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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환 | 비온후 | 2023년 04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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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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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3년 04월 28일
쪽수, 무게, 크기 304쪽 | 150*210*30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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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저자 소개 (1명)

김영환은 한국 최초의 정규음악가며 피아니스트로 양악개화기와 함께 한 그의 생애는 바로 우리나라 현대음악사라고 할 수 있다. 그는 1893년 평양의 대지주 집안에서 태어나 일찍이 미국 선교사에게서 음악을 배웠고 숭실중학을 졸업한 다음 일본에서 동양음악학교, 관립동경음악학교를 졸업했다. 1918년부터 연전 음악과장, 그 후 숙명·보성·중앙고보 등에서 교편을 잡으면서 연주활동과 함께 초창기의 많은 음악가들을 길렀다. 김영환은 한국 최초의 정규음악가며 피아니스트로 양악개화기와 함께 한 그의 생애는 바로 우리나라 현대음악사라고 할 수 있다. 그는 1893년 평양의 대지주 집안에서 태어나 일찍이 미국 선교사에게서 음악을 배웠고 숭실중학을 졸업한 다음 일본에서 동양음악학교, 관립동경음악학교를 졸업했다. 1918년부터 연전 음악과장, 그 후 숙명·보성·중앙고보 등에서 교편을 잡으면서 연주활동과 함께 초창기의 많은 음악가들을 길렀다.

책 속으로

---「머리글」중에서

출판사 리뷰

추천평

아나바시스 Anabasis

부끄럽게도 내 슬픈 습성 가운데 하나는 어떤 책이든 대체로 두어 줄 아니면 두세 장 읽고는 덮어 버리는 일이다. 그런데도 피아니스트 김영환의 회고록이 처음 나왔을 때는 단숨에 읽어버리고 나서 나도 놀랐다. 이 책이 햇빛을 보도록 애쓰신 분이 항상 존경해 오던 조범구 박사여서 반쯤은 그 분의 노고에 대한 경의에서 읽기 시작하다 어느새 그 속에 빠져들고 만 것이다. 양악 도입의 과정에서 홍난파가 바이올린의 선구자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러나 난파보다 훨씬 앞서 양악의 씨를 뿌린 피아노계의 선구자가 김영환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듯 싶다.

이미 닦여진 길을 달리는 일에도 어려움이 있거늘, 온갖 장애가 가로 막고 있는 황무지에서 홀홀 단신 처음으로 길을 닦는다는 것은 예삿일이 아니다. 유럽의 그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큰 역사役事. 알렉산더 대황이 마케도니아에서 페르시아를 거쳐 아시아의 오지로 파고 들었던 대장정大長征, 그것을 아나바시스 Anabasis 라 한다. 좀 과장해서 이야기한다면 김영환의 그 길 닦기는 알렉산더의 아나바시스와도 견줄만한 대역사였다. 그리스 신화를 제대로 알고 싶다면 우선 헤시오도스의 《신들의 계보 神通記, Theogony》를 히포크레네의 샘물처럼 마시면서 영감을 얻어야 하듯이, 우리나라에 양악이 어떻게 도입되고 뿌리 내리게 되었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누구든 모름지기 이 회고록을 읽어 보아야 하리라고 생각한다.

어제 없이 오늘이 있을 수 없고 지난 날을 되돌아 보는 거울이 없고서는 오늘의 모습을 제대로 파악하기란 어렵다. 그런데 그 거울은 세월의 때가 묻어 흐려지기도 하고 뒤틀려 버리기도 한다. 수많은 회고록이나 자서전의 진실성에 의문이 제기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융 C. G. Jung 은 세상을 떠나기 얼마 전 자서전을 남기고 말았지만, 자서전을 쓰지 않겠느냐는 주변의 권고를 오랫동안 물리치면서 이렇게 말하고는 했다. “수많은 자서전이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지난 날을 미화하면서 창작된 부분이 적지 않다는 것을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다. 난들 어찌 그 미화에의 유혹과 그 폐해를 피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런 뜻에서 자서전의 표제로 가장 그럴싸한 것은 괴테의 《시와 진실》이 아닌가 싶다. 진실이 있는 그대로 서술되었다기 보다는 시적으로 창작된 부분이 적지 않았음을 실토한 표제이다. 그런데 김영환의 회고록에는 가식적으로 미화되기는커녕 과장이나 화장기도 없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소박하고도 담담하게 그려져 있어 읽는 맛이 그지 없이 개운하다.

