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말| <br/>먼저 우리 꽃을 사랑하자 <br/>울타리가 되어 드릴게요 <br/>우리 영원히 함께 살아요 <br/>기다리다 지치면 찾아갈래요 <br/>막내야, 내가 왔단다 <br/>내가 너를 잊다니 석 달만 기다리면

개나리 『울타리가 되어 드릴게요』
어느 두메산골 외딴집에 아버지, 어머니, 다섯 살짜리 딸 개나리와 세 살짜리 아들 봄맞이 등 네 식구가 정답게 살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봄맞이의 동생을 잉태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꿩 사냥을 나갔던 아버지가 절벽 아래로 떨어져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그 후 개나리네의 살림은 무척 어려워졌습니다. 어머니는 마을로 내려가 먹을 것을 구해 오다가 그만 언덕길에서 굴러 몸져눕게 되었습니다. 그 날부터 어머니를 대신하여 개나리가 바가지를 들고 마을로 내려가 밥을 얻어왔습니다. 어느 날, 모두가 잠든 뒤였습니다. 아궁이에서 타고 있던 불이 부엌 바닥의 검불로 옮겨붙어 초가집 전체가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진달래 『우리 영원히 함께 살아요』
옛날 어느 나라에 몹시 포악한 임금이 있었습니다. 어느 해, 가뭄이 계속되자 임금은 열여덟 살짜리 처녀를 제물로 삼아 하늘에 제사를 올리라고 명령했습니다. 결국 달래 낭자가 뽑히고 말았습니다. 당시 달래 낭자는 진 총각과 결혼을 약속한 사이였습니다. 둘은 무작정 산을 향해 도망쳤습니다. 병사들이 추격해 왔습니다. 산꼭대기에 이르러 결국 둘은 사로잡혔고 진 총각은 사형에 처해지게 되었습니다…….

민들레 『기다리다 지치면 찾아갈래요』
평화롭던 남촌 마을에 오랑캐들이 들이닥쳤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의병이 되어 오랑캐들에 맞서 싸웠습니다. 그 중에는 결혼한 지 두 달도 안 된 민들레의 남편, 오서방도 있었습니다. 의병들은 승승장구하며 오랑캐들을 몰아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들과 눈물로 작별한 의병들은 오랑캐를 쫓아 떠났습니다. 오랑캐 대장의 목을 베어 나오던 오서방은 그만 발각되어 화살 세례를 받고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마침내 전쟁은 끝이 났습니다. 의병들은 각자 흩어져 자기 마을로 돌아갔습니다. 남촌 마을 동구 밖에도 가족들이 나와 남편,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민들레 부인도 남편을 기다렸습니다…….

할미꽃 『막내야, 내가 왔단다』
소라, 미라, 보라 세 자매는 할머니와 삽니다. 부모님은 보라가 태어나던 해 모두 돌아가셨습니다. 할머니는 세 손녀를 정성을 다해 키웠습니다. 세 자매가 예쁘고 똑똑하다는 소문이 나자 여러 곳에서 청혼이 들어왔습니다. 첫째 소라는 소원대로 높은 벼슬자리에 있는 대감 집 며느리가 되었고, 둘째 미라는 돈 많은 사람에게 시집갔습니다. 막내 보라는 고개 넘어 산골 마을에서 농사를 짓는, 마음씨 착한 젊은이와 결혼했습니다. 어느 겨울, 손녀들 소식이 궁금한 할머니는 첫째와 둘째 손녀를 찾았다가 문전박대를 당하고 막내 손녀네 집으로 향했습니다…….

봉선화 『내가 너를 잊다니』
고려는 몽골족이 세운 원나라에 항복했습니다. 고려 충렬왕의 세자 원은 볼모로 원나라의 속국 진에 잡혀와 강제로 진왕의 딸 계국대장 공주와 결혼했습니다. 세자 원은 함께 끌려온 시녀 봉선이의 가야금 소리만 들으면 마음이 푸근해졌습니다. "봉선아, 내가 고려로 돌아갈 때는 너도 꼭 데리고 가마." 세자 원은 봉선이를 꼭 안아 주었습니다. 둘의 사랑은 깊어만 갔습니다. 세자 원이 고려의 왕이 되기 위해 귀국했습니다. 아무리 기다려도 세자 원으로부터 소식이 없었습니다…….

연꽃 『석 달만 기다리면』
천사처럼 아리따운 아가씨가 옹달샘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샘물을 떠서 대접하고 있었습니다. 소문이 퍼지자 총각들이 몰려들었고 어른들은 고을 사또에게 하소연했습니다. 사또는 아가씨를 잡아오도록 명령했습니다. "너는 도대체 어디 사는 누구기에 그런 일을 하느냐?" "제 이름은 연이라 하옵고, 하늘나라에서 온 선녀입니다." "그렇다면 이 마을엔 왜 왔느냐?" "죄를 지어 하늘나라에서 쫓겨났습니다." "사람들에게 물은 왜 떠 주었느냐?" "인간 세상에서 석 달만 공덕을 쌓으면 다시 하늘나라로 부르겠다는 옥황상제님의 분부 때문입니다." 연이를 돌려 보낸 사또는 엉큼한 생각을 했습니다…….

설화를 알면 우리 꽃에 대한 이름을 기억하게 될 것이고, 관심이 깊어지면 그 꽃을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몇 해 전, 아이들이 즐겨 읽는 『꽃 전설』을 보다가 이것이 아닌데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외국에서 들여온 꽃이 우리나라에서 생겨난 야생화로 되어 있는가 하면 우리 꽃이 외래종으로 되어 있는 것도 있었습니다. 또 우리 꽃이 남의 나라 이름으로 불리는 것도 있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 것은 남의 것에 밀려나서 '한'이나 '재래'나 '토종'이라는 말을 머리에 혹처럼 붙이는 경우가 많은데, 아이들이 읽는 이야기마저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꽃에 얽힌 설화를 찾아 바르게 정리해 주는 일도 교육적으로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설화를 알면 꽃에 대한 인상이 강해져 이름을 기억하게 될 것이고, 이름을 알면 관심을 갖게 되고, 관심이 깊어지면 그 꽃을 사랑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고 보니, 우리 꽃을 사랑하게 된다면 우리의 자연을 사랑하자거나 자연보호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지 않아도 자연을 보호하게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꽃에 얽힌 설화를 채록하고 제 생각에 맞춰 다시 쓰기로 했습니다. 세계의 민화나 다른 나라의 꽃 전설들을 모아 비교 검토하여 정리했습니다 우리 꽃 설화는 대부분이 힘있는 사람들의 부당한 대우에 희생된 서민들의 원혼이 꽃으로 피어났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전설이나 설화의 모습을 바꿀 수는 없는 일이라서 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여기 쓴 설화 중에는 어렸을 때 아버지께 들은 것도 있고, 제가 몇 년간 도서 벽지로 돌아다니며 채록해서 구성한 것도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것을 귀히 여기고 사랑해야 되겠습니다. 거리의 공자니, 베란다의 공주니 하며 화분에 길러지는 외래종의 꽃보다 우리 꽃이 훨씬 아름답고 향기롭다는 것도 알아야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