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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06년 08월 1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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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형 | 양장 도서 제본방식 안내 |
쪽수, 무게, 크기 | 404쪽 | 514g | 128*188*30mm |
ISBN13 | 9788972753698 |
ISBN10 | 8972753696 |
히가시노 게이고 『블랙 쇼맨과 환상의 여자』 출간 - 아크릴 무드등 증정
2023년 04월 19일 ~ 2024년 12월 06일
2024년 09월 09일 ~ 2024년 12월 31일
뉴욕타임즈 21세기 최고의 책 100대 도서 『파친코』, 『채식주의자』 선정
2024년 07월 15일 ~ 2024년 11월 08일
문학 PD가 보내는 백 번째 편지 : 100호 기념 기획전
2024년 09월 20일 ~ 2024년 11월 30일
소진시
2024년 11월 01일 ~ 2024년 11월 30일
상시
509명의 예스24 회원이 평가한 평균별점
책을 덮고 나니 서늘하다. 잠깐 마당에만 갔다 와도 등줄기에 땀이 흐르는 오늘 같은 한여름에 읽기 딱 적합한 내용이었다. 그러나 그 서늘한 내용이 살인의 잔혹함에서 오는 것은 아니었다.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이 참 이기적이라는 데서 오는 서늘함이다. 인간은 그렇게 프로그래밍화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엄혹한 이 세계를 두뇌하나로 지배하고 있는 인간이다. 지난 수만 년 동안 인간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철저하게 이기적이어야 했을 것이다. 이런 생각이 30도가 훌쩍 넘는 무더위가 무색해지게끔 서늘한 기운을 만들어낸 것이다.
한 남자가 잔인하게 살해된다. 전처와 전처의 딸이 공범이다. 얼떨결에 범행을 저질렀다면 그리고 정신을 차렸을 때 자신들의 죄를 알게 됐다면 사회의 규범대로 자수해서 벌을 받으면 된다. 그러나 하나오카 야스코는 딸의 인생을 망칠 수 없다는 생각 하나로 범행을 숨기기로 마음먹는다. 딸인 미사토 역시 이런 엄마의 결정에 불만이 있을 리 없다. 이들은 태연히 그들의 일상생활, 즉 도시락 가게에 출근을 하고 학교에 등교를 한다. 그리고 그날 오후에는 둘이서 영화관을 찾고 노래방에도 간다.
이 모녀가 이렇게 태연한 일상을 지탱할 수 있었던 이유는 옆집남자 이시가미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시가미는 천재 수학자다. 그러나 집안 형편 때문에 대학에 남아서 연구 활동을 계속하지 못하고 고등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친다. 그에게 삶의 의미는 수학을 푸는 것에 있었다. 그 의미를 찾지 못하자 스스로 자살을 하려고 한다. 그러나 옆집으로 이사 온 야스코를 본 뒤부터 삶의 의욕을 되찾는다. 야스코를 이 세상의 불행으로부터 지켜주는 일이 그의 새로운 의미가 돼버린 것이다. 그 후는 눈물 없이는 읽기 힘든 이시가미의 헌신이 이어진다. 사랑하는, 그것도 짝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스스로 살해범이 되어 감옥에 가게 되니까. 그러나 이것이 과연 야스코에 대한 헌신일까라는 의문을 가져본다. 자신이 살아가기 위해 상대방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그를 지키며 살아가는 일을 과연 헌신이라고 할 수 있을까. 적어도 헌신이라는 것은 자신의 이익보다는 남을 위해 살았을 때 바쳐지는 단어가 아닐까. 죽으려고 했던 남자가 자신의 죽음 대신 다른 사람을 죽이면서까지 지켜야했던 것이 평범한 여인인 야스코의 행복이라는 것에 별다른 감동을 느끼지 못한 이유다.
