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은 숫자를 좋아한다. 어른들에게 새로 사귄 친구 이야기를 하면, 그분들은 제일 중요한 것은 도무지 묻지 않는다. 그분들은 '그 친구의 목소리가 어떠냐! 무슨 장난을 제일 좋아하느냐?' 이렇게 말하는 일은 절대로 없다. '나이가 몇이냐? 형제가 몇이냐? 몸무게가 얼마냐? 그 애 아버지가 얼마나 버느냐?'하는 것이 그분들의 묻는 말이다. 그제서야 그 친구를 아는 줄로 생각한다. 만약 어른들에게 '창틀에는 제라니움이 피어 있고, 지붕에는 비둘기들이 놀고 있는 고운 붉은 벽돌집을 보았다'고 말하면, 그분들은 이 집이 어떻게 생겼는지 생각해 내지를 못한다. '1억원 짜리 집을 보았다.'고 해야 그제서야 '야, 참 좋은 집을 보았구나!'하고 말한다.」 -어린 왕자 중에서-
집에 대한 이야기 중 가장 인상적인 구절이 아닌가 싶다. 어린 왕자가 투덜대는 것처럼 집은 확실히 한 사람, 한 집안의 부를 드러내주는 명백한 수단이 되었다. 이 뿐만 아니라 집은 재산을 증식해 나갈 수 있는 중요한 투자대상의 하나이기도 하다. 어떻게 짓느냐보다 얼마나 짓느냐가 더 중요했던 지난 과거, 집은 누구나 가질 수 있고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제 정말 양이 아닌 질을 생각할 정도로 여유를 가져봄직한 시대가 된 것일까? 음식에 대한 교양서가 쏟아지고 옷에 대해 경배를 표하는 잡지의 종류가 점점 많아지고 있더니 드디어 이제는 집이 숭배해야 할 거대한 재산이 아니라 우리에게 생각할 거리, 느낄 거리를 만들어 주는 삶의 터전으로 여기는 책이 나왔다. 바로 『이 집은 누구인가』.
저자 김진애는 명실공히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그리고 엘리트 코스를 착실히 밟아온 건축가이다. 산농테라스, 산마당집, em-pc하우스, 그림문화관과 같은 건축물 설계뿐만 아니라 산본 신도시, 수영정보단지, 인사동길 설계와 같이 도시 설계도 한다. 그리고 『타임』지가 꼽은 '21세기 100인의 지도자' 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니는 사람이기도 하다. 이런 사람이 집에 대해 품고 있는 감성의 수준이란 어느 정도나 될까? 사실 이런 게 궁금했다.
『이 책은 누구인가』는 한마디로 집에 대한 에세이다. 단단한 구성의 흔적이 보여지지는 않지만 자유롭게 생각이 가지쳐 나가는 대로 집에 관한 그의 생각을 편안하게 늘어놓고 있다.
누군가 김진애에게 '좋은 집이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한다면 '사람살기에 좋은 집'이라고 대답할 듯하다. 효율적이고 기능적인 공간이라는 개념보다 아이들이 놀 수 있고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추억을 쌓아 가고 가족 간에 사랑을 키워 나갈 수 있는 집이 김진애식 '사람살기에 좋은 집'이다. 이 명제를 지키기 위해 김진애는 언급을 안하면 마치 건축에 대해 무지한 사람으로 오인되는 '동선이 짧은 집이 좋은 집이다'라는 통념부터 파기한다. "집은 기계이다."임을 주장한 20세기 건축의 거장 르 코르뷔지의 아성이 무너지는 순간이다.
사람의 속이 끝이 없듯 집을 사람처럼 생각하는 김진애의 집 이야기도 끝이 없다.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공간인 '구석'. 마당에서 마루로, 마루에서 부엌으로 옮겨가는 집의 중심. 빗소리, 흙내음, 눈소리가 있는 집에서 살고 싶다는 그의 꿈. 일출부터 일몰까지 하루의 흐름이 빛으로 느껴지는 집. 수십년의 시간을 여기 저기에서 확인 할 수 있는 집. 그리고 그의 집 체험 이야기까지.
마지막으로 김진애는 묻는다. "이 집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물론 예상하던 대로 김진애는 건물등기에 올려져 있는 이름으로 집주인을 판단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그러면 집주인의 자격조건은 뭐가 될까? 혼자 있어도 몸 편하고 마음이 편한 사람, 문제가 생겨도 해결할 수 있는 사람, 집에 대해서 항상 제안하는 사람, 집을 위해 자기 손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자기가 어떤 집을 원하는지 자유롭게 생각하고 좀 더 다양한 집을 시도하는 사람이 진정한 집주인의 자격을 갖춘 사람이라고 한다.
이 책에서 아쉬운 것이 있다면 즐거운 책읽기를 방해해 기분을 언짢게 하는 것이 종종 눈에 뛴다는 것이다. 감탄사와 설의법이 다소 지나쳐 늘어지는 감이 있고, 에세이와 교양서 사이에서 자기 자리를 찾지 못하는 방황하는 애매함이 집중을 방해한다. 그리고 집에 대한 꿈꾸기는 너무 백일몽 같아 간혹 메아리처럼 공허하게 울리기도 한다.
