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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발행일 | 2007년 05월 1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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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735쪽 | 832g | 크기확인중 |
ISBN13 | 9788991124530 |
ISBN10 | 8991124534 |
2024년 09월 09일 ~ 2024년 12월 31일
2024년 10월 04일 ~ 2024년 11월 30일
뉴욕타임즈 21세기 최고의 책 100대 도서 『파친코』, 『채식주의자』 선정
2024년 07월 15일 ~ 2024년 11월 08일
2024 노벨 경제학상 대런 아세모글루 사이먼 존슨 제임스 A. 로빈슨
2024년 10월 15일 ~ 2024년 11월 15일
2024년 11월 01일 ~ 2024년 11월 30일
상시
11명의 예스24 회원이 평가한 평균별점
전쟁에 대한 환상을 버린지는 오래되었다. 어린시절 전쟁과 서부영화에 골몰하던 때가 있었지만 영웅들의 이면에 드리워진 일반의 비참한 참상을 인식하는데 오래 걸리진 않았다. 레마르크의 소설들, 끔찍하고 잔혹한 광기를 사실적으로 묘사한 몇몇 영화들, 우리에게 잊혀지지 않을 6.25에 대한 기록들,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분에게 들은 비현실적이고 불가해한 이야기들이 그렇다.
체험해 보지 못한 전쟁은 결코 이해할 수 없을 테지만 전쟁이 삶과 문화와 개인을 철저히 말살할 수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 새삼스레 전쟁에 관한 또다른 기록을 접하고 미묘한 느낌이 든다. 그건 일종의 흥분이다. 전쟁을 고발하고 반대하는 것이라도 그건 늘 뭔가 흥분을 준다. 살이 터지고 뼈가 녹아 내리는 전쟁이야기가 그토록 흥미로운건 전쟁이 인간의 문명과 함께 영원히 공존할 것이라는 상징인가, 인간내면의 잔혹성인가. 본성적 문제인지, 현상적이고 심리적 문제인지 여전히 판단할 수 없다.
전쟁이 끝난지 20여년 만에 출간된 이 책은 무언가 의문점을 던진다. 왜 패전한 독일군 병사의 기록인가? 기록은 승자의 것이 아닌가, 안네의 일기는 죽은 소녀의 기록이지만 승자에게 남겨짐으로써 패자인 독일의 잔혹한 범죄를 고발하고 있다. 레마르크의 소설들도 독일군이 주인공이지만 나찌와 히틀러를 옹호하진 않는다. 인물들은 그저 전쟁과 체제하의 희생자일 뿐이다. 그러나 이건 소설이 아니다. 기록이다. 어쩌면 오류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러나, 어떤 다큐멘터리도 이보다 더 잔혹한 현장을 보여줄 순 없을 것이다. 어떤 주관도 배제한 단순한 기록일 뿐인가, 그럴수 없다. 주관적 체험이 빠진 기록이라면 그건 아무런 감흥도 주지 못할 것이다. 16세의 나이에 자원입대한 주인공이자 저자는 전쟁이 유일한 꿈일 수 밖에 없는 환경에 처한 것 같다. 전쟁이란 모든 가능성을 뭉뚱그려 파괴시켜 버린다. 할 수 있는건 병사가 되어 전쟁터에 가는 것이다. 그러나, 독특한 환경이 눈에 들어 온다. 프랑스인 아버지와 독일인 어머니를 둔 프랑스 출신으로 프랑스어가 자유롭고 독일어는 서툴다. 굳이 독일군에 입대할 필요가 있었을까? 왜 그는 프랑스를 위해 싸우지 않았을까?
어쩌면 승자 입장에서 비난하기에 좋은 이유일 수 있다. 당시 승승장구하던 독일군이 멋있게 보였을 수도, 나찌의 특기인 전형적인 선전선동에 넘어갔을 수도 있다. 그러나 판단력이 미숙한 10대의 청소년에 불과했으니 용서 받을 수 있을지 모른다. 어떻든 그 미성년자는 그의 독일군 동료들과 함께 훈련을 받고 군수품을 수송하며 소련군과 대치하고 있는 동부전선으로 향한다.
그가 전쟁에 참여했을때 대세는 이미 기울었다. 연합군에 밀리기 시작한 독일군은 그러나 호락호락 밀리지 않고 반격을 시도하며 서서히 퇴각할 운명이었다. 마치 기승전결의 과정을 거치듯 전쟁의 참상은 서서히 그 잔혹함과 끔찍한 모습의 강도를 높여간다. 그런 상황에서도 보병으로 지원하고 받은 휴가기간중 연합군의 공습에 파멸해가는 베를린에서 독일 소녀와 사랑에 빠진다. 생존이 불확실하고 절실한 마당에 사랑이란 자체가 어울리지 않지만 꿈이 필요한 10대의 그 청년에게 사랑만큼 희망을 주고 살아야할 이유를 주는 것도 없을 것이다. 이런 전개는 문학작품보다 더 문학적으로 보인다. 그리고, 다시 동부전선, 치열한 접전, 퇴각, 그 속에서 벌어지는 상상하기 힘든 상황들, 전쟁이야기는 늘 흥미롭지만 두 번은 반복하고 싶지 않은 끔찍함이 들어 있다. 기이한건 여기엔 10대 소년병의 목소리가 생생히 들어있다는 것이다. 마치 당시 썼던 일기처럼, 어른스럽고 비판적이고 후회스러운 감정으로 회상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순간순간 보이던 그 상황과 느낌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그저 순진무구한 청소년의 바램과 세상에 대한 단편적 인식, 주입한 대로 보는 그런 단선적 시각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전쟁을 수행하고 그 끔찍함에 몸부림치며 발버둥치지만 전쟁을 후회하지도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인식하지 못하는 일개 사병이 있다. 장교들처럼 비전을 갖고 전투에 임하지도 다 큰 어른들처럼 집에 돌아가 생업과 가족을 책임질 의무도 없다. 집에 돌아갈 수 있다면 놀라운 일이겠지만 그는 전쟁외에 아무것도 배운게 없을 것이다. 이런 순진한 미성년적 시각이 오히려 전쟁의 상황을 묘사하는데 탁월한 효과를 발휘한다. 소모품처럼 쓰러져 가는 보잘 것 없는 사병들에게 보여지고 체험되는 전쟁의 실상이다. 사람들이 전사하고 학살되어지고 또한 반대로 그렇게 행동하지만 처해진 현실일 뿐 벗어날 가망성이 없다. 오직 목숨만큼 소중한건 이념과 철학이 아니고 그저 동료와 조국이다. 그 조국이 독일이든 소련이든 상관없다. 그저 잠시의 시간이라도 잠을 자며 다른 꿈을 꾸거나 돌아갈 고향을 상상할 뿐이다. 전쟁이 평범한 한 개인에게 선사해줄 악몽이 될 선물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700여 페이지에 걸친 지루하지만 흥미로운 전쟁의 묘사는 이보다 더 사실적으로 상황을 잘 보여줄 수 없을 것 같다. 전쟁을 담아내는 이런 책을 볼때마다 삶이 전쟁이라고 외쳐대는건 너무 호사스러운 느낌이 든다. 사는게 어렵긴 하지만 잠시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상상할수도 없는 시간들에서 잠시 벗어난 시공간을 누리고 있음을 감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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