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과학소설 속의 세계가 점점 더 현실이 되어가는 시대에 살고 있다. 최근에 가속화되고 있는 생성형 인공지능을 비롯해 다양한 로봇의 등장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처럼 기술의 진보가 현실을 앞지를수록 그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어느 때보다 요구된다.
구연상 작가의 신작 『AI 몸피로봇, 로댕: 얼굴이 없어야 하는 이유』는 바로 그런 필요에서 나온 작품이다. 철학을 전공하는 작가답게 이번 작품은 소위 트랜스휴머니즘이 가져올 인간 초월의 문제를 다양한 논증을 통해 접근한다. 사람과 로봇의 합성어인 ‘람봇’이라는 말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작품은 사람과 로봇의 경계를 깨트리지 않는 ‘똑바른 로봇’을 제안한다. 그것이 전제되어야 ‘두 번째 인류’ 람봇과 인간의 ‘서로 살림’이 가능하며, 람봇은 사람의 ‘벗’으로서의 ‘람벗’이 된다. 이런 연유에서 작품은 인간주의적 색채를 숨기지 않는다. 로봇에 관한 전문용어들 못지않게 흥미로운 부분은 AI 로봇의 줄임말 ‘에봇,’ 외골격을 뜻하는 ‘몸피’ 같은 생경한 어휘들이다.
우리말 개념어 작업에 헌신해온 전문가답게 직접 고안한 수많은 신조어로 작품을 꽉 채우고 있다. 또한 작품을 읽다 보면, 모사히로 모리의 유명한 로봇공학 가설 ‘언캐니 밸리’라든가, 아이작 아시모프의 ‘로봇공학 3원칙,’ 테드 창의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주기』 같은 작품들도 쉽게 떠오른다. 차이가 있다면 독자와 소통하는 방식으로 철학적 논증의 형식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철학적 논증 SF라 해도 손색이 없는 작품을 만나게 되어 반갑다.
- 박인찬 (숙명여대 영문학부 교수)
로댕을 만나고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로댕을 만나기 전 나는 심한 감기몸살에 시달렸고,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두려웠으며, 멍한 상태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읽어야 할 책은 테이블에 쌓여 있었고, 카톡의 대화창에는 글들이 쌓였으며, 마무리해야 할 소설들이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의지 탓인지, 몸이 아픈 탓인지, 혹은 나 자신에 대한 회의감 때문인지 모든 것이 버거웠다. 『AI 몸피로봇, 로댕』을 읽으면서 프란츠 카프카의 “책은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한다.”라는 말이 생각났다.
이 책은 편협한 사고에 갇혀 있던 내 사고의 틀을 깨 주었으며 수많은 질문을 남겨 주었다. 우리는 어쩌면 얼굴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조차 모르고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해서 더 예뻐지려 노력하고, 로봇에게조차 아름다운 사람 의 얼굴을 입혀주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아닐까. 얼굴이란 무엇이며 로봇이란 무엇일까? 로봇은 어떻게 사람과 공존하며 살아가야 할까? 가까운 미래, 로봇과 사람은 어떤 형태로 서로를 돌보며 살아갈 수 있을까? 나아가 로봇에게 죽음이란 무엇이며 로봇 스스로 죽을 권리를 선택할 수 있을까? 고유성과 합리성이란 과연 무엇일까?
작가는 철학자답게 기술윤리와 책임의 문제, 그에 따른 선택의 결과까지 로댕을 통해 보여준다. 생명과 죽음, 로봇의 윤리 문제를 아름다운 시선으로 넘나들며 철학을 이야기하는 혁명적인 소설. 이 불가능한 서사가 가능한 것은 인간과 로봇에 대한 깊은 이해와 믿음 때문일 것이다. 소설에서 말하듯 나는 “AI가 잘못된 판단이나 행동의 결과로 갖게 되는 망상 이나 허상 또는 집착이나 편견, 나아가 오류 추론의 맥락 등, 정신적 건 전성에서 벗어난 알고리즘을 발견하고, 그것의 질병적 특성을 AI 자신에게 이해시키며, 그의 동의를 거쳐 그 알고리즘을 삭제하는” 독소 제거술이 실현되는 날이 오길 희망한다. 소설에서 작가는 말한다. “사람 사용자는 AI의 정신 건강을 돌볼 책임이” 있다고.
