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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23년 06월 14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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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736쪽 | 1,048g | 152*225*36mm |
ISBN13 | 9791192913162 |
ISBN10 | 1192913167 |
2024년 08월 21일 ~ 2024년 09월 30일
9월의 굿즈 : 타공 정리함/클립 북 라이트/디즈니 캐릭터 태블릿 파우치/손잡이 텀블러/메쉬 펜 파우치
2024년 08월 30일 ~ 2024년 09월 30일
2024년 09월 01일 ~ 2024년 09월 30일
상시
9명의 예스24 회원이 평가한 평균별점
근래 이렇게 가슴이 웅대해지고 슬픔으로 먹먹해지는 책과 접한 적이 있었던가? 있었다고 해도 금방 생각이 나지 않는 것을 보면, 어쩌면 이 책이 그 기억을 덮어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게토의 저항자들’은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나치의 불의에 저항하여 싸우다가 숨져가거나 겨우 살아남은 젊은 유대인 여성 레지스탕스들의 숭고한 정신으로 빛나는 책이다.
이 책의 장대한 서사는 1924년 10월 10일 금요일, 폴란드 옝제유프의 클라슈토르나 거리 16번지에 있는 돌로 지어진 작은 집에서, 해가 저물 무렵, 오렌지색 가을 햇빛이 숲이 무성한 골짜기와 키엘체 지역의 완만한 언덕들을 점점 붉게 물들이고 있을 때, 모셰와 레아 부부 사이에서 셋째 딸로 태어난, 푸른 눈과 갈색 머리칼, 섬세한 이목구비를 가진 레니아 쿠키엘카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이후 1939년 9월 1일, 나치가 폴란드를 침략하여 점령하고, 유대인을 탄압하면서 레니아는 언니 사라와 함께 나치저항운동을 시작하게 되고, 그들을 중심으로 게토 내부와 외부에서 레지스탕스로 활동하는 많은 소녀들의 이야기가 전개되다가, 끝까지 살아남은 몇몇 여성 레지스탕스들의 후기와 더불어 2014년 8월 4일 월요일, 레니아가 태어난 지 거의 90년이 되는 안식일 전날, 세상을 떠난 이야기로 마감된다.
이 논픽션은 탄탄한 구성과 탁월한 묘사가 돋보이는 소설적 요소, 극적인 드라마적 요소, 생생한 장면들로 이어진 영화적 요소 등이 혼재되어 벽돌책 분량이면서도 손에서 책을 놓을 겨를이 없게 만든다. 거장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영화화하기로 결정했다고 하는 것이 수긍될 만큼 아픔과 슬픔과 분노의 감정이 뒤섞인 가운데도 영화의 다음 장면이 기다려지듯 몰입하게 된다.
그런가 하면 읽다가 보면, 내가 시간여행을 하여 유대인 소녀 레지스탕스들이 활동했던 나치독일의 시대로 돌아가 있는 듯, 아니 현 시대는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있고 나치독일의 시대를 살고 있는 듯, 또는 며칠 전의 어느 지역에 있던 기름방울이 물결을 타고 흘러와 지금 여전히 그 상태로 흐르고 있듯, 나치시대의 게토 공간이 시간의 물결을 타고 현시대까지 흘러온 듯한 착각에 빠져, 옝제유프에서 출생하여 벵진에서 활동한 프리덤의 연락책 레니아 쿠키엘카, 레니아의 언니로 벵진에서 유대인 고아들을 돌본 프리덤의 동지 사라 쿠키엘카, 비텐에서 출생하여 유대인 투쟁 조직 ZOB와 바르샤바 게토 봉기에서 활동한 프리덤의 리더 지비아 루베트킨, 핀스크에서 출생하여 벵진에서 투쟁 조직을 이끈 프리덤의 리더 프룸카 프워트니카, 프름카의 여동생으로 프리덤의 리더이자 연락책 한체 프워트니카, 바르샤바를 중심으로 활동한 영가드 리더이자 연락책 토시아 알트만, 바르샤바 분트에서 활동한 연락책 블라드마 미드, 벵진 영가드와 투쟁 조직의 리더 차이카 클링어, 크라쿠프를 중심으로 활동한 아키바의 리더이자 연락책 구스타 다비드손, 크라쿠프를 중심으로 활동한 아키바의 연락책 헬라 시퍼, 그로드노와 빌나와 비아위스토크를 중심으로 활동한 프리덤 연락책 벨라 하잔, 비아위스토크에서 활동한 반파쇼 첩보원 네트워크의 일원 차시아 비엘리츠카와 차이카 그로스만, 빌나의 투쟁 조직 파르티잔 조직 연합에서 활동한 영가드의 리더이자 숲지대에서 활동한 파르티잔 리더 루츠카 코르차크, 파르티잔 조직 연합에서 활동한 영가드의 리더이자 숲지대에서 활동한 파르티잔 리더 비트카 켐프너, 빌나와 숲지대를 중심으로 활동한 영가드의 연락책 젤다 크레거, 파르티잔 간호사이자 사진사이자 투사인 파예 슐만, 바르샤바 영가드 소속으로 아우슈비츠에서 발생한 저항에 가담한 안나 하일만 등과 함께 나 역시 그 공간에서 불의에 저항해 싸우고 있는 듯한 감정이입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다 보니, 다른 독자들은 무덤덤한데, 나 혼자만 강한 기시감과 유대감을 느끼면서 읽은 건 아닐까? 그래서 혹시 내가 그 당시 유대인으로 그들과 레지스탕스 운동을 했던 어느 누군가의 환생이 아닐까? 하는 기이한 생각마저 들게 한다. 다음은 당시 이들 레지스탕스 여성들이 어떤 자세로 싸워야 했으며, 어떤 정신을 소유하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짧은 예시장면이다.
