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노자의 〈도덕경〉은 이제 성서에 버금가는 세계의 경전이 되었다. 그러한 이유로 〈노자〉에 대한 주석은 세계적으로 수백 종류에 이른다. 그런 가운데 한국에서도 이미 〈노자〉 전공자들의 주석이 수십 종 쏟아져 나온 상황이다. 그러나 이번 윤정현 신부님이 새롭게 저술한 노자 〈도덕경〉은 이전의 그 어떤 해석보다 새로운 점이 있다. 윤 신부님은 이미 2002년에 영국 버밍엄 대학에서 「없이 계신 하느님 -절대자에 대한 다석 유영모의 이해」라는 제목의 박사학위를 취득하면서, 동양적 사고의 중요한 축을 이루는 노자의 ‘도(道)’와 ‘무위(無爲)’ 개념에 깊이 천착하였다. 특히 유영모의 ‘다석일지(多夕日誌)’를 연구 분석하여 다석이 1959년에 풀이한 〈노자〉를 자료로 다석 사상의 다양한 측면을 고찰하였다. 윤 신부님의 지적대로 유영모는 어려서부터 서당에서 〈주역〉과 〈사서오경〉은 물론 〈도덕경〉을 공부하여 다양한 종교적 전통과 대화할 수 있는 바탕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한 바탕에 따라 그리스도교를 이해함으로써, 다석은 동양적 그리스도교 이해의 초석을 쌓고, 토착화해 동서 사상의 만남을 위한 지평을 열어 놓은 셈이다.
이러한 바탕에서 다석 유영모는 ‘무(無)’로서의 하느님 개념을 주장하게 되었고, ‘없이 계신 하느님’이라는 놀라운 동양적 사유의 변증법적 통찰을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사고는 ‘공즉시색(空卽是色)’이라는 불교적 변증법의 통찰과도 상통하는 것이며, 〈노자〉 1장의 ‘도가도비상도(道可道非常道)’의 개념과도 통하는 것이다. 이에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윤정현 신부님은 ‘자아(自我)’, ‘무아(無我)’, ‘대아(大我)’의 문제에 대한 유영모의 해석을 소개한다. 이른바 ‘거짓 나’인 에고의 자아를 극복하고, 깨달은 사람에 의해 실현된 자아로서의 ‘진아(眞我)’는 ‘영아(靈我)’로서 이 ‘진아(眞我)’를 통해 하느님과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곧 ‘자아’가 아닌 ‘무아’의 상태에서 ‘참 나’를 깨달을 수 있다는 역설이다.
윤정현 신부님이 본서에서 주안점을 두고 있는 것은 〈노자〉의 도(道)와 ‘진리로서의 하느님’ 개념에 대한 유영모의 본문 해석을 나름대로 다시금 깊이 있고도 새로운 생활 속의 언어로 풀어내고 있다는 점이다. 윤 신부님이 그의 박사학위 논문에서 밝히고 있듯이 유영모의 ‘도(道)’는 사실상 노자의 도 개념에 한정되지 않고, 성리학의 입장에서 말하는 태극(太極)이나, 불교의 관점에서 말하는 절대무(絶對無), 주역에서 말하는 도의 개념과도 유기적으로 연관되고 있다. 특히 유영모는 도를 성서의 로고스나 불교의 다르마(法), 유교의 ‘리(理)’와 같은 것으로 여기고 도에 따라 사는 사람을 무위(無爲)의 길을 따라 사는 사람이라고 한다는 점을 윤 신부님은 밝히고 있다. 바로 이러한 ‘무위’의 관점은 〈노자〉 전반에 흐르는 핵심적 사상으로서 유영모의 노자 〈도덕경〉 풀이의 키워드가 되고 있다. 이러한 유영모의 전반적인 사상을 잘 알고 있는 윤 신부님은 다석의 우리말 옛글식 〈노자〉 풀이를 더욱 새롭고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다.
윤정현 신부님은 전북 고창에서 ‘고창옛글읽기모임’을 주선하여, 수년간 ‘노자 〈도덕경〉 강독’을 주도하였고, 그 결과 ‘다석 유영모의 순우리말로 풀이한 늙은이 풀이’라는 자료집을 발간한 바도 있다. 추천의 글을 쓰는 필자도 고창도서관에서 개최한 ‘길 위의 인문학’ 강좌 마지막 날에 초대되어 노자 전반에 대한 특강을 하는 시간도 있었다. 중국 길림대학에서 노자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던 것이 초대의 동기가 되기도 하였겠지만, 그날이 계기가 되어 오늘 이 추천서를 쓰게 됨은 심히 기쁘고 영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개인적으로는 윤정현 신부님이 연세대 신학과 선배이기도 하지만, 이분의 삶 자체가 낮은 자들을 향하여 소박한 삶을 영위하고 계시는 모습이기에, 전형적으로 노자를 닮은 생애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존경심이 우러나는 분이다. 이러한 분이 본인의 삶을 토대로 그간의 학문적 여정과 더불어 다석 유영모의 노자 풀이를 새롭게 해석하면서 내 놓은 것이다.