교회에서 처음으로 풍금 소리를 듣고 색다른 음악세계에 홀렸던 그는 그 마법의 신세계를 좀더 깊이 배우기 위해 어린 시절 가족 몰래 고향을 탈출하여 미지의 땅 동경으로 떠나는 모험에 투신했다. 유학생들 사이에서도 풍악쟁이라는 멸시와 따돌림을 받기도 하고 이국인 학생에게 가해진 부당한 대우 등 갖가지 장애를 뚫고 한국인 최초로 일본의 명문 음악학교 우에노에 한국인 최초로 입성하여 그는 대장정의 기치를 높인다. 김영환의 회고록에는 피아노라는 낯선 악기를 국내에 처음으로 도입하려 했던 그의 험난했던 길 닦기와 함께, 양악 도입기의 전설적인 인물들홍난파, 윤심덕, 이애내, 안병소, 김원복, 현재명, 이인범 등의 갖가지 흥미진진한 에피소드가 가득하다. 그 뿐만 아니라 동경 유학시절 춘원 이광수와 함께 여러 해 같은 방에서 하숙생활을 하면서 고락을 함께 했다든가, 박술음, 신봉조, 정일형 등 음악과는 다른 분야에서 커다란 발자취를 남겼던 많은 인재들이 연전 시절 그의 훈도를 받으면서 음악부원으로 활약했다는 신선한 양념도 이 책 읽기의 맛을 더해준다.

이 회고록에는 그 밖에도 “아, 그 때 그 일이 그랬던 거였구나”라고 우리의 감회를 새롭게 하는 이야기들이 헤아릴 수 없다. 1960년대에 이르러서도 외국의 저명한 연주자들의 국내 공연은 극히 드물었다. 그렇거늘 1920년대에 하이페츠, 크라이슬러, 자크 띠보, 짐발리스트 등 쟁쟁한 연주자들의 국내 공연이 이루어졌다는 것은 꿈같은 일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꿈같은 일이 성취된 것도 모두 김영환 선생의 음악에 대한 열정과 희생적인 노고로 가능했다는 것을 우리는 부끄럽게도 잊고 있었다.

2020년에 베토벤의 탄생 200주년을 맞아 국내에서도 전국 곳곳에서 그 기념 음악회가 열렸다는 것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그런데 100년 전인 1920년 12월에 베토벤 탄생 150주년 기념음악회가 서울 YMCA에서 열렸다니 우리는 이 회고록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깊은 감회에 젖어 들게 된다. 어린 시절의 꿈이 증발해 버릴 때 우리의 생명은 그 향기를 잃어버린다고 바슐라르는 이야기 한다. 새로운 세계의 문을 열려고, 언 땅에 새로운 꽃씨를 뿌려 싹을 트게 하려고 파닥거렸던 그 생명의 기적을 망각하고 활짝 핀 꽃에만 넋을 잃고 있을 수는 없다. 온 세계는, 그 중에서도 특히 서양 사람들은 그들의 음악에 대해 우리 젊은 연주자들의 눈부신 기량과 성취에 충격을 받으면서 동양인이 어떻게 자기네 음악을 이토록 기막히게 빚어낼 수 있는지 놀라고는 한다. 그러나 그 모든 일이 어찌 우연한 현상이랴.

