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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과 기념의 공간

정현애 | 미디어민 | 2024년 08월 15일 첫번째 리뷰어가 되어주세요. | 판매지수 60 판매지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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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4년 08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370쪽 | 150*210*30mm
ISBN13 9791186094457
ISBN10 1186094451

관련분류

책소개

목차

저자 소개 (1명)

전남여자고등학교, 광주교육대학교를 졸업했다. 1974년 전남지역 민청학련 사건의 주역이었던 김상윤이 1977년 광주에 세운 ‘녹두서점’에 고교 동창의 소개로 당시 금서였던 리영희 교수의 『8억인과의 대화』를 사러 갔다가 그 인연으로 1978년 11월 김상윤과 결혼하게 되었다. 그 후 서점은 김상윤과 정현애 그리고 윤상원이 맡아 운영했다. 1980년 5월 17일 자정 직전, 남편 김상윤이 예비검속을 위해 권총을 들... 전남여자고등학교, 광주교육대학교를 졸업했다. 1974년 전남지역 민청학련 사건의 주역이었던 김상윤이 1977년 광주에 세운 ‘녹두서점’에 고교 동창의 소개로 당시 금서였던 리영희 교수의 『8억인과의 대화』를 사러 갔다가 그 인연으로 1978년 11월 김상윤과 결혼하게 되었다. 그 후 서점은 김상윤과 정현애 그리고 윤상원이 맡아 운영했다. 1980년 5월 17일 자정 직전, 남편 김상윤이 예비검속을 위해 권총을 들고 들이닥친 합동수사본부 요원들에 의해 불법으로 체포·연행되었다. 다음 날인 5월 18일 새벽부터, 신혼집이자 삶의 터전이었던 정현애의 ‘녹두서점’은 지역사회와 전국에 긴박한 광주의 상황을 전파하는 상황실이자 항쟁의 구심점 역할을 했다. 5·18 기간 동안 중학교 역사교사였던 정현애는 학교로 출근하지 못하고 서점을 지키면서 항쟁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항쟁 직후, 상무대 합동수사본부로 끌려가 모진 고문을 견뎌야 했다. 그러나 고문보다 더 무서운 것은 남편을 비롯한 가족들은 물론이고 동지, 시민들의 고통을 지켜봐야 했던 일이었다. 이후 기소유예(2023년 4월, 5·18 당시 받았 던 ‘기소유예’는 결국 ‘죄가 성립되지 않음’이란 판결로 결론 났다)로 석방되고 나서 녹두서점으로 모여드는 구속자 가족들의 고통을 같이 나누기 위해 5·18구속자석방운동에 전념 하였고 진실규명을 위해 오래도록 애썼다. 당시 직장이었던 학교에서는 직위 해제되었다. 후에 다시 복직되었으나 1989년 전교조 파동 때 다시 해직되었다가 1994년 복직되었다. 2002년 제4대 광주광역시의원으로 활동을 시작하였으나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저지운동에 동참하며 사퇴하였다. 2010년 다시 제6대 광주광역시의원을 역임하였다. 이후에도 5·18 진상규명, 지역교육문제, 여성문제 등에 관심을 갖고 해법을 찾기 위해 노력하였고, 지금은 식민사관으로 왜곡된 우리 역사를 바로잡기 위한 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전남 담양군 수북면에서 남편과 함께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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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기념은 역사를 기억하기 위한 사회적 행위이고, 기념공간은 기념을 통해 여러 집단들의 정치적인 의도가 나타나는 공간입니다. 기념공간은 다양한 주체들에 의해 투쟁, 기념, 추모와 의례 등의 기능과 의미를 부여하는 공간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기념공간이 만들어진 이후에도 그 공간은 기능과 의미가 시간에 따라 변화하게 됩니다. 이 책은 기념공간의 형성과 변화, 그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다양한 주체와 담론, 기념공간의 활용 양상을 살펴보고, 기념공간의 형성과 변화에 영향을 미치는 주체와 담론, 활용에 주목하는 한편 기념공간의 의미와 전망까지도 고찰하는 것을 목적으로 쓰였습니다.

