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ch House 의 Devotion
한상철
언제부터인가 볼티모어 출신의 아티스트들이 인디씬에 침투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빅네임이 되어버린 애니멀 컬렉티브(Animal Collective)를 비롯해 진짜 끝내주는 오덕포스로 충만한 일렉트로닉 원맨밴드 댄 디콘(Dan Deacon) 등이 씬에서 서서히 주목받기 시작하고 있는데, 댄 디콘과 레이블 메이트 관계에 있는 비치 하우스(Beach House) 역시 마찬가지라 할 수 있겠다.
# Beach House
2005년도 미국 볼티모어 출신의 싸이키델릭 포크/드림팝 혼성 듀오인 비치 하우스는 기타와 키보드를 담당하고 있는 남성멤버 알렉스 스캘리(Alex Scally)와 보컬과 더불어 오르간을 연주하는 빅토리아 르그랑(victoria Legrand)으로 구성되어 있다. 볼티모어에서 태어나고 자란 알렉스와 파리에서 태어난 빅토리아는 만난 지 2년 만에 팀을 결성한다. 알렉스는 사실 기타플레이어가 아니었다는데 비치 하우스를 위해 처음으로 기타를 시작했다고 하며, 빅토리아의 경우 어린시절부터 피아노와 보컬 교육을 받았으며 변성기 이후인 13세 때부터는 오페라식 트레이닝을 받기도 했다.
빅토리아의 경우, 남다른 조기교육이 있었을 법 했던게 그의 아버지(혹은 삼촌)가 바로 프랑스 영화 음악계의 대부인 미셸 르그랑(Michel Legrand)이었기 때문이다. 올드 팬들에게는 [셸부르의 우산]으로, 힙합 팬들에게는 RJD2가 샘플링했던 [Theme From The Go-Betweens]으로, 그리고 이지 리스닝 라운지의 팬들에게는 그야말로 대가의 위치에 놓여있는 분이 아니던가. 같이 살면서 분명히 영향을 받았겠지만 그렇다고 또 너무 가족사에 음악을 끼워 맞출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실제로 이들의 노래 몇 곡 중에는 멜로디를 운영하는 방식이라던가 곡이 가진 분위기가 미셸 르그랑의 곡과 흡사한 모양새를 하고 있는 곡들도 있는 것 같다.
비치 하우스의 음악은 특유의 꿈결같은 사운드 스케이프로 인해 매지 스타(Mazzy Star)라던가 니코(Nico)의 팬들에게 어필했다. 2006년 8월에 웹진 피치포크 미디어(Pitchfork Media)의 믹스테잎 피쳐에 [Apple Orchard]를 수록하면서 포크/드림팝 팬들의 주목을 받았으며 10월에 셀프-타이틀 데뷔앨범 [Beach House]를 발표하는데 앨범은 피치포크 선정 "Album of 2006"에 16위에 랭크되면서 대중들에게도 알려진다. 앨범은 90년대 드림팝 스타일에 60년대의 사이키델릭 포크와 약간의 컨트리, 그리고 모타운 스타일을 그들만의 방식으로 녹여냈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여기저기서 놀라운 호응을 얻어낸다.
# Devotion
두 번째 정규앨범인 [Devotion]은 2008년 2월 26일 미국에서 발매됐으며 빌보드 차트 195위로 데뷔한다. 몇몇 트랙들은 마치 프랑스 영화의 사운드트랙처럼 느끼게끔 만들기도 하며 음악들은 듣는 사람들을 상냥하게 감싸준다.
전작 또한 충분히 훌륭했지만 이번 앨범은 더욱 깊어지고 따뜻해졌다. 근본적인 송 라이팅 방식이 변한 것은 없는데 빈티지한 드럼머신과 각종 퍼커션의 활용을 통해 단순하면서도 좀 더 풍성한 리듬섹션을 보충했다. 대부분의 네티즌들 또한 전작에 비해 가사와 음악적인 면에서 훨씬 나은 결과물을 보이고 있다는 리뷰들을 작성하고 있다. 슬라이드 기타와 퍼커션, 그리고 리버브의 잔향음으로 가득한 멜로우 사이키델릭 일렉트로닉 드림팝으로 채워진 본 앨범은 박람회의 왈츠, 유령의 자장가, 그리고 숲속의 성가(聖歌)를 담아내고 있다.
