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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23년 05월 1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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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784쪽 | 1,168g | 152*215*40mm |
ISBN13 | 9788934942467 |
ISBN10 | 8934942460 |
2024년 10월 04일 ~ 2024년 11월 30일
『찬란한 멸종』 이정모 관장 특강 11월 30일(토) 오후 2시
2024년 10월 31일 ~ 2024년 11월 28일
그래제본소 : 더 나은 어휘를 쓰고 싶은 당신을 위한 필사책
2024년 10월 23일 ~ 2024년 11월 11일
2024년 11월 01일 ~ 2024년 11월 30일
상시
91명의 예스24 회원이 평가한 평균별점
"역사가 종족마다 다르게 진행된 이유는 환경의 차이 때문이지,
종족 간 생물학적 차이 때문이 아니다."
프롤로그에서는 저자가 이 책을 쓰게 된 이유부터 자신의 글이 왜 호소력이 있는지, 각 장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를 했는데 책이 너무 친절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저자가 이 책을 쓰게 된 배경은 뉴기니인 친구 얄리의 질문으로부터 시작된다. 백인은 화물을 발전시켜 뉴기니까지 가져왔는데 왜 흑인은 그런 화물을 만들지 못했냐는 것이었다. 저자는 인류의 역사와 문화의 발전이 종족 간 생물학적인 차이가 아니라 환경에 차이임을 설파한다. 특히 자연과학, 진화생물학, 지질학 등 다양한 분야의 학문을 바탕으로 다룬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로웠다. '환경이 사람을 만든다'라는 말이 묘하게 오버랩된다. 매번 원서만 펼쳤다 놨다만 했던 책인데 번역서로 구입해서 마음먹고 읽어보려고 한다. 다양한 자료도 찾아보면서 톺아보고 싶다.
어떤 관찰자가 타임머신을 타고
기원전 110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더라도,
어느 대륙의 인간 사회가
가장 빨리 발전할 것인지는 예측할 수 없고,
충분한 근거를 제시하며 어떤 대륙에나 가능성을 부여할 수는 있다.
약 4만 년 전에 크로마뇽인이 월등한 무기와 선진적 문화 특성을 앞세워 유럽에 진입해 이미 유럽을 점유하고 있던 네안데르탈인을 멸종시켰다는 저자의 시각으로부터 현생 인류의 조상인 크로마뇽인의 본성을 예측해 본다. 여러 가설이 있지만 인간 등장의 이후로 멸종된 거대 동물은 어떠한가? 오스트레일리아, 뉴기니에서는 수천만 년 동안 무수히 반복되던 가뭄을 견디고도 완전히 사라져서 단 하나의 토종 가축도 남지 않게 되었다는 점, 남북 아메리카에서도 많은 빙하기를 견뎠음에도 불구하고 모두 멸종되었다는 점은 확실히 기후보다는 인간의 문제로 좁혀지는 것 같다. 현대 문명의 발달로 인해 자신들의 터전을 잃어가는 야생동물과 지구 온난화로 위험에 처한 북극곰들을 보라.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진화해도 인간의 본성만은 참으로 진화하지 않나 보다. 이 땅 위의 모든 생물은 공생하며 살아야 하는 것이 자연의 이치인데 인간의 이기심으로 인해 그들을 파괴할 자격이 있을까. 문득 김광섭의 <성북동 비둘기>라는 시가 뇌리를 스친다. 아프리카 대륙에서 인류가 시작되었지만 인간 사회는 유라시아가 가장 빨리 발전했다는 사실 앞에 책장 넘기는 속도가 빨라진다.
폴리네시아는 환경이 인간 사회의 다양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설득력 있게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마오리족과 모리오리족 둘 다 폴리네시아 농경민이 조상이었지만 두 집단이 갈라진 이후 완전히 상반된 방향의 사회가 형성되었는데, 저자가 그들의 역사를 환경이 인간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기 위해 단기간에 진행한 '자연 실험'에 비유한 것은 너무 신박했다. 또 인구 밀도를 섬의 면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정치 단위로 보는 것도 예상 밖이었다. 폴리네시아 본래의 전통이 가장 평등하고 단순한 사회였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후손들 중 면적과 인구 밀도가 넓은 섬에 정착한 이들은 점점 사회가 복잡해졌고 권력이 수직으로 상승하게 된 점 들을 볼 때 인류가 존재하고부터 지금까지의 인간 군상과 사회가 별다름 없음을 깨닫게 된다. 자신들에게 주어진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한 것을 쟁취하려는 역사 속의 많은 마오리족 같은 나라들이 하나둘씩 떠오른다. 이쯤이면 서양의 에피쿠로스나 동양의 도가사상이 오버랩되지 않을 수 없다.
