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는 이재남은 광주교육대학교 총학생회장을 역임했고, 전남 신안에서 섬마을 선생님으로 첫 교직 생활을 시작했다.
그 후 학생운동 시절 시국사건과 관련하여 해직되었고, 이후 전남과 광주를 오가며, 전교조 활동을 맹렬히 해 왔다. 해직시절 영광굴비 장사를 하며, 해직자들의 후원금을 만들기 위해 전국을 누비던 그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재남은 우리 해직 교사 1세대의 뒤를 이어받으면서도, 시대적 안목과 참교육에 대한 진정성을 가진 몇 안 되는 실력파 후배 중의 한 명이다. 전교조광주지부장 시절 그와 본격적인 인연이 되었고, 내가 교육위원 시절에는 교육정책에 있어서 남다른 혜안을 가지고 있어, 도움을 받기도 했다.
그런 그와 함께 지난 격동의 8년여를 교육청에서 함께 지낸 시절이 주마등처럼 스쳐 간다. 진보교육 시대는 준비가 부족한 가운데 성큼 다가왔고, 그 공백을 채우기 위해 모두가 동분서주할 때, 이재남같은 후배들에게 한 몫을 맡길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스러웠다.
그가 홀연히 2년간이나 대학원에 파견 가서 무슨 공부를 했나 궁금했는데, 좋은 교사에 대한 근본 문제를 수업 현상을 통해서 고민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특히, 최근 그가 각종 지면을 통해 발표하고 있는 내용을 보면, 그 깊이가 남달라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그의 말처럼 ‘좋은 수업’ 이전에 ‘좋은 교사의 삶’에 대한 고민을 진지하게 할 때이다. 그동안의 수업론들이 많은 교사를 대상화하는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측면이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의 수업 현상에 대한 남다른 관점이 이론적 논의에 그치지 않고, 현장의 교육력을 높이는 현실적 수단으로 작동하기를 기대하며 일독을 권한다.
- 장휘국 (광주광역시교육청 교육감)
이 책의 일독을 권하면서
이재남은 우리나라의 민주화운동이 절정을 치올라가던 80년대 후반, 시대의 한 가운데에 우뚝 서 있었다. 광주교육대학교 총학생회장으로 학생운동의 선봉에 섰으며, 당시 시대적으로 어려웠던 교육대학여건에서 옥고를 치르는 등 참으로 힘든 시대를 겪었다. 졸업 후에도 전국교직원 노동조합의 중심에서 활약하고 있다. 그가 대학생이었을 때, 광주교육대학교 교수로 명함을 올렸던 나는 아직도 교정 곳곳에 살아 숨 쉬는 그의 열정과 춤과 노래를 기억한다.
이재남은 건강한 정신과 꿈을 간직한 열혈청년이었다. 또한 평소 그의 모습은 결코 현실과 타협하지 않는 진정성으로 똘똘 뭉친 참 교사였다. 그에게 이렇게 학문적 갈증이 내재되어 있었음이 놀랍다.
『수업예술론』에는 이론적 논의를 뛰어넘는 현장교사의 진정성이 차고 넘친다.
이재남의 석사학위 논문을 펼쳤을 때, 맹렬하게 육박해오던 감동은 가히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나로서도 『수업예술론』은 교수가 된 이후, 지금까지 언젠가는 풀어야 할 숙제였기 때문이다. 차일피일 게으름을 부리느라 미처 하지 못한 일을 아뿔싸 제자가 해냈다니, 것도 논리 정연하게 그 이론적 전거를 입증하고‘수업은 기술이 아닌 예술이다’라고 부르짖고 있다니, 오랜 시간이 지나 마침내 이 논문을 출판해서 세상을 향해 외치고자 하는 제자가 대견하고, 또 자랑스럽다.
수업은 교수자와 학습자의 행복한 교감이다. 이 책의 저자가 교육현장에서 지속적으로 고민한 것은 바로 학습자의 행복이었을 터, 그러므로 그는 행복을 전제로 했을 때 수업은 기술이 아닌 예술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리고 행복한 수업의 근거를 아이스너의‘수업의 예술성’에서 찾는다.
아이스너는 20세기 후반에 예술적 인식론을 토대로 한 새로운 교육관점으로 질적 연구방법을 제시하였으며, 특히 미술교육의 학문적 정당성을 주장한 저명한 학자이다. 저자는 수업을‘목표 도달’이 아니라 ‘생성과 발견의 과정’으로 본 아이스너의‘예술적 인식론’에 주목하고 있다. 그리고 아이스너의 ‘인지와 감정의 통합’, ‘형식의 다양성’, ‘예술적 감각과 경험’, ‘창조적 활동’, ‘목표 실현의 과정’이라는 다섯 가지 범주를 기반으로 수업의 예술성을 추적한다. 창조적 활동인 예술의 감각과 경험 은 목표 실현의 과정이며, 여기에는 다양한 형식이 탄생한다. 이 창조적 소산물은 인지와 대립·분리한 것이 아니며, 오히려 인지는 예술적 창조 의 기반으로 작용한다. 이 다섯 가지 범주를 예술가의 입장에서 이해하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거니와, 그러나 문제는 이 연구가“교실 속의 교사에게 의미 있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한 것이라는 데 있다. 예술가들의 전유물로 인식한 예술과 교사들의 수업은 쉽게 접목하기 어려 운 별개의 개념일 수도 있다. 저자는 이것을 고민하고 있다.
‘수업은 예술이다’라는 말은 ‘삶이 예술이다’라거나 ‘생활은 예술이다’라는 말의 의미와 상통할진대, 예술이 삶의 총체적 표현이듯이 수업은 “교실 속 여러 가지 일들의 상호작용과 요인들이 혼재한” 총체적 작업인 것이다. 예술을 교사 자신과 무관하게 느끼는 것은 예술의 형식 때문이다. 예술의 형식은 불변의 고정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창조하는 것이다. 수업을 예술적 관점으로 접근하면 그것은 하나의 예술 형식을 창조하는 것이므로, 이때 교사는 학습자와 함께‘수업’이라는 ‘예술작품’을 창조하는 예술가가 된다. 수업을 예술작품으로 간주한다면 수업은 예술이 가져다주는 모든 것-도전, 직관, 환희, 감동, 관조, 행복, 예기치 못한 상황, 우연, 관찰력, 상상력, 문제해결력, 고통과 좌절까지도-을 획득할 수 있는 종합예술이며 무한한 가능성 그 자체인 것이다.
바야흐로 21세기는 문화의 시대이다. 1970년대 이후 20세기를 구축했던 산업도시들은 쇠락하고 폐쇄적 일방통행의 공간으로 전락하였고, 이제 그 자리에 문화도시를 표방한 환경도시, 생태도시가 태어나고 있다. 군수물자를 생산하던 북경의 공장들이 예술센터로 변모했다. 이 책의 진 정성은 교육현장의 개선이라는 일관한 문제의식에서 두드러진다. 예술 적감성으로 소통하는 문화의 시대에 『수업예술론』이야말로 교육현장을 개선할 수 있는 새로운 대안으로 떠올랐다는 것이다.
이 시대의 모든 교사들이 예술이 주는 가능성과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이 책을 추천하는 소이연(所以然)이다.
- 정인수 (광주교육대학교 미술교육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