- 박초이 (소설가)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저물어야 날개를 편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부엉이가 낮이 지나고 밤이 돼서야 날개를 펴는 것처럼, 철학은 앞날을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가 이미 지나간 이후에야 그 역사적 의미를 비로소 밝힐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철학이 이렇게 뒷북만 친 것만은 아닙니다. 철학은 현실적인 문제를 선제적으로 해결하기도 했죠. 예컨대 플라톤은 고대 그리스를 이상적인 도시국가로 만들려고 하였고, 에피쿠로스는 혼란스러운 헬레니즘 시대에 인간을 구원하려 하였습니다. 그리고 중세 철학자들은 보편논쟁을 통해서 신과 인간과의 관계를 정립하려고 하였고, 과학혁명 시기의 철학자들은 과학적 지식의 근거를 마련하려고 하였습니다. 그것들이 당시에 가장 당면한 문제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다면 21세기 현재 우리에게 당면한 문제는 무엇일까요? 제가 보기에 그것은 인간과 AI의 공존의 문제입니다. 인간과 AI가 어떻게 공존할 것인가? AI에게 인격을 부여할 것인가? AI에게 어디까지 법적 책임을 물을 것인가? 이러한 문제는 이제 공상소설 속 이야기가 아닙니다. 구연상 교수의 『AI 몸피로봇, 로댕』은 이러한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저자는 소설의 형식을 빌어 철학적이지 않은 척 철학적 주제들을 밀도 있게 다루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을 소설처럼 쉽게 재미있게 읽다 보면 어느덧 철학의 한복판에 들어가 있게 되는 신박한 경험을 하게 될 겁니다.
- 김필영 ('5분 뚝딱 철학'유튜버)
철학자들이 벙어리 신세가 돼버린 ‘에이아이 로봇 시대’에 대한민국의 한 철학자 구연상 교수가 시대정신에 대한 거대한 성찰을 담은 소설을 하늘로 쏘아 올렸다. 그는 무섭게 변화해 가는 현실의 위기상황을 빈틈없이 기획된 이야기들 속에 그려냈을 뿐 아니라, 인류가 거기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를 철학적으로 설명하고 예측한 뒤 그 결과들의 타당성을 다양한 방식으로 파헤쳐 나가고 있다. 이 소설은 현대 인류가 처한 위험의 심각성을 만천하에 알리는 철학적 ‘알음알이’의 결정체이다.50대 중반에 큰 장애를 입고, 실업까지 당한 소설 속의 주인공 우빈나 박사가 해결할 수 없는 외로움에 자살하려고 결심하며 써 내려간 「유서」를 읽을 때 내 눈에 공감과 감동의 눈물이 맺혔다. 이 눈물은 아마도 구연상 박사의 두 번째 철학소설이 큰 성공을 거둘 것이라는 신호탄과도 같을 듯 싶다. 아주 오래전에 읽었던 『소피의 세계』라는 철학소설에 빗대자면 이 소설은 『에봇 몸피의 세계』라고 해도 좋을 듯하다.
이 소설에서 눈에 띄는 독특함 가운데 하나는 저자의 ‘철학실험’이다. 저자는 자신이 필생 고민하며 고심해온 철학의 수많은 문제를 소설 속의 인물들과 다양한 방식의 대화를 통해 다뤄나가고 있다. 대표적인 문제로 인식의 문제, 윤리도덕의 문제, 자아 정체성의 문제, 로봇의 존재론적 위상의 문제, 더나아가 로봇의 ‘죽음’의 문제 등을 꼽을 수 있다. 이 가운데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는 AI 시대에 인류가 로봇과 어떻게 공생하며 서로가 서로를 살리는 길을 찾아나갈 수 있을까 하는 문제일 수밖에 없다. 이는 우리가 AI 로봇에 대한 ‘존재론적’ 위상을 제대로 정립하고, 그에 바탕하여 인식론과 윤리론을 새롭게 수립하며, 그로써 인류의 파멸 없이 사람과 에봇이 서로 함께 평화로운 권리체계를 마련해 나가기 위한 첫걸음이다.
- 이기상 (한국외대 철학과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