어떤 꽃인들 단숨에 피어나는 것은 아니다. 양악의 황무지에서 멸시와 홀대를 받으면서도 씨를 뿌리고 가꾸어 오늘날의 비옥한 터전을 일구어오도록 헌신한 분의 고독하고 숭고한 열정과 집념이 없었던들, 세계 음악문화의 흐름에서 외딴 섬으로 남아 있다가 별안간 빛나는 섬으로 솟아오르게 된 그 눈부신 융기는 훨씬 늦추어졌을지도 모른다. 이 회고록은 우리에게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는 듯하다. 안개로 흐려진 기억 속에서 잃어버린 소중한 물을 길어 네게 주리라. 그 샘으로 나를 따라 온다면.
- 이순열 (음악평론가)
김영환과 사운드스케이프 soundscape

이 책은 [중앙일보](1974. 4. 19~5. 29)에 〈양악백년〉이라는 제목으로 한국 최초의 피아니스트였던 김영환이 쓴 회고를 엮은 것이다. 김영환은 기독교가 가장 먼저 정착했던 지역이었던 평양에서 태어나 자연스럽게 교회와 선교사를 통해 서양음악을 접했다. 서양음악에 매혹되었던 김영환은 초기 일본 유학생으로 일본 동경음악학교에서 정규 음악교육을 받고 졸업한 뒤 연희전문에서 본격적인 음악교육에 몸을 담는다. 이후 식민지 조선에서 ‘근대음악’을 소개하고 다양한 연주활동을 했으며 당시 해외의 연주가들을 초청해 공연을 개최하기도 한다. 그의 실질적인 주요한 이력은 음악교육에 있었지만, 이를 통해서 후속세대 생산에만 주력한 것은 아니었고 근대음악을 경험할 수 있도록 자비를 들여 인프라를 제공하는 것에도 많은 공을 들인 것으로 회고되고 있다. 예컨대 식민지 조선에서 청음하는 게 쉽지 않았던 그랜드피아노를 연희전문 등 재직한 학교에 기증함으로써 근대적 사운드의 깊이를 경험하는 데도 일조했다. 무엇보다 그는 음악 후배들을 적극 후원하고 지지했으며 그들의 음악적 좌표를 사회적으로 구성하기 위해 분투한 ‘문화기획’자였다.

그는 피아노 독주회를 열고자 하는 열망을 생애 마지막까지 갖지만, 이 꿈은 자녀들이 살고 있었던 이국땅에서 영면함으로써 끝내 이루지 못한다. 그의 회고대로라면 적어도 식민지 조선에서 피아노는 일종의 보조적인 수단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었고 바이올린 소리가 각광을 받았던 터라 그 기회를 좀처럼 가질 수 없었다. 다시 말해, 바이올린의 소리는 노래가 없어도 당대의 정서와 곧장 연결될 수 있었다면, 피아노는 독립적인 악기라는 인식보다는 노래를 부르기 위한 보조적인 수단으로 인지되어 있었던 것으로 김영환에겐 회상되고 있다는 것이다. 피아노에 대한 그의 인식이 얼마나 정교했는지는 또 다른 방식으로 검토해야 할 문제이긴 하나, 피아노 자체만으로 당대의 ‘청자’들과 ‘교통’할 수 있는 방식이 식민지 조선에 그리 폭넓게 조성되어 있다고 보기는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김영환의 회고에서 일본이나 유럽, 미국 유학자들이 피아노 전공보다 바이올린 전공에 더 관심을 기울였다는 분석은 두 악기에 대한 김영환의 판단을 어느 정도 신뢰하게 만들어주기도 한다.

