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언더그라운드<br/>2. 기습<br/>3. 잔혹한 사냥<br/>4. 무법지대<br/>5. 길 잃은 자들<br/>6. 호랑이굴<br/>7. 변장<br/>8. 하이에나

‘태산회’ 부두목 신태곤은 일을 성사시키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강력한 추진력과 함께 조직원들을 지휘하는 리더십 또한 뛰어나다. 정글의 논리가 철저하게 적용되는 ‘밤의 세계’에서 살아남는 길은 오직 힘을 키우고 조직원들을 잘 관리해야만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신태곤은 조직이란 일개의 기업과 다름없다는 마인드로 무장하고 있으며, 부하들에게는 철저한 상명하복의 자세와 희생정신, 성실성을 갖출 것을 주문한다.
강남 일대를 장악하고 있는 최대 폭력 조직 ‘태산회’는 신태곤과 장두익이 만든 ‘태두파’와 정백의 ‘장승백이파’, 양성수의 ‘전갈파’가 합쳐져 결성되었다. 태산회의 보스는 80년대의 마지막 협객 허기욱이다. 허기욱은 낭만파 시대의 주먹답게 아무리 돈이 된다고 해도 할 수 없는 사업이 있다. 신태곤과 허기욱의 의견이 팽팽하게 맞서는 지점도 바로 그 부분이다.

신태곤은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마약이라도 팔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허기욱은 다르다. 신태곤은 마약 사업에 손을 대자고 했다가 허기욱의 반대에 부딪치게 된다. 이때부터 신태곤은 허기욱을 제거해야겠다고 결심한다. 신태곤은 허기욱이 은퇴를 고려중이며 후계자로 양성수를 상정해두고 있다는 것 또한 알고 있다.

신태곤은 불법음반을 제작해 팔고 있는 후배 홍지만에게 사람의 음성 변조가 가능한지를 타진한다. 허기욱의 가짜 유언이 담긴 녹음 테이프를 제작하려는 것이다. 허기욱의 목소리를 비밀리에 녹음해온 신태곤은 허기욱의 유언을 만드는 작업에 착수한다. 결국 허기욱의 가짜 유언이 담긴 테이프를 만들지만 경찰이 불법 음반 제작 공장을 급습하는 바람에 쫓기는 처지가 된다.
도주 중에 룸살롱 ‘화성’에 뛰어든 신태곤은 마담 배은수에게 테이프를 맡긴다. 배은수는 신태곤의 고향 후배이기도 하다.

가까스로 경찰의 추적을 뿌리친 신태곤은 테이프의 되찾기 위해 배은수에게 연락을 취한다. 그러나 테이프를 핸드백에 넣어 신태곤에게로 오던 배은수는 그만 날치기를 당하게 된다. 만약 테이프가 허기욱이나 양성수의 손에 들어가게 되면 ‘밤의 세계’에 한차례 피바람이 몰아닥치게 되는 절체절명의 순간이다.

배은수의 핸드백을 날치기한 사람은 오수아이다. 가난한 산동네에 사는 오수아는 애인 한정우와 함께 살려면 돈이 필요한 실정이다. 한정우는 고아로 세 살 때부터 절에서 살다가 내려온 순진하고 선한 청년이다. 어머니를 따라 절에 몇 번 갔던 오수아는 한정우를 만나게 되고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된 것이다.

오수아는 한정우의 반대를 무릅쓰고 배은수의 핸드백을 날치기했다가 추격을 받게 되고 결국 신태곤의 포로가 되고 마는데…….

《대부》《좋은 친구들》《원스 어펀 어 타임 인 아메리카》 같은 할리우드 영화를 보면 코트깃을 올리고 중절모를 눌러쓴 갱들을 대할 수 있다. 이 영화들은 범죄와 파멸이 반복되는 갱들의 운명을 자동차 브레이크의 파열음과 총소리가 뒤섞인 음향, 희미한 담배연기가 깔린 듯한 어둡고도 음울한 영상으로 표현해 필름 누아르라고도 불린다.<br/><br/>갱스터무비는 할리우드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인기 장르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국내 최초로 관객 일백만 명 시대를 연 《장군의 아들》이나 최다 관객 기록을 보유한 영화《친구》등은 격동의 한 시대를 조망하는 시대극이기도 하지만 화려한 액션을 선보여 인기를 얻은 한국판 갱스터무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총격 장면을 주로 보여 주는 할리우드식 갱스터무비와는 달리 우리의 경우 무술 격투 장면을 주로 다룬다는 점에서 차이는 있다. <br/>그런 까닭에서인지 우리나라에서는 갱스터라는 말 대신 협객이라는 말을 즐겨 써왔다. 대표적인 협객소설인 홍성유의 『장군의 아들』, 이원호의 『밤의 대통령』 등은 초특급 밀리언셀러로 기록되며 장안의 지가를 올린 바 있다. <br/><br/>신예작가 백종민이 쓴 『은상어』(은행나무 간)는 갱스터소설이다. 『장군의 아들』이나 『야인시대』처럼 역사물이 아니라 최근의 암흑가를 생생하게 다루고 있다는 점이 특색이다. 생존경쟁이 치열하게 펼쳐지는 암흑가의 현실이 무술 실력이 뛰어난 청년 한정우의 행적을 통해 실감나게 파헤쳐지고 있다. 격투장면 묘사에 치중하기 쉬운 갱스터소설임에도 이 소설은 권력과 야망을 향한 인간군상의 욕망과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매우 진지하게 다루고 있어 흥미롭다.<br/><br/>이 소설에 등장하고 있는 폭력배들은 주먹만으로 승부를 결했던 낭만파 시대의 협객들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조직의 힘을 결코 이용하지 않고, 일대일로 대결하고 승부에서 지면 깨끗하게 물러났던 과거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한밤에 기습을 하거나 어떤 수단을 사용하더라도 이기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이다. 김두한, 시라소니 같은 협객들의 시대와 최근의 ‘밤의 세계’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살펴보는 것도 대단히 재미있다. <br/><br/>과거에는 형과 아우로 상하관계를 설정했던 것과는 달리 요즘은 일반 기업과 다름없는 조직체계를 갖추고 있다. 과거에 큰형님으로 불렸던 조직 보스는 이 소설에서 사장이나 회장으로 불린다. 중간 보스급은 전무나 상무, 행동대장은 영업부장이 맡는다. 조직의 서열은 실력과 철저한 공과에 의해서 결정된다. 사업도 규모가 방대해 대기업의 수준에 육박하고 있다. 이들의 공략 대상은 합법적이면서도 정체가 드러나지 않는 사업들이다. 경제가 발전하면 암흑가의 조직이 기업형으로 바뀌는 것은 당연하다. 합법을 가장하지 않으면 생존이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br/><br/>암흑가 보스들은 정치권, 검찰, 경찰에 전방위적인 로비를 펼쳐 조직의 안위를 확보하고 벤처 투자, 건설업, 연예 사업 등 합법 사업에 적극 뛰어든다. 그러나 여전히 조직의 질서는 약육강식, 적자생존으로 이루어진 정글에서와 같이 힘에 의해서 유지된다. 실력을 발휘하지 않고서는 조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점은 일반 기업의 인사 제도와도 비견해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