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생명 게임
모든 생명은 형식 form이다. 현실적인 생명뿐 아니라 가능적인 생명도 그것을 구성하고 있는 물질에 의해서 결정되지는 않는다. 생명은 일종의 과정이고, 생명의 본질은 물질이 아니라 바로 이 과정의 형식이다. 그래서 구성 물질을 무시할 수도 있고, 아니면 그 대신에 우리가 알고 있는 생명의 구체적인 물질적 형태로부터 그 과정을 지배하는 논리를 끄집어냄으로써 구성 물질과 논리를 분리해 낼 수 있다. 그리하여 다른 물질적 "외피 clothing"나 "기체 substratum"에서도 동일한 논리를 얻을 수 있다. 생명은 근본적으로 물질과는 분리되어 있는 것이다.
2장 생명이란 무엇인가?
모든 생명에 해당하는 통일된 정의를 내리려는 시도는 아리스토텔레스부터 시작되었다. 그는 살아 있는 것의 프시케 psyche, 즉 생명력이 모든 동식물의 몸에 들어 있는 운동 원리이며, 이것에 근거해서 생명을 이해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중세에 이르러서는 생명이란, 신이 묶은 존재의 대사슬로 정의되었으며, 이러한 생각은 근대에 이르러 극복되었다. 인간의 몸을 생각할 수 있는 발달된 기계로 생각했던 데카르트는 생명을 정의하는 기계적인 원리를 찾으려 했고, 현대의 생물학은 닐스 보어, 막스 델브뤼크, 에르빈 슈뢰딩거와 같은 물리학자로부터 중요한 영감을 받았다. 그들은 "부호로 쓰인 대본 code-script"에 근거를 둔 생명 개념을 형성하였고, 왓슨과 크릭은 이것이 DNA 분자의 구조라고 확인하게 되었다.
오늘날, 생물학의 각 하위 분야는 생명을 정의하는 자기만의 방식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정의들은 서로 보완되기도 하고, 때로는 서로 거부하기도 한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제 생명은 물질만으로는 정의될 수 없으며, 생명은 생화학적인 동시에 논리적인 과정으로 이해되고 있다는 것이다.
3장 자기-재생산의 논리
인공생명에 대한 연구는 생물학에서의 기계론적 전통의 연장선상에 있다. 즉 인공생명은 살아 있는 유기체를 스스로 재생산할 수 있는 유형의 기계로 보고, 그것의 형식을 모방함으로써 생명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자기-재생산 과정의 논리적인 형식을 추상해 내려고 한 사람은 헝가리계 미국인 수학자 요한 폰 노이만이었다. 그는 인공생명이 자기-재생산을 할 수 있기 위해서는 어떤 종류의 논리적인 조직 구조가 필요한지를 찾기 위해 세포자동자 cellular automata라는 것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비록 생물학적인 세포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더라도, 세포자동자는 많은 인공생명 연구자들을 흥분시켰다. 왜냐하면 그것은 인공생명이 실제 생명과 같은 방식으로 행동을 제어하고 정보를 처리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4장 인공적인 성장과 진화
생명은 개체가 아닌 계통으로서 진화를 해야 한다. 따라서 인공생명도 하나의 생명으로 정의되기 위해서는 진화가 가능해야 한다. 스웨덴의 물리학자 크리스티안 린드그렌은 명확한 생존 전략을 가진 개체들로 이루어진 한 개체군의 동역학에 대해 탐구하기 위해 컴퓨터상에서 "죄수의 딜레마"를 반복하는 형태의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이 프로그램의 패턴은 특별한 변화 없이 길게 이어지다가 급격한 변이와 함께 진화가 이루어지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설사 린드그렌의 모델에 대한 생물학적 해석이 논란이 될 수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동역학적 계가 외적인 요인 없이 순전히 내적인 요인들만으로도 굉장히 다양한 행동을 보일 수 있음을 증명해 주었다.
또한 동물들의 창발적 행동 양식을 시뮬레이션하기 위해 크레이그 레이놀즈는 보이드void라는 컴퓨터 새를 만들었다. 이 새 무리는 장애물을 만날 때마다 몇 개의 작은 하위 무리로 흩어진다. 그것은 보다 광범위한 하위 무리들로 재조직되었다가, 장애를 통과하면 다시 재편성된다. 만약 보이드들을 공간 속에 여기저기 풀어놓으면, 그것들은 스스로 모여서 자신들의 무리를 만들어 낼 것이다. 개별적인 움직임에 대한 규칙들 중 그 어떤 것도 전체 정보에 의존하지 않기 때문에, 무리의 전체 행동은 모델에서 창발한 현상이다. 설사 이것이 생명은 아닐지라도, 분명히 실제 새들이 움직이는 패턴과 매우 유사하다.
