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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24년 05월 2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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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931쪽 | 1,572g | 152*218*66mm |
2024년 11월 01일 ~ 2024년 11월 30일
상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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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팬더믹이 길어지면서 자해하는 20대가 늘어난다는 기사를 접했다. 그들의 불안이 그들의 영혼을 잠식한 셈인데, 그럴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코핑 스킬(coping skill)이 없다는 게 안타깝다. 따지고 보면 대개의 한국 사람들에겐 술이나 담배, 코인 노래방에서 부르는 노래만이 그들이 살면서 배운 유일한 코핑 스킬이다.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한국인들이 참 불쌍하다.
어려서부터 경쟁에 내몰려 죽어라 공부하고, 어렵게 취직을 해서도 착취를 당하며 거듭 경쟁에 내몰린다. 유년시절에도 학창시절에도, 어른이 되어서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무엇이 가치 있는 삶인지 배우지도 못하고 생각할 겨를도 없다. 그러다 아주 사소한 위기라도 겪게 되면 그 위기를 이길 힘이 없어 무너지게 되는 것이다.
태어나는 바로 그 순간부터 삶은 문제의 연속이고, 삶의 곳곳이 지뢰밭인데, 그것들을 스스로 해결할 힘을 기르지 못한 채 무방비로 세상에 내던져진 사람은 어떻게 세상을 헤쳐나갈 수 있을까
더욱이 지금 세대는 과거에 축적된 노하우를 전수하는 게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기성세대가스승이나 어른으로 존경받기 어려운 이유다. 그들이 말하는 ‘라떼는 말이야’는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가진 경우라도 ‘잔소리’ 이상의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
유발 하라리가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에서 지적하는 부분도 바로 이 지점이다. 그가 생각하기에 ‘더 나은 오늘’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다음 세대를 교육하는 문제가 매우 중요한데, 유발 하라리는 이미 기성 세대인 선생들이 자라나는 세대인 아이들을 교육하는 데 있어 갖게 되는 한계를 지적한다. 사실 기술 문명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아이들이 기성 세대를 훨씬 빠르게 앞서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기성 세대가 해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아이들이 어떻게 빠르게 변하는 기술문명 사회에서 슬기롭게 적응하면서 잘 살 수 있게 할 것인가.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붙잡아야 할 가치들과 정의가 있다는 걸 어떻게 가르쳐줄 것인가. 결국 이런 것들이 교육이 당면한 과제인 셈이다.
이에 대한 해법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이 과제의 해법을 '철학'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스스로 생각할 수 있게 해주는 것, 철학을 공부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철학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것이야말로 기성 세대가 자라나는 세대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것이 아닐까.
그런 측면에서 나는 이 책(꼭 이 책이 아니더라도 이런 부류의 책들)이 그 단초이자 기초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해줄 수 있을 거라 기대한다.
이 책은 특이하게도 아일랜드 영부인의 추천사로 시작한다. 그녀는
이 책을 통해 독자 여러분의 생각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와 같은 물음을 던진 위대한 철학자에게 연결될 거예요. 이를 통해 무궁무진하게 넓은 철학의 세계가 보여주는 경이로움에 마음을 열고 다가갈 수 있을 거예요.
라고 말한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삶의 근본적이고 근원적인 질문에 대답할 수 있을 정도로 건강하고 확고한 자기 정체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길고 험난한 인생길을 완주할 최소한의 기초체력은 가지고 있는 셈이다. 왜냐하면 ‘철학’이란 나와 세상을 이어주고, 그 관계를 해석하는 능력을 키워주며, 삶의 문제들을 해결할 힘을 길러주기 때문이다. 대통령이나 영부인이 ‘철학’에 관심을 갖게 된 까닭이기도 할 것이다.
이 책의 저자인 브렌던 오도너휴는 아일랜드의 철학 교육자로 여러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쳤는데, 학생들이 철학을 어려워하는 게 안타까워서 ‘재밌는 이야기’로 철학에 접근할 수 있도록 철학에 스토리텔링을 더하게 됐다. (참고로 이 책엔 저자 이름만 등재되어 있는데, 사실 개인적으로는 일러스트레이터 폴라 맥글로인의 역할 또한 크다고 생각한다. 글만큼이나 그림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글을 통해 생각의 힘을 키울 수 있는 만큼 그림을 통해 키워지는 상상력도 매우 중요하다. 저자는 철학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가 아이들의 호기심과 의욕을 자극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데 각 챕터의 삽화들이 거기에 일조한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저자는 동서양의 동화와 신화에서 철학적 메시지가 찾았고, 그 결과물이 바로 『철학의 숲』이다.
