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마음으로 글을 씁니다>(초록비책공방, 2023)는 글쓰기 교사인 오수민 저자가 3년 동안 초등 온라인 매일 글쓰기 수업을 진행해온 과정을 담은 체험기이다. 수업 진행 방법과 글쓰기 수업 사례 등과 더불어, 글쓰기를 두려워하거나 어려워했던 아이들이 점점 글쓰기에 재미를 느끼고 성장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온라인 매일 글쓰기 과정은 다음과 같다. 저자는 매일 온라인 카페에 책을 토대로 정리한 글감을 자세히 적어서 올려놓는다. 아이들은 글감을 보고 한 줄 이상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자유롭게 쓴다. 저자는 아이들의 글에 빠짐없이 칭찬과 응원의 댓글을 정성껏 남긴다. 빨간 펜 첨삭이나 맞춤법 지적은 전혀 없다. 저자는 아이들의 글에서 좋은 부분을 구체적으로 칭찬하고 글을 계속 쓸 수 있도록 격려한다.
오수민 저자는 학습공동체 숭례문학당의 독서토론과 글쓰기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교양북클럽' '작가처럼 쓰기', '어린이 글쓰기', '어린이 독서토론',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인도한다. 또한 여러 도서관과 교육청, 한겨레 교육에서도 다양한 강의와 모임을 진행한다. <온라인 책모임 잘하는 법>, <그림책 모임 잘하는 법>, <일상 인문학 습관> 등 공저했다.
이 책은 아이들의 마음을 헤아리며 글쓰기의 두려움부터 해소하도록 이끈다. 두려운 이유를 하나씩 살펴보고 그 마음을 받아준다. 한 단어, 한 문장이라도 썼다면 글을 썼다고 인정해준다. 절대로 내용과 분량으로 아이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다. 글을 쓰려고 애를 쓴 그 아이의 마음과 고민의 과정을 아이들 시선에서 그대로 수용한다. 글쓰기의 시작은 한 문단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을 내려놓는 것부터가 진정한 출발이며 행복한 글쓰기를 위한 단단한 기초가 된다.
“환대받는 글쓰기 환경이라면 아이들이 두려워하지 않고 마음대로 글을 쓰면서 즐겁게 지낼 거라고 믿었습니다. 아이들에게 '잘 쓰는 기술'이 아니라 '쓰고 싶은 마음'을 자극해주고 싶었습니다. 맞춤법 공부, 문장 구성하기, 글쓰기 전략이 왜 그렇게 중요한가요? 글쓰기를 이미 싫어하게 된 다음에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해보니까 글쓰기가 어렵지 않다는 걸 깨닫고, 자기 마음과 생각을 표현하는 데 재미를 느낀다면, 아이들은 글쓰기를 자연스런 친구로 여깁니다.”p.12
사실, 수많은 작법서들은 글쓰기의 중요성과 방법을 강조한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글쓰기에 대한 아이들의 두려움과 부담을 해소하지 못하면 아무리 동기부여를 하고 다양한 방법을 알려준다고 해도 별로 소용이 없다. 한편으로, 글쓰기는 힘들고 어려운 과정이기 때문에 그냥 참고 해야하는 공부라고 여기며 억지로 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저자는 아이들이 글쓰기를 즐겁고 재미있게, 조금씩 성장하면서 할 수 있는 놀이가 될 수 있다고 자신한다. 먼저 "글을 쓰고 싶게 만드는 것이 우선"이라는 말이다.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생기려면 글쓰기 문턱을 낮춰야 한다. 연필을 잡는 것, 컴퓨터 앞에 앉는 것부터 글쓰기의 시작으로 보는 것이다. 저자는 아이들이 "앉아서 노력하는 글쓰기 연습으로 생각해줄 필요"(p.24)가 있다고 강조한다. 부모 눈에는 시작도 안하는 것처럼 보여서 조급함이 생기고 잔소리가 나올지도 모른다. 그러나 글의 완성도와 분량에 대한 기준을 없애거나 낮춰야 아이들이 긴장감 없이 글을 자유롭게 쓰게 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한 문장 쓰다보면 다음 문장으로 이어지는 체험을 스스로 해봐야 즐거운 마음으로 글을 쓸 수 있다. 글쓰기가 특별한 것이 아니라 누구나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재미있는 경험이라는 것을 스스로 느낄 때까지 어른들이 기다려주는 태도가 필요한 것 같다.
