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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23년 03월 3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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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480쪽 | 132*208*50m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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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주제로 한 이전 책 이후로 두 번째로 만나는 이 작가의 이번 주제는 '방랑'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래서인지 어딘가 자유로움도 느껴지고 한결 가벼워진 느낌이 든다. 어깨에 힘을 최대한 빼고 생활적인 글쓰기 방식을 취했다고 적혀있는데, 그래서인지 개인적으로는 훨씬 편안하게 다가온다.
이전 '사랑'을 주제로 한 책은 저자의 사상이나 생각들이 담겨있어 미묘한 분위기와 남다른 작가 세계관이 느껴졌다면 이번 '방랑'을 담은 책에서는 편안함과 일상을 따라가는 느낌이 들어 작가와 조금 더 가까워진 느낌이 든다.
서평을 쓰기에 앞서 책을 읽고 정리하고 보니, 그의 방랑기 속에 담긴 '저자의 취향'으로 귀결되었다. 그래서 나에게 이 책은 껍질 속 진짜 저자를 알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터벅터벅 일상을 따라가다 보면 작업실과 생활공간이 펼쳐졌고, 평소 생활습관과 외적인 모습이 상상 속에서 하나 둘 그림을 그려나가기 시작하면서 저자의 취향과 생각을 살짝 엿볼 수 있는 기회들이 종종 드러났다.
그리고 그 속에서 유머러스함과 자유로움, 엉뚱함이 느껴져 이따금씩 웃음이 피식피식 새어 나오기도 했다. 좋아하는 것들을 편안히 즐기는 모습, 그저 멍 때리며 앉아 시간을 보내는 하루, 이곳저곳 취재라는 명목으로 표류하듯 카페 곳곳을 돌아다니며 관찰하고 남기는 취재일지도, 스스로에 대한 자기 해석도 모두 익숙함 속에 자리한 그 자체를 담고 있어 어딘가 친근함마저 느껴졌다.
계획대로 되지 않아 무기력한 날도 조금 쳐지거나 우울한 날도 있지만, 그럼에도 그는 내일은 다시 해보자. 내일은 괜찮을 거야 하며 다시금 스스로 힘을 북돋는다.
우리네 삶도 그렇지 않을까? 조금 다운되는 날도, 또 업되는 날도, 때론 남들이 볼 때 엉뚱한 행동을 할 때도 있지만 나만의 취향, 나만의 행동 패턴, 나만의 일상을 즐기며 우리는 그렇게 또 오늘을 살아간다. 내일은 괜찮을 거라는 희망을 안고. 그래서 나의 일상이 더없이 소중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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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의 배후에는 용기가 있고, 용기의 배후에는 가능성이 있다. 비록 불투명한 가능성에 불과할지라도 그것을 소중히 여길 때, 우리는 무엇이든지 될 수 있는 존재로 거듭난다.
21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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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삶에서 좋아하는 범주에 들어가는 카메라에 대한 이야기에서도 이러한 그의 마인드가 드러나는데, 흑백필름을 의인화하여 '켄트미어 군'으로 유머러스하게 지칭하며 그의 속내를 여지없이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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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건 비싸서 엄두를 낼 수 없다. 그러니 켄트미어로 찍어야만 한다.'라는 얘기가 되고 나면 어쩐지 멜랑콜리한 기분이 들고 만다. 뭐랄까, 이렇게만 얘기하면 단순한 얘기 같을지 모르지만, 조금 더 깊게 들어가면 꽤 고달픈 얘기가 되고 만다.
고도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위를 점하지 못한 탓에 '컬러'를 잃어버리게 된 것이다. 달리 말해 나는 이 세계로부터 다양성을 박탈당했다는 얘기가 된다.
1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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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박탈당한 상태로 막상 찍은 사진을 인화해 보고는 한동안 넋을 놓고 감격한다. 흑백사진만이 주는 흡인력과 카리스마, 입체감과 선명한 세계의 재현에 만족한다. 그리고 이내 켄트미어 군 정도로도 충분하다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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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제는 정말이지 불평할 것 하나 없이 켄트미어 군에게 고마워하며 신나게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되었다.
(...)
훗날에는 그것이 나의 클래식으로 남게 되는 게 아닐까. 고유의 스타일로서 말이다. 물론 그동안에는 사진을 찍는 감각도 향상될 테고, 사진을 대하는 마음가짐에도 유의미한 성장이 일어날 테다. 어떤 한 가지 일을 잘하게 되는 데에 필요한 요소인 솜씨와 태도, 그 두 가지를 착실히 쌓아 나가게 되는 것이다.
나는 그와 같은 태도가 나의 삶의 태도로 이어지기를 바라고 있다. 세상이 내게서 컬러를 앗아가려 할 때, 일시적인 제한에 항복하지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묵묵히 해내는 것이다.