피사로를 성공적으로 이끈 직접적인 원인으로는
총포와 철제 무기와 말에 기반한 군사적 기술,
유라시아의 풍토병, 유럽의 해양 과학 기술,
유럽 국가들의 중앙집권적 정치구조, 문자 등을 들 수 있다.
스페인의 정복자 피사로와 잉카 제국의 황제 아타우알파의 일화를 재현한 이야기는 한 편의 영화를 보듯 했는데 피사로의 행적을 보아 특히 그 시대의 로마 가톨릭이 얼마나 세속에 빠져들어 있었는지, 또 퇴폐했는지 짐작할 수 있게 해 주는 부분이었다. 피사로가 스페인의 영웅이라 칭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잉카 제국인들은 아직도 무덤 속에서 격노할 일이다만 이 일화를 접하니 오디세우스의 트로이 목마가 떠오르는 건 왜일까? 문자를 이미 사용하고 있었던 스페인은 정보력이 빠르고 정확했다. 반면 잉카제국은 구두로만 전달했기에 와전되는 부분도 있었으리라. 스페인 병사들이 옮겨온 천연두라는 전염병은 최근 전 세계를 들었다 놓았을 정도의 위력이었던 코로나 팬데믹만 보아도 어떠했을지 짐작이 간다. 3장에서는 이 책의 제목이 왜 총. 균. 쇠 인지 확실히 인지하게 되었다.
제국과 문자와 철제 무기가 유라시아에서 먼저 발달하고
다른 대륙들에서는 나중에야 혹은 전혀 발달하지 못한 이유를,
결국에는 작물화 여부에서 찾을 수 있다.
고대인들도 환경에 따라 지혜롭게 대처해 나가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수렵, 채집민들은 4년 터울로 출산을 했는데 아기를 데리고 이동하는데 힘들기 때문에 금욕도 하고 수유기 무월경을 활용하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낙태, 유아 살해까지 자행했다니 그들만의 방식이었다 하더라도 지금으로써는 너무 끔찍하다. 반대로 정착생활을 하는 종족들은 이동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산아 간격이 좁았다. 당연히 인구 밀도는 상승했을 것이고 농경 생산을 하고 잉여 식량이 생기면서 식량 생산에 참여하지 않는 왕이나 관료들이 생겨나게 되니 계층화한 사회가 만들어졌다. 이러한 과정은 결국 경제적, 과학적으로 혁신화한 정착 사회를 탄생시키는 전제 조건이라니 교과서에서 배운 것보다 훨씬 쉽게 이해가 되기에 교과서에 좀 실어 주었으면 싶었다. 이 모든 것이 문명의 시작을 알리는 초석이었던 것 같아서 한편으로는 마음 한구석이 뭉클했다.
생태학적으로 식량 생산에 적합한 지역에 살면서도
일부 종족은 선사시대에 농경을 독자적으로 개발하지 못했고
다른 지역에서 들여오지도 않았다.
... 중략...
한편, 식량 생산을 먼저 시작한 이점을 누린 지역의 종족들은
총과 균과 쇠를 향해서도 먼저 달려가며 우위를 차지했다.
그 결과는 역사에서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기나긴 충돌이었다.
환경이 건조하고 생태학적으로 농업에 부적합 한 곳에서 식량 생산이 먼저 시작되었고 오히려 비옥한 지역에서는 늦어졌다고 하는 부분은 너무 아이러니했다. 결핍이 농업에 불리한 지역 사람들을 먼저 식량 생산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을까? 심지어 생태학적으로 식량 생산에 유리한 지역인데도 농경을 독자적으로 개발하지도 다른 지역에서 들여오지도 않았다고 한다. 저자는 이런 궁금증을 각 장마다 던져 놓고 다음 장을 또 넘기게 만드는 것 같다. 그 필력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식량 생산을 먼저 시작한 지역의 종족들이 총, 균, 쇠의 발전을 일찍 출발시켰다. 인류 역사에서 가장 불평등한 관계에 놓여있는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대립이 예나 지금이나 똑같이 자행되고 있다는 것이 현실이라 안타깝다. 인간의 본성만은 진화하지 않아서 그런가보다.