<여행 내내 레니아와 이나는 매 순간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야 했다. 그들은 총에 맞을 준비도 했고, 필요한 경우 달리는 기차에서 뛰어내릴 준비도 되어 있었다. 철저한 수색 도중에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확히 알아야 했다. 그리고 체포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알아야 했다. 물론 그들은 유대인으로서 결코 잡히지 않는 방법을 알아야 했다. 그들은 절대 불행한 표정을 지으면 안 되었고, 나치가 그들을 주시할 때 오직 미소로 반응해야 했다. 그들은 심지어 혹독한 고문을 받아도 아무 말도 해서는 안 되고, 한 조각의 정보도 공개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했다. 일부 연락책들은 견딜 수 없는 심문을 받을 경우를 대비해서 청산가리를 지니고 다녔다. 실을 잡아당기면 종이봉지에 싸서 코트 안감 주머니에 부분적으로 꿰매놓은 청산가리 가루가 손에 잡히게 되어 있었다.> 335쪽.
<폴란드 저항군 인쇄소에서 나치에게 체포되었던 골라 미레도 감방에 끌려 들어와 “영적으로 고조”되고 “자매애”를 흠뻑 느끼는 시기를 겪었다. 골라는 끊임없이 이디시어와 히브리어로 시를 썼고, 종종 남편과 죽은 아이에게 자신의 작품을 바쳤다. 잦은 심문에 잔인하게 구타당해서 몸은 잿빛이었으며, 손톱이 뽑히고, 머리카락이 뜯기고, 일시적으로 시력을 상실하기도 했다. 하지만 감방으로 돌아오면 그녀는 연필을 집어들었고 자신이 쓴 시를 감방 동료들에게 낭송해주곤 했다.> 522쪽.
책은 한 나라가 다른 나라의 침략을 받아 주권을 잃었을 때 일어나는 온갖 인간군상의 면모들을 골고루 보여준다. 적국에 저항해 목숨 바쳐 싸우는 자, 적국에 협력하는 자, 적국의 밀정 노릇을 하는 자, 잘 싸우다가 배신하여 적국에 붙는 자, 등이 그러한데, 이는 일본군국주의가 우리나라를 식민지 삼았을 때, 우리 민족이 보여준 군상들을 판박이처럼 소환한다. 그렇다는 점에서 나치가 유대인 여성성노예제도를 운영한 것까지도 일본군이 운영한 위안부제도와 닮아 있다.
한편, 아래 장면은 널리 이름이 알려진 유관순 열사와 달리,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채 독립군 연락책으로 일제와 싸우다가 숨져간 우리의 소녀 독립투사들이 어떻게 저항했을지를 대충이라도 그려보게 해준다.
