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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발행일 | 2013년 12월 26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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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292쪽 | 450g | 143*200*20mm |
ISBN13 | 9788937834455 |
ISBN10 | 8937834456 |
2024년 09월 09일 ~ 2024년 10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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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8월 30일 ~ 2024년 09월 30일
2024년 09월 01일 ~ 2024년 09월 30일
상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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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체 스밀레프스키, <프로이트의 여동생>
내 삶이 시작하는 순간에 절망과 희망이 있었다
'내 삶이 시작하는 순간에 사랑과 미움이 있었다. 그리고 내 삶이 끝나는 순간까지 이 둘의 감정이 공존하면서 때로는 상처에 연고가 되어주기도 하고 때로는 연고가 독이 되어 상처를 덧나게 만들기도 했다.'
소설의 초반부에서 마주친 이 문장이, 소설을 읽는 내내 내 마음 속에 머물렀다. 책의 마지막장을 덮은 뒤, 이 문장을 이렇게 바꿔보고 싶어졌다. '내 삶이 시작하는 순간에 절망과 희망이 있었다.'
아기는 울음으로 삶을 시작한다. 삶에 대해 아주 비관적인 시선을 갖고 있는 사람은, 자지러지게 울어대는 아기의 모습이 고통스러운 삶의 풍광을 내다본 본능적인 절망의 표현 방식이라고 해석할 것이다. 그의 해석을 마냥 비난할 수만은 없다. 그 아기의 앞에 펼쳐질 인생의 페이지들에는 아름다운 평화보다는, 서사의 역동성을 위한 고난과 역경이 훨씬 다양하고 자세하게 서술되어 있을테니 말이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아기는 엄마의 눈망울로 삶을 시작한다. 모든 아기의 옆에는 그의 탄생과 함께 인생의 새로운 분기를 시작하는 한 여자가 있다. 그녀의 눈동자에 아기의 눈동자가 들어오고, 아기의 눈동자에 그녀의 눈동자가 들어가는 순간 그들은 서로와의 인연이 갖는 특별함을 감지하게 된다. 아기를 기다리는 삶의 가시밭길은 험하지만, 그의 옆에는 어떤 가시라도 꺾을 수 있을 것 같은 강인함을 가진 보호자가 있다. 엄마는, 태어날 때부터 존재하는 모든 아기의 절망에 대한 가장 강렬한 희망이다.
이 소설 속 주인공들은 엄마로부터 버림 받거나, 학대 당한 사람들이다. '프로이트의 여동생'인 아돌피나, 그녀가 평생을 바쳐 사랑한 라이너, 여성의 인권을 위해 헌신했으나 결국 정신병원에 들어가게 된 클라라 모두 태어날 때부터 그들의 희망이었던 엄마라는 존재로부터 배신당한 사람들이다. 이 세 명은 모두 '광기'로 인해 죽음을 맞이하거나 정신병원에서 생활하게 된다. 그들이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주변의 무엇과도 교감할 수 없게 된 건, 아마 '엄마'라는 이름으로 대표되던 희망이 산산조각나는 끔찍한 경험을 몸소 체험한 이후일 것이다.
이 소설은, 사랑의 이야기이자, 상실의 이야기이다. 소설 속 주인공들이 소중한 사람들을 상실하고, 자신의 인생에 대한 기대를 상실해가는 과정을 목도하면서 독자들은 인생과 철학과 현실과 무의식을 탐험하게 된다. 아돌피나의 오빠, 프로이트가 그랬듯이.
*
매혹적인 소설이었다. 섬세한 문체도, 철학적 사유도, 소설 전체에 흘러넘치는 '광기'도 모두 마음에 들었다. 밑줄 긋고 싶은 문장들이 너무 많아 정리하는 데에 애를 먹었다.
다만, 번역이 조금 아쉽다. 작가가 표현하려는 바가 워낙 많았다 보니 번역자가 그것을 온전히 담아내지 못한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1.
내 삶이 시작하는 순간에 사랑과 미움이 있었다. 그리고 내 삶이 끝나는 순간까지 이 둘의 감정이 공존하면서 때로는 상처에 연고가 되어주기도 하고 때로는 연고가 독이 되어 상처를 덧나게 만들기도 했다. 엄마의 미움은 내게 가장 아픈 상처이면서 또 엄마만큼 날 사랑해준 사람도 없었다. 어느 누구도, 오빠 지그문트조차도.
