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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매일 | 2002년 11월 0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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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무게, 크기 | 74분 | 100g |
연령제한 | 15세 이용가 |
2명의 예스24 회원이 평가한 평균별점
1.
말로만 자주 듣던, 러시아의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 감독이 1925년에 만든 영화 <전함 포템킨 Bronenosets Potyomkin / Battleship Potemkin>을 보았다. 말이 나오지 않지만, 바탕에는 가락이 깔려 나오기 때문에 아무런 소리도 없는 <잔다르크의 수난> 본디 영화와는 맛이 달랐다.
포템킨이란 이름이 붙은 싸움배에서 일어난 일을 다룬 작품으로,
사람답게 살자고 들고 일어난 아랫사람들의 얘기다.
이야기에 맞춰 넣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의 가락이 듣기에 좋은 74분짜리 흑백 영화였다.
러시아 혁명을 담은 것이라 울림이 컸다.
카메라가 잡은 것들은 모두 가슴에 팍팍 와닿게 만들었다.
그렇게 잡은 장면들을 잘 짜맞춘 덕분에 느슨한 느낌은 하나도 들지 않았다.
요즈음 영화 가운데 이 영화처럼 카메라의 움직임이 착착 들어맞는 작품은 얼마나 될까?
2.
흑해에서 움직이던 싸움배 '포템킨'에 타고 있던 병사들은 저들이 먹는 고기가 썩었다는 걸 알고 모여든다.
"저것들이 스스로 배 위로 올라왔겠어요?" 하며 걸려있는 고기를 보면서 병사들이 쑥덕거린다.
고기 안에서 구더기가 꿈틀거린다. 그러자 병사들은 한 목소리를 낸다. "개(돼지?)도 안 먹겠어!"
그런데 군의관인 스미로노프는 따지는 병사들에게 엉뚱한 말을 해댄다.
"단지 구더기일 뿐이네. 소금물로 씻어내면 돼...그건 질 좋은 고기다. 더 이상 군소리 하지 마!"
이렇게 썩은 고기로 만든 국을 어느 병사가 먹을까?
그들은 빵과 물만으로 배를 채운다. 그러다 배 안에 있는 가게에서 돈을 주고 사먹을 뿐.
이 일로 함장인 골리코프는 모두 갑판으로 나오라고 알린다.
"고깃국이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두 발 앞으로 나온다!"
장교들과 몇몇 병사들이 앞으로 나온다. 그러나 병사들 가운데 열에 아홉은 나오지 않는다.
그러자 " 안 나오는 나머지 놈들은 돛대에 매달겠다!" 하면서 으름장을 놓는다.
"포템킨 배에 탄 병사들도 우리 형제인 노동자들을 도와야 해. 우리가 혁명에 앞장 서는 거야."
다른 곳에서 벌어지는 혁명에 손을 돕지 못해서 마음이 켕겼던 바클린슈크는 같은 병사들에게 말한다.
"저 깡패들을 죽여버리자! 모두 죽여라!"
언제 어디서나 사람들은 사람답게 여겨지길 바라고, 그렇지 않을 때는 들고 일어난다.
사람이면 다 같은 마음인데, 러시아의 싸움배에서 일하는 병사들이라고 다를 바는 없다.
배에 타고 있던 의사든, 목사든, 장교든 모두 병사들을 사람답게 대하지 않았기 때문에,
들고 일어난 병사들은 아랫사람들을 제대로 돌보지 않는 윗사람들을 모조리 바닷속으로 쳐넣어버린다.
3.
영화는 모두 다섯 갈래로 갈라져 나온다.
(1) 사람과 구더기
(2) 전함 안의 드라마 (디뷔디에는 이 갈래의 이름이 뚜렷하게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다를 수도 있다.)
(3) 죽은 자가 호소하다
(4) 오데사 계단
(5) 함대와 만나다
'전함 안의 드라마'에서는 병사들과 장교들이 싸우는 장면이 볼만했다.
달아나고 싸우고 잡히는 모습은 그곳에서 정말로 싸우고 달아나는 듯했다.
배에 탄 목사가 병사들을 따돌리려 꾀를 쓰는 모습은 우습기도 하지만, 얄밉기도 했다.
하느님의 종으로 스스로를 여기는 이도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았으니 죄값을 치르는 게 마땅했다.
'오데사 계단'에선 가슴을 먹먹하게 하고, 속이 타게 하는 꼭지를 많이 볼 수 있었다.
병사들은 오데사 항구로 배를 몰고 갔는데, 오데사 고을의 사람들은 이들을 무척 반겨준다.
먹을 것을 챙겨주고, 죽은 병사를 가엾게 여기고 우러러본다.
