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뒤늦게 국내 소개되는 그의 데뷔 음반은 1996년에 영국에서 처음 발매되어 많은 호평을 얻었다. ‘클래시컬 기타 매거진’에서는 그가 최상의 기교를 지녔으며, 이러한 기교를 통하여 자신이 원하는 바를 명확히 알면서 작곡가의 의도에 충실하게 연주하였다고 평한 바 있다. 이 음반에서 그는 르네상스 시기의 남미 작곡가 '루이 드 나르바에즈'의 작품과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를 시작으로 하여, 20세기 초반 남미 작곡가인 '아구스틴 바리오스 만고레'와 '안토니오 라우로'의 작품을 거쳐, 러시아 현대 작곡가인 '니키타 코쉬킨'의 작품으로 마무리되는 선곡을 통해 우리가 흔히 들을 수 없었던 숨겨진 광맥 같은 아름다운 기타의 울림을 선사하고 있다.

이 음반에 수록된 다섯 명의 작곡가들이 작곡한 작품들 중에서 처음 두 작곡가, '루이 드 나르바에즈'와 '요한 세바츠찬 바흐'의 곡들은 기타를 위해 처음 쓰여진 것은 아니다. '디니건'은 두 작곡가의 작품을 기타 독주용으로 편곡하여 연주하고 있는데, 이러한 편곡과 연주는 이미 '타레가'에서부터 내려져 이어온 기타 음악의 한 전통적인 양식이다. '루이 드 나르바에즈'는 16세기 르네상스 시기에 활동한 스페인 작곡가로 이 음반에 수록된 그의 세 곡은 원래 성악곡이던 것을 '디니건'이 기타 독주용으로 편곡한 것으로 그의 편곡 실력은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 제1번”의 연주에서도 그대로 발휘된다. 그는 이 곡의 전악장을 기타 독주용으로 편곡하여 연주하고 있는데, 깔끔한 편곡과 지적인 연주가 돋보이고 있다. 특히 5번째곡 “푸가”의 경우 다성 음악으로서의 특징이 오히려 원곡인 바이올린 연주보다 이번 기타 연주에 있어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바흐'의 무반주 작품을 기타로 편곡하여 연주하는 경우는 '디니건' 외에도 찾아볼 수 있지만, 그의 편곡과 연주는 '바흐'의 원곡이 지니고 있는 음악성을 무리없이 재현하면서도 기타의 매력을 충실히 부각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높게 평가받고 있다.
'아구스틴 바리오스 만고레'는 1885년에 태어나 1944년까지 활동한 파라과이 출신의 작곡가이자 기타 연주자이다. 기타 연주자로서 그는 미 대륙 전역과 유럽에 이르기까지 많은 활동을 펼쳤지만, 그의 작품들은 몇몇 곡들을 제외하면 1970년대까지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하지만 '존 윌리엄스'와 같은 기타 연주자들이 그의 작품을 높이 평가하여 자주 연주하기 시작하였고, 오늘날 그의 이름은 작곡가로서도 함께 기억되고 있다. 이 음반에 수록된 세 작품은 그의 대표작들로, 기타라는 악기의 기능을 충실히 살리고 있는 곡들이다. '안토니오 라우로'는 1917년에 태어나 1986년 세상을 떠난 베네주엘라 기타 음악과 왈츠의 아버지로 일컬어지는 음악가이다. 그의 작품인 베네주엘라 모음곡은 “전주곡”, “흑인 무곡”, “샹송”, “왈츠”의 네 곡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각의 곡이 지니고 있는 독특한 리듬이 기타의 음색에 잘 어울리고 있다. 러시아의 현대 작곡가 '니키타 코쉬킨'의 “어셔 왈츠”는 에드가 알란 포우의 소설 “어셔가의 몰락”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된 곡으로, 기타의 화려한 기교가 극적으로 부각된 작품이다. 이 작품을 통해 현대 음악에 큰 관심을 지니고 자주 연주하고 있는 '디니건'의 노력을 살짝 엿볼 수 있다.

