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한 마음 녹여주는 독한 술들
-1장 스피릿 Spirit
독주를 뜻하는 ‘스피릿’은 알코올 도수 35도 이상에 설탕을 첨가하지 않은 증류주를 말한다. 최근엔 알코올 도수 20도 이상의 증류주를 스피릿으로 부르기도 한다. 곡류 및 과일 등을 발효시킨 뒤 다시 증류해 순도가 높은 것이 특징이다. 위스키, 브랜디, 럼, 진, 보드카, 테킬라, 고량주 등이 이에 속한다. 몇몇 경우를 제외하고 대체로 증류 후 오크통에 담아 숙성시키는데, 숙성 기간에 따라 품질이 달라진다. 스트레이트로 마시거나 얼음이나 물을 타 희석해 마신다. 각종 칵테일과 폭탄주의 베이스로 활용되기도 한다.
싱글몰트, 블렌디드? 아이리시, 스카치, 버번… 뭐가 이리 많아!
-2장 위스키
위스키는 곡물 발효주를 증류한 것으로, 원료에 따라 크게 몰트 위스키와 그레인 위스키, 그리고 둘을 섞은 블렌디드 위스키로 나뉜다. 몰트 위스키 중에서 한 증류소에서 나온 술만으로 담은 것을 싱글몰트, 여러 증류소에서 나온 술을 모아 담은 걸 퓨어몰트 위스키라고 부른다.
위스키는 아일랜드에서 제일 먼저 만들어졌다. 스코틀랜드로 넘어가 1820년대에 스코틀랜드 정부가 공인한 1호 위스키 ‘글렌 리벳’이 나온다. 하지만 몰트 위스키는 맛이 거칠다는 이유로 영국 상류 사회에서조차 환영을 받지 못했다. 영국 상류층은 여전히 프랑스의 포도주를 증류한 브랜디를 마시고 있었다. 19세기 중반까지 스피릿의 지도를 그리면 아일랜드엔 몰트 위스키, 영국과 유럽엔 브랜디였다. 변화를 불러온 건 블렌디드 위스키였다. 몰트 위스키에 귀리, 옥수수 등으로 만든 그레인 위스키를 섞은 블렌디드 위스키는 맛이 부드러워 상류층의 입맛을 사로잡기 시작했다. 조니 워커, 발렌타인 등의 블렌디드 위스키들이 이때 탄생해 영국 시장을 장악하고 유럽으로 건너갔다. 마침 19세기 후반 유럽엔 포도 해충이 들어와서 포도밭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었다. 브랜디 생산량도 급감했고 그 틈새를 블렌디드 위스키가 파고들었다.
그러는 동안 속이 상한 건 아이리시 위스키였다. 아이리시 위스키는 대다수가 몰트이고, 발효한 몰트액에 그냥 몰트를 더 넣어서 증류하기 때문에 맛이 더 달고 거칠다. 영국의 블렌디드 위스키가 위스키 시장을 석권하자 아일랜드 위스키 업자들은 자기들이 만든 위스키(whisky)의 철자에 ‘e’를 넣어 ‘whiskey’로 표기하면서 영국 위스키와 차별화를 시도하는 한편, 영국의 블렌디드 위스키에 위스키라는 명칭을 쓰지 못하게 해달라는 소송을 냈으나 패소하고 말았다.
아일랜드나 영국과 달리 미국 위스키는 옥수수가 주원료이다. 켄터키주 버번 지방에서 생산되는 버번 위스키는 원료인 곡물 가운데 70% 이상(법으로는 51% 이상)을 옥수수로 하여 만든 주정을 증류한다. 잭 다니엘스로 대표되는 테네시 위스키는 옥수수를 주원료로 사용하지만, 오크통에 담기 전에 단풍나무 숯에 여과하는 과정을 거친다.
동양도 서양도 섞는 게 대세
-3장 폭탄주
맥주에 위스키를 섞어 마시는 한국식 ‘폭탄주’와 가장 유사한 술을 찾아 올라가보면, 서양의 ‘보일러메이커’라는 칵테일이 나온다. 폭탄주와 제조 방식이 거의 같은 이 술을 영국과 미국에서 19세기 초중반부터 마셨다고 한다. 그 어원은 이 이름을 직업으로 가진 보일러공들도 알 수 없다고 하는데, 보일러든, 보일러메이커이든 취급에 주의를 요하는 것은 같다. 한국에서 이 술은 양주폭탄, 즉 ‘양폭’이라 불리는데, 정치권과 연계된 폭탄발언과 함께 불명예스럽게 등장했다. 한국에선 1980년대 들어 군과 검찰에서 마시기 시작하다가 정치권과 언론사를 거쳐 일반 사회로 퍼져나갔다. 1990년대 후반 구제금융기를 거치면서 맥주에 위스키 대신 소주를 타는 ‘소폭’이 새롭게 유행하기 시작했다.