유가와 마나부는 이시가미의 대학 동창생이다. 천재물리학자로 불리는 그는 20년 만에 만난 이시가미의 상황을 예리하게 파헤치며 사건을 해결해나간다. 이시가와가 자수를 결심한 것도 유가와가 정확히 꿰뚫어보고 있는 사건의 전모를 더 이상 숨기기 힘들어서다. 만약 유가와가 아니었더라면 사건은 흐지부지 미궁으로 빠졌을 것이다. 아주 작은 흔적으로 정교하게 사건의 퍼즐을 맞춰가는 유가와의 등장은 추리소설에서 흔히 볼 수 있듯이 경찰의 무능을 확인시켜준다. 유가와는 그저 추측일 뿐이라며 이시가와의 범행을 형사인 구사나기에게 브리핑하고 그것을 다시 야스코에게 그대로 말해준다. 유가와의 입장에서는 아무 상관도 없는 야스코보다는 한때 자신의 경쟁자이자 친구였던 이시가와의 죄를 조금이라도 가볍게 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다시 야스코로 돌아가면, 전 남편을 살해하고도 그 이튿날부터 일상생활이 가능할 만큼 강한 여인이다. 만약 경찰에서 더 이상 괴롭히지만 않는다면 자신에게 프로포즈한 구도씨와 행복한 생활을 이어나갈 수도 있었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차츰차츰 자신을 덮쳤던 고통과 공포에서 벗어나 편안하고도 행복한 생활을 이어갈 것이다. 그러나 야스코는 이시가와가 자신을 위해 저질렀던 범행의 전모를 듣고 자수한다. 이건 뭐지? 전 남편을 살해한 뒤 범행을 완벽하게 감추며 살아가려고 했다면 이시가와가 자신을 위해 벌인 희생쯤은 너끈히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야 이시가와도 자신의 고생에 보람이 있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하지만 여기서 야스코가 자수한 것은 자수하지 않으면 더 이상 사람으로서 살아갈 수 없게끔 몰아붙이는 유가와의 냉정한 권유가 큰 몫을 했다고 생각한다. 거기다 딸 미사토 조차 자살을 시도하지 않았던가. 야스코의 자수는 이시가와의 헌신에 감동한 행동이 아니라 사람으로서는 더 이상 갈 데가 없어 보인 나머지 어쩔수 없이 한 선택이었다고 느껴졌다.
구도 씨도 마찬가지다. 아내가 와병 중에 그 스트레스를 풀기위해 술집을 찾아가고, 거기서 만난 야스코와 다정한 시간을 보낸다. 아내가 죽은 뒤 야스코도 이혼했다는 사실을 알자 청혼을 하지만, 청혼하기 직전까지도 혹시 야스코가 살인사건에 연루되었는지 노심초사한다. 자신의 선택에 흠집이 있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등장인물들의 행동은 살인을 빼면 그다지 특별할 것이 없는 평범한 것이었다. 그러나 들여다보면 볼수록 자신의 이기심을 합리화하기 위해 신중하게 선택하는 모습들이 보여 씁쓸했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보면 잘 짜인 추리소설 한 편이다. 잔혹한 살인과 은닉, 그리고 살해범을 사랑한 사람의 눈물겨운 헌신. 마지막에는 그 헌신을 알아본 진짜 범인의 자수. 책을 읽는 동안 조마조마하던 마음이 마지막 부분에 와서는 모든 게 다 해결되기 때문에 읽는 독자들이 속 시원해지는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게끔 잘 된 소설이었다. 그런데 나는 왜 이렇게만 읽지 못하고 삐딱해졌을까
한 사람, 죄 없이 희생된 한 사람에 대한 애도일지도 모르겠다. 이시가미가 선택했던 그 사람이 죽어야했던 이유는 딱 한 가지다. 아무도 그의 죽음에 의문을 갖지 않는다는 것, 그가 사라지는 것은 애초에 이 세상에 아예 오지 않았던 것처럼 흔적이 없으리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래서 무서웠고 서늘했다. 어떤 사람이 헌신이라는 이름으로 이 세상에서 가장 죄 없는 사람일수도 있는 사람을 무참하게 살해했고, 세상의 수레바퀴에 올라타지 못하고 떨어진 그 사람은 자신이 죽어야하는 이유도 모른 채 죽어가야 했던 그 사실이 아파서 서늘해졌다.
