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6/3 이상구(flypaper@yes24.com)
전작 소설 <내게 거짓말을 해 봐>이후 2년여 동안 두문불출, 거의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던 작가 장정일이 4번째 장편소설을 내 놓았다. 통신에서 갈무리된 신작 소식을 접하고 부리나케 서정으로 달려갔지만, 예상과는 달리 책은 신작코너에서 한켠 밀려나 꽃혀 있었다. '아뿔싸 한 발 늦었구나'하는 아쉬움도 잠깐, 단행본 크기보다 세로가 1센티 정도 짧은 크기(세로는 신국판 시집 크기, 가로는 흔한 단행본 크기)에, 아주 심플하고 모던한 커버 디자인의 이 책을 손에 쥔 난, 어쩜 오프닝 매치가 필요할지도 모르겠다는 괜한 치기에 두권의 책을 더 골라 들었다.
그렇게 집에 돌아와 두권의 오프닝 매치 중 얇은 것(유하의 새 시집)을 먼저 집어 들었으나, 이내 포기하고 <보트 하우스>를 읽기 시작한다. 왜 그런지 자꾸 <보트 하우스>가 '보트 피플'로 잘못 기억되는데(예전에도 담배사러 들어가서 '필립 모리스' 주세요를 '필립 말로우' 주세요로 잘못 말한 기억이 있다. 하지만 그것과는 좀 다른 문제인 것 같다), 작가는 소설 초입부부터 당당하게 자신을 등장시키며 예의 그 불온한 혀를 들이 민다.
그에게 비친 오늘날의 작가들(자기 자신을 포함한)은 '너나 없이 핸드폰이나 삐삐를 들고 다니며, 아파트나 자동차든 대중들이 욕망하는 것을 똑같이 욕망하는, 삼성맨인지,현대맨인지,대우가족인지, 연예인인지, 삐끼인지가 헷갈리는 양계장의 닭들'(p.17)같은 존재이다. 어김없이 반복되는 '자기 모멸'이라는 주제인데, 이번 자기 모멸은 섬찟하게도 위악적이었던 기존의 방식과는 달리 왜소할대로 왜소해진 작가들의 처참함을 모멸한다.
그 왜소해진 작가들의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그가 선택한 방법은 과거로의 시간여행이다. '처음 그 마음으로!'하던 TV 공익광고와는 상황이 좀 다르겠지만, 여하튼 그는 처음 글을 쓰려고 했을 때의 그 열기를 되찾기 위해 자기 자신의 작품들을 차용한 패러디를 소설 곳곳에 심어놓는다. 패러디라는 이러한 가벼운 프레임을 빌어 작가가 하고자 했던 것은 무엇일까? 2년전의 그 끔찍했던 마녀사냥의 화인이 아직 남아 있는 작가는, 프레임의 한 부분을 빌어 그의 문학에 대한 고행자의 일념을 넘버 3의 송강호같이 단순 무식하게(?), 그러나 날카롭게 토로한다.
'전부가 아니면 무다! 생이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거다! 진정한 프로는 끝까지 가는거야. 진정한 작가는 베스트셀러가 되어서 100만 부가 터져도 매일 새벽 다음 소설에 쓸 메모를 한단 말이야.헤밍웨이를 봐. 사냥도 낚시도 타자기를 누를 힘도 없으니까 총을 입에 물고 탕, 해버리잖아. 죽기 전에 그는 계속해서 이렇게 중얼거렸다는 거야. 이제 써지지 않는다, 이제 써지지 않는다. 그리고는 탕! 이게 프로야.'(p.181)
작가는 프로정신을 가지고 처음 시작하던 초발심의 상태로 돌아가겠다는 의지를 보인다. 이러한 의지는 그의 출세작 <아담이 눈뜰 때>에 나왔던, 그의 필기구 크로바 727을 찾는 소설가 '나는'의 모습이나, 거친 바다로 떠나기 위해 하우스에 놓여 있는 보트라는 상징으로 쉽게 엿볼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소설의 마지막 장(마지막 장이 56 다음에 57이 아니라 0이다. 무를 의미하는 0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툭툭 털고 일어나 새로 시작하는 무상무념의 출발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의례적으로 셈이 1부터 시작하듯이 출발선에 서기를 거부하겠다는 뜻으로 비쳐지기도 한다)에서 '얼음 재운 콜라를 마시며 비치 파라솔 그늘 아래의 긴 의자에 누워 쉬는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나는 거기 누워서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이다' (p.251)라고 씀으로써 지난 2년여의 압박이 털어 내고 바다로 나가는 보트에 올라 타는게 결코 만만한 작업은 아님을 독자들에게 전한다.
개인적으로 그의 글 읽기를 좋아하는 나는 작가가 쉬지 않고 글을 써냈으면 하는 맘이다. 여담인데, 그의 글은 짧을수록 좋다. 그 어떤 누구보다도 촌철살인하는 짜릿한 글맛을 보여주는 그의 글은 장편보다는 중,단편이 소설보다는 시가, 이도 저도 아니라면 독서일기나 잡문집이 훨씬 읽기 재밌고 흐뭇했었다는 기억이다. 그런 의미에서 창작이 버겁다면 그냥 가벼운 잡문이나 문화비평 같은데 독기를 쏟아 부어 줬으면 하는 바램이기도 하다.
독서일기에서 가끔 드러나는 작가의 영화읽기를 보면, '그래! 영화를 전문으로 하지 않는 사람들의 영화읽기는 이런 방식이어야 해! 겸손하잖아. 자기 보이스가 뚜렷하고'라고 통쾌해할 만큼 개성적인 맛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런 잡문들(잡문이 맞겠죠?)을 더욱더 원기왕성하게 써내서 사회 곳곳의 구태의연함의 독소를 조금씩 없애간다면 좋겠다. 이런 기분을 메일에라도 실어서 보내고 싶다. 그러나 기계치인 작가는 분명 메일 어드레스가 없을거구...흠...여하튼, 2년만에 발표하는 작품을 이렇게 확인했으니 기분은 산뜻하다. 순서대로라면 다음 작품은 독서일기 다섯번째권이 되겠는데, 이것도 빨리 책으로 묶여 나왔으면 싶다. 기다려진다.
P.S. 이 책은 편집이 정말 세련됐다. 세로를 1센티 정도 줄인 크기도 새로와 보이고, 무광택(난 무광택을 좋아한다. 사진을 찾아도 '무광택으로 뽑아 주세요' 이 말을 항상 잊지 않는다)의 표지 종이에 반복되는 굵은색 노란 곱표, 그리고 벌레들(벌레 이름이 갑자기 생각이 안 난다. 이게 풍뎅인가? 아니 **벌레. 이렇게 네자였던거 같은데...)의 규칙적이지 않는 배열도 참 좋다. 인용문에 보통 쓰는 고딕체를 대신한 폰트(한글에서 굵직한 타이틀에 많이 써먹던 폰튼데 기이하게도 얼마전 한글을 다시 인스톨한후부터 이 폰트가 안 보인다)도 맘에 들고, 각 장의 들여쓰기를 큼직한 장번호로 대신한 편집 스타일도 산뜻하다. 하나 옥에 티가 있다면 뒷커버 안쪽에 마주보며 거꾸로 열거된 작가의 소설 작품 리스트 중 92, 94년도 작품명이 서로 바뀌었다는 것인데, 산뜻한 장정과 깔끔한 편집에 비하면 아주 하찮은 거다. '산정' 역시 기억해야할 출판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