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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발행일 | 2004년 05월 3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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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149쪽 | 298g | 148*210*20mm |
ISBN13 | 9781565912038 |
ISBN10 | 1565912039 |
2024년 09월 09일 ~ 2024년 10월 10일
2024년 08월 21일 ~ 2024년 09월 30일
뉴욕타임즈 21세기 최고의 책 100대 도서 『파친코』, 『채식주의자』 선정
2024년 07월 15일 ~ 2024년 10월 01일
문학 PD가 보내는 백 번째 편지 : 100호 기념 기획전
2024년 09월 20일 ~ 2024년 11월 30일
소진시
9월의 굿즈 : 타공 정리함/클립 북 라이트/디즈니 캐릭터 태블릿 파우치/손잡이 텀블러/메쉬 펜 파우치
2024년 08월 30일 ~ 2024년 09월 30일
2024년 09월 01일 ~ 2024년 09월 30일
상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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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아침 올라가야겠어요."(P.9) 소설의 시작부터 '나'는 '노인'(어머니)에게 하루도 채 머물지 않고 서울로 떠날 것이라 이야기한다. '노인'은 믿기지 않는 듯 숟가락을 상 위로 내려놓으며 더 쉬었다가라고 말하지만, '나'는 매정하게 그럴 여유가 없음을 내비치며 대화의 매듭을 짓는다. "그래, 일이 그리 바쁘다면 가 봐야 하기는 하겠구나, 바쁜 일을 받아 놓고 온 사람을 붙잡는다고 들을 일이겄나." (P.15) '노인'의 단념은 너무나 간단한 체념이었고, '나'는 너무도 간단한 노인의 체념에 오히려 짜증이 난다.
고등학교 1학년 때 형의 주벽(酒癖)으로 가계는 파산했고, 어머니와 형의 아이들, 그리고 장남의 책임을 '내'가 떠맡아야 했다. 그런 삶 가운데 '노인'과 '나'는 서로 주고받는 것 없는 처지로 살게 된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노인은 내게 대해서 소망도 원망도 있을 수가 없었다."(P.25)
어린시절부터 무너진 가계의 장남역할을 담당하며 어머니의 사랑을 받지 못했던 '나'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 그런 환경에서 살 수 밖에 없었던 설움과 '노인'을 향한 원망을 품고 살아가는 인물이다. 그런 이유로 '나'는 '노인'에게 빚진 것이 없으며, 설사 '빚'이 있다 하더라도 장남으로써 살아온 세월이 그 빚을 모두 청산한 것과 다름없다고 생각한다."노인에 대해 빚이 없다는 사실만이 내게는 중요했다. 염치가 없어져서건 노망을 해서건 노인에 대해 내가 갚아야 할 빚만 없으면 그만인 것이었다."(P.53)
"한데 웬일인지 노인의 눈치가 이상했다."(P.25) '나'는 '노인'이 무언가 원하는 것이 있으며, 자신에게 무엇을 부탁할 엄두를 낼 수 없으리라는 확신함에도 불구하고 소망하는 무언가가 있음을 느끼게 된다.
그 소망이라는 것은 바로 '지붕 개량 사업'으로, 지금 살고 있는 초가지붕을 벗기고 기와나 도단을 얹는, 국가적으로 시행하던 사업이었다. '나'에게 자신의 속내를 비춘것이 좋은 집에 살고자 하는 소망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노인' 자신의 죽음을 염두해 둔 소망이었음을 아내와 '노인'과의 대화에서 알게 된다. "숨 끊어지는 날 바로 못 내가 묻으면 주검하고 산 사람들이 방 하나뿐 아니냐, 먼 데서 온 느그들도 그렇고......그래서 꼭 찬바람이나 막고 궁둥이 붙여 앉을 방 한 칸만 어떻게 늘여 봤으면 했더리라마는..."(P.63)
소설의 시점은 17, 8 년전 '나'의 고등학교 시절로 되돌아간다. 형의 술버릇이 나빠져 전답을 팔고 선산을 팔고, 마침내 아버지 때부터 살아 온 집까지 팔아넘겼다는 소식을 들은 '나'는 K시에 고향으로 발길을 옮긴다. 텅텅 빈 집 앞에서 서성이고 있자니, "여기가 어디냐. 네가 누군데 내 집 앞 골목을 이렇게 서성대고 있어야 하더란 말이냐."(P.75) 아들이 왔다는 소식을 동네 사람들에게 전해듣고 달려온 노인이 다짜고짜 나를 나무라며 집으로 데리고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집이 팔린 것은 분명해보였으나 집을 판 주인에게 부탁해 둘째아들이 다녀갈 때까지만 시간을 달라는 부탁을 받아내고 아들이 오기까지 매일 마당을 쓸고 길을 쓸고 마루를 닦아냈던 노인이었던 것이다. 집이 팔린것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방안에 옷장 한 궤짝을 남겨두었던 노인은 여전히 그 옷장을 간직하고 있다.
