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특이한 이름의 소설가와 만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었다. 퇴근길의 지루함을 잊으려고 『작가세계』라는 문예지를 꺼내든 것이 발단이었는데, 거기에 뜬금없이 웬 마르시아스라는 작가의 단편 소설 「베개」가 실려있었고, 그 낯선 이름이 좀 걸리기는 해도, 소설의 제목이 풍기는 그 '은근히 야함'을 차마 져버릴 수 없어 첫 장을 넘기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걸 기대에 부응했다고 말해야하나 아니라고 말해야하나... 소설의 내용은 사랑이야기이긴 한데, 놀랍게도 서른아홉 살의 남자와 예순넷의 여자의 사랑이야기인 것이다. 게다가 기묘하게도, 소설을 쓰는 그 서른아홉 살의 남자는 '시들어 떨어지는 꽃잎의 아름다움'을 진심으로 느끼고 맛볼 수 있는 사람이었다. 소위 그는 이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을 느끼길 원하는 사람이었으며, 적어도 다양한 여성이 지니고 있는 가치와 개성을 인정해 주고 사랑해줄 수 있는 사람인 것이다. 세상에 우리나라에 이런 남성형이 있다니... 남자란 소위 '영계'를 좋아하는 파렴치한(?) 짐승성의 유전자를 간직한 존재가 아니었던가!
이런 남성을 창조해낸 '마르시아스 심'의 이력 또한 독특하다. 사실 그의 본명은 심상대. 독특한 미학의 소설집 『묵호를 아는가』, 『늑대와의 인터뷰』등을 통해 잘 알려진 기성작가이지만, 올해 초 '선데이 마르시아스'라는 필명으로 소설을 발표한 후, 다시 '마르시아스 심'으로 필명을 바꾸며 최근 탐미적인 성애소설 『떨림』을 발표한 것이다.
<먼 옛날 내가 아주 젊고 자유로왔을 때, 나는 장차 소설가가 되기를 꿈꾸면서, 그래서 언젠가 소설가가 된다면 무엇보다 내가 사랑했던 여자들의 이야기를 소설로 쓰리라 작심했었다. 어떤 문고본 책갈피에 그 동안 나와 사랑을 나누었던 여자들의 몸에서 하나하나 훔친 불꽃털을 고스란히 모아두었듯이 내 소설 속에 그 여자들과 나누었던 사랑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모아두려 했던 것이다.>
『떨림』은 직업이 소설가로 추정되는 한 남자가 자신의 성애담을 8편의 이야기를 통해 회고하는 연작소설집이다. 8편의 이야기를 통해 공부보다는 연애에 관심이 많았던 고등학생시절부터 이혼한 경력이 있는 서른아홉 살의 한 남자가 되기까지의 그의 이력이 얼기설기 놓여져 있다. 그리고 그가 사랑했던 여자들, '그 여자들과의 나누었던 사랑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그리고 유려하게 늘어놓는다.
만약 이 소설이 대중에게 어필한다면 그 빚은 소위 '순수문학'에서는 볼 수 없는 성욕과 섹스에 대한 꼼꼼한 묘사와 다양한 여성과의 편력에 있을 듯하다. 하지만 『떨림』은 천박하지 않고, 도색 소설을 읽을 때와 같이 민망한 느낌도 주지 않는다. 오히려 애잔한 느낌이 들 정도로 아름답고 맑은 인상이다. 무엇이 '성애의 고백으로 이루어진 한 젊음의 성장사'를 이렇게 매력적으로 만드는가?
먼저 작중 화자의 '나'의 당당하면서도 강한 주관성이 눈에 뛴다. 이 소설은 '눈물에 젖은 한 여인의 알몸을 부둥켜안은 채 다시 오래도록 아름다움을 생각'하는 한 소설가의 옛날 이야기이다. 따라서 '나'와 여인들이 벌이는 갖가지 섹스는 현재형이 아니라 '나'에 의해 기억되는 과거이다.
과거에 대한 기억은 아름다움을 희구하는 '나'의 시선에 의해 관조되고, 의미가 부여되며 '거기에 대해서는 더 말하지 않겠다', '이제는 이야기하여야겠다'식으로 거침없이 편집되기도 한다. 이렇듯 띄엄띄엄 나열되는 그의 성애담은 이혼 경험이 있는 서른아홉 살 소설가의 성숙한 자아에 의해 한 남자의 성장사를 만들기 위해 짜맞춰야하는 퍼즐 조각. 하지만 그 조각만으로도 완전한 그림을 이루는 퍼즐 조각이 된다.
또한 이 소설집에는 다양한 여성이 등장하며, 그 여성의 수만큼 다양한 성욕과 섹스가 등장한다. 차마 나이를 밝히기도 부끄러운 어린 소녀와의 관계, 매독에 걸려 몸이 썩어나가는 여자의 눈을 보며 치밀어오르는 성욕을 느끼던 일, 하숙집 여주인 앞에서의 수음, 유부녀와의 사랑, 매번 성적 엑스타시를 경험하는 유 마담과의 관계... '나'가 이들에게 느끼는 성욕은 남성성을 과시하고자 하는 기만과 권위가 아니라 지금 '나' 앞에 있는 여성의 아름다움에 심취하는 순수함이다.
그래서 '나'는 모든 여성을 진면목을 느끼고 맛볼 수 있으며, 여성은 자신의 가치를 알아주는 이 남자를 진심으로 아껴준다. '나'와 관계하는 여성들은 욕망에 솔직하며 자신의 여성성을 과시할 수 있는 진정한 암컷이다. 이러한 남과 여가 만나 벌이는 성애는 억압되거나 은폐되지 않은 공정하고 건강한 행위이다. 그리고 이 행위를 통해 '아름다움'을 찾으려는 '나'의 의지는 세계의 그리고 생의 아름다움을 찾으려는 노력과 동의어이다.
<"이리 와. 이리 와"하고 그녀는 나의 얼굴을 당겨 자신의 젖가슴에 댄다. 그러면 나는 그녀의 주체할 수 없는 색정을 달래려고 다시 일어나 침대 머리맡에 있는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기기 시작한다. 유 마담의 몸 위에서 100번의 피스톤 운동을 할 때마다 채널은 한 자리씩 돌아간다. 채널을 16번까지 다시 한바퀴 돌리게 되면 삼천이백 번이 된다.
아침 어스름이 창가로 밀려올 때가지 채널은 세 번쯤 돌아가게 되고 그러면 사천팔백 번이다. 그리고 긴 잠에 빠져들어 정오가 되어서야 허기에 지친 몸으로 잠에서 깨어났으며, 깨어나서도 서로의 몸을 만져대며 오래도록 침대에 누워 있었다. 그러니까 당시 우리는 신이 우리에게 주신 그 모든 가치, 그 모든 아름다움의 정점에 서 있었고, 당연히 그 결과는 무위(無爲)였다, 라고 나는 지금도 자신한다.
이렇듯 당시 내게는 그 모든 것이 다 있었기 때문에, 내 눈에 비치는 것, 더욱이 여자라는 존재는, 다 천사요, 선녀요, 세계였다.>
'예술을 위해 자신의 껍질을 벗기는 내기를 한, 그리스 신화의 마르시아스'로 이름을 바꾼 이 사람 심상대. '수억만 송이 나팔꽃이 피어나고 스러지고 다시 피어나는' 가운데 '눈물에 젖은 한 여인의 알몸을 부둥켜안은 채 다시 오래도록 아름다움을 생각'하는 그가 예술을 위해 어떻게 자기 껍질을 벗겨 가는지 지켜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