사실 추리 소설 속에서 사람이 죽는 일은 별거 아닐 수도 있다. 연쇄살인사건이라도 다룬다면 그 죽음의 숫자는 얼마든지 늘어날 수도 있다. 소설뿐만이 아니라 현실에서도 죽음은 곳곳에 포진해있다. 하지만 우리의 삶이 죽음으로 완성된다고 봤을 때 그 죽음에 어이없이 헌신이라는 용어가 붙여진 것에 화가 났다. 그래서 이 책에 나오는 모든 사람들은 자신들의 이기심을 채우기 위해 자신들 스스로 연기 인생을 사는 것처럼 보였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좋은 평을 했다는 것을 안다. 그래도 한 사람쯤은 이유도 모른 채 죽어간 그 사람을 애도하는 것이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 그 사람만을 생각하며 이 글을 썼다.
두 사람이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일요일은 너무 행복했다.
어쩜 제목이 저리도 명확하지? 책을 읽어가는 중에도 제목의 헌신이란 말을 왜 써야 했는지 내내 고개를 끄덕였다. 지독한 사랑이라든지. 아니면 우리나라 영화에서 처럼 헌신을 뺀 용의자x라고 하면 뭔가 더 미스터리한 미지수 느낌으로 궁금증이 있을텐데. 용의자를 자청하여 지독한 사랑을 보여준 이시가미를 표현한 제목을 헌신이란 단어로 썼다는게 너무 맘에 든다.
미사여구도 없는 그저 정확한 단어가 이시가미의 사랑방식과 잘 어울린다.
헌신이란 단어는 부모가 자식에 대한 사랑을 쓸 때 가장 이해가 되는 표현이다.
이렇듯. 이시가미 또한 야스코를 대신할 완벽한 알리바이를 위해 살인까지 저지른 행위야 말로 헌신이 아니고 그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겠나 싶다.
역시 유명한 추리작가의 글 솜씨는 놀랍다. 추리를 해내는 능력처럼 표현하는 사물을 바라보는 시선도, 분석도 정확하다. 실제 보이는 것들과 행동, 감정까지 읽어내어 연결해 내는 유추능력이 읽는 사람을 쉬지 않게 한다.
맨 앞장엔 이시가미가 범죄를 저지르는 대상이 일상처럼 관찰되어 지고 있다. 하지만, 무심코 읽은 내용을 다 읽고 나서 다시 읽게 된다. 이시가미의 눈을 다시 처다보고 싶어서다.
- 이시가미는 그 파란 비닐 시트 오두막 앞을 걸어가고 있었다.비닐 시트 오두막 앞을 걸어가고 있었다. 비닐 시트 오두막은 사람 키만 한 높이라 안에서는 허리를 굽혀야 할 것 같았다… 그 부근에 널려 있는세탁물이 그곳이 주거공간임을 말해주고 있다. 제방 끝에 난 계단 손잡이에 기대 이를 닦고 있는 남자가 있었다. 이시가미가 자주 보던 남자였다. 나이는 예순 이상, 백발이 섞인 머리칼을 뒤로 묶었다. 아마 일할 마음이 없을 것이다. 막노동이라도 할 생각이라면 이런 시간에 이런 데서 어슬렁거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 잠자리 옆에서 캔을 찌르러뜨리는 남자가 있었다. 이 길을 오가면서 자주 그런 광경을 보았다. 그래서 이시가미는 은밀히 그에게 ‘깡통남자’라는 별명을 붙어주었다. 깡통 남자는 쉰 전후로 보였다. 일상생활에 필요한 물품을 잘 갖추고 있었고, 자전거도 한 대 가지고 있었다. 아마도 캔을 모을 때 기동력을 발휘하는 도구일 것이다. 노숙자 주거지 맨 끝이면서 구석진 곳인데, 아마 그 가운데서도 일급지인 것 같았다. 그런 이유로 저 깡통남자가 이 집단의 우두머리가 아닐까 하고 이시가미는 추측했다….