- 고체 스밀레프스키, <프로이트의 여동생> 中
#2.
살다 보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고통이 찾아온다. 어떤 고통은 이내 수그러들지만 어떤 고통은 죽는 날까지 우리를 떠나지 않는다. 하지만 처음 겪은 고통만이 진정한 고통이다. 나머지는 모두 처음의 고통을 통한 아픔이다. 이후의 모든 고통에서는 첫 고통에 닿을 때만 무지근하게 아프고, 첫 고통과 유사한 면이 있을 때만 아프다.
- 고체 스밀레프스키, <프로이트의 여동생> 中
#3.
새 생명을 몇 달 동안 심장 아래 담고 지내다 세상 밖으로 내보내고, 그 생명이 엄마 뱃속에서 떠밀려 나온 충격으로 어리둥절한 채 당연히 모를 수 박에 없는 세상과 조우하는 모습을 지켜봐야 해요. 어차피 새 생명은 미지의 세상을 알 턱이 없고 아는 것이라곤 오감으로 느끼는 것뿐이니까요. 엄마로서 그 생명이 얼마나 나를 필요로 하고 내 젖가슴으로 젖을 먹여야 하는지 직접 보고 느껴야 하고, 그 생명의 눈이 어떻게 경험을 담는지 바라보고, 그 생명이 맞이할 첫 희망과 첫 절망을 지켜보고, 그 생명이 독립하는 모습과 더는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 모습을 봐주고, 내게서 나온 생명이 어떻게 나를 떠나 새로운 삶을 찾아가는지 지켜봐야 해요. 내가 생각하는 부모는 이런 거에요.
- 고체 스밀레프스키, <프로이트의 여동생> 中
#4.
나는 평생 팔이 잘려나간 밀로의 비너스처럼 나의 한 부분이 잘려나갔다는 느낌에 젖어 살았다. 겉으로는 모자란 데가 없어 보여도 나의 내면에는 영혼의 팔이 잘려나간듯 무언가 결핍되어 있었고, 이런 결핍과 부족, 공허감 때문에 나날이 무력해졌다. 나는 평생 누군가의 시선이 내 존재를 깨뜨리고 있다는 느낌에 시달렸고, 그러면서 깨진 나를 치유해 줄 누군가를 찾아 헤맸다.
- 고체 스밀레프스키, <프로이트의 여동생> 中
#5.
“시인이란 무엇인가? 마음 속에 사무치는 고통을 감추고 있지만 입술에서 탄식과 비명이 새어나와도 아름다운 음악처럼 들리는 불행한 인간이다.”
- 고체 스밀레프스키, <프로이트의 여동생> 中
#6.
그때의 우리는 세상물정 모르고 아직 가슴으로 생각하고, 철학자들이 써놓은 글을 아무 의심 없이 믿어버리고, 행복에서 돋아난 달달한 시가 내 것인 줄 알고, 절망에서 비틀어 짠 씁쓸한 시가 내 것인 양 느꼈다. 그때는 말은 공허한 울림이 아니라 존재의 본질에서 나온다고 믿었다. 현실을 모르고 아직 무덤 속처럼 시시한 일상에 질척대지 않던 시절이라 고상한 것들과 하늘 한 조각만큼 아무 짝에도 쓸모없어서 세상물정을 알게 되면 폐기처분해버릴 것들을 마음껏 떠들 수 있었다.
- 고체 스밀레프스키, <프로이트의 여동생> 中
#7.
“광기는 모두 내 말을 기다리면서 말하라고 요구하고 나는 말하고 또 말하지만 아무도 듣지 않는 거에요. 입이 내 말을 듣지 않아요. 나는 말하고 말하고 또 말하는 데도 입은 굳게 닫혀 있어서 모두 날 보고 미쳤다고 해요. 어서 말을 하라고 아우성인데도 나는 계속 침묵하고 침묵하고 또 침묵하니까요. 내가 말하고 말하고 또 말하는 걸 아무도 듣지 못해요.”
- 고체 스밀레프스키, <프로이트의 여동생>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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