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말<br/><br/><b>제1부</b><br/>013 관, 이후<br/>014 액체계단<br/>016 파란 피아노<br/>018 제2국면<br/>020 유령시티<br/>022 슬픔은 울어 주기를 원치 않는다<br/>024 살아남은 니체들<br/>026 과잉곡선<br/>028 인칭 공간<br/>030 싯다르타<br/>032 태양의 하트<br/>034 균열<br/>036 무중력 상태로의 진입을 위한 밤들<br/>038 무릎_學<br/>040 시간의 충돌<br/>042 풍크툼, 풍크툼<br/><br/><b>제2부</b><br/>047 몽돌<br/>048 객담 및<br/>050 절망 추월하기<br/>052 역광<br/>054 칼의 눈<br/>056 대상 x<br/>058 절름발이 바다<br/>060 각자시대<br/>062 문명의 탁자<br/>064 활엽수의 뇌<br/>066 꽃 속의 너트<br/>068 육식성, 시<br/>070 일단 이것을 나비라고 부른다<br/><br/><b>제3부</b><br/>075 칸트 프리즈<br/>076 순수이성과 지평<br/>078 실천이성에 얹힌 파니<br/>080 판단력 펌핑(pumping)<br/>082 영구평화로의 접근<br/>084 도덕형이상학의 추<br/>085 노력을 소비할 것<br/>086 굿모닝 천 년<br/>088 십 년 후의 메모<br/>090 늙<br/>092 현재의 행방<br/>094 순환과 연쇄<br/>096 파생<br/>098 누 떼의 도강이 그리 처절한 것은 그들에게 핸드백이 없기 때문이다<br/><br/><b>제4부</b><br/>103 나는 죽음을 맛보았다네<br/>104 내 피 맛있었니?<br/>106 나는 죽음의 프로다<br/>108 스페어(spare)<br/>109 비대칭 반가사유상<br/>110 젖었으므로 빛난다<br/>112 바다는 무엇을 말하는가<br/>114 만들어진 침묵<br/>116 모레의 큐브<br/>118 결여의 탄력<br/>120 지성인<br/>122 악마의 바늘<br/>124 다시 파란 밤을 꿈꾸어야 할까요?<br/>126 지형도<br/>127 풀의 행성<br/><br/><b>해설</b><br/>이찬 초월적 열망의 아날로지, 자유간접화법의 콜라주 129

정숙자의 시적 지향은 “새롭게 어리석게”(「몽돌」)이다. 새로움이 그녀가 무수한 생각과 생각과 생각과 생각을 生覺시키면서 얻고자 하는 지고한 목표지만 “새로움은 ‘이미’에게 포위”(「굿모닝 천 년」)되어 있을 뿐이다. 새로움은 언제나 어리석음에서만 건널 수 있는 피안이다. 어리석음이란 지혜를 가까이 하려는 자의 항상적 태도이다. 바보를 자처하는 자들을 보라. 그 형상은 저 장자의 산목(山木)처럼 굽어 있다. 그리고 그 굽음은 마치 뜨거운 불판 위를 지나가는 환형동물의 “과잉곡선”(「과잉곡선」)을 닮았다. 정숙자의 시들은 철학적 높이로 들려져 있지 않다. 철학적 깊이로 고투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녀는 철학적 높이란 바로 “오른발이 타 버리기 전/왼발을 내딛고”(「살아남은 니체들」) 가야 하는 뜨거운 보행으로 바꾸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일인칭이란 얼마나 “고독한 공간”(「인칭 공간」)인가. 집중된 상승과 도약이 한 계단이라면, 추락과 활강이 다음 순간의 계단이다. 이 ‘뒤엉킨 시간’을 견뎌 내는 것. 천년, 만년을 두고 조금씩 견디는 것이 그녀의 실천이성이며, 바로 이 ‘승화’를 위해서 그녀가 “책장에 가득 꽂힌 나비들”(「일단 이것을 나비라고 부른다」)과 함께 “신들이 켜 놓은 등불”인 꽃을 피울 “피의 승화”(「꽃 속의 너트」)를 감행하고자 하는 것이다. 정숙자는 시의 수도자요 고행자이다. 시로 얻을 수 있는 모든 기쁨과 동시에, 그 한 줌과 맞바꾸기 위한 엄청나게 불합리한 기다림을 견디는 고행의 “발자국만으로 족히 마을을 이룬 한 그루”(「각자시대」)의 시인이고자 한다.
― 이현승(시인)

시인 정숙자의 가슴팍 깊은 곳에는 두 가지 상반된 충동과 심리적 벡터가 가로지르고 있는 듯하다. 하나는 삶의 허무와 무의미를 바닥까지 들여다보면서도, 좀 더 고차원적인 앎과 삶에 순결하게 헌신하고 새로운 예술적 가능성을 창안하려는 능동적 허무주의자의 벡터이다. 다른 하나는 이른바 ‘신’ 또는 ‘운명’이라고 일컬어지는 어떤 절대적인 것에 대한 순응주의자의 면모이다. 이 두 가지 면모들 가운데서 후자가 보다 강력한 힘을 발산하게 될 때, 정숙자의 시는 샤머니즘에 가까운 접신술의 이미지들로 둘러싸일 뿐만 아니라, 우주 삼라만상의 그 모든 사물과 존재자들에게 생명과 영성이 깃들어 있다는 물활론(hylozoism)과 애니미즘(animism)의 형상과 무늬들이 촘촘하게 펼쳐지게 되는 것으로 보인다.
― 이찬(문학평론가, 해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