벤치에 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원래는 베이지색이었을 코트가 거의 회색으로 벼였다. 코트 아래에는 재킷을 입었고, 그 아래는 와이셔츠를 갖췄다. 넥타이는 아마도 코트 호주머니에 들어 있을 것이다. 이시가미는 그에게 ‘기사’라는 별명을 주었다. 어제 공업계통의 잡지를 읽고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짧게 자른 머리에 깔끔하게 면도까지 하고 있다. 그러므로 기사는 아직 재취업의 길을 포기하지 않고 있음에 분명하다. 그가 일자리를 찾으려면 먼저 자존심을 버려야 할 것이다…
… 노부인이 인사를 했다.. 이시가미는 그녀가 편의점 봉투를 들고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봉투 속의 내용물은 샌드위치 같았다. 아마도 아침식사일 것이다. 그래서 혼자 사는 여자일 거라고 생각했다. 집은 여기서 그리 멀지 않다. 언젠가 그녀가 샌들을 신고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샌들을 신고 차를 운전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인생의 반려를 잃고 이 부근의 아파트에서 개 세마리와 같이 살고 있을 것이다. 방은 꽤 넓지 않을까. 그렇지 않으면 개를 세마리나 키울 수 없을 테니까. 개 세마리 때문에 값이 싼 더 작은 아파트로 이사갈 수도 없다. 은행 융자금은 다 갚았는지 모르지만, 관리비는 든다. 그래서 그녀는 절약해야 한다. 이 겨울, 그녀는 마침내 미장원을 끊어야 했다. 염색한 모습을 한 번도 보지 못했으니까.
작가의 예리한 관찰력의 추측 기법들은 긴밀한 사건의 실마리를 푸는 방식과 인물들의 묘사가 복잡해 보이지만, 쉽고도 재미있다.
야스코를 보고 싶어 도시락 가게에 매일 티나게 들르는 옆집 수학선생 이시가미.
예쁜 얼굴로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남자가 끊이지 않는 야스코는 결국 진드기 같은 전 남편을 딸과 살해한다.
이시가미의 유일한 두뇌 대적자로 이시가미의 알리바이를 쫒는 물리학자 유가나와.
그 세람을 쫒는 경찰 구사나기.
그저 야스코의 살인사건을 은패하려는 이시가미의 전술로 보이다가, 결국 유가나와에게 들켜버린 이시가미는 자수를 한다. 이 장면에서 끝났다 싶지만, 이거 또한 이시가미의 완벽한 알리바이이다.
아니, 진짜로 살인자가 되어,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게 자신을 용의자로 만든 천재성에.
경찰도 유가나와도 그를 도울수가 없게 된다.
혼자만의 짝사랑의 끝이 이렇듯 스토커를 넘어서 자신의 목숨을 내놓고 야스코를 지킬 만큼 병적인 모습이다. 하지만 희생하는 이시가미에겐 그렇만한 이유가 또 밝혀진다. 이 부분에서 독자들은 모든걸 내려놓고 인간의 마음으로 이시가미를 바라본다.
인간이 사랑에 대한 희생과 욕망의 대가를 이시가미 같은 방식으로도 표현하고 싶은거구나.
이시가미는 고백한다.
- 일년 전이었다.이시가미는 로프를 든 채 방 한복판에 서있었다. 그것을 걸 만한 장소를 찾고 있엇다… 아무 미련도 없었다. 죽는 데 무슨 이유가 있을까. 다만 살아가야 할 이유가 없을 뿐이다. 받침대에 올라가 목을 로프에 거는 데 도어벨이 울렸다.
