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보다 나은 오늘,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꿈꾸다!
이미정(http://blog.yes24.com/justicemj)
* 말은 우리의 사회상을 반영한다.
장면 하나. 아이들 한 무리가 놀이터에서 흙장난을 하고 있다. 그때 거동이 조금 불편해 보이는 한 아이가 함께 놀자며 그 무리를 향해 다가선다. 그 무리 중에 있던 한 명의 아이가 저 멀리 앉아있는 엄마를 향해 뛰어가며 외친다. "엄마~ 쟤는 우리랑 틀려~"
많은 경우 말은 사람의 사고를 옭아맨다. 우리가 무심코 사용하는 말과 단어들 속에는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과 잣대가 묘하게 녹아들어 있다. 위의 경우라면 '우리와 [틀리다]'라는 표현이 아니라, '우리와 [다르다]'라고 표현해야 옳다. '우리말 바로쓰기' 프로그램에나 나올법한 이야기가 조금 뜬금없을 수 있겠지만, 이는 사회적 약자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선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다르다'와 '틀리다'는 그것이 뜻하는 바가 엄연히 다르다. '다르다'라는 표현은 '(비교가 되는 두 개 이상의 대상이) 서로 같지 아니하다.'라는 뜻인데 반해, '틀리다'는 표현은 '셈이나 사실 따위가 그르게 되거나 어긋나다.'라는 의미를 갖는다. 물론 '틀리다'가 '같지 않다'라는 뜻으로 사용되는 경우들이 있음을 감안하더라도 많은 경우에 있어 우리는 잘못된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 셈이다. 분명히 이야기하면 그들은 '틀린 것'이 아니라, 다만 우리와 '다른 것'이다.
이 외에도 우리가 무심코 사용하는 단어들 중엔 차별을 공고히하거나 묘한 교훈의식을 강요하는 경우가 얼마든지 많다. 결혼을 하지 않은 여성을 뜻하는 단어로 사용되는 '[미혼모(未婚母)]'라는 표현은 '완성되지 못한 여성'이라는 뜻을 내포하며, '[외국인]노동자'라는 표현은 '나와 국적과 피부색이 다른 이'이라는 것을 분명히 드러내는 표현이다.(그나마 열심히 '일해야 하는' 사람을 뜻하던 '근로자(勤勞者)'라는 표현에서 '노동자(勞動者)'라는 표현으로 변화한 것이 다행스럽다고 해야할까?) 또한 '편부(偏父)'나 '편모(偏母)'라는 표현도 '완전하거나 정상적이지 않은 가족상태'를 염두한 표현이다. 이러한 언어는 은연중에 사람들을 일률적인 잣대로 평가하며, 그로 인한 차별을 정당화하는 구실로 사용된다. '미혼모'가 아니라 '비혼모(완성되지 않은 것이 아니라, 결혼하지 않았음을 뜻함)'라는 표현을, '외국인 노동자'가 아닌 '이주노동자'라는 표현을, '편부 혹은 편모'가 아닌 '한부모'라는 표현을 사용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이들의 주장엔 말이라는 것 이면의 권력과 이데올로기를 견제하고자 하는 다분히 의식적인 노력이 묻어 난다.
* 현실을 담아낸 만화의 장면장면이 우리의 폐부를 찌르다.
여기, 이와 같은 의도로 만들어진 한 권의 책이 있다. '만화가들이 꿈꾸는 차별 없는 세상'이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 대한민국 대표 만화가들이 차별로 얼룩진 우리 사회의 현실을 만화의 장면장면으로 담아내었다. 남들과 다를 것 없지만 늘 다르게 살아가야만 하는 비정규직, 동성애자, 장애인의 삶을 담았고, 성, 학력, 빈부 차별로 얼룩진 지금 우리의 현실을 비틀었다. 비혼모, 군인 등 우리 사회의 주변에 서있는 젊은 세대들의 고민과 갈등을 담담한 어조로 그려내기도 한다. 책 앞부분에 실린 십여 개의 만평과 8편의 만화가 쉴 새 없이 우리의 폐부를 찌른다. 발랄한 터치와 위트있는 전개에 웃음이 베어나는 장면이 있기도 하지만, 그 이면에 담긴 우리 사회의 현실을 곱씹어보면 여전히 아프고 버겁다. 최소 두번은 읽어보기를 권한다. 한번은 조금 빠르게, 그 다음은 장면장면의 의미를 되새기며 조금 천천히… 음미라기 보단, 차라리 '뼈아픈 반성'이라는 말이 어울릴 듯한 이 과정을 되풀이 하다 보면, 장면장면 새로운 서글픔과 부끄러움이 고개를 든다.
* '시옷(ㅅ)'과 '사람(人)'은 어딘가 닮아있다.
처음엔 '국가 인권위원회'에서 기획한 책이라는 말을 듣고, 약간의 거부감을 가지고 책을 집어들었다. (국가 인권위원회의 의의와 활동을 지지하는 편이지만) 행여 '국정홍보처의 광고를 보고난 뒤 밀려드는 씁쓸함 같은 감정이 일게 하는 책이 아닐까..'하는 무의식적 방어본능 때문이었을까?^^; 하지만 책을 몇 차례 되풀이해 읽으면서 차라리 학교나 관공서를 통해서라도 많은 이들이 이 책을 접해보게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다 많은 이들이 이 책을 계기로 '차이'가 '차별'이 되지 않는 사회를 꿈꾸어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이 책의 제목은 '사이시옷'이다. 사이시옷은 두 낱말이 어울려 한 낱말을 이룰 때 그 둘 사이를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굳이 사람을 뜻하는 '人'이라는 한자가 두사람이 서로 기대어 선 모양을 딴 것이라는 점을 상기시키지 않더라도, 사람을 뜻하는 人間이란 표현이 '사람 사이'를 의미하는 것을 보면 '시옷(ㅅ)'과 '사람(人)'과는 무언가 닮은 점이 많다. 더구나 그냥 시옷도 아니고 '사이시옷'이라면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 책이 제목처럼 사람과 사람 사이를 부드럽게 이어줄 '시옷'이 될 수 있다면 더없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 어제보다 나은 오늘,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꿈꾸다.
얼마 전 아는 분께 명함 한 장을 건네 받았다. 그 명함에는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우리의 아이들에게!'라는 문구가 적혀있었다. 문구를 보는 순간 무언가 코끝이 찡해옴을 느꼈다.
생각해보면 우리의 내일은 온전히 지금 우리들의 몫으로 남아있다. 지금 현실이 만족스럽지 못하다 하더라도 우리의 노력으로 보다 나은 내일을 꿈꿔볼 수 있다.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우리의 아이들에게!' 이 문구의 의미가 보다 많은 이들의 가슴에 새겨지길 바란다.
이 책에 담긴 만화 중 한편의 마지막을 장식한 다음의 문구를 전하며 부족한 글을 마무리 하고자 한다. "당신은 당신의 세상에서… 모두가 더불어 살 수 있는 세상이 되도록 노력해주세요. 당신이 노력한만큼 미래는 변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제가 사는 세상이 그렇게 되도록… 미약하지만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