<바르샤바 봉기에서는 도처에서 100명이 넘는 여성 투사들이 그들이 속한 단체와 함께 싸웠다. 나치 내부에서 열린 한 회의에 보고된 바에 따르면, 전투는 그들이 예상했던 바와 달리 놀랄 만큼 치열했고, 특히 지독할 정도로 끈질긴 무장 유대인 소녀들은 죽을 때까지 싸웠다. 몇몇 유대인 여성 투사들은 밀라 거리 18번지와 기타 지점에서 싸우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리고 많은 대원들은 “손에 총을 잡은 상태로” 죽었다. 고르도니아 청년운동 소속의 레아 코렌은 하수도를 통해 게토를 탈출했는데, 부상당한 ZOB 투사들을 간호하기 위해 다시 돌아갔다가 사살되었다. 봉기 당시에 각 부대들을 연결하는 임무를 맡았던 레기나(릴리스) 푸덴은 투사들을 구하기 위해 여러 차례 하수구를 통해 되돌아왔다. 그녀의 사망 기사에는 “하수도를 지나다닐 때 목까지 물이 찼지만, 그녀는 포기하지 않고 돌아가서 대원들을 탈출시켰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녀는 단 한 번의 공격을 받고 사망했다. 그녀의 나이는 스물한 살이었다. 연락책이었던 프라니아 베아투스는 봉기 당시 열일곱 살이었고, 초소를 지키다가 아리아인 구역으로 건너가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숲과 꽃향기를 꿈꾸던” 소녀 드보라 바란은 게토 중심부에서 싸웠다. 그녀가 머물던 벙커가 발각되었을 때 지휘관은 그녀에게 먼저 나가라고 명령했는데, 그녀는 자신의 아름다운 외모를 이용해 나치의 관심을 흩뜨려놓아서 일단 그들의 추적을 막는 데 성공했다. 그런 다음 수류탄을 던져서, 동료들이 새로운 지점에 자리 잡는 동안 나치를 산산이 분산시켰다. 그녀는 이튿날 살해되었다. 당시 스무 살이었다.> 317-318쪽.
살아남은 뒤 당시의 고통을 가슴 깊숙이 숨긴 채 현재의 삶에 충실했던 레니아와 같은 여성들이 있는가 하면, 살아남았다는 죄책감과 우울증을 견딜 수 없어 어린 자식들을 두고도 결국 자살을 선택한 차이카 클링어 같은 여성도 있다.
<차이카는 살아남았고 영가드가 자신에게 부여한 역할을 완수하기를 원했다. 그녀가 목격한 한 것을 사람들에게 증언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그녀는 자신이 살아남는 형벌을 받았다고 느꼈다. 마침내 더 깊은 우울증을 보여주는 사건을 겪은 후 마흔두 살의 차이카는 병원으로 돌아가는 데 동의했다. 어느 날 저녁 그녀는 코트를 입고 아이들이 사는 집에 도착했다. 작별인사를 하기 위해서였다.
다음 날 아침, 1958년 4월 바르샤바 게토 봉기의 열다섯 번째 기념일에 차이카 클링어는 세 아들이 놀고 있던 키부츠 탁아소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나무에 목을 매달았다.
살아남은 사람이 모두 생존의 고통을 견뎌내는 것은 아니다.> 587-588쪽.
혹독했던 시대를 견디며 살아남아 세 명의 아이들까지 두었던 차이카 클링어는 고문의 정신적 외상으로 우울증을 앓다가 끝내 스스로 생을 거두었다. 어떻게 어린 자식을 세 명이나 두고 죽을 수 있을까? 혹시 우울증의 심층에 자기 자신을 비롯하여 인간 종 자체에 대한 극심한 혐오가 도사리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믿었던 그 자식들이 나중에 커서 자신을 고문했던 인간처럼 되지 말란 법이 어디 있는가? 하는, 인간 종 자체에 대한 절망으로 더 이상 삶을 유지할 수 없었던 것은 아닐까?
이 책은 당시 유대인 소녀 레지스탕스들의 이야기로 끝나지 않는다. 지금 러시아의 우크라나이나 침략에서 보듯, 결코 과거 나치의 전체주의체제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는 경각심을 일깨워준다. 그 일부인 북한이, 같은 성격의 다른 위치일 뿐인 5.18을 일으킨 의식이 언제든 발호할 수 있음을 자각시켜준다. 그런가 하면 우리의 현재 삶을 옥죄는 각자가 처한 다양한 힘든 환경을 나치독일로 바꾸어놓으면, 그 환경 안의 개인은 당시 게토 안의 유대인이 되고, 그 유대인 레지스탕스 소녀들의 저항정신으로부터 현재의 역경을 헤쳐 나가는 정신적 힘을 얻을 수 있다면 여전히 당시의 이야기는 오늘날의 이야기가 된다.
인간의 의식을 달콤한 쾌락으로 잠들게 만드는 수면제 같은 역할을 하는 책들이 있다면, 인간의 의식을 깨우고, 인간의 조건을 되새김질 시켜주는 각성제 효과를 주는 책들이 있다. 내게는 이 책이 명백히 후자에 속하는 책이었다. 또한 내게는 이 책이 난무하는 그 어떤 자기계발서보다 더 가치 있는 영감과 용기를 얻을 수 있는 자기계발서였다. 뿐만 아니라, 인간탐구서로도 유용한 가치가 있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내게 이 책은 내 정신이 무디어질 때마다 꺼내어 다시 날카롭게 가는 용도의 금강석과도 같은 책들의 반열에 드는 소장가치 높은 책이므로, 오래 보존할 수 있게끔 하드커버 양장으로 출간되었더라면 더 좋았으리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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