식량 생산과 관련해 실제로 있었던 현상은
우리가 처음에 추정한 것처럼 식량 생산이 '발견'된 것도 아니고
'발명'된 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중략...
식량 생산은 결과를 의식하지 않은 채 내린 결정의 부산물로
'진화'한 것이었다.
수렵, 채집민들 보다 식량 생산자(농경민, 목축민)들이 더 많은 시간을 일에 할애하고 심각한 질병에 시달리고 평균 사망 연령도 낮았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 농업혁명에서도 '농업혁명이 역사상 최대의 사기였다'라고 비유했기 때문이다. 환경적인 요인이 크게 작용하긴 했겠지만 수렵, 채집민이든 식량 생산자 집단이든 각자 선택의 몫이었고 그 결정은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결정의 부산물이었다는 말이 참 많이 와닿았다. 인생이란 무수한 선택의 연속이며 현재의 나는 그렇게 빚어진 존재구나 싶기도 하다. 먹거리를 구할 수단이 없어서 농경을 채택한 것이 아니라 식량 생산과 수렵, 채집을 서로 경쟁 관계에 있는 '대안적 전략'이라 생각하는 부분도 인상적이었다.
야생식물이 작물로 진화한 초기의 무의식적 단계에서는
인간이 의도적으로 식물을 재배하지 않았다.
식물이 인간으로 하여금 열매를 먹고 퍼뜨리도록 유인했을 뿐이다.
똥돼지의 배설 장소처럼 인간의 배설 장소도 최초의 작물을
무의식적으로 육종하던 사람들의 실험장이었을 것이다.
인간은 식물 쪽에서 본다면 무의식중에 식물을 작물화한 수천 종의 동물 가운데 하나일 뿐이며 식물 종자가 동물의 배설물에서 발아하게끔 만든 것이라는 관점이 흥미롭다. 간혹 나타나는 돌연변이 개체가 정상 개체보다 인간에게 유용했고 농경민들이 씨의 확산 메커니즘 등 보이지 않은 특징까지 고려해 식물들을 따로 선택해 심었다고 한다. 만일 돌연변이가 유전이 안되었다면 과연 지금의 작물을 우리가 만날 수나 있었을까 싶다. 유럽인이 들어올 때까지 북아메리카 원주민이 북아메리카 사과를 작물화하지 못한 이유는 사과의 작물화에 필요한 생물학적 조건 즉 환경의 문제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현대에 와서 새로 작물화된 주요 식물이 없다는 것과 고대인들이 좋은 식물을 본능적으로 평가했다 하니 그들이 얼마나 지혜로웠는지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가축화할 수 있는 동물은 모두 비슷하지만
가축화할 수 없는 동물은 제각각 그 이유가 다르다.
저자는 야생 동물의 가축화 가능 조건을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 첫 구절에 빗대어 표현했다. 야생 동물들이 가축화되기 위해서는 많은 특징을 갖추어야 하는데 그 이유 중 사회적 특징은 인간 사회에 만연한 현상 중 하나라고 여겨졌다. 유라시아 사회가 유리할 수 있었던 이유가 넓은 면적과 생태학적 다양성 때문에 가축화할 수 있는 대형 초식 동물들이 많았고, 홍적세 말기 후보종의 멸종이 적었으며, 살아남은 후보종 중 가축화에 적합한 동물의 비율이 컸기 때문이라는 점에서 운명은 타고나는 것인가 싶기도 했다. 읽을수록 우리나라 지역 환경과 사람과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축 방향의 대륙 간 차이는 식량 생산뿐 아니라
과학기술과 발명의 확산에도 영향을 미쳤다.
... 중략...
그 차이는 유라시아의 축 방향이
남북 아메리카와 아프리카의 축 방향과 다르다는 사실을 반영할 뿐이다.
