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 처음 인사를 나누었을 때 하루는 〈Planet A〉의 감독이었다. 〈Planet A〉는 장애인, 난민, 성노동자 등의 인간 동물과, 소, 돼지, 닭 등의 비인간 동물들에게 가해진 폭력을 고발하고 이에 맞서 싸우는 이들의 모습을 뮤직비디오 형식으로 담은 작품이다. 그는 이 작품에 내 발언 영상을 짧게 넣고 싶다고 했다. 당시 외국인 보호소에서 자행된 고문을 규탄하는 기자회견 자리에서 행한 발언이었다. 나는 인간수용시설로서 외국인 보호소와 장애인 시설에서 자행된 감금과 폭력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언급했다.
하루는 내 발언을 전체 열다섯 가지 이야기를 연결하는 고리들 중 하나로 삼았다. 그는 내가 아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이야기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는 정말로 많은 것을 보았고 그만큼 많이 아파했던 것 같다. 자신은 많은 일을 겪었기에 좀처럼 울지 않는다면서도 곧잘 눈물을 글썽였다. 그가 어디까지 가서 무엇을 보았는지 알 수 없었던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그의 절박성에 닿지는 못했다.
어느 날 하루는 내가 있는 ‘읽기의 집’을 찾아와 글을 쓰기 시작했다. 여행기 같은 글이라고 했다. 6년 가까이 여기저기 다녔다고. 처음에는 배낭여행 같은 건가 싶었다. 그러나 그가 파편적으로 들려준 이야기들은 내가 아는 여행과 너무 달랐다. 단어들부터 낯설었다. 나는 그에게 식당이나 마트의 쓰레기통에서 식자재를 구하는 덤스터 다이빙에 대해 들었고, 도시 문명을 떠나 돈이나 전자기기 없이 숲속에서 한 달을 지내는 레인보우 개더링에 대해 들었다. 또 숲이나 바닷가, 공원에서 침낭을 깔거나 해먹을 걸고 그냥 잤다는 이야기도 들었고, 집안일을 해주거나 베이비시터를 하면서 숙식을 해결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여권을 빼앗긴 채 수용시설에 갇혀 지낸 이야기도 들었고, 미국 어딘가 있다는 거대한 도살장을 찾아간 이야기도 들었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아니었고 밥을 먹거나 산책을 하다가 우연히 흘러나온 파편들이었다. 이 파편들이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모르는 나는 이것들을 제멋대로 끼워 맞추고는 집시나 히피의 정처 없는 방랑기 같은 것을 떠올렸다.
그리고 마침내 그가 완성한 원고를 읽었다. 시작하는 문장이 긴장을 불러일으켰다. 알 수 없는 상처를 지닌 문장이었다. 그는 출국 이틀 전에 엄마에게 통보하고 다시는 한국에 돌아오지 않을 생각이었다고 썼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불안한 마음으로 따라가는 여정. 그러나 믿기지 않을 만큼 그는 씩씩하게 방랑자의 삶을 살아냈다. 돈 없이 살아가는 기술들을 익히고 거침없이 사람들을 사귀며 이곳저곳을 다녔다. 그는 금세 강해졌고 그의 삶은 재밌어 보였으며, 그가 찾아간 곳들은 아름다웠다. 길 위의 사람들은 손을 치켜든 그에게 기꺼이 옆자리를 내주었고 친구를 소개해주었으며 가족이 되어주었다.
어떻게 이런 방랑을 이어갈 수 있었을까. 하루는 모든 것을 버리고 온 사람 같았다. 그에게는 가야 할 곳도, 만나야 할 사람도 없었다. 그런데 그것이 그를 어디로든 갈 수 있고 누구든 만날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주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옆자리에 태워주었지만 그 전에 그는 누구든 자신의 마음에 태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의 여정을 따라 읽으며 세상이 생각보다 괜찮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글의 어디서부턴가 풍경이 달라졌음을 알게 되었다. 여정은 정해져 있지 않았지만 한곳은 언제나 다음 곳을 안내하고 있었다. 더 이상 벅찬 순간이 벅찬 순간으로, 아름다운 풍경이 아름다운 풍경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한 폭력은 더 큰 폭력을 가리켰고, 상처 난 장소는 더 큰 상처가 있는 곳을 가리켰다. 그는 난민을 만났고 장애인을 만났고 성폭력 피해자를 만났다. 그리고 여러 폭력들이 응집된 곳에서 비인간 동물들을 만났다. 젖을 짜내기 위해 계속해서 강간당하는 소, 집단 피살을 앞둔 돼지, 도망갈 수 없도록 날개가 잘린 여왕벌.
