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트만의 입장을 지지하든 반대하든 그의 논지를 건너뛴 채 현대 신약학을 논하기는 어렵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신화』는 흔히 비신화화와 양식비평으로 대변되는 불트만이 1951년 북미의 여러 대학에서 강의한 자료를 엮은 책으로 그의 신약학 방법론과 전제를 이해하기에 매우 적합하며, 그 분량과 서술의 간결함으로 인해 가독성이 좋습니다.
본서는 불트만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비신화화’의 개념과 목적을 명료하게 소개합니다. 그는 비신화화를 통해 신약에 기록된 신화적 요소와 진술을 해석함으로써 신비의 의미를 파악하는 데 초점을 맞춥니다. 책에서 설명하는 불트만의 실존주의적 해석과 인간론 중심의 해석은 두 번의 세계 대전, 나치, 비관주의, 교회의 쇠퇴 시대에 살았던 학자로서 예수의 설교와 신약의 설교가 오늘을 사는 현대인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고민한 흔적을 반영합니다. 불트만은 예수나 말씀의 역사성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 있는 인간이 실존적으로 자각하고 결단하는 순간과 변혁에 초점을 맞춥니다. 불트만은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와 사건들(예, 부활)의 역사성이 아니라 신학적 예수에 있는 교회의 실존적 신앙고백에 관심을 둡니다.
필자는 불트만의 비신화화 작업, 복음서 기록의 역사성과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의 역사성에 대한 불가지론적 견해, 종말론과 우주론에 대한 실존주의적 접근에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과연 역사성이 간과된 실존적 각성이 효력이 있는 것인지 의문입니다. 그러나 불트만의 신학에 동의하지 않는 독자들에게도 본서는 가장 영향력이 컸던 학자와 대화하는 테이블의 역할을 할 것입니다. 신약 해석학의 역사를 위한 연구에서 기초 자료인 것은 당연합니다.
본서를 비평적으로 읽는 독자들에게 이동영 교수의 비평적 해제는 대단히 흥미로운 조합입니다. 조직신학과 서양 철학의 전문가인 이동영 교수는 독일어판의 역자로 불트만의 신학과 사상을 개혁신학자의 관점에서 비평적으로 평가합니다. 그의 신학적 고민과 성찰이 담긴 해제는 독자들의 시선을 책의 마지막 페이지까지 중단 없이 사로잡을 것이 확실합니다.
- 강대훈 (총신대 신학대학원 신약학 교수)
종교개혁의 양대 산맥이었던 루터파 교회와 개혁파 교회는 그들의 신앙과 교리를 담은 문서(아우크스부르크 신앙고백서,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서)와 루터, 멜랑흐톤, 칼뱅, 부처 등이 저술한 신학책들에 의해서 그 정체성이 형성되었습니다. 그에 반해 영국 성공회는 조금 다른 길을 걸었습니다. 성공회 역시 자신들의 신앙과 고백을 담은 42개 신조를 발표하긴 했지만, 대륙의 종교개혁 교회들의 신앙고백문처럼 그들 교회의 불변의 신앙고백으로 삼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루터나 칼뱅, 멜랑흐톤처럼 체계적인 저술을 남긴 신학자들도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대륙의 종교개혁운동은 500여 년의 시간 동안 시대에 따른 수많은 교리논쟁과 신학적 방향의 변화가 많았지만, 성공회의 신학적 흐름은 대륙과는 달리 주로 성서학에 집중되었습니다. 한국 교회에서 인기 있는 신약학자들 중 거의 대부분이 성공회 주교이거나 사제들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루돌프 불트만의 성서해석방법론이 19, 20세기 성서학 전통이 강했던 영국 성공회에 끼친 영향은 대륙 못지않은 큰 충격과 변화였습니다. 그러나 불트만의 제자였던 케제만이 역사적 예수문제의 새로운 탐구를 이끌어내었듯이, 영국의 성서학자들 역시 불트만의 영향에서 벗어나고자 다양한 노력을 시도했습니다. 저는 이동영 교수가 30년 전에 번역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신화』(영역본)을 읽고 불트만의 신학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불트만이 직접 감수한 이 독일어 버전을 새롭게 번역하여 출간한 본서는 난해하고 복잡한 불트만의 지형도를 가장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책입니다. 게다가 이번에 새롭게 개정된 번역서에는 역자이신 이동영 교수의 상세한 해제가 첨부되어 있습니다. 이 해제만으로도 불트만의 복잡한 세계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얻을 수 있습니다. 20세기 성서학뿐만 아니라 교의학에도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불트만에 대한 이해는 현대신학을 다루는 데 있어 반드시 넘어야 할 산입니다. 이번에 새롭게 번역 출간된 『예수 그리스도와 신화』를 통해 불트만에 대한 정당한 평가가 이루어지길 고대합니다.