따라서 식민지 조선에서 ‘피아노’란 어떤 것이었는지는 섬세하게 연구해야 할 사운드 테크놀로지일 것이다. 실제로 ‘귀신통’으로 간주되었던 피아노의 한반도 유입 역사가 ‘기원’에만 맞추어져, 한 지자체에서 축제를 개최했다가 그 기원이 다를 수 있음이 밝혀져 큰 소란이 일기도 했다. 만약 피아노가 개체적 완결성이 강조되었던 악기와 달리 다른 악기나 노래와 더불어서만 존재 의의를 확보하는 악기로 식민지 조선에서 이해되었다면, 피아노의 존재방식은 다른 음악가와의 결속이 필수적으로 요청되는 네트워크 악기로 간주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김영환은 비록 피아노 독주회는 가질 수 없었지만, 교육과 문화기획자로서 자신의 역량을 더욱 발휘했는지 모른다. 물론 피아노는 연습용으로라도 쉽게 구할 수 없는 고가의 악기였고 집안에 두기도 쉽지 않았던 터라, 전공은 물론이고 있다고 해도 단독으로만 쓰이기에는 아까운 것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피아노 독주가 이루어지긴 했지만, 전체 공연 구성의 일부이자 전체 음악공연의 반주자 자리에 반복해서 쓰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 점에서 최초의 피아노 전공자의 운명은 문화기획자의 포지션에 서는 것을 피할 수가 없었던 것인지 모른다. 그것이 능동적이든 수동적이든 간에 말이다. 홍난파와 함께 만들었던 [경성악우회](1919)에서부터 이른 바 총독부 학무국의 주도로 만들어진 [조선문예회](1937)와 [경성음악협회](1938)에 이르기까지 서양음악의 보급에서 구성된 다양한 모임은 물론이고 총독부의 요구에 따른 관변단체 구성에서도 김영환이 놓여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조선에서 생성되는 근대적 사운드에는 좋든 싫든 김영환이 기입될 수밖에 없었고, ‘최초’라는 수식의 자리에선 이를 벗어날 도리가 없었다. 길을 만들면서 나아가야 했던 그가 감당해야 하는 건, 한 둘이 아니었고 심지어 ‘시대’의 격랑으로부터 의탁할 곳도 없었다는 의미이다. 이 부분에 대한 자세한 회고가 나오지는 않지만, 김영환에게 식민지 시대를 건너가는 일은 그 혼자만의 일일 수는 없었다는 것은 짐작하고 남음이 있다.

가령, 그는 교육에 몸을 담고 있었기 때문에 후속 세대들이 이러한 활동에서 받았을 영향과 파장은 사적인 이력에 한정해 볼 수 없다. 더군다나 음파가 미치는 속도와 범위는 레코드와 라디오, 실제로 이루어지는 연주가 다르다고 해도, 각각의 사운드를 식민지 조선 전체에 규정된 사운드스케이프로 밀어 넣도록 강요되는 시대적 조건에 부대낄 수밖에 없었다. 그간 그의 피아노와 이력이 ‘배경음’ 혹은 ‘후경화’된 음화로 새겨져야 했던 것도 우연이 아니다. 그의 피아노 사운드는 무엇이었을지 궁금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최초의 피아니스트의 사운드 그리고 지배적 사운드스케이프와 일으킨 마찰이 어떤 것이었을지를 상상하는 것은 후속 세대의 연구 과제일지 모른다. 지배적 사운드스케이프가 규정한 결들에 완전히 동화되었을지, 어떤 미묘한 ‘파열음’을 형성했을지 그도 아니면 지배적 사운드스케이프가 쾅쾅 울릴 때조차 배경음으로 존재하면서, 다음 스텝을 기다렸을지에 대한 모든 가능한 상상을 개방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회고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개인의 기억과 평가, 진단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글쓰기 방식이다. 해방 이후 30여 년이 경과한 다음에 진술된 것이어서, 사실 자체로 평가하기는 힘들고 오히려 식민지를 경유한 지식인들의 역사 감각과 자신의 활동내력에 대한 자기진술이 나타난 방식으로 읽도록 요구되는 글쓰기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김영환이 이 회고를 쓸 시기를 전후해 광범위하게 이루어진 ‘회고담’ 쓰기는 한편으로는 해방 30여년의 기간 동안 일제 말기가 무엇이었는지를 정직하게 대면하는 과정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그 시기를 ‘암흑기’로 묻어버리려 하거나 독립투사로 이미지화하려는 태도를 취하기도 하는 등 복잡한 양상으로 왜곡과 굴절이 일어나는 과정이기도 했다. 적어도 김영환은 회고를 통해 자신을 미화시키지는 않는다. 다만, 이미 말했듯이 일정 정도 조선인으로서 겪었던 고충이 과장되어 나타나기는 하지만, 대체로 정직하게 그의 경험과 이력을 담담하게 진술하는 것으로 일관하고 있다.