5장 계산의 생태학
인공생명 분야의 연구는 인간의 사유 과정과 인공적인 체계들을 연구하는, 소위 인지과학 분야에 적지 않은 쇄신을 가져올 수도 있다. 현재 일부 산업체에서 운용하고 있는 로봇 등은 몇 가지 단순한 작업 이상의 것을 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로봇공학은 새로운 생물학이 제시한 진화 게임에 영향을 받아, 제한된 작업을 하는 비싸고 정교한 기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값싸고 단순하면서도 예측 불가능한 기계를 만들어 점차 스스로 진화하게끔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미 인공생명과 인공지능 분야는 생물학이나 심리학에서 접하는 온갖 복잡한 단계들에서 적응 능력, 학습 능력, 그리고 인지 능력을 모델링하고자 하는 일련의 연구 계획들을 세우고 있는 중이다.
기계의 이러한 능력은 굳이 외부에서 주입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는 사실이 크리스 랭턴에 의해 밝혀졌다. 그는 세포자동자를 연구하면서, 인공지능 연구가 원하는 창발적인 계산이 물리적인 계에서 저절로 발생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즉 세포자동자가 발생하는 과정에서 매우 질서 정연하고 규칙적인 동역학을 산출하는 자동자 규칙과 매우 무질서한 카오스적인 동역학을 산출하는 규칙 사이의 선명한 경계선을 넘어설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랭턴은 이를 H2O가 고체(얼음)였다가, 액체(물)와 기체(수증기)로 전환하는 상태 전이 현상에 비교하면서, 생명과 계산 computation을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현상들로 보았다. 즉 생명은 카오스 가장자리에서 창조되는 창발적 형태의 계산으로 간주될 수 있다는 것이다.
6장 불가능의 생물학
인공생명은 생명 과정을 그 기초에서부터 이해하고, 나아가 이를 바탕으로 생명 과정을 통제하는 과학적인 꿈의 실현으로 간주될 수 있다. 그러나 많은 생물학자들은 이러한 꿈이 아직은 가상적인 것일 뿐, 실제 생명과는 엄연히 다르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인공생명이 단지 컴퓨터 과학이나 수학일지는 모르지만, 생물학으로서는 불가능하다고 한다. 이유는 분명하다. 생물학은 여기 이 행성 위에서 실제로 나타나는 것과 같은 생명에 대한 탐구에 기초를 두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또한 전통적인 생물학자들이 인공생명과 실제 살아 있는 생명을 비교할 때 가장 크게 제시하는 차이점은 바로 죽음이다. 인공생명의 죽음은 임상적이고, 인공적이며, 디지털적인 죽음이다. 즉 생물학적인 죽음과 아무런 유사성도 없는 온 on 상태에서 오프 off 상태로의 순간적인 변화일 따름이다. 생물학 세계에서, 죽음은 그 자체에 새로운 생명을 포함하고 있는 과정이다. 하나의 생명이 죽으면 또 다른 생명체의 자양분이 되듯이, 생명의 탄생은 죽음을 필요로 한다. 생물학적인 의미로 본다면, 컴퓨터 유기체는 전혀 죽지 않는다. 그것은 전혀 자연 속에서 재순환될 수도 없다. 그것들은 단순히 존재하기를 그칠 뿐이다. 그들에 따르면 인공생명은 불가능의 생물학이다.
7장 생명의 시뮬레이션: 포스트모던 과학
인공생명에 대한 모든 논의는, 찬성하든 반대하든 상관없이 생명과 생물학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제공한다. 말하자면, 생명의 모든 영역에서 실재와 물질에 대한 일종의 거리 두기(현실감 소실 dereali-zation)에 마주치고 있는 지금, 모든 것은 이미지와 실재 사이의 시뮬레이션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불변하는 실체와 통일된 정의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공생명은 생물학의 고전적 정의에 대한 도전이며, 생명이라는 실체를 해체하는 작업이다. 인공생명의 시뮬레이션은 실체와 가상의 매개이자, 실체로서의 생물학과 가상으로서의 생물학을 넘나드는 강물과도 같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