유영모의 노자 풀이는 그 깊이와 넓이가 한이 없다. 이미 유영모의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인 박영호도 『‘빛으로 쓴 얼의 노래’로서 다석 유명모를 통해 본 노자의 도덕경』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이 책은 유영모의 사상을 중심으로 박영호가 노자 본문을 해석한 것이라고 본다면, 윤정현 신부님의 해석은 다석의 순 우리말식 노자 해석을 그대로 본문에 싣고, 다시 그 뜻을 충실히 다각도로 풀어주고 있다. 우리가 이 책을 접하는 순간 다석의 우리말식 노자 풀이 하나하나에 담긴 한글의 오묘함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을뿐더러, 저자가 그러한 한글의 심오한 뜻을 이삭 줍듯 차곡차곡 모아 다시 알곡으로 정제해주는 과정이 가히 예술적 차원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나도 1987~1989년 어간에 유영모 선생의 여섯 명의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인 김흥호 교수가 살아생전 감리교신학대학원에서 강의할 적에, 선불교와 양명학 그리고 유영모의 노장사상 강의를 직접 듣고 감탄한 바 있으나, 윤정현 신부님의 손끝에서 한 올 한 올 풀어지고 엮어지는 다석의 노자 〈도덕경〉 해석은 한국을 넘어 세계 어느 곳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길이 빛나는 명저로 남을 것임을 확신한다.
특히 윤정현 신부님의 〈도덕경〉 풀이는 일차적으로 다석의 위대한 한글 노자 해석에 한 번 감탄하게 만들 것이고, 더 나아가서 어렵고 오묘한 다석의 낱말 하나하나를 풀어내는 윤 신부님의 친절한 장인적 솜씨에 더욱 감탄을 금할 수 없을 것이다. 오묘한 한글의 맛과 노자의 함축성 있는 한자가 어떻게 잘 부합하는지는 일일이 열거할 수 없지만, 본서를 펼치는 순간부터 독자는 틀림없이 그 황홀함을 맛보게 될 것이다. 81장에 걸친 숱한 본문 가운데 한 가지 예만 들겠다. 윤정현 신부님은 다음과 같이 노자의 본문에 대한 다석의 풀이를 이렇게 설명한다.
“약기지(弱其志) 강기골(强其骨)에 대한 해설이 다양하다. 다석은 한자 그대로 ‘그 뜻은 므르고 그 뼈는 세오라’고 직역을 하였다. 약(弱)을 ‘약하다’ 하지 않고 ‘므르다’고 풀이하였다. ‘므르다’는 것은 약하고 물렁물렁한 것으로 움직인다는 뜻도 있다. 우리 몸이 지닌 본능적인 수성(獸性)의 마음(意志)을, 곧 뜻, 무엇을 이루고자 하는 집착을 내려놓아야 하늘이 우리에게 부여해 주신 영성(靈性)의 뼈대를 굳세게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다석의 빛나는 한글 노자 해석을 저자는 자상하게 풀어주면서 영성적 차원의 단계까지 독자를 인도한다. 이 밖에도 저자는 노자의 도를 그리스도교의 로고스의 관점에서도 풀며, ‘무(無)’와 ‘유(有)’의 관계에 대해서도 유교에서는 ‘무극(無極)’이 ‘태극(太極)’으로 나타나며, 불교의 ‘법신불(法身佛)’은 ‘보신불(報身佛)’ 사상으로 나타나고, 그리스도교에서는 ‘신성(神性)’이 ‘삼위일체 하느님’으로 표현된다고 설명한다. 다석의 사상이 그러하듯이 노자의 주요 개념들이 다양하게 변신할 수 있는 종교 간 대화의 장이 되도록 저자는 안내하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노자의 ‘비움(虛)’과 ‘고요함(靜)’ 그리고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삶으로 안내하는 다석의 지침서에 독자로 하여금 쉽고 편하게 읽을 수 있도록 훌륭한 해설을 곁들인 저자의 노고에 깊이 감사드리면서, 본문 중간중간에 삽화를 그려 넣으신 이상랑 문예비평가의 드로잉 또한 이 책을 읽는 묘미를 더해 주고 있다.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라 했던가? 어서 저자의 책, 〈도덕경〉 풀이 본문 속으로 들어가 보자.
- 이명권 (동양철학, 비교종교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