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인생으로 가는 지름길, 공부그릇
우리는 수십 년간 주입식·암기식 공부를 너무 당연하게 여겨왔다. 문제를 많이 푸는 것, 정답을 완벽하게 암기하는 것만이 공부라고 여겼다. 그렇게 해서 꼴찌로라도 대학에 입학하는 것이 목표였다. 이처럼 기계적으로 공부하다 보니 목표를 달성하고 나면 다시는 공부를 안 하리라 마음먹는 사람도 많았다.
한 마디로 공부는 우리에게 고된 노동이었다. 하지만 고된 노동과 같은 공부가 우리에게 좀 더 나은 삶을 보장해 주기도 했다. 죽으라고 공부한 덕분에 들어간 대학은 더 나은 인생으로 나아갈 수 있는 사다리가 되어주었기 때문이다. 이런 시스템 속에서 공부를 강요당했던 기성세대는 자신의 자녀에게도 똑같이 공부할 것을 강요한다. 그것이 인생의 성공과 행복을 보장해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은 너무나 빨리 변해가고 있다. 과학과 기술이 만나 디지털 혁명이 일어나고 있고,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그리고 사물인터넷이 세상을 바꿔놓고 있다. 기술 변화 속도는 갈수록 빨라지고 인간의 수명은 늘어나고 있다. 세상이 변함에 따라, 부모 세대에 통했던 ‘대학 입학=평생직장’이라는 성공 공식은 더는 통하지 않고 있다. 이제는 대학 4년 동안 배운 전공 하나로 평생 회사에 다니며 먹고살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기업이 필요에 따라 고용과 해고를 반복하거나 프리랜서를 고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빅데이터 분석 전문가 송길영 다음소프트 부사장은 암기지식은 인공지능 시대에 쓸모가 없다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금 대부분의 일은 매뉴얼이 짜여 있어서 그동안 해온 대로, 즉, 위에서 시키는 대로 가장 잘하는 사람이 평가를 받는 방식이다. 이런 일을 하는 데는 암기지식이 많은 사람, 그걸 증빙해주는 소위 명문대 졸업장을 가진 사람이 유리한데, 이제 ‘지식’이나 ‘근면’ 등 인간의 능력으로 하는 일은 점점 가치가 작아진다. AI에 의해 대체되기 때문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엔 방식이 정해진 일들은 자동화 물결에 사라질 것이다.”
미래 인재의 조건
부모 세대에는 성실과 근면, 남보다 풍부한 지식이 경쟁력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이러한 능력은 AI가 인간보다 훨씬 뛰어나다. 실제로 모든 산업 분야에서 AI(인공지능)의 비중이 점점 커지고 있다. 따라서 AI의 영역에서 인간이 경쟁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제 인간은 AI가 할 수 없는 영역을 개척해야 한다. 송길영 부사장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미래에는 세상의 문제들을 포착하고, 풀어내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직업만이 살아남는다. 지금처럼 개개인이 가진 암기 지식의 양은 별 의미가 없어진다.”
이미 우리는 변화된 세상에서 살고 있지만, 아직도 성공하려면 암기 위주로 공부해야 한다고 여기고 있다. 부모에게 있어 공부란 학원에서 선행 학습을 하거나 학습지나 문제집을 많이 푸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세상은 달라졌고, 필요한 공부의 기준 역시 달라졌다. 단순 암기를 통해 얻은 지식으로는 AI와 경쟁할 수 없다.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에 필요한 공부는 AI가 할 수 없는 협업, 소통, 비판적 사고력, 창의성과 같은 인간 고유의 능력을 기르는 데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이러한 능력은 학령기뿐만 아니라 평생 개발해야 한다. 그러므로 아이들은 학령기에 국·영·수 선행 학습이나 암기에 매진할 것이 아니라 평생 사용할 공부의 역량을 키워야 한다. 다시 말해 공부그릇을 키워야 한다.