그리고 그 축들을 중심으로 역사의 운명이 회전했다.
남북 아메리카와 아프리카의 축과는 대조적인 유라시아 축의 방향 차이가 인류 역사에 엄청나고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는데, 유라시아와 같은 동, 서로 뻗은 대륙의 위도에 있는 농작물과 가축들의 전파가 용이했지만 긴 축을 이룬 대륙은 지형이나 기후 등에 따라 교환이 자유롭지 못했다는 사실이 참 흥미롭다. 우리나라처럼 작은 땅덩어리에서도 남단 제주에서 잘 되는 귤 농사가 위 지방에서는 되지 않는 것이 완전 이해되었다. 다만, 남아프리카 공화국 근대사의 비극을 초래한 이유 또한 대륙의 축과 위도라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유럽이 다른 대륙들에 건넨 사악한 선물,
즉 유라시아인이 가축과 오랫동안 친근하게 지내는 과정에서
진화한 병원균이 없었다면 그런 식의 정복은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스페인 정복자들에게 희생된 아메리카 원주민보다 스페인 사람들로부터 감염된 세균에 의해 희생된 원주민들이 훨씬 더 많았고, 과거 전쟁에서 훌륭한 장군이나 무기를 가졌던 군대보다 가장 지독한 병원균을 적게 퍼뜨리는 군대가 승리하는 경우가 많았다니 인류 역사의 결정적인 요인은 바로 질병의 진화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 같다. 코로나 사태를 겪어봐서인지 11장은 가장 와닿는 구절들이 많았다. 전염병이 인간이 이룬 모든 세상을 한순간 멈추게 하고 바이러스가 마치 인간의 왕이라도 된 양 쥐락펴락하며 우리의 일상을 뒤흔들 때, 그제야 자연 앞에 숙연해지는 우리가 아니었던가.
문자의 역사를 살펴보면 인간의 발명품이 확산되는 데도
지리와 생태가 유사하게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뚜렷이 드러난다.
한글이 정사각형을 띤 중국 한자와 몽골 문자, 티베트 불교식 문자의 알파벳 원리에 영향을 받아 만들어졌다니 창의적이고 독자적인 아이디어에서 나온 줄 알았던 기존의 상식을 무너뜨린 부분이기도 했다. 하지만 한글 자체의 형태와 한글에만 존재하는 고유한 특성을 만들어 내었다니 유네스코 세계기록 유산으로 등재될 만도 하다. 초기 문자가 의도적으로 제한된 영역에서 사용되었고, 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는 고대 문자의 주요 기능은 타인의 예속을 용이하게 하는 것이었다고 했다. 모든 백성들이 용이하게 글을 읽고 쓸 수 있도록 만든 우리나라의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이 얼마나 존경스럽고 자랑스러운지 모르겠다. 문자나 인간의 발명품도 지리와 생태의 영향을 받는다고 하는데 환경이 그렇게 중요한 것이었나 싶기도 했다. 풍수지리나 건축학 등과 같은 것도 이런 맥락인 듯하다.
다른 조건이 모두 똑같을 때 과학기술은
면적이 넓고 생산적인 지역에서 가장 빨리 발달한다.
인구가 많으면 잠재적 발명가가 많고,
면적이 넓으면 그 안에 치열하게 경쟁하는 사회도 많기 때문이다.
여러가지 주요 발명들이 필요에 부응해 만들어진 것이라 생각하는데, 실제로는 호기심 많은 사람들이 만지작거리다 대부분의 발명품이 나오는 것이라는 말에 동의가 되면서도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는 통념이 편견이 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축음기, 자동차, 증기기관, 유인 동력 비행기 등을 예로 저자는 현대 기술과 발명의 역사에 대해 두 가지 결론을 끄집어 낸다. 기술은 영웅적 행위가 아닌 누적된 발전의 결과이고, 필요에 의해 발명되는 것이 아니라 발명 후에 대부분 용도를 찾는다는 것이다. 누군가 고안해 낸 발명품을 다른 사람이 몇 십년에 걸쳐 발전시키고 때로는 전혀 예측하지 못한 부분에서 더 큰 가치가 되기도 했다고 하니, 시행착오라는 행위의 위대함이란 이럴 때 쓰는구나 싶다. 지리적으로 고립된 곳은 기술 습득에 불리했고 지리적 생태적 장애물이 적었던 유라시아 대륙이 기술 습득과 발전이 빠른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저자는 유라시아에서 인류의 발전이 가장 빨리 발전한 이유가 유라시아인들의 지능때문이 아니라 지리적 요건 때문이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준다.
