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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발행일 | 2007년 05월 1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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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343쪽 | 894g | 188*257*30mm |
ISBN13 | 9788972207177 |
ISBN10 | 897220717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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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철근과 콘크리트가 만난 살풍경한 성냥갑 속에 살고 있지만 어린 시절엔 흙냄새, 나무냄새가 물씬 풍기는 여유를 만끽할 수 있었다. 지금처럼 TV를 틀면 하루 종일 만화가 나오는 채널이나 현란한 컴퓨터 게임이 없었던 그때, 개구쟁이들의 즐거운 놀이중 하나가 새총을 만드는 일이었다.
그 시절 새총은 단순히 새를 잡기 위한 도구가 아닌 소년의 자존심이었다.― 사실 이 새총으로 새를 잡는다는 것은 가당치도 않은 일이다. 다른 아이들보다 잘 만들어진 새총을 가지기 위해 미묘한 경쟁을 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좋은 새총을 가지기 위한 조건이라면 여러 가지가 있는데, 솜씨 좋은 아버지 밑의 아이는 언제나 선망의 대상이었다. 솜씨 좋은 아버지는 곧 솜씨 좋은 목수인 까닭이다.
물론 새총을 만드는데 일가견이 있다고 해서 그 시절 아버지를 목수라 부르기엔 다소 무리가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명절에 산소를 찾을 때마다 주변에 당신이 심었다는 나무 이름을 줄줄이 꿰고 나무라기보단 식물줄기에 가까운 개나리나무로 멋진 새총을 만들어주던 아버지는 나무의 품성을 아는 어른이자 목수임에 틀림이 없다.
이 책 <목수 김씨의 나무작업실>(시골생활. 2007)은 바로 그런 목수의 이야기이다. 목물, 곧 나무의 품성을 깨우쳐가는 목수 김진송. 그는 나무의 결을 그대로 살린 작품을 만드는 예술가 이전에 나무를 배운다.
흔히 목수라 하면 장인정신을 떠올리고 그것은 그네들의 고된 작업으로 탄생한 창조물로 귀결된다. 공장의 생산라인에서 찍어내는 기성품은 흉내 낼 수 없는 유일무이한 목수의 흔적. 때문에 목수의 손을 거친 나무는 작품이라 불리고 세월의 흔적까지 더해져 그 가치를 인정받는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가치 있는 물건을 빼어난 재능과 각고의 노력으로 만드는 것만으로 목수를 말할 수 없음을 알게 된다.
올곧은 기개를 상징하는 소나무에서부터 이름을 알 수 없는 수많은 나무. 이들은 나무라는 명칭으로 묶여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저마다 성질이 다르다. 책상이나 의자를 만들어두면 평생을 써도 끄떡없는 나무가 있는가하면 힘없는 대패질에도 바스러지거나 뒤틀려 있어 도저히 쓸 수 없는 나무도 있다. 어디 그뿐인가 베는 시기와 관리상태에 따라 같은 나무라도 판이한 성격을 드러내기도 한다.
작가는 이렇게 개성이 강한 나무를 만나게 된 인연에서부터 각각의 성격을 알아가는 과정을 통해 나무를 만지고 사는 인생을 말한다. 편리한 기계를 사용한다면 십수분만에 끝날 일에 하루를 바치기도 하고 서투른 욕심에 질 좋은 나무를 망치기도 하며 작가는 나무를 배우고 인생을 배운다.
수많은 종류에 따라 품성이 다른 나무 이상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이 세상에 고정된 진리란 없을 것이다. 또한, 단 한번으로 인생의 해답이 뚝딱 나오는 깨달음도 없을 것이다. 익히 그 성질을 알고 있어 익숙한 대패질로 작업을 시작했지만 만든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갈라지는 나무처럼 말이다.
어쩌면 목수라는 업은 이렇게 변덕스러워 정답이 없는 나무의 비위를 맞추는 일인지도 모른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나날이 변화하는 혼란스러운 삶에서 존재하지 않는 정답을 얻기 위해 무엇인가에 비위를 맞추며 살아가야 하는지도 모른다.
비위를 맞추는 일은 상당한 인내를 필요로 한다. 수틀린다고 해서 토라져 이내 외면한다면 그것은 시도하지 않는 편이 낫다. 하지만 그 고단한 길을 가는 사람은 점점 줄어들고 그 빈자리를 멀리보이는 장애물에도 몸을 사라는 사람들로 채워지고 있다.
이름모를 나무를 만나면 대패부터 잡고 보는 목수, 굳이 고된 노동을 자처하는 목수, 실패의 원인을 나무나 연장이 아닌 자신에게 돌리는 목수. 목수 김씨의 이야기를 읽으며 차분해지고 숙연해지는 이유는 공장에서 찍어낸 반듯한 가짜 나무에 익숙한 게으른 우리에게 생각할 거리를 주기 때문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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