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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06년 12월 18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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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309쪽 | 498g | 153*224*30mm |
ISBN13 | 9788954602587 |
ISBN10 | 895460258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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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시
32명의 예스24 회원이 평가한 평균별점
이 책의 1/3쯤, 그러니까 정확히 86페이지의 마지막 문장을 읽고서 나는 피식 웃고 말았다. 내가 얼마나 바보같던지.. 에구구, 이 책이 단편소설집이라는 걸 그제서야 알았으니! 3편의 단편소설을 읽을 때까지도 그것이 장편소설의 도입부, 즉 등장인물이나 배경을 설명하는 챕터들이라고 생각했었다. 변명을 둘러대자면 그만큼 소설에 온전히 빠져들었기 때문. 역시 작가 성석제는 달필이다. 독자가 정신 못차릴 만큼 매우.
모두 7편의 단편이 실린 [참말로 좋은 날]은 역설적이게도 참말로 안 풀리는, 참말로 운수나쁜 날들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내가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를 읽고 머리에 새겨둔 작가의 글이미지와는 많이 다른 느낌이 드니, 냉소적이고 실랄하고 비꼬는 그의 어투는 여전하지만, 굉장히 건조하고 메마르며 빠르고 짧은 톤은 새롭다. 마치 작심한 듯 7편 모두가 그러하다. 그 중 <악어는 말했다>가 그나마 제일 예전의 이미지와 가까운데, 또 그래서 제일 신선도가 떨어진다.
가장 독특했던 <집필자는 나오라>. 말 그대로 집필자가 누구인지 헷갈릴 정도로 흥미진진한 역사소설을 써냈다. 작가 성석제가 이런 소설을 쓰기도 하는구나, 싶다. 왕에게 상소를 올린 자들을 잡아들여 문초하는 과정을 얼마나 잘 묘사했던지, 그 급박한 상황과 왕의 진노함, 고문의 괴로운 비명이 영상처럼 생생하게 포착된다.
대부분 작가마다 독특한 자기만의 스타일이 있고, 그것이 좋아 그 작가의 작품이라면 늘 환영하는 독자가 있다. 하지만 작가의 새로운 면을 보고 읽는 것 역시 즐거운 일. 아마도 작가에겐 모험일 수 있겠지만 독자에겐 짜릿한 쾌감이다. 나는 오래도록 [참말로 좋은 날]의 쾌감을 즐기게 될 것이다.
『세상이 바뀌어도 사람은 그대로다. 그대로 있다는 기분이 든다. 생활과 방편이 바뀌어도 내가 아는 사람들 얼굴은 그대로다. 나아지는지 나빠지는지 알 수 없다. 빠른 건 언제나 같다. 내가 바뀐 것인가. 그럴지도 모른다. 바뀌는 게 당연한가. 그럴지도 모른다.』- 성석제
우리는 문학작품을 통해서 작가의 상상 속에 재탄생한 인물들과 현재의 내 삶을 견주어 볼 수 있고 가슴깊이 드리워진 추억과 그리움의 책갈피를 펼치듯 과거와 현재 그리고 다가올 미래에 대한 예견도 해볼 수 있습니다.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흐르는 세월, 그 끝없는 행로에서 우리는 모두가 손꼽아 인정하는 주인공이 될 수도 있지만 누군가의 기억에서 지우고 싶은 존재로 남을 수도 있습니다. 작가 성석제가 들려주는 7가지의 스토리를 통해 과연 내 모습은 누군가를 통해서 형상화되고 있는지를 각자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최근에 그가 써온 중단편 7편이 한권의 책으로 엮어져 있는데 “참말로 좋은 날”이라는 제목과 상반되는 삶을 살아가는 주인공들을 통해 인생의 희노애락(喜怒哀樂)을 느끼게 됩니다. 과거를 추억하고자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함께 찾아간 장소는 세월의 흐름 앞에 많이 변모하여 종전의 모습은 찾아 볼 수가 없고 오직 내 눈앞에 보이는 것은 낯선 정경일 뿐일 때 이 얼마나 안타깝고 가슴 아픈 일인가요. (고욤과 환한 하루의 어느 한 때)
일상생활에서 숨쉬기, 걷기, 심호흡, 복식호흡을 생활화하며 본인 스스로 무병장수의 비법을 배우고자 세계를 돌아다니며 채식을 통한 조화로운 삶의 전도사가 되고자 노력하는 인물 박희제의 어이없는 사고를 그린 이야기(고귀한 신세)를 통해 우리는 무엇을 위해 이토록 빠르게 변화하는 삶의 기로에서 무엇을 갈구하며 살아가는 것인지 스스로에게 묻게 됩니다.