그리고 시점은 팔려 버린 집에서 하루밤을 묵고 떠나는 '아들'과 '어머니'의 이별의 장면으로 옮겨간다. "처지가 떳떳했으면 날이라도 좀 밝은 다음에 길을 나설수도 있었으련만, 그땐 아직도 그리 처지가 부끄럽고 저주스럽기만 했던지......그래 할 수 없이 새벽 눈길을 둘이서 나섰지만, 시오리나 되는 장터 차부까지 산길이 멀기는 또 얼마나 멀더라냐."(P.106)
"내가 미끄러지면 노인이 나를 부축해 일으키고, 노인이 넘어지면 내가 당신을 부축해 가면서, 그렇게 말없이 신작로까지 나섰다. 그러고도 아직 그 면소 차부까지는 길이 한참이나 남아 있었다. 나는 겨구 그 면소 차부까지도 노인과 함께 신작로를 걸었다."(P.115)
멀고도 힘든 길을 함께 걸어 갔으나 나와 노인의 이별은 순식간에 일어나게 된다.
"나는 차를 타고 떠나가 버렸고, 노인은 다시 그 어둠 속의 눈길을 되돌아선 것이다."(P.115)
노인이 그 후로 어떻게 다시 마을로 되돌아갔는지 '나'는 알 수 없었고 노인을 길가에 혼자 남겨 두고 차로 올라서 버린 그 순간부터 노인을 생각하기 싫어졌던 것이다. 하지만 그 이후의 이야기를 17, 8년이 지난 오늘 노인의 이야기를 통해 직접 들을 수 있게 된다.
"운전수란 사람들은 어찌 그리 길이급하고 매정하기만 한 사람들이더냐. 차를 미처 세우지도 덜하고 덜크렁 덜크렁 눈 깜짝할 사이에 저 아그를 훌쩍 실어 담고 가버리는구나."(P.117)
"넋이 나간 사람마냥 어둠 속에서 한참이나 찻길만 바라보고 서 있으 수밖에야...그 허망한 마음을 어떻게다 말 할 수가 있을 거나......"
"눈길을 혼자 돌아가다 보니 그 길엔 아직도 우리 둘 말고는 아무도 지나간 사람이 없지 않았겄냐...그 몹쓸 발자국들에 아직도 도란도란 저 아그의 목소리나 따뜻한 온기가 남아 있는 듯만 싶었제...금세 저 아그 모습이 뛰어나올 것만 싶었지야. 하다 보니 나는 굽이굽이 외지기만 한 ㅡ 산길을 저 아그 발자국만 따라 밟고 왔더니라. 내 자석아, 내 자석아, 너하고 나하고 둘이 온 길을 이제는 이 몹쓸 늙은 것 혼자서 너를보내고 돌아가고 있구나!"
아들을 향한 마음을 온전히 표현하지 못하고, 미안하고 안타까운 마음에 애써 속으로 삼켜내야 했던 어머니의 사랑은, 아들을 보내고 되돌아오던 길에 쌓인 눈과 같이, 너무나 시리고 저려, 읽는 이로 하여금 그저, 지긋이 눈을 감을 수밖에 없게 만든다.
"오목 오목 디뎌 논 그 아그 발자국마다 한도 없는 눈물을 뿌리며 돌아왔제. 내 자석아, 부디 몸이나 성하게 지내거라. 부디 부디 너라도 좋은 운 타서 복 받고 살거라......눈앞이 가리도록 눈물을 떨구면서 눈물로 저 아그 앞길을 빌고 왔제......."(P.123)
소설의 시작부터 거리를 느끼게 만들던 '나'와 '노인'으로 묘사되던 인물들의 과거시점을 보여주면서 아들과 어머니의 슬프고도 아름다운, 모자의 가슴아픈 사랑이 드러나게 된다. 사랑을 받지 못하며 살았던 설움으로 어머니가 70노인이 될 때까지 제대로 사랑하지 못했던 아들. 그런 아들의 마음을 헤아리며 소망할 것도, 기대하기도 미안한 마음으로 한 평생을 살아온 어머니. 소설은 가난한 삶으로 인해 모자의 사이가 멀어질 수밖에 없었던 가슴시린 삶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내 인생의 단편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을 수 없는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을 그려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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