(...)
그런 식의 성장을 거듭해 나가는 것이야말로 이토록 불완전한 세계를 즐겁게 살아가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1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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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머러스함을 담고 있는 부분은 특히 공감이 많이 가서 더 큭큭 거리며 웃었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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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머리는 예쁘게 잘랐느냐고? 당분간 그 누구도 내 머리카락에 관해 궁금해하지 않아 줬으면 좋겠다는 말로 대답을 대신하면 어떨까 싶다.
(...)
모쪼록, 긴 머리를 감당해 내는 데 사용해 오던 에너지를 보다 중요한 일에 할애하기로 다짐한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당분간은 거울 앞을 지날 때마다 울적 해질 것만 같다.
82~8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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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쁘게 머리하려고 미용실을 갔다가 나오는 길이 울적할 때면 누구나 이런 생각 한 번쯤 해봤을 것이다. 특히 여성들은 앞머리에 이런 추억이 많을듯하다. 동질감 100% 드는 현웃터진 울적함. 공감력 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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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점잖은 화자이기 이전에 칭찬에 목마른 한 명의 인간이라는 점을 두 번이나 강조하지는 않겠습니다.
11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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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조하는 것보다 더 무서운 말! 우리는 모두 칭찬에 목마르다. 나도 칭찬이 고프다.
마지막 '귀소' 챕터에서는 저자 자신에 대해 보다 더 깊이 있게 다루고 있어, 미약하게나마 저자의 성향을 알 수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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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 대한 수식을 나열하자면, 시종일관 슬퍼하는 사람.
(...)
줄곤 무엇인가를 견뎌 낸다는 실감을 몸에 두르고 살아왔다.
(....)
내가 도착하는 곳에는 언제나 전에 없던 견뎌야 할 무엇이 기다리는 거였다.
18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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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속의 모든 견딤이 '슬픔'안에 포함된다. 견뎠다는 건, 슬펐다는 것이다. 견디고 있다는 건, 슬퍼하고 있다는 것이다. 견디게 될 거라는 건, 슬퍼지고 말거라는 뜻이다. 고로 나는 끊임없이 견딤으로써 계속해서 슬퍼할 이유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게 아닌가.
(...)
나는 기어코 글을 쓰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그것도 슬픔을 그냥 묻어 넘기지 않으려는 사람, 허튼 수로 슬픔을 감추고, 속이고, 묵살하는 대신 그것을 제대로 이해하고, 끌어안음으로써 정면으로 승부를 펼치려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186~18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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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날을 선망하는 인간이다. 다만, 그토록 선망하는 바가 천성에 딱 들어맞지 않는 형편이라서 불규칙한 주기를 두고 조용한 나날이 좋았다가 싫었다가를 반복하는 것이 나를 둘러싼 형세이다.
198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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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전히 몸을 사용하는 일을 좋아하는데 이상하게도 몸에 힘이 남아 있으면 어딘가 어색한 기분이 들고, 그것을 어떻게든 소진하고 싶어 진다.
(...)
글쓰기와 사진 또한 체력을 대단히 요구하는 일이지만 앞서 얘기한 욕구가 먼저 해소되지 않으면 차분히 앉아서 글을 쓰거나 사진을 찍을 마음이 전혀 들지 않으니 낭패이다.
21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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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고 싶은 운동이야 여럿 있음에도 사람들과 뒤엉키는 일만큼은 선호하지 않는 탓이다.
21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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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내용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한마디로 말하면 시종일관 슬퍼하는 사람
◆글을 쓰면서 그것을 제대로 이해하고, 끌어안음으로써 정면으로 승부를 펼치려는 사람
◆나날을 선망하는 인간이지만, 불규칙한 주기를 두고 좋았다 싫었다 반복하는 주기를 가진 사람
◆몸을 사용하는 일을 좋아해서 어떻게든 소진하고 싶어 하는 사람
◆글을 쓰거나 사진 찍기 전에도 무조건 체력을 먼저 소진해야 하는 사람
◆운동은 좋아하고 배우고 싶지만 사람들과 뒤엉키는 것은 선호하지 않는 사람
저자는 자기 자신에 대한 관찰과 자아성찰에 대해 열심히 고민하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된다. 내가 무얼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어떤 성향을 가졌는지 자기 파악을 제대로 하고 그것을 긍정으로 이끌려 노력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혹은 그것 그대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글로써 풀어내는 사람이라는 생각도 해본다.
일상 속에서 경험하게 되는 공감대와 유머로 한층 더 편안하게 다가왔던 방랑기. 나의 일상은 어떤지, 나의 성향은 어떤지를 생각하게 한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망친 오늘 하루는 내일은 괜찮을 거라는 희망찬 마인드로 조금은 우울한 오늘을 달래 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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