21세기를 이끌어 나갈 신예 기타 연주자 '사이몬 디니건'은 이제까지 스페인 기타 음악에 한정되어 있던 우리의 시야를 넓혀주고 있다. '사이몬 디니건'은 '줄리안 브림'과 '존 윌리암스'의 뒤를 이어 영국을 대표하는 신예 기타리스트로 급부상하고 있는 연주자이다. 그는 1968년 6월 영국에서 태어나 아홉 살에 기타를 처음 시작해 불과 2년 뒤에 공개연주회를 가질 정도로 천부적인 재능을 보여주었다. 이듬해 그는 셰필드 음악협회에서 독주회를 가졌고, 섬머타임 스페셜이라는 TV 프로그램에도 출연하기도 하였다. 그는 1982년 맨체스터의 채덤 음악원을 졸업하고, 이어 왕립 노던 음악대학을 졸업한 후 런던의 길드홀 음악연극학교에서 계속해서 기타를 공부하여 최우수 기타연주상을 받고 졸업하였다. 어린 나이에 그는 많은 경연대회에 참가한 바 있는데, 1981년과 1982년 연속하여 올해의 셰필드 청소년 음악가로 선정되었으며, 불과 열네살의 나이었던 1983년 도메크 국제 기타 콩쿠르에 참가하여 2위를 차지하였고, 1984년 BBC 올해의 청소년 음악가 콩쿠르에서 결선에 올랐다. 순조로운 성장을 거친 '사이몬 디니건'은 현재 버밍험 음악원의 수석 기타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전세계에 걸쳐서 활발한 연주활동을 펼치고 있다. 특히 그는 현대음악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여러 작곡가들의 기타 작품을 연주하고 있는데, '배링톤 베알롱'의 이중 협주곡과 '이보르 마이란츠'의 재즈 소나타, 그리고 '니키타 코쉬킨', '고든 맥퍼슨', '데이비드 베드포드', '안소니 잭슨' 등의 작품을 초연한 바 있다. 그는 1996년의 데뷔 음반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여러 장의 음반과 영상물을 발매하고 있는데, 이들 음반에 수록되는 레퍼토리는 현대음악과 잘 알려지지 않은 기타 작품들을 중심으로 구성하여 항상 색다른 맛을 선사하고 있다.

'베토벤'의 이 말은 기타라는 악기가 지니고 있는 다양성과 개성을 잘 표현하고 있다. 기타는 시대와 장소를 초월하여 가장 넓은 저변 인구를 지니고 있는 악기이다. 고전 음악의 여러 작곡가들도 기타라는 악기를 즐겨 들었으며, 직접 연주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았다. '슈베르트', '베버', '파가니니', '베를리오즈' 등 많은 작곡가들은 항상 기타를 곁에 두고 즐겨 연주했으며, 이들이 작곡한 기타 작품들과 실내악곡들은 기타라는 악기에 대한 이들의 애정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 대해서 음악의 주류를 벗어난 대중적인 전통에 있어서도 기타는 빼놓을 수 없는 필수적인 악기로 인식되었고, 이러한 전통은 지금까지 그대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하지만 기타가 지니고 있는 강한 개성은 이 악기가 오케스트라의 구성원으로 들어가는 데에 장애물로 작용하였고, 결국 기타는 여러 음악가들이 애호하는 악기였음에도 불구하고 정통과는 한 단계 떨어진 자리에서 자신만의 영역에서 만족할 수 밖에 없었다. 심지어 기타가 지니고 있는 독특한 음색과 고전적 향취는 도외시된 채 여흥을 위한 악기 정도로 폄하되어 내려오기까지 하였다.

기타와 동일한 구조를 지닌 악기가 처음 등장한 시기는 기원전 3000년경으로 추정된다. 이후 이 악기는 중근동 각지에서 여러가지 이름으로 불리면서 오랫동안 이어져 왔다. 유럽에 이 악기가 전파된 뒤 16세기경에 이르러서 기타는 가장 널리 보급되고 중요하게 취급된 악기로 첫손에 꼽혔다. 17세기까지 이러한 전통은 계속 이어졌지만 바로크 시기의 작곡가들에 의해 건반악기와 현악기를 주축으로 하는 악기의 구성이 정착되면서 기타라는 악기의 위상은 점차 내려가게 되었다. 18세기 후반에 이르러 여러 음악가들이 기타에 관심을 갖게 되고, 기타 작품을 중심으로 작곡 활동을 펼친 '줄리아니' 등과 같은 작곡가들에 의해서 제2의 황금기를 맞게 되는 듯 했지만, 낭만주의 시기 대규모 오케스트라 음악과 피아노 작품들이 유행하면서 다시 쇠퇴하였다. 하지만 19세기 중반에 이르러 기타는 스페인을 중심으로 다시 중흥기를 맞게 되었고, 이러한 전통은 현재까지 그대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기타의 부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음악가가 바로 '타레가' 이다. 그는 1854년 스페인에서 태어나 기타 연주와 작곡으로 기타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그는 스페인과 유럽 등지에서 기타 독주회를 성공적으로 이끌었고, 기타에 음색을 부여하는 기교를 창안하였으며, 많은 기타 작품을 작곡하고 기타라는 악기를 위해 자국의 음악가인 '알베나스'와 '그라나도스' 등의 음악을 편곡하였다. 그의 제자로는 '브졸', '료베트', '포르테아' 등의 대연주자가 있고, 우리에게 잘 알려진 '세고비아' 도 그의 영향 아래서 자라난 기타 연주자이다. '세고비아'는 기타를 연주회장으로 옮겨와 전세계에 기타 음악을 소개하였고, 이후 기타의 제작과 악보의 출판이 각국에 널리 퍼지게 되었다. 특히 스페인으로부터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남아메리카에 있어서 기타 음악의 발전은 주목할만한 현상이며, 많은 현대 음악 작곡가들이 기타 작품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