곳곳에서 사람들은 여전히 하루에게 자리와 음식을 내어주고 하루를 꼭 안아주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어느 곳에서 멈추었다. 문명의 모든 것을 버리고 숲에 들어온 사람들은 평화를 해치지 말라며 성폭력 사건 앞에서 침묵했고, 인간에 대한 폭력 사건에 함께 분노했던 사람들은 비인간 동물들이 당한 폭력 앞에서 무감각했다. 평화를 지키기 위해,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혹은 이 나라 시민이 아니니까, 인간이 아니니까 폭력을 문제 삼지 않으려 했다. 어떤 이들은 홀로코스트나 강간 같은 끔찍한 말들을 비인간 동물에게 사용하는 것은 인간 희생자를 모욕하는 짓이라고도 했다.
나 역시 하루의 여정을 따라가는 일이 뒤로 갈수록 힘에 겨웠다. 원고를 읽다가 여러 번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서성여야 했다. 내 안의 누군가가 그만가자고 바짓가랑이를 붙잡는 것 같았다. 이 정직한 여정이 가리키는 곳이 어딘지를 예감하며 내 치부가 드러나기 전에 도망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하루가 수많은 차별과 폭력의 모티브를 제공한 곳이라며 가리키는 곳으로 걸음을 옮겨 가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그가 너무나 정직하게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방랑기의 끝에 이르러서야 나는 이것이 방랑이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하루는 길을 떠돈 것이 아니라 길을 찾아가고 있었다. 정처가 없었던 것은 맞다. 그는 몸이 머물 곳만큼이나 생각이 머물 곳을 미리 정해두지 않았다. 그것이 그의 정직이었다. 알지 못하는 길이었지만 그는 용감하게 걸었다. 이 책은 정직한 발걸음이 어떻게 한 인간, 한 동물을 자유와 해방의 길로 인도하는지를 보여준다. 동물해방운동가인 하루는 이 길을 따라 우리를 떠나 우리에게 온 것이다.
- 고병권 (철학자)
인권영화제에서 무대에 오른 하루를 본 적이 있다. 하루가 만든 공장식 축산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상영한 뒤 이야기 나누는 자리였다. 자그마한 몸집에 커다랗고 다소 추레한 옷을 입은 그는 과연 듣던 대로 전 세계를 유랑한 히피답게 맨발이었다. 나는 이 분방한 평화주의자가 아름답고 무시무시한 말들을 쏟아내며 베테랑 인권활동가들을 향해 “이것은 왜 폭력이 아닙니까” 외치며 경종을 울릴 거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마이크를 잡은 하루는 꽁꽁 얼어붙어서는 입을 떼지 못하다가 급기야 너무 떨린다면서 훌쩍훌쩍 울기 시작했다. 결국 그는 한마디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무대를 내려갔다. 두려움도 눈물도 감추지 못하는 그가 이상하게 부러워서, 이 낯선 존재가 대체 어디서 왔을까 생각하며 그의 흙 묻은 발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이 책은 하루가 6년간 60여 개국을 히치하이킹으로 여행하며 이동한 기록이다. 하루는 인간이 만든 경계와 규범 위를 초연하게 넘나드는 한 마리의 동물 같아서, 그가 통과하는 곳마다 당연했던 경계들이 낯설게 보인다. 책을 펼치자마자 두 번의 카우치서핑으로 말레이시아 랑카위섬 바다 위에 사는 주민의 집(배) 에서 아침을 맞이한 하루는 단숨에 우리를 이상하고 자유로운 세계로 데려간다. 사용하지 않는 땅을 점거해 살아가는 스쾃, 상품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버려지는 멀쩡한 음식들을 가져와 나눠 먹는 덤스터 다이빙(쓰레기통 뒤지기) , 추위를 피해 따뜻한 곳으로 이동해 도착한 그리스에서의 난민 인권 활동, 도시문명에서 벗어나 자연에 파묻혀 지내며 삶을 축복하는 레인보우 개더링과 그곳에서 만난 성폭력 대응 활동, 그리고 이 시대 가장 억압받는 자들을 위한 동물해방운동까지. 다정하면서 담대한 그의 유랑은 어디에서도 들은 적 없는 진기한 이야기로 가득하다. 적응 말고 저항을 선택한 한 인간의 동물적 여행기이자 덜 소비할수록 더 생생히 연결됨을 보여주는 마법의 지도 같은 책.
- 홍은전 (기록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