- 박상용 (대한 성공회 서울교구 사제)
오래전의 일입니다. 저는 우연히 루돌프 불트만의 『예수 그리스도와 신화』를 어느 보수적인 학풍의 신학 도서관에서 발견하고 깜짝 놀랐습니다. 첫째는 불트만의 책이 한국의 보수적인 학풍을 지닌 신학교의 도서관에 꽂혀 있다는 사실에 놀랐고, 둘째는 역자 역시 보수적인 학풍에서 공부했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하지만 이 놀라움은 또한 반가움이기도 했습니다. 불트만의 주저서가 우리말로 옮겨져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었는데, 이제 수업 시간에 학생들과 함께 이 문제작을 읽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흥분되었습니다. 이 책의 주된 주장이 비록 여러 면에서 비판을 받아 왔지만, 여전히 신학 공부를 위해 반드시 읽고 넘어야 할 산이라는 점에서 이 번역서의 출현은 놀라움이자 반가움이었습니다.
불트만의 신학은 과학기술이 발달하고 인간의 정신이 성숙해진 시대에 기독교 신앙이 지성의 희생을 강요당하지 않으면서도, 성서의 메시지인 하나님 말씀에 직면하여 실존적 결단과 변화라는 이해의 사건에 도달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고자 했습니다. 물론 그가 제시한 비신화화를 통한 실존론적 신학의 방법과 내용이 21세기 신학이 다뤄야 할 주제와 짊어져야 할 과제에 비하면 턱없이 협소해 보일지 모르지만, 여전히 근본적인 방향의 하나를 지시하고 있다고 봅니다.
이번에 이 책을 독일어판에서 다시 번역하셨다니, 놀라움과 반가움이 배가 됩니다. 누구보다 전통적인 신학적 풍토를 중시하는 역자께서 이런 힘겨운 작업을 기꺼이 감내하셨다는 점이 놀라우면서도 감사할 따름입니다. 신학은 성서 적합성과 시대 책임성이라는 두 축 사이에 서 있습니다. 이 책 한 권으로 신학의 부활을 기대하기는 어렵겠지만, 우리 시대에 만연한 신학상실을 극복하도록 자극하기에는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박영식 (서울신학대학교 교수, 『고난과 하나님의 전능』 저자)
불트만 사상의 소개서로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예수 그리스도와 신화』가 첫 번역자인 이동영 교수의 독일어 판본 재번역으로 새로이 태어났습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신약성서학계의 거장이 ‘비신화화’와 ‘실존론적 해석’으로 대표되는 자신의 신학사상을 평이한 어투로 직접 해설한 이 책의 가치와 중요성은 새삼스레 재론할 필요조차 없을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1958년에 나온 이 오래된 책이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설득력 있고 아름다우며 심지어 은혜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사실입니다.
과학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성서의 말씀을 이해 가능한 형태로 들려주어야 한다는 불트만의 문제의식은 오늘 우리에게도 여전히 중요하고 적실합니다. 동시대의 다양한 학문적 흐름들을 장인의 솜씨로 통섭해 거대하고 설득력 있는 해석학적 체계로 빚어가는 과정은 감탄과 경이의 감정을 불러일으킵니다. ‘지금’, ‘여기서’ 행해지는 선포와 결단을 강조하는 실존론적 해석은 대다수 그리스도인들의 신앙 경험과 부합할 뿐 아니라, 오늘 여기서 이 책을 펼치는 우리의 가슴을 뜨겁게 합니다.
물론 이 책에 나온 불트만의 생각에 모두 동의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이동영 교수가 해제에서 잘 밝히고 있듯 그 역시 다른 신학자들처럼 시대의 아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는 우리가 불트만의 대담한 신학적 ‘결론’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그가 보여준 치열한 신학함의 ‘태도’에는 공감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중요한 책과 함께 우리도 영원한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시대에 적실한 메시지로 풀어내는 흥미로운 모험의 여정을 떠나 보는 것이 어떨까요?
- 정한욱 (안과전문의, 『믿음을 묻는 딸에게, 아빠가』 저자)
지난 세기의 인물 같지만, R. Bultmann은 신약학뿐 아니라 신학 전반에서 여전히 그 영향력이 지대합니다. 신학적 성향을 차치하고서라도, 신학을 연구하는 전문가는 전공을 불문하고 불트만의 신학적 이론의 인용을 수용적이든 비판적이든 피할 수는 없습니다. 본서는 1951년 미국의 예일 대학교 Divinity School을 시작으로 미국의 여러 대학과 신학교에 초청되어 발표한 불트만의 영어 강연을, 그의 제자 Richter가 번역하여 저자의 감수와 함께 본래 언어인 독일어로 출판한 책입니다. 원 저자의 신학적-학문적 깊이를 그대로 담았을 뿐만 아니라 영어본의 여러 오류를 수정한, 불트만의 의도가 좀 더 정확히 담긴 판본입니다.