이상한 행복감으로 가득한 [Wedding Bell]로 앨범은 시작된다. 무심한 드럼머신과 신비한 분위기로 채워진 [You Came To Me]는 니코(Nico)의 아우라를 떠올리게끔 만들며, 첫번째 싱글로 공개된 [Gila]는 마치 화창한 날의 장례식장을 연상시킨다. 무거운 스네어 톤이 듣는 이들로 하여금 가라앉게 만드는 [Turtle Island], 데이먼 앤 나오미(Damon & Naomi)를 연상시키는 화음을 가진 싱그러운 [Holy Dances], 풍부한 올겐을 바탕으로 전개되는 4분의 3박자 왈츠 튠 [All The Year], 그리고 네티즌들에게 [Gila] 다음으로 많이 언급 됐던 주술적인 [Heart of Chambers] 등이 느리고 희미하게 진행된다.
베이스음을 바탕으로 건반과 함께 진행되는 다니엘 존스톤(Daniel Johnston)의 커버곡 [Some Things Last (A Long Time)]은 원곡과 거의 비슷한 모양새를 하고있다. 이 곡의 가사는 이전에 다니엘 존스톤과 함께 앨범을 발표한 적도 있었던 제드 페어(Jad Fair)가 썼으며 비치 하우스 이전에는 빌트 투 스필(Built To Spill)이 커버하기도 했다. 실제로 우주적인 효과가 연상되는 건반 어레인지가 돋보이는 [Astronaut], 개인적으로는 앨범에서 가장 좋아하는 곡으로 싸이키델릭 포크의 방법으로 모타운 당시의 멜로디를 풀어내고 있는 [D.A.R.L.I.N.G.], 90년대의 소프트락을 연상시키는 [Home Again]을 끝으로 밤의 침묵에 가장 어울리는 본 앨범이 종결된다.
# 외롭고, 또한 잊혀지지 않는 부드러운 고통.
본 작은 당신이 음악을 들었다면 짐작이 가능하듯 캣 파워(Cat Power)나 갤럭시 500(Galaxie 500) 그리고 욜 라 탱고(Yo La Tengo)의 팬들에게 추천되고 있다고 한다. 빅토리아는 인터뷰에서 밥 딜런(Bob Dylan)의 [Corrina, Corrina]라던가 벨벳 언더그라운드(Velvet Underground)의 [I Found a Reason], 그리고 질베르 베코(Gilbert Becaud)의 [Viens] 등을 자신이 좋아하는 곡으로 꼽기도 했다. 사족을 좀 더 보태보면 알렉스는 에밀 쿠스트리차(Emil Kusturica)의 [언더그라운드]와 피터 보그다노비치(Peter Bogdanovich)의 [라스트 픽쳐 쇼]를 좋아한다고 하는데 [라스트 픽쳐 쇼]의 경우엔 나도 무척 좋아한다. 그리고 웨스 앤더슨(Wes Anderson)의 [맥스군 사랑에 빠지다]에 흐르는 존 레논(John Lennon)의 [Oh, Yoko]에 뒤늦게 휠을 받아 공연 때 가끔씩 커버하기도 한다고 한다.
빅토리아의 풍부하고 퇴폐적인 색채의 보컬과 안타까운 느낌의 기타연주와 오르간 연주는 60년대의 행복한 무드를 그대로 복원시켜 낸다. 그리고 가끔씩 이들의 음악은 사막에 버려진 꽃, 추운 겨울 밤에 남겨진 쓸쓸함, 그리고 황량한 여름의 끝자락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Devotion]은 사랑과 신의를 기본 주제로 열망과 유실 등을 노래하고 있다.
사계절을 모두 담고 있는 앨범이다. 봄의 싱그러움과 여름의 현기증, 가을의 쓸쓸함과 겨울의 어둠까지도.한상철(불싸조 http://myspace.com/bulssaz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