브렌던 오도너휴는 철학이란 '지혜에 대한 사랑'이라는 것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지혜에 대한 사랑과 지혜를 추구하는 행위를 가리켜 철학이라고 하고, 지혜에 대한 사랑을 가득 품고 있는 사람을 철학자라고 한다는 것이다. 철학은 기본적으로 모험인데, 여행 중에 만나는 모든 존재는 어마어마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새로운 눈과 마음으로 세상을 볼 수 있게 해준다. 저자는 깊은 숲속에 들어가면 길을 잃을 수도 있겠지만 결코 탐험을 멈추지 말라고 당부하는데, 나는 이 것이 세상을 사는데, 자신의 삶을 영위하는 데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고 생각한다. 길을 잃더라도 멈춰서지 말 것.
나는 요즘에 윌리엄 포크너의 『곰』을 읽는데, 소설의 배경이 된 마을에서는 소년들이 열 살이 되면 처음으로 어른들과 함께 숲에 들어가 곰사냥을 하게 된다. 숲은 언제나 길을 잃을 수 있는 곳이고, 곰과 같은 위험한 동물들이 언제든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숲을 읽는 법을 배우는 것, 길을 잃지 않는 법을 배우는 것, 동물들의 자취를 추적하는 방법 등을 배우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것이 생사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소년들은 그렇게 어른이 된다.
나는 현대사회에서 철학의 역할 역시 이러하다고 생각한다.
『철학의 숲』은 각 챕터마다 하나의 이야기가 있다. 각 이야기마다 호기심, 질문, 용기, 정의 등의 주제를 갖고 있고, 챕터 말미에 해당 주제를 논한 저명한 철학자의 견해가 짤막하게 실려 있다.
그러므로 이 책을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깊이 있는 독서, 메타 독서를 할 수 있게 된다.
가령 이 책의 첫 챕터의 제목은 ‘우물 안 개구리가 우물을 떠난 날’인데, 여기 실린 이야기는 중국 철학자 장자의 이야기를 각색한 것이다. 저자는 이 이야기를 통해 생각하는 힘은 호기심에서 시작한다는 것을 아이들이 알 수 있기를 바란다. 그렇다면 호기심이란 무엇인가. 처음 보거나 항상 진실이라고 믿어왔던 것을 의심하기 시작할 때 느끼는 것이 호기심이다. 저자는 호기심이 때로 수수께끼처럼 어렵고, 편안하고 안전하고 확실했던 세상을 갑자기 사라지게 할 수도 있다는 점을 순순히 인정한다. 그러나 이미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한 것에 대해 새로운 질문을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여기서부터 철학의 탐험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저자는 호기심에 대해 이야기한 철학자로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윌리엄 블레이크, 존 모리아티를 소개한다. 철학 탐험의 어느 단계에서건 호기심은 늘 우리 곁을 따라다닐 것이라는 점도 알려준다.
책의 첫 챕터를 프리드리히 니체의 다음 말을 인용하면서 시작한 것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미지에 대한 두려움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보다 훨씬 커요. 그러나 이런 거대한 두려움 속에 거대한 기회가 숨어 있어요."
불안이 영혼을 잠식한다고 할 때 사람들이 불안을 느끼는 이유는 매우 다양하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현재와 미래의 불확실성 때문일 것이다. 현재와 미래를 예측할 수도 없고 통제할 수도 없다는 것, 특히 코로나 팬더믹 상황이 예상보다 더욱 길어지면서 개인들이 느끼는 불안감은 그 어느 때보다 커질 수밖에 없다. 이런 일이 앞으로는 더욱 빈번하게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에 미래는 더더욱 두려운 것이 된다. 그렇게 점점 위축되다 결국 자신이 이 세상에서 없어지는 쪽을 선택하게 되는 것이다.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다.
다음 세대인 아이들에게 재산을 물려주고 주식을 물려주는 것도 좋겠지만, 스스로의 삶을 능동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철학하는 힘을 길러주는 것이 기성세대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이 아닐까
책이 좋다는 걸, 책을 읽는 것의 유용함을 어려서부터 경험적으로 아는 사람이라면 그들이 살아가는 생애 동안 어떤 식으로든 책을 읽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기성세대나 공교육이 할 일은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어떤 식으로든 책읽기의 즐거움, 책이 주는 위로와 지적 자극 등등을 경험할 수 있게 하는 것, 그를 통해 스스로 사고하는 힘을 기르고, 수많은 정보 중 유용한 것들을 걸러내며, 진실과 거짓을 분별할 수 있게 하는 것, 이슈가 있을 때마다 부화뇌동하는 게 아니라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안목을 기르게 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것들을 통틀어 ‘철학’이라고 일컫는다.
나는 그 첫 시작이 이 책 (혹은 이와 같은 책들)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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