일반적으로 신학자들은 불트만의 신학적 해석학 이론인 비신화화(Entmytolo-gisierung)를 신학의 연구사에서 부인할 수 없는 독보적인 학문적 공적으로 인식하는데, 본서 곳곳에 이러한 그의 신학의 근저인 신화의 해석학적 사유가 잘 드러나 있습니다.
특별히 역자가 책 말미에 쓴 비평적 해제는 불트만의 신학적-해석학적 배경과 사유의 정황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기 위한 좋은 이해를 갖는 데 도움을 줍니다. 독일어에서 번역된 많은 전문 서적들이 언어적 이해나 신학적 이해가 적절하지 못하여 읽으면서 시간을 낭비할까 염려한 나머지 그냥 독일어로 읽었던 경우를 기억하면, 이동영 교수의 번역은 그 두 가지를 걱정하기 않고 읽을 수 있는 번역서라는 것에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우리 대학교 자신의 연구실에서 밤늦게까지 늘 연구에 몰두하는 이동영 교수의 이 역서가 신약학뿐 아니라 신학 전반에 진지한 많은 독자들에게 적잖은 영향력을 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신약학에도 깊은 전문지식을 가진 조직신학자의 통찰력 있는 번역으로 탄생한 이 역서를 신학적 지평을 여는 좋은 학술서로 추천합니다.
- 최순봉 (서울성경신학대학원대학교 총장, 신약학)
현대인들에게는 복음서가 어렵습니다. 귀신이 등장하고, 귀신은 예수님께 부탁을 하고, 예수님은 기도로 그 병을 고쳐주십니다. 하물며 손만 대어도 병이 낫는 경우가 있습니다. 한때 어떤 학자들은 복음서 속에서 ‘역사’를 발굴하면 현대인들에게 유의미한 결과를 줄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들은 실제 팔레스타인 땅을 거닐던 예수님의 진짜 역사가 핵심이라 생각했습니다. 복음서 속에서 예수님이 진짜 남기셨던 흔적과, 후기 교회가 덧붙인 흔적 사이를 구분하려 애썼습니다. 반면 어떤 학자들은 복음서 속에서 ‘역사’를 발굴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했습니다. 아무리 연구해도 그가 발견한 것은 예수님을 만난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이었습니다. 네, 루돌프 불트만은 후자에 속한 사람입니다. 그는 복음서를 연구하는 신약학자의 입장에서 자신이 연구한 결과를 주장합니다. 복음서를 들여다보니 그곳에는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들의 신앙이 있었다고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신화』는 루돌프 불트만이 주장했던 비신화화(Entmythologisierung) 이론을 잘 설명하고 있는 책입니다. 그가 보기에 복음서의 핵심은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들의 신앙입니다. 따라서 그는 현대인들이 복음서를 통해서 (초기 그리스도교인들처럼) 신앙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다수의 현대인들은 복음서 곳곳에 있는 (귀신이 등장하고 기적이 일어나는) 고대의 신화적 세계관 앞에서 걸려 넘어집니다. ‘십자가의 걸림돌(갈 5:11)’ 앞에서 넘어져야 참된 신앙을 가질 수 있을 텐데, 신화적 세계관이라는 어설픈 걸림돌 앞에서 넘어지는 겁니다. 따라서 그는 신화적 세계관의 걸림돌은 걷어내고 참된 십자가의 걸림돌이 드러나게끔, 성경을 현대인들에게 걸맞게 해석할 것을 제안합니다. 신약학자의 정체성 및 설교자의 정체성이 묻어나는 부분입니다. 이것이 바로 비신화화(Entmythologisierung)의 핵심주장입니다.
불트만의 주장은 예리합니다. 그의 통찰은 여전히 반짝입니다. 오늘날에도 유의미합니다. 하지만 그의 논리에는 시대의 한계에 따른 문헌적 오류가 있습니다. 또한 조직신학자의 주장이 아닌 만큼 완결성 있는 신학 체계가 아닌 제안에 가깝습니다. 따라서 역자 이동영 교수는 번역에 더해 가이드까지 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신화』를 오늘날에 걸맞게 다시 해석하고 있는 것입니다. 서문과 해제를 통해 맥락을 명료하게 해설하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의미한 부분과 다소 한계가 있는 부분을 콕콕 집어내는 솜씨가 매섭습니다.
본서는 고전입니다. 고전에는 별다른 추천이 필요 없습니다. 저자를 알고, 제목을 알고 있다면 본서를 소장하지 않을 이유가 없겠습니다.
- 홍동우 (『교회답지 않아 다투는 우리』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