라거는 뭐고 에일은 또 뭐다냐
-4장 맥주
고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에서부터 마시기 시작한 맥주는 종류가 다양한 만큼 분류 방법도 다양하다. 가장 보편적인 구분 방법은 발효에 쓰이는 효모의 종류에 따른 것으로, ‘에일 맥주’와 ‘라거 맥주’이다. 에일에 사용되는 효모는 고온에서, 라거에 사용되는 효모는 저온에서 발효되며 이에 따라 두 맥주의 맛도 다르다. 원래는 라거 맥주가 생산기간이 더 오래 걸렸으나, 1950년대에 라거 맥주 생산기간을 단축시키는 기술이 개발되면서 전 세계에서 라거 생산량이 급증했다. 그 뒤 단맛을 줄인 ‘드라이’ 맥주와 칼로리를 줄인 ‘라이트’ 맥주 등, 사람들의 욕망과 입맛에 맞춰 새로운 맥주들이 꾸준히 개발돼 나오고 있다.
한국에서만 자생하다 사라진 추억의 술
-5장 기타재제주
그이를 아시나요. 그이의 이름은 ‘기타재제주’랍니다. 그이를 아신다면, 그럼 그이가 벌써 이십여 년 전에 사라져 버렸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당신과는 상관없는 일이겠죠. 까마득하게 잊었을 테니까. 그때, 우리가 가난하고 억압받을 때, 그이는 가보지 못하던 세계로 우리를 데려가 주었지요. 위스키, 브랜디, 럼, 보드카……. 말로만 듣고 어쩌다 훔쳐보기만 했던 그 세계로, 그이와 함께 갔던 밤들은 들뜨고 행복하고 요란했지요. 다음날 몸이 탕진하고, 머리와 속이 뒤틀려 환장했지만 후회하지 않았답니다. 어차피 그이 없인 갈 수 없었던 곳이니까요.
기타재제주(其他再製酒)! 1990년 이전까지 한국의 술은 주세법상 양조주, 증류주, 재제주로 분류됐다. 양조주는 발효주이고, 증류주는 발효시켜 얻은 알코올을 증류하거나 희석시킨 것이다. 재제주는 한 가지 술에 다른 술이나 첨가물을 섞은 것으로 합성맥주, 합성청주, 인삼주, 그리고 기타재제주가 여기에 포함됐다. 원액 함량이 제품 전체 알코올의 20% 이상이 되면 증류주로 구분돼 주세가 높아졌다. 결국 기타재제주라는 게, 20%도 안 되는 원액에 싸구려 알코올을 채워 넣은 싸구려 술인데, 양주는 수입이 규제돼 있고 또 비싸서도 못 먹던 1970년대 후반부터 10년 동안 폭발적 인기를 누리다, 1990년 주세법이 바뀌면서 사라졌다. 맛이 떨어지고 뒤끝도 좋지 않은 대신 가격만큼은 쌌던 기타재제주들은 1970~1980년대 한국의 술 문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서 역사 뒤로 사라져버렸다.
진토닉이 칵테일의 전부는 아니다
-6장 칵테일
칵테일의 원래 의미는 스피릿에 허브나 감귤류를 첨가한 리큐르, 설탕, 물 등을 섞은 것이지만, 오래전부터 알코올이 들어간 혼합 음료를 통칭하는 말이 됐다. 누구든 입맛대로 이런저런 음료나 과일주스를 섞되 거기에 알코올만 들어가면 그게 칵테일인 것이다. 세계 곳곳에서 각자의 기호와 취향에 따라 만들어 마셔온 수없이 많은 칵테일 가운데, 사람들의 검증을 거쳐 맛있다는 소문이 나고 널리 퍼지면 거기에 이름이 붙고 바의 메뉴에 등재돼 이름난 칵테일이 된다. 역사가 길고 유명한 칵테일일수록 그 이름의 유래를 두고 설이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칵테일은 무엇보다 과일이나 허브 등 향기가 풍부한 재료가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이국적인 풍미가 살아난다. 이국적인 정취에 젖는 것이야말로 칵테일에서 얻을 수 있는 큰 매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