하지만 매일 매일 살아가는 공간, 마치 바람처럼 공기처럼 시나브로 우리의 몸과 기억과 하나가 되어버리는 집에 대해 음식이나 옷에 비해 너무 무관심한 것은 아니었는지 한 번 반성해 볼 만하다. 그 다음은? 내가 살고 있는 이 집은 누구인지 고민해 보는 것이다.
삶이 묻어 있는 집의 면면들, 그리고 그 속에 녹아 있는 감성
황미영(illyn@yes24.com)
집.
누구나 살고 있는 집.
누구나 알고 있는 집.
집에 대한 이야기란 끝이 없다.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끝이 없는 것처럼.
'집'이라는 말을 만든 사람은 정말 괜찮은 '사람'이다.
집의 이야기, 느낌, 감성에 온몸을 열어보자.
사람의 이야기, 느낌, 감성에 귀를 기울여보자.
'사는 사람 있는 집'에서.
그저 피곤한 일상의 한 부분이었던 집에게 "당신은 누구입니까"라는 질문을 건네보게끔 하는 독특하고도 매력적인 건축가 김진애 씨의 에세이집.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으나 정작 진정으로 함께 할 수 없었던 우리의 집을 다시 생각케 하는 책이다. 저자는 "추억을 만드는 집", "동선이 긴 집", "구석이 많은 집" "부엌이 중심이 되는 집" 등 집에 대한 고정 관념을 깬 12편의 글을 통해 집과 사람이 교감할 수 있는 이상적인 모습을 제안한다. 그 모습은 어린 시절 방학을 보냈던 시골 할머니 댁을 떠올리게도 하지만, 이 책은 단지 옛집을 추억하고 그리워하기 위한 책만은 아니다. 콘크리트 덩어리, 차가운 철문의 아파트에 살고 있더라도 얼마든지 사는 사람의 색깔을 담을 수 있다.
김진애 씨는 특히 '집의 감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5년 동안의 꾸준한 작업의 결과물인 이 책 곳곳에는 그런 저자의 노력이 여실히 느껴진다. 그저 자고 생활하고, 이왕이면 좀더 꾸미고 편리하기만 하면 되는 그런 메마른 집이 아닌 우리와 함께 숨쉬고 켜켜이 시간이 쌓이고, 느낄 수 있는 그런 집. 확실히 시간이 느껴지는 집은 썩 괜찮은 집이리라. 삶이 있고 멋이 있고 맛이 있는. 그 자리에 있어 자연스럽고, 자연스럽게 시간의 흔적이 느껴지고, 또 흐르는 시간에 따라 새롭게 태어나기도 하는 그런 집. 이런 '시간 있는 집'에서 사는 것은 정말로 행복한 일일 것이다.
'우리는 느끼는 만큼 산다.' 아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느끼는 것이다. 집에 대해 사는 의미를 풍부하게 느끼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으랴. 집에 사는 것을 느껴보자. 집에 대한 자신의 느낌에 솔직해 보자. 자신의 느낌으로 집을 보자. 자신의 느낌으로 집을 살아보자.
비… 소나기 냄새
내가 좋아하는 냄새 중의 하나가 '소나기 냄새'다. 사실 비 냄새라기보다는 비와 흙, 비와 먼지가 섞이며 생기는 흙 냄새라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이것을 소나기 냄새라 부른다. 굵은 소나기가 갑자기 뿌리면 흙에서부터 올라오는 그 순간의 냄새는 무어라 표현할까. '온 세상이 변하려는 그 순간의 냄새'다. 특히 흙 마당이 있는 집, 시골의 흙길, 학교 운동장에서 갑자기 쏟아지는 소나기는 그런 변화의 순간을 포착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순간의 하나다. 불행하게도 지금 우리 집에는 그런 냄새를 맡을 수 있는 마당이 없어 아쉽기 짝이 없다. 옥상에 조그만 정자라도 하나 지으면 그 느낌을 다시 만끽할 수 있을 텐데 하고 궁리하고 있다. 좋아하는 소나기 냄새를 맡으며 살고 싶다.
'비'야말로 도시에서 자연의 존재를 가장 쉽게, 또 가장 드라마틱하게 느낄 수 있게 하는 것 아닐까. 물론 나무의 푸르름도 있고, 흙도 있고, 눈도 있지만 비는 다른 어떤 자연의 오묘한 현상들보다도 가장 쉽게 또 가장 자주 자연의 변화를 느끼게 해준다는 점에서 사람에게 가장 가까운, 신비로운 자연의 변화다. 갑자기 소나기 소리가 들리면 나는 사무실을 뛰쳐나가 골목길에 선다. 길바닥이 젖어드는 모습,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공기의 흐름, 사람들의 발걸음이 빨라지는 모습, 어둑어둑 하늘이 회색으로 때로는 황토 색깔이 밴 듯한 붉은 색으로 변하는 그 순간의 모습이 정말 신비스럽다.(---p.1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