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소녀는 창 밖으로 물끄러미 한 소년을 바라보고 있었다.

새벽의 푸른 빛이 까만 어둠을 몰아낼 무렵, 눈부신 햇살처럼 소녀의 마음을 파고든 소년.

스쿠터의 귀여운 형태도, 서핑 보드의 날렵한 곡선도 소녀의 눈에는 소년의 빼뺴한 몸매보다 못해 보였으리라.

 소녀는 달의 사랑을 받고 있었다. 대신 해의 미움을 받고 있었다.

필연적으로 새까만 어둠 속에서만 돌아다닐 수 있었던 하얀 소녀는, 뜨거운 햇빛에서 검게 빛나는 소년에게 반할 수 밖에 없었다.

 서로 사랑받는 시간이 달랐기에, 소녀는 친구를 통해 알게된 소년의 이름과, 친구가 캠코더로 몰래 찍어온 동영상 속의 소년의 모습을 훔쳐보듯 봐야 했다.

해의 미움을 받는 소녀는 달의 사랑을 받아 청아하고 맑은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다.

해가 서쪽 산등성이 너머로 들어가면, 소녀는 역전에 나와 작은 향초를 켰다. 그리고 양반다리로 주저 앉아서 기타를 치며 맑은 목소리로 희망과 사랑을 노래했다.

사실 소녀가 이 역전을 자신의 콘서트 장소로 정한 이유는. 항상 밤에 이 역을 지나치는 소년 때문이기도 했다. 

소년은 평소와 다름없이 늦은 시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소녀의 노래를 들었다.

맑고 청아한. 슬픔은 전혀 묻지 않은 사랑을 가득 담은 소녀의 목소리는 소년에게 가슴속에 작은 파문을 던지곤 했다.

그러던 어느날, 소녀는 큰 결심을 한다.

항상 자신의 노래를 듣곤 하던. 새벽마다 윈드서핑을 하기 위해 날렵한 곡선의 보드를 귀여운 스쿠터에 싣고 자신의 집 앞을 지나던, 아름답고 까만 소년에게 자신의 사랑을 고백하기로.

 소녀는 자신의 노래를 듣다가 등을 돌려 걷기 시작한 소년을 전속력으로 따라간다.

그리고 헐떡거리는 목소리로 말한다.

 "나랑 사귈래?"

왜, 갑자기 이 영화의 리뷰를 다시 쓰고 싶어졌을까?

아마, 무심코 틀었던 Mnet에서 흘러나온 BAY라는 팀의 노래를 들었기 때문이리라.

영상에서는 아주 익숙한, 일본 영화 '태양의 노래' 의 장면들이 꼬리를 물고 나오고 있었고, 삽입곡이었던 'Good Bye Day'  가 익숙치 않은 목소리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2006년, 같은 제목의 영화와 드라마가 대 히트를 하고, 주인공인 '아마네 카오루' 라는 이름으로 낸 영화에서 여주인공을 맡은 YUI 와 드라마에서 여주인공을 맡았던 '사와지리 에리카' 의 싱글앨범이 공전의 히트를 치면서 '아마네 카오루 불패' 라는 신드롬을 일으켰던 '태양의 노래'.

BAY의 Good Bye Day 는 그 이질감에 일단 한번 몸을 떨어야 했고, 영화의 내용과  YUI의 맑고 청아한 목소리가 떠올라 다시 한번 몸을 떨어야 했다.

영화 '태양의 노래' 에서 주인공이었던 '아마네 카오루' 는 자신의 심각한 병세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노래를 버리지 못했던 작은 소녀였다.

그리고, 매일 자신의 집 앞을 지나가는 까맣게 탄 빼배마른 소년을 짝사랑하고, 그 사랑을 당당하게 고백하는 소녀였다. 자신이 남들과 다른 커다란 핸디캡을 가지고 있고,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었지만, 꿈과 희망이 있고, 사랑하는 소년이 있는 소녀에게, 그런 것들은 어떠한 방해도 할 수 없었다.

드라마에서는 이 부분이 좀 더 디테일하게 나오지만, 아마네 카오루와 코우지의 사랑은 그 핸디캡 때문에 오히려 서로를 강하게 끌어당긴다.

햇빛을 볼 수 없고, 언제 죽을지 모르지만, 세상 사람들에게 자신의 노래를 들려주고 싶다는 소녀의 모습은 진정함 '강함' 그 자체였다. 반할 수 밖에 없다. ^^

아무도 없는 역전에서도 아름다운 목소리를 뽐내지만, 소년의 도움으로 번잡한 시내 중간에서 노래를 부르게 되었을 때, 찬란한 빛을 온 몸으로 뿜어내던 소녀. 아마네 카오루.

예술.

인간과 동물의 가장 큰 차이점은 예술일 것이다.

자신의 생명을 깎아서라도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예술.

그것은 필연적으로 사랑을 동반한다. 사랑이 동반된 치명적인 아름다움.

그것이야말로, 이 영화의 주인공인 '아마네 카오루' 의 짧은 일생을 대변하는 문장일 것이다.

이 길지도, 짧지도 않은 한 편의 영화를 보면서 정말 많은 생각을 했고, 내 인생에 큰 나침반이 되기도 했다.

소녀는 이 사랑을 결말을 알고 있었다.

이루어 질 수 없는 소년과의 사랑. 결코 잡아낼 수 없는 음악과의 사랑.

앞만 보고 달렸던 소녀, 아마네 카오루는 소년과의 사랑도 한껏 느꼈고, 음악과의 사랑도 더할 나위 없이 즐겼다.

소녀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자신의 미래와 현재를 아랑곳 않고 소년에게 사랑을 고백했다.

그것은 소년에게 큰 상처가 되었을지 모를 엔딩을 맞이했지만, 분명 소년 역시 평생을 아름답게 지켜줄 추억과 세상 모두를 끌어안을 만큼의 사랑을 갈무리할 수 있었을터다.

또한, 영원히 행복을 노래했던 아마네 카오루의 노래는 전파를 타고 세상 곳곳으로 흘러 수많은 사람들에게 삶의 희망과 용기를 불러 일으켰을터다. 

이 영화와 드라마가 기록한 공전의 히트. 그리고 아마네 카오루의 신드롬은 바로 그것때문이다.

과거와 미래를 아우르는 현재. 영원을 약속하는 사랑.

영화적으로 봐도, '태양의 노래' 는 굉장히 잘 만들어진 전형적인 일본식 멜로 드라마다.

군더더기가 전혀 없고, 아무 생각 없이 봐도 눈 뗄 틈 없는 치밀한 짜임새를 자랑하는 내러티브는 전형적이지만 사랑스럽고, 그렇기에 재미있다.

영화판 여주인공 아마네 카오루인 YUI는 이 영화가 첫 연기 데뷔작이었다.

역전에 양반다리로 앉아 어쿠스틱 기타를 퉁기며 노래를 하는 장면은, YUI 자신이 첫 오디션을 받았을때의 모습과 같다고 한다.

자그마한 소녀가 바닥에 앉아 심사위원들을 올려다보며 청아한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을 장면은 보지 않았어도 머릿속에 스르르 떠오른다.

컨텐츠의 '재활용'(우리 식으로 비꼬자면) 에 능숙한 일본답게 '태양의 노래' 는 영화 버전과 드라마 버전이 존재한다.  영화가 먼저 나오고 드라마가 뒤이어 나왔지만, 두 작품의 주제는 같다.

현재를 살아가는 당신. 현재를 사랑해라.

비록 인생이 당신을 수없이 주저앉히고, 미워할지라도, 당신은 현재를 사랑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