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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발행일 | 2006년 07월 0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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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296쪽 | 512g | 150*220*20mm |
ISBN13 | 9788986836233 |
ISBN10 | 89868362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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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0월 01일 ~ 2024년 10월 31일
상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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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터 회의 글을 읽는 일은 미지의 대륙을 찾아 떠나는 먼 항해를 닮아 있다. 글을 읽기 시작했을 때 나는 내가 발견하게 될 그 무엇에 대해 막연한 동경 이외에는 아무것도 가질 것이 없다. 그리고 항구를 떠난 배가 뭍으로부터 멀어지면서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은 조금씩 희미해지고, 뭍이 보이지 않게 되는 어느 순간부터는 페터 회가 부리는 바다 위의 마술 속으로 빠져 들어가게 된다. 해무 속을 헤매이다 갑작스레 암초를 만나기도 하고, 변덕스러운 소용돌이를 피하려다 문득 깎아지른 절벽과 맞닥뜨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지난한 여행을 통해 시야는 점점 넓어지고 가슴은 화악 트이게 된다. 결국 페터 회를 읽는 과정은 미지의 세계와 부딪히며 인문학의 지평을 넓혀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 문제가 되는 것은 도시의 원리, 즉 현대 문명 그 자체였다. 마드렌느는 그 문명에 이제는 어떤 끝도 없는 것, 그 문명이 지구를 완전히 그물처럼 엮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 바로 옆에 있는 원숭이에게는 더 이상 어떤 외계도 없었다. 이 세상의 모든 동물원과 수렵 보호구와 사파리 공원들도 이제는 문명의 범주 내에 포함되어 있었다.”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보다는 덜하지만 이번 소설에도 상당히 많은 인간들, 그리고 인간과 유사한 무엇(에라스무스라는 이름을 가진)이 등장한다. 덴마크에서는 단순히 부잣집 딸이었으나, 영국의 명문가 남자와 결혼을 해서 틀이 잘 잡힌 영국풍 상류사회의 일원이 된 마드렌느, 그녀의 남편이자 제대로 된 귀족 교육의 수혜자이며 오만한 인류를 대표하는 듯한 애덤 버든, 그리고 어느날 보언 박사를 통해 애덤 버든의 집 정원에 있는 실험실로 옮겨지게 된 침팬지(라고 불러야 할지 다른 무엇으로 불러야 할지 독자로서는 난감하기만 한)인 에라스무스가 이야기의 정점에 있다.
여기에 애덤 버든의 누이인 앤드리어 버든, 에라스무스를 영국으로 옮기는 과정에 참여했던 밸리와 조니, 애덤 버든의 연구소에 근무하며 에라스무스라는 존재의 비밀을 마드렌느에게 알려주는 치의학박사, 그리고 수의학박사이면서 에라스무스 연구 과정에 참여하며 환경을 혹은 자연을 대하는 과학자들의 보편적인 입장을 보여주고 있는 듯한 알렉산더 보언 등이 소설의 진행을 측면에서 진행시킨다.
“... 알렉산더 보언은 진정으로 동물을 사랑하는 이였다... 그래서 수의사가 되겠다는 마음을 먹고 수의과대학에 진학했지만, 바로 거기에서 동물들이 기계나 다름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가 학업을 마쳤을 때쯤 그의 설익은 환원주의(還元主意 : 생명 현상이 모두 물리 화학적으로 설명된다는 주장 / 옮긴이)는 충분히 발전되었고, 그 뒤로 30년 동안 그는 시험관 뇌물, 그 내면적인 난쟁이의 짐을 점점 더 많이 떠안게 되었다...”
인간과 동물, 인간을 중심으로 한 사회와 인간에 의해 객체화된 상태의 자연으로 구성되어 있는 지구에서 누가 강하고 누가 약한지, 하지만 누가 옳고 누가 그른 것인지에 대해 소설은 끊임없이 토론을 하는 것만 같다. 자연에 가깝게 태어났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사회적 인간으로 거듭나면서 얼마나 오염되는지를 보여주는 위의 문장처럼 소설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에서의 인간의 자리에 대해 끊임없이 회의한다.
하지만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과 비교한다면 이번 소설은 재밌기도 하다. 각각의 인물들이 가지는 차별화된 뉘앙스와 에라스무스라는 존재가 가지는 독특한 아우라도 볼만하고, 이들 사이의 갈등과 번민 혹은 사랑의 진행도 꽤 스피디하다. 영국의 런던으로 배경이 한정되어 있지만 대도시의 주변에 포진해 있는 자연을 또한 배경으로 하고 있어 소설은 도심 한 가운데에서 자연주의적이다.
“마드렌느와 에라스무스가 당도한 곳은 동물의 왕국이라는 이상에 가장 근접한 유럽 최초의 공원이었다. 하지만 그곳은 멋지고 안락한 천국이 아니라 아담과 이브가 보았을 법한 수렵 보호지, 즉 동물세계가 아무런 간섭도 받지 않고 그대로 방치되었을 때 나타날 수 있는 면면들이 매혹적이면서도 시사하는 바가 많게, 소름이 오싹 끼칠 만큼 철저히 비극적인 방식으로 혼합된 곳이었다.”
인간의 세계와 동물의 세계는 비교되기도 하고, 때로 병치되기도 한다. 그리고 마드렌느와 에라스무스는 서로에게 중요한 존재가 되어가고, 서로에게 믿음을 주는 존재가 되어가고, 서로를 사랑하는 존재가 되어간다. 그리고 밝혀지는 에라스무스를 둘러싼 아우라의 정체...
(자칫) 신의 영역을 넘보는 듯한 소설이면서, 동시에 인간의 영역으로부터도 동물의 영역으로부터도 자유롭지 못한 소설인 듯도 하다. 소설은 우리가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영역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해하려고 노력조차 해보지 않았던 영역에 대한 침범을 시도하고 있다. 페터 회의 이 소설이 어떤 논쟁에 휩쓸렸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본다. 하지만 그 논쟁은 (인문학적으로) 소비적이기보다 생산적이었을 것이다. 에라스무스로 인해 자신이라는 존재를 찾아가는 마드렌느처럼, 페터 회는 우리들 모두에게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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