“아이에게 글쓰기 분량으로 부담을 주지 않습니다. 아이가 글쓰기를 시작하는 단계에서는 분량을 생각할 때가 아닙니다. 글을 쓰겠다는 의지가 없으니 글의 분량을 목표로 주면 부담만 느끼고 잘되지 않습니다. "글쓰기 목표는 다섯 줄이지만 생각이 나지 않거나 어렵게 느껴질 때는 한 줄만 써도 괜찮아."라고 해야 부담을 조금 덜어내고 시작할 수 있습니다.” p.105
한 단어 겨우 쓰던 아이가 열 문장을 채우고 자기 느낌을 개성있게 적어낸 글을 보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칭찬과 격려로 기다려준 저자와 부모의 그 지난했던 과정도 상상이 간다. 아이가 시행착오를 거치며 스스로 쌓아올린 자신감과 만족감이 아이의 글에서도 드러나서 읽는 사람 모두가 흐믓해진다. 매일 글을 쓰며 칭찬의 피드백을 경험한 아이는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저자는 다양한 방법으로 아이들이 글쓰기의 끈을 놓치지 않도록 인도한다. '만약~라면' 상상하고 지켜보기, 두 글자만 써도 오늘은 글쓰기 통과, 내가 생각할 동안 기다려줘, 한 줄에서 열 줄 쓰기로 가는 길 등. 구체적인 사례와 아이들의 반응들, 성장 과정을 자세하게 보여준다.
”현우 엄마는 매일 두 줄 정도만 쓰는 현우에게 좀 더 잘 썼으면 하는 바람을 나타내지 않고 그저 지켜봤습니다. 아이들의 글쓰기 힘은 매달린 머루 무게 때문에 곧 끊어질 듯한 나뭇가지와 같습니다. 부모가 실망하는 모습을 보이면 아이의 글쓰기끈은 끊어질 수 있습니다.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지 알 수 없기에 답답하고 불안하겠지만 조바심 내지 않고 기다려줄 수 있어야 합니다. 현우는 기다려준 엄마 덕분에 어느새 자신감이 생겼나 봅니다. 글쓰기 실력이 늘었을 뿐만 아니라 매일 빠뜨리지 않고 글을 썼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드러냈거든요.“p.116
각 챕터의 마지막에 할당된 '10분 글쓰기 강좌'와 '알쏭달송 상담소'는 매우 유용하다. 글쓰기와 독서 연결법', '글쓰기 지도 7원칙', '아이 글 칭찬하는 법' 등 글쓰기 관련하여 궁금증을 미리 파악하여 세심하고 알찬 답변으로 채워져 있다. 여기서도 저자 특유의 공감능력으로 질문을 던지는 부모의 마음을 헤아리며 동시에 명쾌한 대답을 함으로써 궁금증을 해소시켜준다.
예를 들어, "글쓰기 분량을 늘려야 실력이 늘 텐데 조바심이 납니다. 어떻게 하면 아이가 글을 길게 쓸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에 저자는 "아이가 쓰라는 글은 안 쓰고 딴짓을 하는 것처럼 보이니 답답하시지요?"라며 부모님의 마음을 먼저 공감해준다. 이후에 조바심을 내려놓을 수 있는 실천적인 방법 3가지를 구체적으로 제안하고 있다. 저자가 권하는 방법대로 한다면, 아이의 글쓰기 실력은 물론 아이와도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지 않을까.
“글쓰기 프로그램 진행자는 아이의 마음을 움직이려고 하지 않고, 스스로 다가오도록 자리를 지키는 역할을 맡습니다.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라며 조급하게 안내하지 않습니다. 목이 말라야 직접 우물가에 가서 물을 떠 마시듯 글쓰기도 자기에게 필요하다는 걸 알 수 있도록 시간을 줍니다.”p.126
<아이들이 마음으로 글을 씁니다>는 아이들 입장에서 글쓰기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칭찬과 인내로 아이들의 글쓰기 성장을 이끌어낸 과정이 담긴 책이다. 글쓰기 프로그램 진행자로서 저자의 노하우도 유용했지만, 무엇보다 아이들을 대하는 저자의 성숙한 태도를 엿볼 수 있다. 아이들을 인격적으로 동등하게 바라보는 저자의 진심어린 시선을 느낄 수 있다. 초등학생을 둔 부모와 글쓰기 관련 교육자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