운명의 벨이었다.
그것을 무시하지 못한 것은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문 바깥에 있는 누군가가 어떤 급한 용건으로 찾아왔는지도 모른다.
문을 열자 두 여자가 서 있었다. 모녀 같아 보였다. 이웃에 이사온 사람이었다… 두 사람사 보았을 때 이시가미의 몸속으로 뭔가가 치달렸다. 정말 깨끗하고 아름다운 눈을 한 모녀였다. 그때까지 그는 어떤 아름다움에도 눈을 빼앗기거나 감동한 적이 없엇다. 예술의 의미도 몰랐다. 그러나 그 순간, 모든 것을 이해했다. 수학의 문제가 풀려서 느끼는 아름다움과 본질적으로 같은 아름다움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하나오카 모녀를 만나 후로 이시가미의 생활은 완전히 바뀌었다. 자살충동은 사라지고 살아가는 기쁨이 일었다. 두 사람이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일요일은 너무 행복했다. 창을 열면 두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온다...수학도 똑같다는 것을. 이세상에는 거기에 관계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숭고한 것이 존재한다… 그 모녀가 없었따면 지금의 자신도 없다. 죄를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은혜를 갚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사람은 때로 튼실하게 살아가는 것 자체만으로 다른 사람을 구원해 줄 수 있는 것이다.
이시가미는 어짜피 죽을 목숨 은혜를 갚는 일이라고 할만큼, 자신의 목숨보다 자신에게 아름다움과 행복을 가르쳐준 모녀가 소중했다. 천재지만 사람이 사는 관계, 즉 사랑받고 사랑하는 모습들을 배우지 못한 이시가미의 방법은 원초적이였다.
그저 내 목숨을 바쳐 지키는 투사적인 영웅심리로 자신의 사랑을 모녀에게 증명해 보이고 싶었던거다. 숨어 사랑하는 자신을 표현하는 방식을 이것밖에 몰라서.
그의 목숨 건 사랑은 충분이 이해가 간다.
이시가미를 오랫동안 보아온 친구 유가나와는 혼란스러워 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시가미의 사랑을 지켜주기 위해 사건의 진실을 알면서도 은패해야 하는건지, 이시가미의 마음도 몰라주는 야속한 야스코를 찾아가 이시가미가 하지못한 고백을 대신해 준다.
- 아시가미가 이런 사태를 바라지 않기 때문이죠. 무슨 일이 있어도 당신에게만은 진실을 알리고 싶지 않았겠지요. 그것은 그를 위해서가 아니에요. 당신을 위해서입니다. 만일 진상을 안다면 당신은 고통을 짊어지고 살아가야 하니까 말입니다. 그래도 나는 당신에게 이걸 밝히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자신의 삶을 모두 걸 만큼 당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하지 않으면, 그가 너무 가련해서 난 견딜 수 없어요. 그의 마음은 이런 게 아니겠지만, 당신이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는 것 자체를 나는 견딜 수 없습니다.
살해한 야스코보다, 순결한 이시가미가 더 더욱 안쓰러워 지는 동정상황에 빠지게 된다.
결국, 진실의 승리.
양심의 가책을 느낀 야스코의 딸이 자살기도를 하자, 야스코는 깨닫는다. 자신의 죄의식을 더 이상 감출 수 없게 되자. 야스코는 경찰들에게 자수한다.
이시가미는 어떠한 과학적 증거로도 빠져나갈수 없게 만든 알리바이 퍼즐들이 무너진다.
바로 진실이란 마음 앞에서.
사랑하는 여인을 지켜주고 픈 자신의 진심이 실패로 돌아가자, 짐승처럼 울부짖는 한 남자의 목소리로 이 소설은 마무리 된다.
