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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06년 12월 3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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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182쪽 | 크기확인중 |
ISBN13 | 9788995895900 |
ISBN10 | 899589590X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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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9월 20일 ~ 2024년 11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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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9월 30일 ~ 2024년 10월 31일
2024년 10월 01일 ~ 2024년 10월 31일
상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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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들 중에 혹 어머니를 모시고 사시는 분이 계신지요? 아마 없지요. 저도 어머니를 모시고 살지 못합니다. 그런데 제 어머니는 고향에 계시지 않고 적멸보궁 월정사에 계십니다. 어디에 안치했는지 모른다는 부처님 진신사리를 찾고자 함인지, 그 영험함에 못난 자식들 지난날 못된 짓 대신 빌고 앞날 복 받고 살라고 비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번에 함민복 시인의 산문집이 나왔습니다. 무척 가난한 시인이라는 것과 강화도 동막리에 들어가 살고 있다는 점 정도만 알고 있습니다. 그 시인이 쓴 <눈물은 왜 짠가>를 읽고 뭉클했던 기억이 이 책을 펼치게 했습니다.
지난 여름이었습니다 가세가 기울어 갈 곳이 없어진 어머니를 고향 이모님 댁에 모셔다드릴 때의 일입니다 어머니는 차 시간도 있고 하니까 요기를 하고 가자시며 고깃국을 먹으러 가자고 하셨습니다 어머니는 한평생 중이염을 앓아 고기만 드시면 귀에서 고름이 나오곤 했습니다 그런 어머니가 나를 위해 고깃국을 먹으러 가자고 하시는 마음을 읽자 어머니의 주름살이 더 깊게 보였습니다 설렁탕집에 들어가 물수건으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습니다 "더울 때일수록 고기를 먹어야 더위를 안 먹는다 고기를 먹어야 하는데...... 고깃국물이라도 되게 먹어라"
설렁탕에 다대기를 풀어 한 댓 숟가락 국물을 떠먹었을 때였습니다 어머니가 주인아저씨를 불렀습니다 주인 아저씨는 뭐 잘못된 게 있나 싶었던지 고개를 앞으로 빼고 의아해하며 다가왔습니다 어머니는 설렁탕에 소금을 너무 많이 풀어 짜서 그런다며 국물을 더 달라고 했습니다 주인 아저씨는 흔쾌히 국물을 더 갖다주었습니다 어머니는 주인 아저씨가 안 보고 있다 싶어지자 내 투가리에 국물을 부어주셨습니다 나는 당황하여 주인 아저씨를 흘끔거리며 국물을 더 받았습니다 주인 아저씨는 넌지시 우리 모자의 행동을 보고 애써 시선을 외면해주는 게 역력했습니다
나는 국물을 그만 따르라고 내 투가리로 어머니 투가리를 툭, 부딪혔습니다 순간 투가리가 부딪히며 내는 소리가 왜 그렇게 서럽게 들리던지 나는 울컥 치받치는 감정을 억제하려고 설렁탕에 만 밥과 깍두기를 마구 씹어댔습니다 그러자 주인 아저씨는 우리 모자가 미안한 마음을 안 느끼게 조심, 다가와 성냥갑만 한 깍두기를 놓고 돌아서는 거였습니다
일순, 나는 참고 있던 눈물을 찔끔 흘리고 말았습니다 나는 얼른 이마에 흐른 땀을 훔쳐내려 눈물을 땀인 양 만들어놓고 나서, 아주 천천히 물수건으로 눈동자에서 난 땀을 씻어냈습니다 그러면서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눈물은 왜 짠가'
한동안 저를 먹먹하게 했던 활자들이 이제 <미안한 마음>으로 옮겨와 제 등을 다독거립니다. 제가 분회 선생님들께 드리는 편지였으면 좋겠는데, 저는 이만큼 땅에 차지게 발 딛고 살지는 못하니 그런 글로 선생님들 위로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다만 늘 도둑질하듯 남의 글로 생색만 낼 뿐입니다.
-n형에게
새해에 고향은 다녀왔는지요. 명절날 고향 가는 길이면 제가 생각나는지 고향에 내려가냐고 늘 전화를 주셨죠. 올해 저는 고향에 다녀왔습니다. 고향 가다가 여동생 차를 타고 가는 중이라고 휴게소에서 전화를 주곤 하셨는데 소식이 없었음을 이제 겨우 생각하고 편지를 씁니다.
지난번 어깨 다친 일 때문에 고향을 못 가신 것은 아닌지요. 형도 저처럼 혼자 살아 파스 붙이기가 여간 힘들지 않을 텐데. 어깨가 결릴 때 파스를 방바닥에 놓고 손거울 보며 낙법하지 마세요. 한 장 남은 파스 엉뚱한 데 붙어버리면 슬퍼지니까요. 파스를 양면 테이프로 벽에 붙여놓고 등짝을 조정해서 붙여보세요. 좀 나을 겁니다. 빨리 찾아뵙고 파스라도 한 장 붙여 드려야 하는데, 사는 게 이리 맘과 다릅니다.
형편이 되지 못해 명절에 고향 못 간 친구들과 함께 형 방에 모여 창틀레 걸린 달 쳐다보며 지냈던 일이 엊그제 같은데 우리가 벌써 오십이 다 되어가는군요. 형님은 그동안 부모님 두 분이 다 돌아가셨으니 고향에 갔었어도 쓸쓸했겠네요. 형이 어깨를 다치며 깐 전선줄이 세상에 따뜻한 빛을 선사해주는 것처럼 어렵게 살던 나를 다독여주던 형의 마음이 내 마음에 따뜻하게 빛나는 순간 잦습니다.
형이 올해에는 마음 따뜻하고 이해심 많은 여자 만나 행복한 생활 꾸리시길 빌겠습니다. 눈빛 한번으로 근육통 풀어주고 말 한마디로 맘 싱싱 푸르게 만들어주는 킹카 여자 친구 만나라고 정성 들여 빌어볼게요.
날씨가 추우니 곧 봄이 오겠지요. 정릉 계곡에 벚꽃 흩날리던 봄이 생각나는군요. 형 우리 봄에 한번 만나요. 제가 술 한잔 살게요. 병술년이라고 병술 먹지 말고 기분 좋게 꽃술 몇 잔 들어요. 이곳 섬에서 숭어회도 좀 떠갈게요. 형도 열심히 살라고 제 등짝 한번 탁, 쳐주세요. 형의 '손 파스'만 한 힘이 어디 또 있겠어요.
소설가 박민규가 인상적으로 함민복 시인을 소개한 글이 있어 같이 붙입니다.
이 순간 지구에서 할 수 있는 근사한 일 몇 가지는 다음과 같다. 파리 라세느에서 샤또 마고를 곁들인 오리요리를 먹는 것, 그리스 산토리니의 해안에서 지중해의 풍광을 온몸으로 느끼는 것, 인도 바라나시의 들판에 누워 밤하늘을 보며 잠드는 것, 오스트리아 국립극장에서 비엔나 필이 연주하는 모짜르트를 듣는 것, 몰디브의 푸른 물 속에 자신의 전부를 담그는 것, 삿뽀로의 폭설을 지켜보며 북해도 대게를 맛보는 것, 그리고 돌아와 함민복의 시를 읽는 것이다. 이중 한 가지를 또 고르라면 나는 주저없이 '함민복을 읽는 일'을 선택할 것이다. 가장 근사한 일이란, 모쪼록 그런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 지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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