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한 혼합주의
작가와 독자 사이의 이러한 협약에 대해 에코는 자신의 '소설 속의 독자Lector in fabula' 속에서 아주 명료하게 분석하고 있다. 숨은 뜻을 간파해 내는 것은 독자의 몫이고, 즐기면서 가르치는 것은 작가의 몫이다. (문학적) 유혹의 이러한 섬세한 기술을 에코는 <바우돌리노> 속에서 극한까지 밀고 나간다. {바우돌리노}의 마지막 50페이지는 아주 탁월하며, 가장 탁월한 역사 스릴러 거장의 소설가로서의 천재적 재능을 잘 보여 준다.
이번에도 역시 움베르토 에코는 가르강튀아적인 박학을 과시한다. 하지만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에코의 표현을 빌자면 '문학사상 최초의 탐정 소설'이다)의 서술적 모델을 기초로 하고 있는 탐정 소설 <바우돌리노>의 독창성은 잃어버린 성배(聖杯)의 전설, 성의(聖衣) 이야기, 동방 박사 세 사람의 이야기, 세례 요한의 가짜 두개골의 시련 등 중세적인 상상력을 만들어 낸 모든 위대한 신화들이 이 작품 속에 뒤섞여 있다는 사실에서 기인한다. 당연히 이러한 성유물들을 차지하기 위하여 주인공은 외뿔 짐승, 사티로스[반인반수(半人半獸)의 괴물], 혹은 인간의 몸을 하고 있고 머리는 개와 새의 모양을 하고 있으며, 이 괴물의 크기에 비교해 볼 경우 선사 시대의 익수룡(翼手龍)들도 참새에 지나지 않을 거대한 괴물들이 들끓는 동양 세계의 가장자리를 전전하며 모험을 겪는다. 에코는 다음과 같이 설명을 붙인다.
'이 모든 것이 우스꽝스러워 보일 수 있지만, 정반대로 극도로 사실적입니다. 무아삭Moissac이나 베즐레V zelay를 한번 방문해 보세요. 성당 정면의 합각 머리 삼각면에 새겨진 그림들 전부가 내 작품 속에 등장하지요. 나는 세상에서 가장 사실주의적인 작가라니까요!' 역사와 좋은 문학 작품을 좋아하는 독자들은 틀림없이 이 작품을 좋아할 것이다. 아주 만족할 만한 방식으로, 에코는 중세에 대한 우리의 시각을 완전히 뒤집어놓은 작품 중의 하나이자 그의 친구인 자크 르 고프Jacques Le Goff가 1985년에 발간한 작품인 <중세의 상상력L'Imaginaire m di val>을 소설화시킨 것이다. 르 고프는 자신의 저서 속에서, 일반적인 평가와는 달리 암흑이라고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 중세 시대에 지식인 문화와 대중 문화가 어떤 방식으로 서로 포개지고 있는지를 보여 준 바 있다. <바우돌리노>는 농부들과 전사(戰士)들 사이에서 전개되지, 수사(修士)들과 문인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이야기가 아니다. 에코는 <장미의 이름>의 신비스럽고도 장엄한 중세에 하찮은 인물들의 외지고도 괴상한 중세를 이 작품 속에서 중첩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 요란한 소설의 주인공은 중세의 대부분의 작품 속에서 등장하는 것처럼 몹쓸 인간이다. 그는 독일 황제였던 프리드리히 바르바로사가 이탈리아를 지나며 입양하기로 마음먹은 피에몬테 인(人)인 틸 오일렌슈피겔에 비견될 수 있다. 그 후 이 악동은 황제의 곁에서 자라나 그의 심복이 된 후, 황제의 비열한 일들을 대신하여 집행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수십 년이 흐른 후 불타는 콘스탄티노플을 바라보며, 주인공은 자신이 목숨을 구해 준 그리스 철학자 니케타스 코니아테스에게 자기의 모든 일생을 이야기하고 있다.
바우돌리노의 일생은 피카레스크 소설의 전형을 보여 준다. 왕자의 자문역이 되는 이 악동은 끔찍한 비밀을 보유한 자가 되기 이전에 아주 대단한 모험을 겪은 증인이었기 때문이다. 일생을 통하여 그는 두 가지 목표를 추구했다. 그 하나는 아버지를 암살한 자를 찾아내는것(전설이 전하는 것처럼 프리드리히 바르바로사가 익사로 사망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독자들은 처음부터 알게 된다)이었고, 다른 하나는 요한 사제의 전설적인 왕국을 찾아내는 것이었다. 요한 사제라! 아마도 역사상 가장 유명한 가짜 특종감일 것이다. 그 전설은 제3차 십자군 전쟁을 시작하게 만들었고, 마르코 폴로로 하여금 아시아를 누비며 여행하게 만들었으며, 포르투갈 사람들이 아프리카를 탐사하게 만든 바로 그 전설이었다. 1160년경에는 요한 사제의 서명이 들어간 한 편지가 왕궁 내를 돌아다니기도 했다. 그 편지는 금과 보석이 차고 넘치는 왕국, 인간들의 모든 악이 사라지고 없는 한 왕국에 대해 묘사하고 있었다. 성배와 '청춘의 샘'(청춘을 되돌려 준다는 전설의 샘)도 그곳에 위치해 있었다. 그 편지 속에서 사제 요한은 예루살렘의 그리스도 무덤을 차지하고 있던 회교도들에 맞서 동맹을 제안하고 있었다. 새 십자군 원정을 개시하기에 더없이 좋은 명분이었다. 이 편지는 사실 바우돌리노 자신이 조작해 낸 가짜 편지였던 것이다…….
