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로로콩밭에서 붙잡아서」

여기, 깡촌이 있다. ‘깡’이라는 접미어는 입으로 뱉어낼 때의 거침과는 반대로 의미는 100% 순수함을 뜻한다. 즉, 깡촌이란 촌의 거듭제곱이자 우리가 생각하는 촌의, 촌의, 촌의 촌이라 할 수 있다.  소설「오로로콩밭에서 붙잡아서」의 주요 배경은 ‘우시아나’라는 깡촌이다. ‘우시아나’는 ‘깡’의 의미를 한점 부끄럼 없이 살려주는 그야말로 첩첩살골의 작은마을. 하지만 이 작디작은 마을은 마을의 새 시대를 열고자하는 ‘우시아나 마을 청년회’의 순수한 “마을맹글기”가 일본열도를 폭풍 속으로 몰아넣을 줄 누가 상상했겠는가.

원래, 평소에 조용하던 사람이 한번 화를 낼 때, 누구도 예상하지 못하는 에너지를 내뿜으며 불같이 화를 내곤 하는 법이다. 참고 참으면 에너지가 쌓이게 되는데 대부분은 순간적인 폭발로 상황을 정리하고 마는 일들이 우리주위에서 종종벌어지고 만다. ‘우시아나’가 그랬다. 이 깡촌은 너무나도 소외된 나머지 관심을 받고 싶어 안달이 난 나머지 개미를 퍼먹....가 아니라 말도 안되는 무리수를 둔 ‘유니버셜 광고회사’의 아이디어에 동참하고 만다. 도산 직전의 유니버셜 광고회사는 비상식적인 사장 이시이를 필두로 우시아나를 전일본에 사랑받는 마을로 만들어보고자 초강경수를 두는데, 그건 바로 ‘우시아나 사우루스’

물론 밑도 끝도 없는 도전은 아니다. 영국의 스코틀랜드의 작은 마을 환상의 전설로 만들어버린 ‘네스호의 괴물‘이라는 벤치마킹사례가 엄연히 존재하기에 ’유니버셜‘팀은 용감하고 무식하게 감행한다. 순수한 우시아나 마을청년회는 강하게 반대하다 ’술 먹고 팬티 한장입고 부대끼며 같이 춤추기’ 라는 그들만의 감성법으로 서로 통한 후 그 위험한 도박에 발을 담그게 된다.

그들의 도박이 일순간에 화제가 되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우시아나 마을의 용신호수에 사는 ‘우시아나 사우르스’ 통칭 ‘우시’는 순식간에 영웅이 된다. 전 국민이 ‘우시’에 열광하는 것은 물보듯 뻔하고. 우시아나는 관광객, 취재팀으로 인산인해. 조용했던 깡촌은 청년회의 입이 찢어져 귀에 걸리도록 활기를 찾는다. 빅뱅의 거짓말이 전국을 덮듯, 또 하나의 거짓말이 열도를 덮는다. (쓸데없는 비유를 굳이 넣고 만다)

문제는 이 모든게 ‘거짓말’위에 세워진 모래성이라는 것을 독자들은 알고 있다. 그 모래성의 운명은 파도를 만나야 되는 법. ‘우시’는 여러번의 파도를 만나게 되는데...

아- 물론 말하고 싶다. 파도를 만나서 어떻게 되었는지 말하고 싶다. 그 가슴 졸이는 긴장과 그 속에서 배꼽을 잡게 만드는 이중, 삼중의 귀여운 장치들. 뒤통수를 내리치는 반전들. 입이 멋대로 떠들어 대려고 하지만, 나의 스포에 당해 그 즐거움을 잃어버릴 누군가가 있다는 생각만 하면, 죄책감에 밤잠이 안오니, 입술을 깨물며 결말은 당신에게 맡기련다.

다만, 너무 재미있어서 세 바퀴쯤 이불 위를 굴렀고, 이유없이 한 바탕 울었다. 너무 웃기니 눈물이 나더라. 등장인물 한명, 한명이 너무 사랑스럽게 그려져서 책을 덮는 순간 정말 친한 친구와 이별하는 기분에 그 슬픔이 말로 다할지 못할 정도.

소설 중간에 이 엉뚱한 기획을 청년회에게 납득시키기 위해 스기야마가 프리젠테이션을  하는 장면이 있다. 무리한 예를 끌어다 붙치는군 이라며 깔깔대며 읽었는데, 책을 덮으면서, 우리가 생각지 못했던 또 하나의 ‘거짓말’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거짓말’을 치유하는 ‘오로로콩’을 맛보고 싶어졌다. 

굳이 아쉬운 점을 꼽자면, 번역된 [오로로콩밭에서 붙잡아서]라는 제목이다. 이 제목에 관해서는 책 마지막의 역자후기에도 언급되는데, 아마 번역가도 상당한 고민을 했을것이라 예상된다. 왜냐하면, 이 제목의 [호밑밭의 파수꾼]의 일본판 제목　「ライ麦畑でつかまえて」를 패러디해서 붙여진 제목인데, 이 경우 직역은 원제가 가지고 있는 풍자와 해학의 즐거움이 우리에게 잘 와닿지 않기 때문이다. J.D샐린저의 명작이 [호밀밭에서 붙잡아서]가 아닌 [호밀밭의 파수꾼]으로 읽고 있는 나는 이 책의 제목을 보며, 패러디의 웃음이 아닌 참으로 전원적이면서 환상적인 분위기를 느끼며, 마음이 정돈되는 느낌을 느꼈으니 조금 빗나간 시작을 한게 못내 아쉽다. 역자는 얼마나 고민을 했을까 생각하면 안쓰럽기도 하고, 나의 얕은 머리로는 [호밀맡의 파수꾼]을 역자 역량으로 패러디해서 제목으로 붙였으면 어떻했을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굉장히 좋은 소설을 하나 읽었다는 점에서는 변화가 없겠지.

추신, 그러니까 우리가 깡촌에 관심을 가져줘야 한다. 특산물도 팍팍사주고, 6시내고향도 꼬박 봐줘야 한다.(엄마는 6시내고향의 애청자인데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바로 사랑과 박애의 실천이었어!) 섬에살며, 본토로부터의 차별을 느끼고 있는 나는 깡촌의 설움이 십분 이해가 되어 우시아나 마을주민과 공명하고 말았다. 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