기념공간은 단순하게 보자면 형태와 예술적인 특성으로 인식될 수도 있지만 가장 크게는 기념공간을 조성하는 ‘기억’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기억은 국가의 공식기억과 시민들의 억압된 기억이 공식화되어가는 과정에서 검증되어지는 집단기억이 상징·표현되는 공간입니다. 또한 기념공간은 정치적인 의도가 드러나는 곳입니다. 여기에 더해 공간형성 과정과 특성, 기념공간의 변화에는 ‘정치권의 성격’이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여기에 따라 형성되는 주체와 담론의 변화도 기념공간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세계의 민중항쟁들을 기념하는 기념사업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해 볼 수 있습니다. 이는 현재 광주에서 벌어지고 있는 기념공간 조성과 기념사업을 보며 곱씹어 봐야 할 내용입니다.

첫째는 오히려 망각하기 위한 기념사업입니다. 기념사업을 하되 관점을 돌리거나 시선을 분산시킴으로서 본질을 잊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것은 결국 진정한 의미의 기념사업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오히려 가해자 입장에서 망각기법에 의해 기념사업이 이루어지는 경우입니다.

둘째는 ‘과거를 기억함으로써 이 같은 비극의 재발을 막자’는 취지로 철저한 진상규명과 기억을 주장하는 세력이 정권을 잡고 기념사업을 하는 경우입니다. 우리가 지향해야 할 목표입니다.

셋째는 기념사업을 하되 진상규명 없이 진행하여 끊임없이 진실공방이 이루어지게 하는 경우와 진상규명은 이루어졌으나 기억을 할 수 있는 기념공간을 포함한 기념사업이 이루어지지 않아 기억을 할 수 있는 매체가 없는 경우입니다. 바람직하지 않은 기념입니다.

5·18기념공간의 경우 시민사회에서는 항쟁기억을 드러내기 위해 기념공간을 조성하였습니다. 국가에서 기념공간을 처음 시작한 정부는 문민정부(김영삼 정권)였습니다. 그러나 보수세력과 연합한 문민정부에서는 기념사업을 시작하면서 진실규명은 하지 않고 ‘과거사는 과거로 돌리고 신한국이라는 미래 건설에 정진하자’는 구호와 함께 기념사업이 시작되었습니다. 정부 주도 기념공간 조성은 처음부터 기억이 아닌 망각을 위한 기념사업이라는 정치적인 의도가 나타났습니다. 기념사업을 마침내 공식화함으로서 그동안 이를 위해 투쟁했던 시민사회가 이제는 할 일 다했다는 심정으로 관심에서 멀어지게 되는 것 말입니다. 하지만 시민사회에서는 진실규명을 외면하는 국가에 맞서 항쟁의 기억을 위한 기념공간을 계속해서 조성해 갔습니다. 이렇듯 어떤 주체들이 주도하는가에 따라 그들의 정치적 의도에 의해 기념공간은 다양하게 조성되고, 조성된 후에도 해체, 변형, 확장 등의 변화가 일어나면서 활용방법의 변화에도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기념공간이 형성되는 과정을 보면 중앙 정치권의 성격에 따라 시기별로 변화가 나타났습니다. 억압과 배제 하에서는 조성되지 못하거나 단순하게 조성되었습니다. 국가에서 조성의 주체로 나설 때는 대규모 기념공간이 나타나기도 하고 그 숫자가 확장되기도 하며, 국가에서 사건의 의미를 왜곡할 때는 재구성되기도 하였습니다. 정치권의 변화로 인해 나타나는 기념공간의 양상은 세 시기로 구분해 볼 수 있습니다. 시기별로 형성되는 기념공간의 상황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항쟁공간의 배제와 방치 시기(1980~1992)에 군부독재정권(전두환 정권)에서는 ‘항쟁의 기억’을 말살하기 위해 기념공간을 조성하려는 의도를 원천 봉쇄하였으며, 기억을 위해 조성한 단순한 기념공간도 철거해 버렸습니다. 변화된 모습으로 등장한 군사정부(노태우 정권)에서도 체제안정을 위해 5·18을 ‘민주화운동의 일환’으로 규정하여 부분적으로 국가기억화 시도를 하지만 기념공간 조성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기억하지도 기념하지도 말라는 것입니다. 이에 대항해 시민사회는 사건과 관련 있는 장소에서 투쟁을 전개하면서 기념공간화를 시도했지만 철저하게 저지당했습니다. 그럼에도 의례를 통한 기억투쟁으로 점차 사적지는 기념공간화되어 갔습니다. 상징성이 강한 망월묘역이나 옛 도청 앞 광장은 점점 5·18 상징공간의 중심이 되어갔고, 여기에서 시작된 기억투쟁은 6월항쟁으로 이어져 전국으로 퍼져 나갔습니다. 항쟁기억을 위한 기념공간은 전북을 비롯한 수도권에까지 조성되었는데 항쟁기억투쟁을 위해서 주로 대학생들에 의해 소박한 형태의 ‘기념물’ 중심으로 기념공간이 학교 내에 조성되었습니다.