이런 모습을 지켜보지 못하는 나라에서는 코사크 병사들을 보낸다.
그들은 어른이나 아이, 젊은이나 늙은이, 사내나 계집을 가리지 않고 모두 총으로 쏘아버린다.
그들이 사람 사냥을 하듯이 총을 쏘아대고 사람들이 총에 맞는 장면이나 쓰러지는 모습은
아마도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눈에 총을 맞은 아낙네의 모습이나, "여보세요. 쏘지 말아요!
내 아이가 몹시 다쳤어요." 하며 아이를 구하려고 막는 아낙네까지 총을 쏘는 장면은 보고 싶지 않았다.
1980년 5월 18일에 우리네 빛고을에서 공수부대원들에게 총과 몽둥이에 짓밟혔던 사람들의 모습과 같이.
갓난아기가 탄 유모차를 놓친 엄마가 부르짖는 목소리는,
영화 뒤에 깔리는 가락 말고는 소리가 나오지 않는 영화이므로 내게 들리진 않지만, 마음속으로 들렸다.
죄 없는 사람들을 마구 쏘아죽이면서도 한 치의 흔들림 없는 사람 사냥꾼들의 얼굴들,
널브러진 주검들, 계단에서 마구 굴러 떨어져가는 유모차, 놀란 아이와 엄마의 얼굴,
지옥이 있다면 아마도 저런 게 지옥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코사크 병사들과 오데사 사람들은 말이 통하지 않는다. 그들 사이에는 총소리와 피만이 가득할 뿐.
이 대목을 카메라로 찍은 다음 자르고 붙여 만든 감독의 솜씨는 그저 놀라웠다.
영화 속에서 '오데사 계단'에 나오는 모습들은 그 뒤에 나온 영화들에 많이 보인다.
<대부 The Godfather>나 <보니와 클라이드 Bonnie and Clyde>는 눈에 총을 맞아 피를 흘리는 모습을,
<언터쳐블 The Untouchables>은 유모차가 계단을 굴러내려가는 장면을 본떴다.
4.
"혁명은 전쟁이다. 역사에 기록된 전쟁 중 유일하게 합법적이며 정당한 것은 혁명이다.
진실로 위대한 전쟁이 시작되었다. 러시아에서 선포된 전쟁, 바로 혁명이었다.- 1905년, 레닌"
영화는 첫머리에서 레닌이 한 말을 앞세우며 혁명을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배 안에서 보여주는 여러 가지 볼거리도 풍성했다.
배가 나아가도록 하는 엔진의 크랭크가 힘차게 돌아가는 모습이나,
그 시절의 배에 달려있는 온갖 계측기나 조명, 돛 따위를 보는 즐거움도 쏠쏠했다.
오데사 사람들이 바클린슈크의 죽음을 슬퍼하며 무리를 지어 다닐 때,
"짜르 정부를 쳐부수자! 더 이상 흩어지지 말고 반목하지 맙시다!" 하며 외친다.
그런데 그 틈바구니에서 "유대인을 죽여라!"를 외치는 사내가 있었다.
나로서는 감독이 저 대목을 어떻게 풀어갈까 궁금했다.
감독은 망설이지 않고 그 사내한테 주먹을 안겨주는 것으로 끝을 내버렸다. 속이 시원했다.
나오는 이들의 말이 나오지 않는 영화였지만, 그들이 하고자 하는 말은 다 짐작할 수가 있었다.
글자로 보여주지 않았더라도. 군더더기가 보이지 않고, 빠르게 나아가고 짜맞춤이 좋은 영화였다.
게다가 카메라가 잡아 보여주는 모습은 더 없이 좋았다. 그래서 별은 다섯을 주었다.
5.
만든 지 아흔 해가 다 되어가는 영화라 본디 영화에서 1976년에 필름을 다시 살렸다고 한다.
그래서 세월의 때가 많이 묻은 터라 디뷔디는 그리 좋지 못하다. 화면에 비가 올 때가 더러 있다.
덤으로 예고편도 없다. 이름난 영화를 그나마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 가슴을 달래야 한다.
디뷔디 값이 2,900원이면 나무랄 일도 없다.
디뷔디를 제대로 만들지 못해서 영화 화면에는 러시아말이 먼저 나오고, 다시 영어로 풀어 쓴 것이 나오고,
그 위에 한글이 나온다. 그런데 우리말은 틀린 구석이 더러 보인다.
영어를 보면 돼지(PIGS)라 써놓았는데도 우리말은 보란듯이 '개'로 나온다.
나는 러시아말을 모르지만, 화면에 러시아말로 '개'로 나오지는 않았을 것으로 짐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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