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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발행일 | 2007년 01월 0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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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291쪽 | 476g | 132*195*20mm |
ISBN13 | 9788971847015 |
ISBN10 | 89718470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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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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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어김없이 지하철 1호선을 타기 위해 버스에 오른다. 출근시간 체험 삶의 현장은 바로 여기에 있다. 만원버스에서 조금 더 안정적인 자세를 잡기 위해 안면몰수도 감수한다. 때로는 운전기사의 호통을 이어폰으로 무시한 채 뒷문 승차도 서슴지 않는다. 이렇게 간신히 지하철 역 입구에 도착하면 타블로이드 신문에 실린 현실을 무시한 채 읽고 있는 책을 손에 들고 노란선 앞에 적절한 포지션을 잡는다. 조금 덜 찬 차량이 들어오면 연결구 쪽 자리를 잡고, 만원이라면 출입문 쪽에 자리를 잡기 위해 소박하지만 치밀한 계산을 하는 것이다. 이렇게 전쟁을 치루고 나면 책을 펼치고 코를 박는다. 이것이 내 하루의 시작이다.
루브르가 있고 오르세가 있는, 파트릭 모디아노가 거니는 프랑스라는 나라에서 벗어난 작가의 야간열차 기행은 내게 다소 참담함까지 느끼게 한다. 떠나지 못하는 삶, 지겹도록 지치게 하는, 날이 선 작두 위에의 일상에 무슨 애착이 있기에 난 떠나지 못하는 것일까? 어쩌면 책에 대한 이 열정은 벗어나지 못하는 어리석은 삶에서 누군가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통신장치에 대한 집착일지도 모른다. ‘나를 구해줘’, ‘나를 데려가줘’ 이런 외침을 받아주는 유일한 존재이기에 말이다.
작가에게 야간열차는 여행 이상의 의미가 있는 듯 보인다. 어쩌면 그것은 ‘영감’ 그 자체인지도 모른다. 열차 속에서, 열차가 지나치는 풍경 속에서, 열차가 데려다준 살풍경 속에서 그는 영감을 얻는다. 그 영감이 어찌나 섬세했던지, 화자의 모습을 여성으로 착각하는 고정관념에서 허우적대기도 했다. 삶에 있어 중요한 요인 중 하나가 바로 이 ‘영감’이 아닐까? 고된 삶을 채찍질하기위해 수많은 이유를 들어 동기부여를 하지만 여기에 영감은 결여되어 있다. 그 달의 카드 값을 매우기 위한 급여명세서, 최소한 뒤처지지는 말아야지 하며 발버둥치는 직장 내의 경쟁과 흔해빠진 재테크. 이런 것들이 영감을 가져다 줄 순 없지 않은가.
현대 사회의 고질병, 스트레스. 이 시쳇말처럼 나는 지쳐버렸다. 비단 일이 힘들고 사는 게 힘들어서라기보다 아무런 감흥이 없는 삶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요즈음 여행에세이가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오는 것은? 그래 떠나고 싶은 것이다. 나와 같은 이유에서건 아니면 훨씬 긍정적인 의미에서건 우리는 떠나고 싶은 것이다.
작가가 말하는 여행은 시간의 소모가 아닌, 치유의 과정이다. 마땅히 무엇인가를 찾아야한다는 강박관념을 버리고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과거로의 여행이다. 그 과거가 현재로, 그리고 미래로 연결되어 있는지 조차 중요하지 않다. 멈춰서있지 않고 떠나는 여행은 현실의 시간에서의 도피가 아닌, 오히려 시간의 저축과 같다. 우리가 흔히 현실의 삶을 잊기 위해, 새로운 세상을 만나기 위해 떠나는 여행과는 조금 의미가 다르다. 그런 여행은 언젠가 돌아와야 할 일상을 의식하고 있지만 야간열차는 그렇지 않다. 일상의 자신과 분리된 정지된 시간으로의 여행은 찾으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의식할 수 없는 우리 인생의 보너스 같은 존재란 것이다. 야간열차는 알려지지 않은 경제논리로 우리의 시간에 큰 이자를 붙여 인생의 통장잔고에 차곡차곡 시간을 쌓아준다.
여행이 외롭지 않은 이유는 마음 맞는 일행 때문만은 아니다. 이 야간열차에는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수많은 친구들이 동행한다. ‘카프카’와 ‘뒤렌마’트. 이들은 내게도 친구이다. ‘히치콕’, 그 역시 학창시절 나의 절친한 친구였다. 작가 에릭 파이의 여행에 동승한 그의 친구들이 반가운 건 이 때문일 것이다. 그들은 내게도 친구이기에 말이다. 물론 처음 만나는 친구들이 더 많다. 그렇기에 여행은 즐거운 건지도 모른다. ‘카프카’가 내린 역에서 교체하듯 올라탄 생경한 이름의 여행자들을 감히 친구라고 불러도 좋으니 여행의 묘미란 언제나 상상 이상의 것이다.
‘뒤렌마트’의 <노부인의 방문>처럼 한을 안고 찾은 것은 아니지만 야간열차가 내려준 곳은 그만큼의 황폐함이 있기도 하다. 안위만을 따진다면 이 여행, 수많은 친구들과 함께 했음에도 고통의 연속이다. 환희의 흔적을 찾아, 잃어버린 도시를 찾아, 상처를 찾아 가는 과정에서 인간에 지치고 불면증의 미열에 달뜨기도 한다. 그래서 찾은 그곳엔 그 환희가 종적을 감췄고, 찾고자한 흔적의 실체는 더 요원하다. 아무리 눈을 부릅떠도 소용없다. 어쩌면 그것은 여행자의 욕심이었으리라. 때문에 이 여행은 눈으로 발걸음으로 하는 여행이라기보다는 사고의 여행인지도 모른다. 광활한 시베리아에서, 유라시아 횡단에서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사고의 실타래를 움켜쥐고 전전긍긍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때문에 세상의 끝에서 그 끝을 확인할 수 없었던 것처럼 그의 사고의 여행 또한 그럴 것이다.
월요일이면 더 좁게 느껴지는 지하철에서 나는 작가와 함께 야간열차를 상상했다. 잠시나마 새로운 세상을 보며 ‘숨 좀 돌려야지’ 하며 따라나선 여행이었는데, 한가로운 산책과는 거리가 멀었다. 나는 여전히 만원버스와 지하철에서 콩나물의 역할에 충실하고 있다. 어쩌면 이 역할극은 언제고 끝나지 않는 인생 자체가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우리는 늘 서로 다른 의미로 여행을 꿈꾼다. 만약 그 여행이 휴식의 의미가 아니라면 야간열차가 이끌어줄 사고의 여행을 떠나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나는 이제 그 여행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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