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교회는 은사 사역/제자 사역/찬양사역/ 치유사역을 거쳐 이제 21세기에는 예언 사역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예언이란 무엇인가?
-예언이란 하나님이 주시는 메시지이다.
-하나님이 예언의 원천이시다.
-인간은 다만 소리일 뿐이다.
-예언은 신자를 세워주고 격려하고 위로한다.
예언을 하면 무엇이 좋은가?
-빛, 지혜, 감동, 승리, 연합, 신바람, 기적, 창조, 성공, 변화는 예언이 주는 유익들이다.
예언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인가?
-생명의 강물이 지금은 우리를 통해서 흘러나온다. 당신 안에 다 들어있다. 댐을 터뜨려라. 그래서 강물로 흐르게 하라.
성공적인 예언을 위한 6가지 주요 요소는 무엇인가?
-예언은 성령의 감동과 기름부음에서 나온다.
-변명을 그치고 순종하라. 요리조리 피해 다니는 사이에 기회는 훌쩍 떠나가 버리고 사명감도 사라진다.
-예언은 그 들은것과 그 본것을 그대로 말하면 된다 . 믿고 예언하라.
예언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가?
-당신 스스로 자리에서 일어나야 한다.
-당신이 입을 열어야 한다. 예언은 당신이 하는 것이다.
-당신이 사람을 사랑한다면 그래서 그들을 축복하고 싶다면 예언할 수 있다.
예언을 어떻게 도입할 것인가?
-은사는 사람들의 것이 아니다.
-모든 은사는 성령님이 주신 선물이다.
-은사의 소유권은 성령께 있다.
-언제 어디서나 누구를 통해서 은사를 활용할지 결정할 수 있는 권리는 성령께만 있다.
예언의 약속을 어떻게 자기 것으로 삼는가?
-주신 약속을 자기 것으로 삼으려면 생각부터 바꿔야 한다. 즉 하나님의 의중부터 살필 줄 알아야 한다. 사람이란 생각이 바뀌면 언어도 달라진다. 언어가 달라지면 행동도 달라진다. 행동이 달라지면 비로소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마련해 놓으신 일을 수행할 수 있게 된다.
"성령의 아홉 가지 은사들 중에서도 예언은 하나님께서 이 마지막 시대에 부흥을 일으키시는 데 가장 강력하게 쓰시는 은사이다. 그리고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예언의 은사는 또한 다른 어느 은사보다도 극심한 반대에 부딪치기도 한다. 나는 지금이야말로 예언의 은사에 가해진 이러저러한 제한들을 제거해 낼 시기이며, 또 하나님께서 이 시대를 위하여 들어쓰시는 예언자들에게 가해지는 잡다한 제한들을 철폐시킬 시점이라고 굳게 믿는다. 지금은 하나님의 행동계획 속으로 진입해서 이 마지막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예언으로 선포해야 할 때이다."
이러한 의문점들과 기타 여러 의문점들이 이 독특하고도 시의 적절한 책에서 시원하게 풀릴 것이다.
예언의 은사를 사모하십시오!
나도 예언할 수 있는가?
지금도 예언이 가능한가?
예언을 통해 어떤 일이 이루어지는가?
예언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예언이란 무엇인가?
우리 시대에 하나님이 부흥을 위해 가장 강력하게 쓰시는 은사는 성령의 아홉 가지 은사 중에서 단연 ‘예언의 은사’이다. 그래서 그런지 여느 은사들보다 심하게 공격을 받는것도 ‘예언의 은사’이다. 예언의 은사에 대한 공박의 논점은, 예언은 오직 구약 시대에만 국한되는 것이기 때문에, 오늘날에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는 데 있다. 그래서 예언의 은사를 사용치 못하도록 제재하거나, 아니면 몇몇 소수의 사람들만 선별적으로 사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나는 지금이야말로 예언의 은사에 가해진 이러저러한 제한들을 제거해야 할 시기이며, 하나님께서 이 시대를 위해 들어 쓰시는 예언자들을 옭아 묶는 잡다한 제한들을 철폐시킬 시점이라고 선언하고 싶다. 때는 바야흐로 하나님이 자기의 뜻을 예언이란 방법으로 마지막 세대에게 선포하기 원하시는 시기이다. 남녀불문하고 많은 사람들이 오늘도 하나님의 음성 듣기를 필사적으로 갈구한다. 우리같이 성령 충만한 그리스도인들에게 예언의 은사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과 심정을 깨달을 수 있도록 돕는 유용한 도구이다. 이 책은 그 도구의 역할을 톡톡히 해 낼 것이다.
나는 원래 예언 사역에 그다지 깊이 심취했던 사람이 아니다. 대신에 나는 여러 해 동안 신유 은사에 좀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주님을 안 뒤 부친이 하시던 치유 사역에 굉장한 감명을 받았다. 그래서 나에게도 신유 은사를 달라고 기도했다.