평생 지속 가능한 공부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 적응하거나 변화의 주인공으로 살기 위해서는 평생 공부를 하며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공부는 학령기를 넘어 평생 지속해야 한다. 공부를 평생 하려면, 두 가지 요소가 뒷받침돼야 한다. 첫 번째 요소는, 평생 공부를 이끌어 가는 힘이다. 이것은 학령기에 길러야 할 공부그릇으로 읽기능력, 사고력, 몰입, 정서조절능력, 자율성, 문제정의능력, 표출능력 등을 말한다. 이 7가지 공부그릇은 학령기 공부의 기초 역량이며 평생 자신을 개발하는 도구다. 학령기에 이 7가지 공부그릇을 기르지 못한다면 공부의 주인이 될 수 없을 뿐 아니라 경쟁력과 차별성을 갖기 힘들다. 당장 성적이 좋으면 학령기에 타인에게 인정받을 수 있다. 그러나 공부그릇을 키우면 평생 자신과 타인에게 인정받을 수 있다. 따라서 이 7가지 공부그릇은 학령기 성적의 바탕이 될 것이요, 세상에 나가서는 AI가 가질 수 없는 인간 고유의 능력으로 발휘될 것이다.
평생 공부를 지속하기 위해서 가져야 할 두 번째 요소는, 공부를 즐기는 힘이다. 기성세대에게 공부는 즐거운 일이 아니었다. 선생님이 일방적으로 주입하는 지식은 자율적인 탐구보다는 암기를 요구했다. 이런 타율적인 공부는 평생 하기 힘들다. 평생 공부를 위해서는 배움의 즐거움이 동반돼야 한다.
공자가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기쁘지 않겠는가)”라는 말을 했다. 공자가 말한 앎의 기쁨은 배운 지식을 일상에 응용하고 창조적으로 발전시킬 때 일어난다. 이것이 공부를 계속하고 싶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공부가 즐거우면 일이 즐거워지고, 일이 즐거우면 인생이 행복해진다. 이런 선순환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앞에서 말한 첫째 요소, 공부그릇을 키워야 한다. 결국 공부그릇은 평생 즐거운 공부를 할 수 있게 하는 밑거름이며, 자신의 가치를 지속적으로 끌어올려 만족스러운 삶을 살도록 하는 도구이다.
엄마는 퍼스트 멘토
공부그릇을 키우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앞으로 자녀가 살아가야 할 긴 인생에 비하면 짧은 시간이다. 그러므로 엄마는 당장 아이의 성적이 잘 나오지 않는다고 불안해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아이가 긴 인생의 경쟁력이 될 공부그릇을 키우지 못해 고통 속에서 살아가야 할 것을 걱정해야 한다.
요즘 대한민국의 20대 청년들은 ‘번아웃(burn-out) 상태’라고 한다. 대한민국의 20대는 ‘탈진 증후군’에 해당할 정도로 일상에서 활력을 잃은 상태라는 뜻이다. 아이들은 주입식·암기식 교육에 심신이 지친 상태로 대학에 들어간다. 대학에서도 오로지 취업과 관련된 스펙을 쌓는 데 치중한다. 안타깝게도 이렇게 힘들게 공부해서 대학에 들어가거나 취직을 하고 나면, 대학의 전공이나 직장에서의 일이 자신의 적성과는 무관함을 깨닫게 된다. 공부가 도구가 아닌 목적이 되었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 이처럼 진로에 대한 고민 없이 대학에 들어가고 취업을 한다 한들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아니므로 금방 제풀에 지쳐 쓰러지게 된다.
사회는 달라졌는데 기성세대는 자신이 살았던 세상의 기준에 아이를 맞춰 달리게 한다. 자녀들은 부모가 정해 놓은 기준을 따라 달려나가지만 결국 뒤늦게 잘못되었음을 깨닫게 된다. 이 얼마나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는 일인가.
AI와 경쟁하는 세상에서 모두가 같은 답, 같은 기준을 가지고 달린다면 모두가 실패한다. 그러므로 독창성을 길러야 한다. 대한민국 20대 청년의 번아웃 상태는 개인의 문제라기보다는 기성세대의 잘못된 인식과 교육 구조의 문제다.
학령기에는 공부그릇을 키우는 것에 중점을 두며 아이의 기질과 적성에 맞는 강점을 발견해줘야 한다. 공부그릇을 바탕으로 자신의 강점을 독창적으로 키워나갈 때 인생의 주인이 되고 행복할 수 있다. 평생 공부하며 살아야 하는 아이들로서는 공부가 즐거워야 인생이 행복해진다. 지혜로운 엄마는 아이가 즐거운 공부를 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퍼스트 멘토이자 영원한 멘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