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권><br/>인생별곡 11 <br/>존재의 이유 43 <br/>우연한 만남 90 <br/>장터 풍경 118 <br/>대박 사냥 179<br/>지리멸렬 221 <br/>발길 따라 땅끝까지 252<br/><br/><하권><br/>수도어행 7 <br/>살다 보면 43 <br/>내가 걷는 길 71 <br/>끝나지 않은 길 100 <br/>터널 136 <br/>화려한 비상 175 <br/>내일을 여는 소리 226

장터로 떠돌아다닌 지 6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코흘리개 입학생이 초등학교 졸업장을 받고 개근상까지 받은 장터 생활이다. 동가식 서가숙으로 전국의 장터를 떠돌아다닌 세월이 아련하게 떠오른다.
IMF의 국가 외환 위기에 피치 못한 사업의 부도로 좌절과 패배 의식에 젖어 있으면서 쓰라린 고통을 감내하기엔 역부족인 시점에서 그냥 방황만 할 수가 없었다.
내 자신의 발전은 곧 자기 완성이었다. 절망의 끝은 희망이라는 등불이 있었다. 우연찮은 기회로 이 길로 접어든 장돌뱅이의 세계는 그야말로 우리 삶의 밑바닥이었다. 장꾼들과의 만남과 헤어짐 속에 의리와 모사, 배반과 우정, 사랑과 시기의 틈바구니 속에서 핍진한 삶의 단면을 보았고, 실의와 번민에 빠져들었던 장꾼들이 다시 재기에 성공하여 사회로 환원해 가는 이들도 여럿 보아 왔다.
모든 그림의 밑바탕이 흰색인 것처럼, 사회에서 좋은 대우를 받았다든지 자영업으로 여러 식솔들을 거느렸다든지 그 시절이 그립고 위세가 당당하였지만, 장돌뱅이의 세계에 발을 디디는 순간부터는 마음부터 빈 여백으로 새 출발을 해야만 했다. 그렇지 않고는 이 세계에서 또다시 퇴출되기 십상이었다.
이 시대의 마지막 보부상인과의 만남을 통해 진정한 장돌뱅이의 의리와 책무를 알게 되었고, 대박을 향해 전국 도처로 떠도는 장꾼들의 실상을 눈으로 보았을 때는 언젠가는 누군가가 이 시대의 아픔을 삭이는 그 현장을 기록으로 남겨두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6년 동안의 행사 자료를 토대로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실로 방대한 자료를 근거로 집필에 임했다.
축제 행사장으로 부초처럼 떠다니는 장돌뱅이는 화려한 여성 잡지의 창간호 특별 부록쯤으로 우리들은 행사장 주위에 텐트를 치고 전을 펴고 했다. 쫓겨나기도 하고, 그들과 싸우기도 하고, 타협으로 행사에 참여하기도 했다. 어깨들의 주먹과 맞서 싸우면서도 끈질긴 장꾼들의 단합으로 헤쳐나갔다.
엿장수의 삶 또한 군데군데 기워 입은 천 조각처럼 인생의 편린들을 엿볼 수 있었다. 구수한 입담의 장타령으로 울고 웃기는 그 슬픈 목소리에는 삶의 정한이 묻어 있기도 했다. 치열하고도 노골적인 잡설과 푸념은 이 시대 뒤안의 아우성처럼 들리기도 했다.
장꾼들은 거칠었지만 의리도 있었다. 다만 배신으로 돌아선 그들의 안부는 자못 궁금할 뿐이다. 팀장이라는 완장을 차고 중소기업 상품 박람회나 지방의 축제 행사장을 비롯하여 야생마처럼 나뒹구는 야시장 행사를 참여한 횟수 또한 200여 회나 됐다. 전국 최고의 장터에서 대박을 내기도 했고, 일전 한푼 없이 야반도주한 일도 다반사였다.
이 글은 문학적인 허세나 미사여구 없이 장터 바닥 그 자체를 진솔하게 표현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살얼음판 같은 밑바닥의 인생 기로에서 잘못 들어선 길로 접어들어, 무기수로 또는 구치소로 들어간 이도 적잖았다. 하지만 대박의 행운을 옹이처럼 부여잡고 새 삶의 터전으로 나선 이도 많았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께서는 혹시 삶의 무상함이나 아니면 현실의 비통함에 안주하고 계신 분이 있다면 새롭고 활기차게 오뚝이처럼 일어서는 장꾼들의 세계를 엿보고 희망의 첫걸음을 내디딜 수 있는 기회가 된다면 필자로서 다행이 아닐 수가 없다.