결국, 이시가미는 진실 앞에서 사랑을 지키지 못한 남자가 되었지만, 야스코의 자수는 그런 이시가미를 지켜주는 또 하나의 양심이자, 사랑으로 해석하고 싶다.
그래서 이 또한 로미오와 줄리엣같이 독약을 함께 마시는 사랑으로 나는 이들의 사랑을 맺혀주고 싶다.
평소 읽고 싶었던 책이라 주문 후 바로 그자리에서 다 읽어버렸다. 단단하고 매끄러운 초콜릿빛 하드커버는 매혹적이었고, '용의자'와 'X', '헌신'이라는 제목 속의 단어들 각각 미스테리적인 느낌을 팍팍 풍기고 있어 더욱 기대가 되었다.
다 읽고 난 후에는 다소 멍했다. 재미있었고, 반전도 놀랄만했고, 작가의 치밀한 구성력에도 혀를 내둘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 다섯개를 주기에는 다소 미흡한 무엇인가가 있었다. 추리물은 그다지 익숙하지 않은지라 남들이 다 극찬한 이 작품의 진가를 몰라보는 것일까. 혹은 단순히 내 취향에 맞지 않기 때문일까.
내용에 대해서는 책의 뒷표지에 실린 광고문구 그대로다. 한 여자를 사랑한 남자가 그 여자의 살인을 숨겨주기 위해 자신의 모든 인생을 건 이야기. 문제는 이 남자가 평범치 않은 두뇌의 소유자라는 것이고, 더욱이 수학자라는 사실이다.
여자는 기억조차 못하는 계기로 그녀를 인생을 걸고 사랑하게 된 이 남자, 굉장히 이상해보일 수 있다. 그러나 작가가 그를 수학문제 하나에 자신의 평생을 보내도 좋다고 생각하는 인물로 설정함으로써 모든 시스템이 작동하게 만들었다. 그렇다. 그는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하나만을 보고 돌진하는 인물이다. 그 외에는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다.
처음 몇 페이지를 읽다가 미묘한 부분이 있어서 다시 뒤로 돌려 보았는데 답을 얻을 수 없었다. 알고보니 그것이 이 작품의 결정적인 단서였다. 그런 장치는 다소 비겁하지 않은가 싶은데.. 아무래도 과거 명탐정시리즈에만 익숙해져있다보니 이런 식의 속임수에는 당황할 수밖에 없나보다. 작가가 모든 상황을 디테일하게 보여주고 독자로 하여금 함께 동참하여 풀어가도록 한다기보다는, 자신에게 불리한 것은 감춰두고 있다가 나중에 뻥하고 터뜨려 충격을 주는 것 같아 유쾌하지는 않았다.
비슷한 예로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라는 일본추리소설이 있는데, 이 작품은 결말부분에서 독자의 선입관을 배신하는 한문장으로 연결될 것 같지 않은 사건과 인물들을 연관시킨다. 놀랍긴 했지만, 추리소설이란 일종의 논리게임이라는 고정관념때문인지 이런 식으로 충격을 주는 것은 상황을 직접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작가가 제시하는 설명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독자들에게 속임수를 쓰는 것 같아, 높게 평가할 수 없었다. (궁금하신 분들은 직접 읽어보시기를..개인적인 취향에 의해 높게 평가하지 않지만 추리소설이라기보다 일종의 사회소설로 재미있게 읽힌다.)
헌신적인 용의자 X 와 천재적인 물리학자와의 추리대결은 볼만했다. 추리란 작가가 전지전능한 신이 되어 이리 맞추면 이렇게 되고, 저리 맞추면 저리 되는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이건 전적으로 독자의 껴안아야 할 맹점이다. 아무리 성실한 작가라 하더라도 모든 상황을 독자가 실제로 거기 있는 것처럼 묘사해주지는 못하므로. 더욱이 나처럼 추리에 영 소질이 없는 인물이라면 그냥 작가의 말을 받아들이는 것만으로 벅차다. 그럼에도 두 학자의 추리대결은 각각 한치의 오차도 없이 그럴듯한 추리를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훌륭하다. 이것으로 알 수 있는 것은 진실은 논리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것. 모든 논리적인 증거와 추리과정이 진실을 보장해준다면 수학자, 물리학자 둘 다 맞을 수 밖에 없고, 그것은 모순이 된다.