일테면 그는 동경음악학교의 별칭인 우에노음악학교 출신자로서 갖는 자부심 때문인지, 총독 부인의 피아노 과외교사로 활동한 이력도 감추지 않는다. 즉 그는 자신의 활동이 갖는 ‘영향’이나 ‘의미’에 대한 예민한 감각을 드러내기 보다는 이를 오로지 ‘음악활동’으로 인식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우에노음악학교에 대한 자부심 자체도 숙고해야 할 대목이지만, 조선인 유학생들이 가지고 있었던 ‘근대음악’에 대한 몰이해와 무지를 이야기할 때 조선을 결핍과 미성숙한 영역으로 이미지화하는 논의를 자연스럽게 전개하는 등 식민지 유학파 지식인으로서 한계도 고스란히 드러낸다. 달리 말해 일제 말기의 활동을 예외로 한다고 해도 그의 회고담 역시 순진하게 읽을 수는 없다. 그의 진술에 담긴 ‘행간’을 살피고 빈칸을 다듬어가는 일도 회고록 이후에 남은 근현대음악사의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아쉬운 것은 해방 이후 음악 혹은 문화사적 네트워크를 거의 다루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해방 이후 복잡한 문화사의 흐름에서 한 걸음 비켜서 있기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 공백을 다루는 것도 필요할 법하다.

그럼에도 그가 남긴 회고는 뜻하지 않은 문화사적 탐구의 길을 열어주기도 한다. 이광수와의 경험을 쓴 대목인데, 최초의 근대소설이라고 알려진 《무정》(1917)이 집필되는 한 시기에 김영환과 함께 하숙을 한 것으로 증언된다. 이 장편소설의 마지막 부분인 삼랑진 장면은 다양한 방식으로 평가되어왔는데, 먼저 수해를 당한 삼랑진 지역민을 위해 개최하는 ‘음악회’는 식민지적 현실을 전혀 알지 못하는 계몽지식인의 과잉된 열정이 투사된 것으로 평가한다. 서양음악에 대한 인식이 여전히 전통적 음악에 근거해 이루어지고 있었던 시기에 ‘음악회’로 수해 기금을 마련한다는 발상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서양음악’이 근대의 예술의 상징으로 계몽적 이상이 실현되는데 있어서 음악이야말로 그 극점으로 이광수가 이해했으며 이 때문에 수해라는 재난(식민지)을 극복하는데 음악회가 도입되었다고 해석하는 방식이 있다. 다층적 해석도 중요하지만 오히려 김영환의 증언이 소설을 더 음미하게 만드는 이야기로 받아들여지게 만든다.

만약 이광수의 소설이 김영환과의 관계에서 비롯된 ‘내용’이며 ‘서술 형식’이라면 이 소설은 ‘문화적 공동체’의 산물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달리 말해 이광수의 소설을 미학적으로 독해하는 것과 다른 방식의 이해 방식이 생성되는 셈이다. 이는 비단 소설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라 각각의 예술이나 예술가들에게도 모두 해당되는 사안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김영환의 회고는 자신의 삶에 대한 진술로써만이 아니라 일제 식민지 시기의 문화적 교류와 네트워크 그리고 문화적 공동체 구성의 요소와 방식들을 연구할 수 있는 재료로도 읽을 수 있다. 평가가 어떠한 것이든지 간에 말이다. 이념적, 민족적 프레임을 통해서 서둘러 진단하고 읽기를 그치지만 않는다면, 다층적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을 것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김영환은 미국에 사는 작은 아들네 집으로 건너가지만, 친지들의 마지막 인사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외롭게 이 세계로부터 건너간 것으로 보인다. 아마, 그가 말년에 미국에서 그의 사운드가 어딘가에 전달되기를 바라마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가 애써 남겨둔 귀한 회고를 음미할 때, 어쩌면 그의 피아노가 일으키는 선율이 차분히 울릴 수 있을 터이다. 이 회고를 조금씩 읽는 것이 바로 그 첫 걸음일 터이다. 그가 미처 연주하지 않은 행간들을 읽고 나눌 때, 한국 근현대음악사의 밑천들이 더 드러날 터이다.
- 김만석 (독립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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