둘째, 항쟁기억의 재현과 기념 시기(1993~2007) 때의 기념공간은 진보적인 성격의 정치세력이 등장하면서 국가 주도의 기념공간이 형성되었습니다. 5·18을 ‘5·18민주화운동’으로 규정하고 국가예산을 투여하여 국가의례와 기념을 위한 대규모 ‘공간’ 중심의 재현공간을 조성하였습니다. 현재 기념공간의 72%가 이때 조성되었으며, 국가의 주도로 넓은 면적과 대규모 예산을 차지하는 민주묘지, 기념공원, 사적지 등의 기념공간이 형성되었습니다. 재현공간은 사건의 진원지인 광주에 집중되어 조성되었습니다. 시민사회에서는 독자적으로 항쟁의 의미를 상징하는 기념공간을 조성하기도 하고 제도권의 협력을 이끌어내어 조성하기도 하였습니다. 지방자치단체나 대학 등에서도 기념공간을 조성하였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주체들의 참여로 기념공간은 점차 확장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시기의 기념공간은 모두 호남권에 한해 조성되었습니다.

셋째, 기념공간의 훼손과 왜곡 시기(2008~현재)에는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이루어지지 못한 상태에서 보수적 정권이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보수우익세력에 의한 역사왜곡이 심화되면서 역사기억투쟁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습니다. 5·18기록물의 유네스코 등재에 따라 이에 반하는 세력들에 의한 왜곡이 더욱 심해지자 기억의 재구성을 위해 지방자치단체가 나서서 사적지를 추가 지정하고, 광주광역시교육청은 5·18 당시 희생된 초·중·고 학생들의 기념공간을 모교 교정에 조성하면서 기억의 재구성을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이는 지방자치가 되면서 5·18을 지역정체성으로 삼고자 하는 지역민들의 의식이 반영된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호남지역에서만 나타나는 기념공간은 5·18정신을 전국적인 가치로 인식하는 데 한계가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기념공간의 형성과정을 보면 정치적인 변화에 따라 의미 부여가 달라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기념공간들은 철거되기도 하고 추가로 형성되기도 하는데 5·18관련 기념공간은 전국에 약 152개소가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습니다. 수도권의 4개소를 제외하면 모두 호남에 분포하고 있고, 정부와 제도권에서 조성한 곳은 127개소(83%), 시민사회에서 조성한 곳은 25개소(17%)로 파악되었습니다. 정부와 제도권에 의해 조성된 기념공간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은 기념공간 조성이 국가의 주요사업임과 동시에 이를 통해 기념공간이 국가의 의도를 드러내는 매체로 활용되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초기에는 주로 시민사회에서 관련자 집단, 학생, 시민들이 주체가 되어 기념공간을 모색하고 형성하였습니다. 