이 대결의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책 속의 내용을 인용하자면 '사람이 풀 수 없는 문제를 만드는 것과 그 문제를 푸는 것 중 어느 쪽이 어려울까?' 와 '혼자 생각해서 답을 제시하는 것과 남이 제시한 답이 옳은지 그른지를 판단하는 것 중 어느 게 더 간단할까?' 이 두가지 명제를 중심으로 대결이 압축된다는 것이다. 이 두가지 의문은 수학문제의 증명에 관한 것인데, 결국 그것이 두 사람의 인생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로써 두 사람은 첫번째 물음에서 발생하는 두 가지 경우와 두번째 물음에서 발생하는 두가지 경우, 네 가지 경우를 서로 다른 편을 택하며 대결을 해나가는 것이다.
누가 이겼는가는 말하기 힘들다. 하지만 현실적인 처지는 어떻든간에 감히 남들이 상상할 수도 없는 사랑을 보여준 용의자 X 에게 한표를 던진다. 오로지 남들이 풀 수 없는 수학문제에 시간을 쏟기를 바랐던 순수한 수학자에게 그런 사랑은 오히려 당연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순수란 무엇인가. 순수는 선과 동일어가 아니다. 순수는 불순물이 섞이지 않았기 때문에 단순하고 맹목적이며 그 때문에 자신이 추구하는 것 이외의 것은 아예 돌아보지도 않는다. 그것이 그의 사랑의 정체이며, 모든 사건의 전말일 것이다.
천재라고 불리는 작가. 어쩌면 작가 자신도 자신의 '천재'를 걸고 소설속의 천재들과 고독한 싸움을 벌인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복잡하고 치밀한 추리와 복선은 역시 작가의 솜씨를 여지없이 증명해내고있다. 이 작품이 감상적이라고 평하는 사람도 꽤 있다. 아무래도 '사랑'이 소설의 주제가 되기 때문인 듯 한데, 이 모든 절절한 사랑에도 불구하고 읽고나서 든 감정은 '건조함'이었다. 들끓는 사랑과 살인사건의 결합은 굉장히 감상적이고 격정적으로 흘러갈 수 있는데도 전체적으로 일부러 건조한 톤을 유지한 것 같다. 그것은 주인공이 워낙 자기표현을 하지 않아서 이기도 하지만, 여자와 주인공 사이에 사랑이라고 할만한 어떤 것이 교류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사랑이라는 것이 '감성'을 불어넣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 주인공을 수학자로 설정했듯이 모든 추리를 '말이 되게'하기 위한 장치의 하나라는 것이다.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작가는 '방과후'와 이번 작품을 통해 처음 만나보는 것이라 정확히 평하기는 어렵겠지만, 두 작품 모두 뛰어난 추리가 바탕이 되어있다는 점과 그런 것을 생각해내는 것은 웬만한 두뇌의 소유자가 아니라면 어려울 것이라는 것, 그런 지능을 바탕으로 썩 재미있고 독특한 작품을 써내는 작가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특히 '용의자 X의 헌신'이라는 제목은 소재뿐만 아니라, 내용의 주제까지 함축하는 제목으로 인상깊었다. (출판사에서 지은것일까? 혹은 작가가?) 나처럼 게으르게 내용을 이해하는데 급급한 독자보다 두뇌게임을 즐기는 독자라면 쌍수들고 환영할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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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품/교환 비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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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품/교환 불가사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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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 피해보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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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불 지연에 따른 배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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