식량 생산과 사회들 간의 경쟁 및 확산이 정복의 궁극 원인이었다면,
병원균과 문자, 과학기술, 중앙집권적 조직은
정복의 근접 요인이었다.
앞부분에서 여러번 언급되었던 식량 생산과 인구 증가로 인해 사회 규모가 커지는 과정을 무리, 부족, 추장, 국가 사회의 모습을 통해 설명해 주는 부분인 이해가 아주 잘 되었다. 계급사회에서 도둑 정치가 대중의 지지를 얻지 못하면 예비 도둑 정치인들이 대체한다고 하는데 오늘날 사회와 다름없는 모습이라 씁쓸하다. 인류 역사상 도둑 정치인들은 민중의 지지를 항상 네 가지 방법으로 얻었다고 한다. 민중을 무장 해제하고 엘리트 계급을 무장시키고, 거둬들인 공물을 재분배해서 민중을 행복하게 하고, 무력을 독점하며, 도둑정치를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나 종교를 구성한다는 것이다. 특히 거둬들인 공물을 다시 재분배하여 민중을 행복하게 해 주는 것은 오늘날의 미국 정치인들에게도 유효하다는 부분이 나오는데 저자가 미국인이라 그랬겠지만 그렇지 않은 나라들이 있을까? 거대해지는 사회에서 무관한 사람들과의 갈등이 생기고 의사결정이 힘들어지고 경제 활동과 인구 밀도에 따른 공간과 신부 부족으로 인해 중앙집권적 체제의 형성이 불가피할 수 밖에 없었구나 싶었다.
오스트레일리아는 각 대륙에 형성된
사회들의 차이에 대한 이론을 검증하는 데 중대한 시금석 역할을 한다.
...중략...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사회를 일궈낸 사람들은
그 대륙의 원주민이었다.
물론 그들이 만들어낸 사회는 문자가 있었고
식량을 생산하는 산업민주주의 사회가 아니었다.
그 이유는 오스트레일리아의 환경적인 특징에 있었다.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 사회는 그 어떤 대륙의 인간 사회보다도 출발이 빨랐으나 유럽을 정복하지 못하고 그 반대가 되었다. 거대 가축의 멸종과 농업에 불리한 토양과 기후 그리고 작물화 할 수 있는 야생 식물이 희박했을 뿐만 아니라 고립된 지리적 환경과 소규모 인구는 기술 발전에 불리한 조건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한때 동대륙이었던 오스트레일리아와 뉴기니가 떨어져나간 뒤 유전자 교환이 이루어지지 않고 독립적인 다른 환경에서 진화했기 때문에 생기는 차이점도 환경적인 요인이었다. 유럽인들이 오스트레일리아를 정복할 수 있었던 것은 총, 균, 쇠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스트레일리아 사회를 일군 사람들은 그 대륙의 원주민들이었다며 저자는 백인 우월주의와 인종차별자들에게 일침을 가한다.
중국이 동아시아 문명의 형성에 중대한 역할을 한 것은 분명하지만
그 역할을 과장해서는 안 된다.
동아시아의 모든 선진 문화가 중국에서 비롯된 것도 아니고
한국인과 일본인과 열대 동남아시아인이
창의력이라고는 없어서 기여한 바가 전혀 없는 야만인이었던 것도 아니다.
중국이 동식물의 가축화나 작물화를 빨리 할 수 밖에 없었던 것도 역시나 지리적 환경적인 요인이 컷 던 탓이다. 중국도 한때 다양성이 있는 나라였으나 다른 나라들보다 훨씬 빨리 정치적 통일되었고 지금까지도 유지하고 있는 나라라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저자는 오스트로네시아인들의 조상이 중국 이주민 출신인 이유를 언어와 문화의 동질성에서 찾고 있다. 대부분의 토착민들은 수렵 채집민들로 살면서 내쭟기거나 살해되고 병에 걸리거나 오스트로네시아인들에게 동화되었지만 뉴기니인들은 이미 식량 생산과 높은 인구 밀도, 그리고 열대성 질병에 대한 저항력마저 가지고 있었던 터라 오스트로네시아인들을 물리쳤다는 것이 요점이다. 평소에 별 관심 없었던 뉴기니에 대해 괜스런 존경심 마저 든다.