그러나 국가는 5·18과 관련된 모든 행위를 반(反)합법으로 규정하였고 이에 대항해 많은 사회단체들이 연대해 기념공간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국가에서는 이들에 대해 억압과 배제, 방관으로 일관하였습니다. 이후 5·18이 민주화운동으로 즉 합법으로 재규정되면서 국가 주도로 기념공간이 조성되기 시작하였는데 이때부터 제도권이 참여하고 시민사회에서도 학생과 시민들, 종교단체들이 참여하여 기념주체가 다양화되었습니다. 그러나 다시 보수세력이 정권을 잡으면서 역사왜곡이 심해졌고, 결국 기념공간의 주체는 국가가 아닌 지방자치단체의 몫이 되었습니다. 지방자치가 시작되면서 5·18기념공간을 지역정체성, 교육의 장소로 활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타난 모습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항쟁 당시와 1980년대에 5·18광주민중항쟁에 대한 국가의 공식담론은 ‘광주사태론’이었습니다. 이에 맞서 시민사회는 ‘민중항쟁론’을 전개하며 기념공간 형성을 모색하였습니다. 지역사회의 보수세력 일부에서는 ‘예향론’이라는 담론을 펼치기도 하였습니다. 반(半)합법화 시기에는 국가에서 ‘5·18광주민주화운동론’을 펼치면서도 ‘양시론’을 주장하였습니다. 시민사회에서는 지속적으로 ‘민중항쟁론’을 펼치며, 항쟁기억을 위한 상징적인 기념공간의 확보를 위해 전국적으로 몇 개의 대학에 기념비 중심의 기념공간을 조성하였습니다. 진보적인 정권이 들어서면서 국가담론은 ‘5·18민주화운동론’으로 규정되었습니다. 기념사업을 천명하면서 진상규명은 역사에 맡기자는 주장과 함께 기념공간은 주로 민주성지 광주에 집중하여 형성되었습니다. 광주광역시와 전라남도는 사적지를 선택하여 기념공간을 지정하였습니다. 이에 대해 5·18을 지역에 한정시키려는 의도로 받아들인 시민사회에서는 ‘민주성지론’을 강화하면서 ‘5·18의 전국화·세계화’ 담론을 펼쳤습니다. 그리고 불의에 맞서 정의를 실현한 항쟁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사건과 인물을 애도하는 기념공간을 만들어 갔습니다. 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는 지역발전을 위한 담론으로 ‘문화도시론’이 등장했고, 또 지역정체성을 확보하기 위한 담론으로 의향의 전통을 이은 ‘인권도시론’도 나타났습니다. 결국 이 두 담론을 바탕으로 ‘아시아문화중심도시론’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사업을 진행하면서 사적지의 훼손이 일어나자 ‘사적지 원형보존론’이 등장하여 갈등이 야기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다양한 담론이 형성되면서 기념공간은 확장되었으나 그 공간은 호남지역에 한정되었습니다. 보수정권이 들어서면서 다시 ‘북한사주설’이 등장하였습니다. 국가는 북한사주설을 방치하면서 교과서에서 역사기억 축소작업을 시도하였습니다. 한편 5·18기록물이 유네스코에 등재되면서 세계화에 대한 진전은 가시화되었으나 전국화 정도는 여전히 미미합니다. 5·18을 지역정체성으로 하여 인권도시를 표방해온 광주광역시와 광주광역시교육청은 광주 곳곳에 기념공간을 조성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시기에는 옛 전남도청의 원형복원 문제와 기념공간의 축소, 결절 문제 등이 대두되어 ‘사적지 복원론’이 대두되었습니다.