좀 더 색다르게 다가온 이야기(집필자는 나오라)는 조선시대 궁중을 배경으로 인현왕후 폐비에 반대하는 상소를 올린 선비 박태보가 임금의 잔인한 고문 속에서도 진실만은 왜곡하지 않겠다는 자기희생의 절개를 보여준 이야기입니다.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타인을 이용하고 이득을 챙기려는 이들과는 사뭇 다른 그 시대의 충직한 선비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는 곧 인간의 진정한 가치와 본성이 무엇인지를 우리 스스로 깨닫게 해주는 것이 아닐런지요.
선배와 후배, 동료인 이들이 함께 한 술자리에서 서로에 대한 격식을 잃은 채 무례한 행동을 버릇처럼 일삼는 광경을 빗대어 보여주는 이야기(악어는 말했다)를 통해 현재 우리의 헐벗은 인간관계를 돌아보게 합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조차 흐려지게 하는 세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한 읽는 내내 가장 마음을 아린 두 편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서로에 대한 무관심과 악감정으로 왕래가 뜸한 형제. 그들이 좀 더 가깝게 왕래하며 지내길 바라는 여동생 계숙. 그 어디에도 자리 잡지 못하고 사는 큰 오빠에 대한 측은한 마음에 이민 간 여동생은 큰 오빠에게 집을 투자하려고 하고 이를 질투한 둘째 오빠는 이 기회마저 이용해 투자 수익을 챙기려합니다. 한편, 한 집의 가장이기도 한 원호는 택시에서 두고 내린 여동생의 휴대폰 때문에 어느 날 자신의 아들과 불꽃 튀는 접전을 벌입니다. 가벼운 언행으로 시작된 싸움은 예상치 못한 결과를 야기하는 이야기(아무것도 아니었다). 재산 앞에 형제의 존재 가치도 사라지고 자식들에게 가장의 권위마저 잃어버린 아버지의 모습이 우리들의 모습을 빗댄 자화상같이 느껴져 안타깝고 또 씁쓸하기만 합니다.
자신은 영세민이 아닌 중산층이라 말하는 무능한 가장은 어느 날 집 전세금을 주인에게 떼일 상황에 놓이자 해결하기 위해 동분서주 합니다. 하지만 아내마저 청력을 잃을 위기에 놓이고 점차 경제적인 어려움에 직면해 더 이상 손쓸 방법이 없자 자존심도 내놓은 채 자신의 후배에게 손을 뻗어야 할 처지인 신세에 놓입니다. 궁핍한 생활의 연속이지만 절대 포기할 수 없는 끝까지 지켜야 하는 내 가족에 대한 이야기(저만치 떨어져 피어 있네)까지.
삶의 어두운 고비마다 우리는 본연의 모습을 잃고 삶의 수레바퀴를 제어하지 못한 채“참말로 슬픈 날”의 전형을 맞닥뜨리게 됩니다. 다만 우리에게는 생을 함께 할 가족과 친구, 동료 더 나아가 내가 지켜야 할 본분이 있기에 멈추지 않고 나아가야 합니다. 인간의 숭고한 가치와 존재 의미, 계속되는 관계들의 연관성을 토대로 진정 원하는 자아상을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변 여건으로 인해 환경이 변하더라도 과거와 현재의 경계선 상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은 우리의 선한 본성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삶의 언저리마다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울 지라도 내일의 태양은 뜹니다. 그 날이 진정 “참말로 좋은 날”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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