백인 인종차별주의자들이 추정하듯
유럽인과 아프리카인 사이에 큰 차이가 있어서
유럽이 아프리카를 식민지로 정복할 수 있었던 게 아니다.
지리적 우연과 생물지리학적 우연이 겹친 결과였다
...중략...
두 대륙이 밟은 서로 다른 역사적 궤적은
궁극적으로 '부동산'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다.
남북아메리카가 유라시아에 정복당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정치 조직과 병원균, 기술과 문자라니 새삼 문자의 중요성에 대해 깨닫게 되는 부분이었다. 아프리카에 다양한 인종들이 살고 있었는데 그만큼 지리적 환경이 다양하고 선사시대의 역사가 길었기 때문이다. 작물화 연대나 농작물이 도입된 연대를 비교언어학자들이 시간 속에서 낱말들이 변화하는 속도를 계산하는 언어연대학으로 추정한다는 점이 매우 흥미로웠다. 결과적으로 이 모든 것들이 지리적, 생태학적 우연이었다는 것이다. 19장은 역사적 사실만큼이나 저자가 주장하고자 하는 바를 명확하게 피력하는 부분이 많았던 것 같다.
일본인과 한국인 모두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그들은 인격 형성기를 함께한 쌍둥이 형제와 같다.
양국이 과거의 유대 관계를 회복하느냐에 따라 동아시아의
정치적 미래도 크게 달라질 것이다.
문화와 환경적인 면에서 가장 독특한 국민이 일본인이며 일본어의 기원도 언어학계에서 논란이 많다고 한다. 책에서는 일본인 조상의 기원을 세 가지 학설로 나누는데
첫째, 일본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학설로 조몬 수렵 채집민이 일본인으로 진화했다는 것이고 둘째, 야요이 시대 변화가 어마한 수의 한국인이 농업기술과 문화 그리고 유전자를 가지고 이주한 결과이며 셋째, 한국인들의 이주는 맞지만 엄청난 규모는 아니었다는 학설이다. 저자는 두 번째와 세 번째 학설이 더 타당하다고 본다. 또한 한국인(야요이인)의 유골과 유전자가 현대 일본인과 가장 닮아있다고 한다. 세계적으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진 토기가 일본에서 1만2700년 전에 만든 것이라는 점도 놀라웠다.
"각 대륙의 장기적인 역사에서 나타나는 큰 차이는
그 대륙에 정착한 사람들의 타고난 차이가 아니라,
환경적인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다"
에필로그에서는 <총. 균. 쇠>의 전반적인 내용을 다시 한 번 복기할 수 있도록 해 준다. 인간 사회 궤적에 영향을 끼친 환경적인 요소들로 인해 각 대륙의 사회 성장 과정이 달랐고, 환경적으로 유리한 지역에서 발생한 우연들이 오늘날 문명의 우열을 가늠할 수 있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유라시아가 지리적으로 유리한 대륙인 것은 이미 앞서 여러 장에서 언급되어 알고 있지만 아시아쪽 중국이 아닌 유럽이 세계를 제패한 이유가 매우 흥미로웠다. 중국은 만성적인 통일 상태였는데 지리적 연결성으로 전제군주가 결정하면 모든 혁신이 중단되었다. 반면 유럽은 만성적인 분열 상태로 수백 개의 독립 소국이 서로 경쟁하며 발전했기 때문에 중국이 나침반, 화약, 인쇄술 등 주요 기술을 가장 먼저 발명했음에도 불구하고 유럽에게 선도자 위치를 추월당할 수 밖에 없었다. 비옥한 초승달 지역의 지역과 중국의 역사를 통해 상황이 바뀌면 과거의 우위가 미래의 우위를 보장해 주지 않는다는 저자의 말에 깊이 공감한다. 어느 것 하나 놓치기 아까운 구절들이 많았지만 완독에 의의를 둔다. 사피엔스도 다시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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