사기꾼, 망나니이자 교활한 거래꾼이었던 바우돌리노는 하지만 전혀 거짓말쟁이가 아니었다. 그가 가짜 서류를 만들어 낸 것은 사실이지만, 그가 만들어낸 것은 바로 유토피아였다. 저자인 에코가 바우돌리노의 존재에 대해 점점 더 확신을 가지니 만큼 그것은 구체적인 유토피아이기도 했다. "우리들 욕망의 실체에 대해 우리가 확신을 가지게 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라고 에코는 반문한다. 자크 르 고프는 "상상적인 것이 인간을 살찌우고 행동하게 한다. 그것은 집단적, 사회적인 동시에 역사적인 현상이다. 상상적인 것이 없는 역사는 곧 절단된 역사이자, 영혼이 육체에서 분리된 역사인 것이다"고 설명하고 있다. 움베르토 에코는 이 책 속에서, 유토피아의 동인(動因), 세상을 뒤흔든 창작의 동인인 '상상적인 것'을 아주 훌륭하게 변호하고 있다. 자기 운명에 의해 함몰된 한 인간에 수정을 가하고, 거기에 끔찍한 결말을 담고 있는 중세 탐정소설로 만들면서 공식 역사를 뒤엎고 있는 점은 유감이다. '위대한 역사 속에서, 인간들은 가장 위대한 진실을 끄집어낼 수 있도록 자그마한 진실들을 교대시킬 수 있다.' 이 요란한 작품의 마지막 페이지에서 현자(賢者) 니케타스가 바우돌리노에게 내뱉고 있는 말이다. 그는 알렉상드르 뒤마Alexandre Dumas도 부인하지 못했을 다음 문장으로 결론내리고 있다. "이 세상 이야기들의 유일한 저자라고 자처하지 말아라. 언젠가, 바우돌리노보다 더 거짓말쟁이인 그 누군가가 그것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에코가 마지막으로 꾀부린 것일까? 바우돌리노의 모험에 동행하는 친구들 가운데 두 명의 이름이 보롱Boron과 키오트Kyot이다. 바우돌리노의 긴 순례(巡禮)가 끝난 지 수십 년 후, 성배의 전설은 로베르 드 보롱Robert de Boron이라는 자에 의해 씌어지게 되며, 독일의 '파르시팔'은 키오트라는 사람의 인용문으로부터 시작된다. 움베르토 에코가 장난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누가 이야기했던가?
중세의 군주 움베르토 에코
파리 국제 도서전에 초대된 이탈리아 작가들 중 움베르토 에코는 최정상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작가이다. 중세 상상력의 신화들과 엄청난 박학을 뒤섞고 있는 작품인 그의 최신작 <바우돌리노>를 소개한다.
시작이 고통스럽기 짝이 없다는 사실을 고백해야겠다! 상상을 통해 창조해 냈고, 때로는 아예 읽을 수조차 없는 방언으로 씌어진 약 20페이지의 활력 없는 서두로 이 작품은 시작된다. 보다 나중에야 이 방언이 수준 낮은 라틴 어와 프로방스어, 고대 프랑스 어, 독일어 및 초기 이탈리아 어의 <능란한> 혼합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지만, 이 그로테스크한 혼성어의 희극적 효과는 형편없고, 언어학적인 흥미 역시 모호하기 짝이 없다. 움베르토 에코는 톨킨Tolkien을 자처한 것일까? 모든 언어학자의 환상이 새로운 언어를 창조해 내는 것이라는 사실을 백 번도 더 인정한다 하더라도, 이 작은 유희를 통해 볼로냐 대학 기호학 석좌 교수이자 콜레주 드 프랑스 교수인 에코는 옥스퍼드 대학의 문헌학자의 수준에는 아직 도달하지 못했으며, 따라서 <바우돌리노>는 <반지의 제왕>이 거둔 승리에 미치지 못할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걱정할 필요는 없다. 움베르토 에코의 테크닉은 아주 노련하며, 독자들로 하여금 길을 중도에서 포기하게 하면서도 베스트셀러를 만들어 내는 재주를 겸비하고 있다. 그러한 역설에 대해 에코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장미의 이름>을 썼을 때, 내가 작품을 무수한 라틴 어 문장들로 채우는 데 혈안이 되어 있으며, 따라서 아무도 내 작품을 읽지 않을 것이라고 사람들이 비난했지요.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에 당시 내 작품을 출간하려던 프랑스 출판사는 출판을 거부했습니다……. 그 후의 일들을 지켜보면 내가 옳았다는 것이 증명되었지요! 두 번째 소설인 <푸코의 진자> 속에서 나는 반 페이지 정도를 히브리 어로 채우며 시작했습니다. <바우돌리노> 속에서는 '더 고약하게 글 쓰면서' 새로운 도전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작품 속에서 그는 '더 낫게' 글 쓰고 있다. 아주 즐거워하며, 에코는 문자 그대로 지식의 전이 과정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훌륭한 철학자인 에코는 일탈과 불안감이 증폭될 때 지식의 즐거움이 가장 강렬해진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최상의 작품을 지향하는 그의 소설들이 자주 본론으로부터 벗어나고 가짜 실마리를 제공하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