아버지는 믿음이 굉장히 좋은 분이셨다. 하나님은 그런 아버지를 통해 수많은 난치병들을 치료하셨다. 아버지의 기도는 간결했지만, 그 기도에 많은 병자들이 고침을 받았다. 그로 인해 아버지의 사역의 문은 활짝 열렸고, 또한 성공적인 목회도 할 수 있었다. 아버지는 동부 연안에서 하나님께 특이하게 쓰임 받는 분으로 그 명성이 자자했다. 그 덕분에 국내 각종 집회에 유명 강사로 뽑혀 다니기도 하셨다. 또한 아버지는 하나님의 역사(役事)로 말미암아 신유 천막 집회를 계속할 수 있었고, 버지니아 주 여러 곳에 교회를 개척하였다. 한때 아버지는 삼천여 명이 넘는 목회자들로 구성된 교단에 속하여, 열두 개주(州)를 치리하는 감독이 되기도 했다. 아버지는 치유 사역을 통해서 일생 동안 큰 존경을 받았다.
나는 아버지와 똑같은 치유 사역을 하기로 결심하고 신유 은사를 받기 위해 금식하며 기도했다. 일주일에 주일 하루만 식사를 했고 나머지 엿새 동안은 금식하며 기도하기를 여러 주간 계속했다. 그래서인지 하나님께서는 나도 아버지와 꼭 같이 치유 사역을 할 수 있도록 허락하셨다.
어머니가 하신 사역은 아버지와는 판이하게 달랐다. 하지만 나는 어머니의 사역을 존중했다. 어머니는 학교 교사였다. 그런데 어머니에게는 특이하게도 예언의 은사가 있었다. 당시 예언의 은사는 그리 흔치 않았다. 어머니는 퇴직 후, 본격적으로 사람들을 위하여 예언 기도해 주는 사역을 시작하였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어머니가 생전 처음 만나는 각 사람들에게 꼭 들어맞는 예언을 할 수 있도록 하셨으며, 그 예언을 통해서 사람들의 인생이 변화되었다.
나는 어머니가 받은 은사에 큰 감명을 받았다. 그래서 종종 전도 집회가 열릴 때면 아침 시간에 참석하여 어머니 곁에서 벌어지는 신기한 일들을 지켜보곤 했다. 무엇보다도 그렇게도 먼 지역에서 어머니의 기도를 받으러 물밀듯이 몰려오는 사람들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가끔 어머니가 아침 예배를 인도하는지 아닌지 그 여부를 묻는 전화를 받곤 했다. 무턱대고 “오늘도 예언 기도해 주나요?”라고 묻지는 않았지만, 사람들이 도대체 무엇 때문에 어머니가 인도하는 집회에 몰려드는지 난 알고 있었다. 어머니가 집회를 인도할 때면, 사람들이 당일 서둘러 비행기를 타고 날아오기도 했고, 한 주간 내내, 혹은 그보다 더 길게, 줄을 서서 어머니가 안수해 주기만을 기다렸다.
비단 야외 전도 집회에 참석했던 사람들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어느 집회고 참석하는 사람들은 거의 예외 없이 낙심하고 풀이 죽어 있었고, 삶의 방향을 잃고서 허둥대고 있었다. 참석자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뭔가를 듣고 싶어했다. 그들은 복잡한 생각을 분명하게 바로잡고 싶어했다. 사람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마침내 형통하리라는 확실한 응답을 받기 원했다. 그 순간, 어머니는 성령께서 각 사람에게 역사하시도록 그들을 위해 안수하였다. 나는 내 눈앞에서 그들의 삶이 바뀌는 것을 생생하게 목격했다. 안수를 받으러 올 때는 자기가 둘도 없는 악한 죄인이라고 자책하던 자들도 일단 안수를 받고 나면 죄의 사슬에서 해방되었다. 평신도나 교역자 할 것 없이 삶의 향방을 찾기 위해 집회에 와서 새롭고 분명한 길을 발견하고 돌아갔다. 사실 매우 유명한 목회자들도 종종 그들이 뭔가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할 순간에 찾아와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얻어 가기도 했다.
나는 솔직히 어머니가 하는 사역의 열매들을 보고 굉장한 도전을 받았다. 그래서 이렇게 기도하기 시작했다.
“하나님, 제가 어머니처럼 사역할 수 있도록 도와 주소서.” 난 이것이 성경적인 기도라고 믿는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바울은 교회에게 강력하게 권한다.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고전 12:31).
“예언하기를 「사모하며」”(고전 14:39) 위의 두 구절에서 쓰인 “사모하다”는 동사는 살아 움직이는 갈망, 또는 강한 열망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 나의 기도에 응답하셔서 내게 예언 사역을 허락하신 것은 바로 그런 강한 열망 때문이었다. 이 예언의 사역을 통해서 나는 세계 도처에서 사람들의 삶이 변화되는 것을 오늘도 목격하고 있다.
본서의 메시지를 통해서 당신의 가슴과 생활 속에도 예언 은사에 대한 강한 열망이 부풀어오르기를 기대한다. 나는 또한 이 열망이 이 마지막 시대에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데 쓰여지기를 소망한다. 나는 이 열망이 이 혼란스러운 세상에 하나님의 음성을 들려 주는 도구가 되길 바란다. 나는 이 열망이 이 세대에 희망과 각성을 안겨 주는 그런 매개체가 되기를 희망한다. 이것이 나의 기도이다.
--- 서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