기념공간 형성의 주체들을 살펴보면 그간 국가의 5·18에 대한 태도는 배제-수용-왜곡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태도는 5·18정신의 전국적인 기념사업에 있어서 여전히 한계가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방자치단체는 항쟁 당시와 80년대의 국가와 같은 태도였습니다. 지방자치가 시작되면서 5·18정신을 지역정체성으로 여기는 시민들의 뜻이 반영되어 역사왜곡 시기에는 기념공간을 조성하기도 하고, 옛 전남도청의 복원문제에 참여하기도 하였습니다. 시민사회에서는 항쟁기억의 국가기억화를 위해 저항도 하고 협의도 하면서 기억투쟁을 지속적으로 전개하였습니다. 독재정권 시기에는 항쟁기억투쟁이 격렬하게 전개되어 수도권에 있는 대학에도 기념공간이 조성되었습니다. 항쟁기억을 국가 주도로 재현하는 기념공간 형성에 협의체로 참여하기도 하고, 기억의 재구성을 위한 기념공간의 복원과 형성에도 참여하였습니다. 시민사회는 기념공간을 통해 5·18의 국가기억화를 위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전개하면서 나름의 주체성을 만들어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기념공간은 집단기억을 지속시키는 매체입니다. 초기에는 기억의 유대를 통해 5·18의 진상규명을 위한 기억투쟁의 장소로 중요하게 활용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점차 기념공간의 고유 기능인 기념, 교육공간으로 활용되었고 더 나아가 문화, 지역정체성 확립 등으로 활용되었습니다. 기념공간은 주체, 특성별로 활용의 양상이 다르게 나타났습니다. 처음에는 시민사회에서 주도한 기념공간이 기억투쟁의 중심이었으나 시간이 지나며 점차 국가 주도의 재현공간 활용이 중심이 되었습니다. 기념공간을 활용의 측면에서 본다면 다음과 같은 나름의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첫째, 기념공간의 실태를 보면 투쟁, 기념, 교육, 문화, 지역정체성 확립 등 복합적으로 활용되고 있으나 특정한 기능을 강조하는 기념공간이 형성되기도 하였습니다. 투쟁을 위한 상징화 공간은 원초적 사건과 관련이 깊은 상무대 옛터, 망월묘지, 옛 전남도청 앞의 민주광장, 전남대학교를 비롯한 대학교의 기념공간이 중심을 이루고 있습니다. 기억투쟁이 활발했던 망월동과 상무대 옛터에는 국가에 의해 재현공간이 건립되어 기념, 기억, 교육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되었습니다. 옛 전남도청 앞 광장에 국가가 원래 계획했던 기념관 건립은 무산되었습니다. 옛 전남도청과 연결되어 있는 금남로는 문화 · 예술을 통한 기억투쟁공간으로 활발하게 활용되었습니다. 이곳은 시민들에 의해서도 기념, 소통, 연대의 장소로서 가장 중요한 기념공간이 되었으며 문화도시, 인권도시의 상징으로 지역정체성을 드러내는 곳이 되었습니다. 지방자치단체에서 지정한 사적지와 초·중·고·대학에 조성된 기념공간들은 기념과 교육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여전히 문제는 남아 있습니다. 기념사업의 주체인 국가에서는 5·18을 5·18민주화운동으로 표명하였지만 지역주의 담론은 계속되었습니다. 국가의 재현공간 계획안에 있던 기념관은 조성되지도 않았고(옛 전남도청), 전통적인 구성으로 조성된 공간은 민주적인 교육 내러티브 과정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습니다(국립5·18민주묘지). 법적 근거도 미비하였습니다. 국가의 5·18에 대한 소극적인 기념방식은 기념공간의 한계, 훼손, 왜곡, 참배객 수의 저하로 나타났습니다. 지방자치단체가 관리 주체가 되면서부터는 필요한 충분한 예산과 전문적인 관리주체를 만들지 못하고 있으며 시민사회의 참여가 활발하게 이루어질 수 있는 구조도 미비하게 보입니다. 그래서 시민사회에서도 다양한 계층과 전국적으로 연계할 수 있는 소통과 연대를 강화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되었습니다.

