몰아세운 것은 작은 하나의 사례에 불과하다.
네티즌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는 자기 집값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장애인 시설 건설을 반대하는 이들, 지역 이기주의와 기업 이기주의 등 다양한 형태의 집단 이기주의의 모습이 존재하고 있다. 작가가 집단폭력의 양상을 다소 자극적으로 그려내기는 했지만, 다카하시 집에 붙여진 비방문과 낙서를 통해 우리 사회의 집단 이기주의의 모습을 본다.
역시 문제는 관계성의 위기에서 시작된다.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를 보면 예수가 당시 사람들에게 '그러면 너희의 이웃이 누구'냐는 질문을 던지는 대목이 있다. 옆집에서 시끄러운 소리를 내면 경찰에 신고부터 하는 사회에서 과연 누가 이웃인지, 어떠한 관계에 '이웃'이라는 단어를 이름 지을 수 있는지, 점점 더 헷갈리고 어려운 세상이다.
참 우울한 세상이다. 부조리와 폭력이 가득하기에, 진보에 대한 희망을 점점 더 찾아볼 수 없기에 더욱 그러하다. 미나토 가나에가 그린 세상도 마찬가지. 하지만 작가의 표현대로, 가족이라는 공간에서 조그마한 희망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가족은 가족이니까. 관람차에서는 언덕 위의 동네나 언덕 아래의 마을이나 모두 볼 수 있단다. 편견과 이기심으로 얼룩진 관계가 아닌, 타인을 존중하고 건강하게 공존하는 관계가 많아질 때, 그 곳에서 내려다보는 풍경도 아름다워지리라. 밤풍경이면 더욱 좋을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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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그콘서트 '두분토론' 코너의 박영진의 말투를 기억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