봄빛이 완연해졌다. 앞산의 신록이 푸르고 이제 뒷산도 머잖아 초록 물로 짙어질 것이다. 음지에서 드문드문 잔설처럼 웅크리고 앉아 재기를 꿈꾸는 장꾼들에게도 희망의 뿌리가 내리도록 기도 드리며 그들에게도 안부를 전하고자 한다.

오래된 소설에나 등장할 법한 낱말, 장돌뱅이. 21세기에도 그들의 숨결은 끈질기게 살아 꿈틀거리고 있다. 끈질긴 만큼 거칠디거친 것이 그들의 삶이다. 굳은살 박인 손만큼이나 탄탄한 실화 소설 '길이 있어 거상이 간다'는 그들의 눈물과 한숨과 웃음을 한데 담아내는 '만화경'이다. 혹은 요지경이다. <br/>거기에는 '메밀꽃 필 무렵'에 등장하는 장돌뱅이가 보이지 않는다. 달과 구름이 흐르고, 하얗게 메밀이는 아름다움이 거기에는 없다.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 / 한 두릅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섣부른 감상에 기대어 있지도 않다. 오직 고단하기만 한 삶을 그들은 있는 그대로 끌어안고 살아갈 뿐이다. 그 속에 흐르는 눈물은 피가 되고, 한숨은 추운 겨울날의 바람으로 남는다. 그래도 버틸 수 있는 것은 여우비 속에서 잠깐 내비치는 해처럼 웃음 한 자락 털어낼 줄 아는 힘 때문이다. <br/><br/>주먹 속의 웃음과 눈물 / 주먹에서 피는 희망<br/>'길이 있어 거상이 간다'는 국제 구제 금융 위기(IMF)로 삶의 기반이 무너지고 실의에 빠져 있던 저자가 우연히 발을 들여놓게 된 장터에서 새로운 희망을 찾게 된 6년 동안의 이야기를 소설로 엮은 실화이다. 사업의 부도로 거리에 내몰린 저자가 우연한 기회에 알게 된 장터 생활은 우리 사회의 밑바닥을 보는 듯 거칠고 투박하지만 우리네 삶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생생한 현장 그대로이다.<br/>한 가정의 멀쩡한 아버지들을 거리의 노숙자로 내몬 국제 구제 금융 위기의 여파는 오늘까지도 사회 곳곳에 남아 있다. 작가가 장터에서 만난 장꾼들도 저마다의 사연을 안고 있다. 작가처럼 부정수표법 위반으로 기소 중지자가 되어 숨을 곳을 찾아 들어온 준범법자, 자신이 거둔 농산물의 제값을 받기 위해 들고 나온 농꾼, 남편의 사업 실패로 생계를 위해 거친 행사장 일도 마다하지 않고 나온 유명 가수의 부인 등 그들의 얼굴은 가지가지이다. 그들의 주먹 속에는 질퍽한 눈물과 바람 같은 웃음이 떠날 줄 모른다. <br/><br/>잠들지 않는 꿈<br/>'동가식 서가숙으로 전국의 장터를 안방 삼아 떠도는 장꾼들의 의리와 모사, 배반과 우정, 사랑과 시기의 틈바구니 속에서 인생의 대박을 쫓아 오늘도 부초처럼 행군하는 그들의 삶 이야기.' 작가의 표현은, 발로 쓰는 작품이 드문 시대에 '길이 있어 거상이 간다'가 어떤 빛깔을 지니고 있는지를 낱낱이 보여 준다. <br/>그의 말마따나 대박을 찾아 떠도는 사람은 많다. 그러나 그 대박이 '눈먼 돈'을 찾아다니는 것이라면 그것은 대박이 아니다. 말 그대로 뜬구름을 잡으려는 허망한 꿈일 뿐. <br/>사람은 누구나 잠을 잔다. 그러나 장돌뱅이는 끝내 잠들지 않는다. 그들은 꿈속에서도 인생의 내밀한 대박을 쫓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잠들어도 잠들지 않는 것들이 있듯, 그 한가운데에 장돌뱅이가 숨을 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