둘째, 국가 차원에서 국가기억화를 이룩해야 합니다. 진실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이루어져 더 이상의 왜곡이 일어나지 않도록 공식화하고 역사적 인식을 할 수 있는 구심점으로서 5·18에 관한 종합적인 내용을 인식할 수 있는 기념관을 조성하여, 점으로 구성되어 있는 기념공간들을 연계하는 방안이 마련되어야 합니다.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지역발전을 위한 매개체로 지역의 정체성 확립, 문화·관광산업과 더불어 치유와 휴식공간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예산 및 관리주체 확보, 시민참여 등을 검토해야 할 것입니다. 공교육과 연결하기 위해서는 시교육청과 다른 지자체와의 유대관계를 강화해야 합니다. 시민사회에서도 기억을 위해 너무 대중매체에 치중하기보다는 현장성에 더 관심을 기울이며 기념공간 방문을 견인하도록 다른 지역 시민단체들과의 유대를 강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전망을 해본다면, 여전히 많은 한계와 문제점이 있지만 세계적으로 그리고 전국적으로 5·18의 가치는 점점 높아가고 있어 기념공간은 기억의 매체로서 그 중요성이 높아질 것입니다. 5·18진실규명을 위한 특별법에 의한 진실규명 그리고 언제라고 특정하기는 어렵지만 헌법 전문 수록이 이루어진다면 5·18은 국가의 기억으로 자리매김될 수 있습니다. 기념공간의 가치실현을 위한 가장 중심적인 주체는 광주시민과 지방자치단체를 포함한 지역사회입니다. 기념공간을 통한 사회적 가치의 실현을 위해 5·18정신을 바탕으로 인권도시와 문화도시를 표방하고 있는 광주광역시에서도 현세대뿐 아니라 후세대로의 지속적인 계승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다가오는 통일시대를 위한 소통, 화합, 연대를 위해 5·18의 가치는 점점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비전을 실천하는 현실 속의 공간으로서 기념공간의 가치와 활용도는 더욱 넓어질 것으로 봅니다. 결국 기념공간의 활용은 우리 역사를 바탕으로 ‘기억의 터’를 만들어가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출판사 리뷰

추천평

자기고백으로서의 역사쓰기가 갖는 힘에 대하여

이 책의 원고를 받아 읽으면서, 몇 해 전 저자가 이 주제를 연구하여 학위 논문으로 발표하던 순간이 생각났습니다. 5·18을 추모하고 기념하는 활동에 관한 박사학위 논문이었습니다. 정치권력의 변화에 따른 기념공간의 존재와 변화양상, 활용실태와 문제점 등을 분석하고 새로운 활용방안과 발전방향을 모색한 논문이었습니다. 이 연구는 당시 5·18광주항쟁과 관련한 기념사업이 진전되는 과정에서 파생된 여러 문제들이 중요한 사회적 과제로 제기되던 현실에 대한 하나의 응답이었습니다.

그로부터 6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오랜 세월이 경과된 것은 아니지만, 한국 사회와 국가, 그리고 우리들 삶과 세상에는 적지 않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변화의 속도가 무척 빨라지고, 그 폭과 깊이가 크다는 것은 누구나 느낄 수 있는 현실입니다. 이 책은 그 세월의 흐름 속에서 숙성된 내용을 담아 새롭게 엮어낸 열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중심내용은 당시의 학위 논문이지만, 여기에다 기존 자료의 보강과 새로운 자료 발굴, 그리고 이론적 내용을 더함으로써 그 충실성을 더욱 높였습니다. 특히 말미에 추가한 [못다 한 이야기:정현애의 5·18]은 매우 인상깊었습니다. 이 책을 쓰게 된 시발점이 된 저자의 5·18의 경험에 관한 기억, 또 그 기억 속에 담겨있는 사유와 성찰은 이 책의 무게감을 더해주고 있습니다.

이 책은 5·18과 관련된 공간을 다루고 있긴 하지만, 우리나라 민주주의 역사의 분수령이 되었던 5·18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역사책으로 위치시킬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보자면 기존의 역사서(제도가 규정한 훈련과 자격을 보유한 학자가 쓴 책)가 보여주는 난해한 자료해석과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그 표현방식에 비해 이 책은 서술방식이 전문성보다는 대중성을 지향하고 있어서 누구나 어려움 없이 읽기 쉽고 공감할 수 있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기존 역사학계의 권위주의와 독점적 폐쇄성으로 인해 그들의 저술은 전문성을 내세워 대중에게 넘어서기 어려운 장벽을 세움으로서 그들만의 특권적 문화를 배타적으로 향유하곤 합니다. 그에 비하면, 이 책은 대중에게 친절하고, 알기 쉽게 풀어주는 역사서라는 점에서 매우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자는 교육현장에서 학생들에게 역사를 가르쳤던 역사 선생님이었으나 대학원에서는 한국사학이 아니라 문화재학을 전공한 연구자라는 사실 또한 주목할 만합니다. 왜냐하면 현재 한국사 전공의 학자집단에게는 매우 심각하고도 첨예한 위기적 문제가 제기되어 있는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 분야는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 통치하에 한국사학을 지배했던 식민사학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 연장선에서 한국역사를 왜곡하고 있다는 비판이 광범하게 제기 및 전개되고 있는 형국이기 때문입니다. 이 비판과 관련하여 한국사 학계의 절대 다수가 과거 식민지 시대의 사슬에 묶여 있는 상태임을 고려한다면, 그와는 다른 분야를 전공한 연구자이기 때문에 식민사학의 영향으로부터 그만큼 자유롭다는 의미에서 이 책을 감히 추천할 만합니다.

