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로, 위에 등록된 Samantha: An American Girl Holiday는 본 영화 Samantha와 전혀 무관합니다. Samantha(1992)가 워낙 오래된 영화라 DVD가 없는데, DVD 등록을 안하면 리뷰를 올릴 수가 없어서 대신 올렸습니다.)

Samantha(실수로 태어난 여자, 1992)

가끔은 우연이 필연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우연히 읽게 된 책 한 권이 가치관을 흔들어 놓기도 하고, 우연히 보게 된 영화 한 편이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는 기억으로 남아 생활의 구석마다 쫓아 다니기도 한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7년 전 새벽 3시가 넘은 시각, 잠들지 못하고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 우연히 마주친 오래된 영화 한 편이 내겐 그랬다.

리모컨을 누르던 내 손가락을 멈추게 한 장면은 지금도 생생히 기억될만큼 충격적인 것이었다. 한 어린 소녀가 슈퍼맨 복장을 하고 나뭇가지 위에 올라 서서 엄숙한 표정으로 외친다. "If he can do it, I can do it. Or it can't be done at all~!" 그리고는 망설임 없이 뛰어내리는 것이다. 그녀가 바로 이 영화의 주인공 사만사(Martha Plimpton)다.

사만사의 21번째 생일날 아침, 그녀의 부모인 월터 스티그와 마릴린 스티그는 그녀에게 출생의 비밀을 말해준다. 사실 스티그 부부는 아기를 갖지 못했으나, 21년 전 어느 날 그들의 집 앞에 갓난아기가 담긴 바구니가 놓여져 있었고 그 아기가 바로 사만사였던 것이다. 충격에 휩싸인 사만사는 엉뚱한 자살소동을 벌인 뒤 집을 나가 헨리의 집에 머무르며 친부모를 찾아 헤맨다.

어린 시절부터 단짝친구였던 헨리(Dermot Mulroney)는 엉뚱소녀 사만사와는 정반대로 침착하고 이성적인 친구다. 어릴 적 사만사가 누군가 할 수 있었다면 자신도 할 수 있다고 외치며 슈퍼맨을 따라 하다가 나무에서 떨어졌을 때도, 탈출마술을 시도하다가 물에 빠져 죽을 뻔했을 때도, 신과 과학 중 어느 것이 더 강한지를 시험하기 위해 어항을 폭파시켰을 때도, 언제나 헨리는 그녀의 곁에서 그녀를 지켜주었다.

참고로 그 어항 폭파 사건은 사만사의 인생을 바꿔놓게 된다. 어항이 폭발하면서 금붕어가 죽자 회개하기 위해 성당의 신부님을 찾으러 갔던 사만사는 파이프 오르간 소리가 크게 울리는 작은 공간에 갇히게 되는데, 귀가 어두운 쉬튜머 부인이 자신의 창작곡인 Schtumer's fifth를 너무나 열정적으로 연주하는 바람에 그 충격으로 정신을 잃게 된다. 그 뒤로 한동안 소리가 안들리고 Schtumer's fifth가 머릿속에 울리는 환청을 듣다가 깨어나 지휘를 하고, 그렇게 그녀는 음악의 천재성에 조금씩 눈을 뜨게 된다.

연습벌레인 첼로 연주자 헨리와 달리 사만사는 바이올린에 천부적인 재능을 보인다. 그러나 생일 날 자신의 출생비밀을 알게 된 이후로 친부모를 찾는 데 몰두하며 헨리와의 연주회마저 내팽개치면서 스티그 부부와 그녀를 아끼는 모든 사람들에게 걱정과 실망을 끼치게 된다.

사만사가 빠진 자리에 일레인이 들어와 바이올린 연주를 하게 되고, 일레인과 헨리와의 사이가 가까워지면서 사만사는 비로소 자신이 헨리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헨리에게 적극적인 구애를 시작한다. 물론 그녀가 항상 그랬듯 가장 엉뚱한 방식으로. 또한 연주회에도 다시 참여하겠다고 나선다. 이에 화가 난 일레인은 친부모를 찾기 위한 사만사의 절박한 심정을 이용해 음악회 전날에야 친부모를 알려 주며 복수하고, 친부모를 만난 사만사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그들의 모습에 당황하게 된다. 스포일러 방지를 위해 줄거리 설명은 여기까지만...

홍보 실패로 망한 영화지만, 나로서는 정말로 인상 깊게 본 영화다. 채널을 돌리다가 우연히 보게 되는 바람에 놓친 앞부분은 물론, 그 전체를 다시 보고 싶어서 이 영화를 구하느라 몇 년을 찾아 헤맸을 정도로. 국내에선 DVD를 구할 수가 없어서 해외에서 주문했는데, 해외에서도 파는 곳이 없어서 정말로 힘들게 구했다. 영화를 본 사람은 적지만, 일단 보면 극찬하는 영화.

해외 네티즌 평을 읽어봐도 하나같이 극찬이다. 다만 이 영화를 본 사람 자체가 워낙 드물다는 거...ㅡoㅡ;; 영화 홍보와 배포를 누가 했는지는 모르지만, 당시의 영화광고를 보면 왜 홍보가 망했는지를 알 수 있다. 영화 내용 자체를 이해 못한 사람이 광고를 기획한 듯한 느낌. 어쨌거나 잊혀지기엔 정말로 아까운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