저자의 삶은 늘 정치사회적 실천을 지향해 왔습니다. 저자는 청년시절부터 사회문제에 관심이 깊었고, 5·18 당시에는 항쟁의 중심 공간이었던 녹두서점의 주인이었다는 사실을 보면 압니다. 항쟁 이후에도 구속자 석방을 위한 운동, 전국교직원노동조합운동, 그리고 현재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주도하고 있는 바른역사시민운동 등의 활동으로 다져진 강인하고도 투철한 역사주권의식은 이 책을 통해서도 잘 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전체적으로 볼 때, 이 책은 5·18항쟁을 기념사업이라는 맥락에서 접근하는 대중역사서입니다. 또한 이 책은 지배자나 권력자보다는 하층의 소외된 민중을 주목하는 인식, 민중이 역사의 주체라는 인식을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역사인식은 기존의 보수주의적이고 중앙집권적인 역사관에 대한 하나의 도전이 아닐 수 없습니다. 또한 역사연구에서 과거의 지배적 역사관이었던 국가사와 전쟁사 및 영웅사 대신에 지역사와 생애사 및 민중사를 중심으로 하는 새 물결에 함께 하고 있음을 주목하게 됩니다. 저는 이러한 역사관을 중심으로 국가와 사회를 바라볼 때, 현실 사회에서 일반 대중의 삶과 약자에 대한 사랑이 번성하는데 기여할 것으로 믿습니다. 이 책이 그 길에 의미 있는 이정표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 나간채 (바른역사시민연대 상임대표, 전남대 명예교수)
5·18 비경험세대가 5·18 전승의 주역으로 등장하길

5·18항쟁의 현장에 있었고, 이후 진실규명운동에 앞장섰던 정현애 님의 『5·18과 기념의 공간』 발간을 의미 있고, 기쁘게 생각합니다. 이 책은 저자가 몸소 겪었던 1980년 5월의 경험을 바탕으로 오랜 기간 연구를 통해 나온 결과물입니다.
저자의 연구는 5·18의 역사가 기념공간을 통해 어떻게 해석되고 개인의 삶과 지역공동체, 나아가 시민과 세계인들에게 어떤 역사적 기억의 공간으로 남을 수 있을지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했습니다. 5·18의 공간을 살핀다는 것은 역사적 사건과 인물, 그리고 현재적 재현, 미래세대의 교육 등을 종합적으로 파악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5·18항쟁은 사람이 사람에게 기적이 되었던 순간이었습니다. 다른 이들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헌혈로 피를 나누고, 주먹밥을 지어 먹이고, 다친 이들을 돌보고, 시신을 수습하는 등 각자의 역할을 통해 절망적 상황을 극복해가는 과정이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사건과 다양한 인물들의 활동은 책과 영상 등을 통해서도 접할 수 있지만, 현실에서 기념의 공간을 통해 더 직접적이고, 생생하게 다가설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 다가올 2030년은 5·18항쟁 5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현재는 1980년 이후 태어난 5·18의 비경험세대가 5·18 전승의 주역으로 전면 등장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하는 시기입니다. 이러한 시점에서 정현애 님의 저서 『5·18과 기념의 공간』이 역사적 사건과 인물을 더욱 풍성하게 이해할 수 있는 교육자료로 활용되길 희망합니다.
- 원순석 (5·18기념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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