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수집 때문에 구입해 읽었던 <<일득록>>을 다시 펼쳐보았다. <<일득록>>은 정조대왕의 어록집 이다. 정조(1752-1800)는 조선의 22대 왕으로 영조의 손자이자 아버지는 사도세자 어머니는 혜경궁 홍씨다. 정조는 세종과 더불어 조선의 성군으로 꼽힌다. 정조의 이름앞에는 호학, 계몽, 애민, 실용, 문화, 개혁 군주 등의 수식어가 붙는다.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는 능력있는 군주 였다. <<일득록>>을 읽어보면 정조의 인품과 사상을 알 수 있다. <<일득록>> 을 읽으며, 성군의 면모를 찾아보는 것도 꽤 유익한 시간이리라 생각한다.
<<일득록>> 이 반성하는 뜻이라고 정조가 밝히고 있다. 정조는 역사를 기록하는 신하에게 과대포장 하지 말고 군주 자신을 경계할 수 있도록 사실대로 기록하라고 명한다.
정조는 스스로를 점검하는 군주였다. 하루를 의미있게 보내지 못했다면 밥상 앞에 앉아 숟가락을 뜨기가 어렵다고 이야기 한다. 마음이 불편해서 이다. 군주에 자리에 있는 사람이라면 좀 편하게 지내도 될 듯 싶은데, 정조는 하루하루를 소중히 여기고 낭비하지 않는 현명한 군주였던 것이다.
정조의 학문하는 자세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함양은 고요할 때 얻는 깨달음이고 성찰은 행동할 때 나타나는 모습이다. 공부하는 사람은 함양을 우선시 하되 거기에만 머무르면 안되고, 행동까지 이어져 덕성을 쌓아야 한다고 이야기 하고 있다. 즉, 공부하는 사람은 공부를 통해 덕을 쌓아야 한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공부를 위한 공부를 경계하라는 가르침이다. 반드시 행동으로 이어져야 한다.
정조는 편식하지 않았다. 재미있는 대목이다. 불평하지 않고 그때그때 나오는 대로 먹었다고 한다. 정조는 자신이 마주한 밥상이 백성들의 피와 땀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몸을 단정히 하고 옷을 깔끔하게 입는 것도 일종의 자기 절제다. 나도 글을 쓸때 이런 경험이 있다. 주말에 느지막히 일어나 부시시한 상태로 책상에 앉아 글을 쓰려면 집필할 때 긴장감도 없고, 머리도 잘 안돌아간다. 그런데 반대로 세수를 하고 외출할 때 처럼 옷을 입고 책상에 앉아 글을 쓰면 훨 씬 능률이 오르는 것을 알았다. 때문에 옛 선비들도 공부를 할 때 먼저 의관을 정제하고 책을 읽었던 이유일 것이다. 정조는 외면을 제어함으로써 내면을 기를 수 있다고 이야기 한다.
학문이 올바르게 자리 잡지 못하면 실천할 수 없다는 날카로운 이야기를 하고 있다. 공부를 할 때 강론에만 머물지 말고 궁리, 격물 하여 깊이 들어가라는 이야기다. 그래야만 온전한 실천을 할 수 있다고 이야기 한다. 깊이 생각해야 참된 지식이 되고 비로소 실천까지 이를 수 있다. 반드시 새겨야 할 말이다.
정조는 독서는 물론이고, 신하들과 토론하는 경연을 즐겼던 것 같다. 독서에서 한층 더 나아가 토론의 가치를 알고 있는 군주였다.
정조의 독서법 이다. 초록했다고 한다. 책을 수동적으로 읽기만 한 것이 아니라, 메모하고 그것들을 모아 책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효과를 얻은게 많았다고 하면서 그냥 읽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이야기 한다. 그렇다. 책을 잘 읽는 방법은 메모하면서 읽는 것이다. 물론 독서하는 방법은 개인마다 차이가 있기 마련이지만 나 역시도 초록하는 법으로 독서를 해서 많은 효과를 봤다. 기억도 더 잘되고, 기록한 것을 종종 읽어보면 더 깊이 새겨진다.
정조는 독서하는 군주였다. 때문에 독서의 가치 또한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책을 읽지 않아 통찰력이 없기 때문에 일이 닥치면 망연자실 할 수 밖에 없다고 이야기 한다. 무릇 독서는 본질을 깨닫게 해주는 힘이 있는데, 독서를 하지 않으면 우왕자왕 갈피를 잡지 못한다. 현상에 끌려다니며 일희일비 하게 되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놀랐다. 정조가 이렇게 균형잡힌 역사관을 갖고 있었을 줄이야. 역사를 대할 때 주관적인 의견이 개입되는 게 가장 조심스럽다고 이야기 한다. 그렇다. 역사는 한 개인에 의해 기록되는 것이기 때문에 100% 객관적일 수 없다. 그 역사가가 처한 상황, 신분, 취향 에 따라 선택되기 때문이다.
백성을 사랑하는 정조의 면모가 드러나는 곳이다. 항상 백성을 생각하는 군주였다. 백성들이 배고프면 나도 배고프다. 한 국가의 군주로서 백성을 구제하고, 흉년을 돌보는 것은 신속정확 해야 된다고 이야기 한다.
정조의 인품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어느 날 수라를 마치고 실수하여 내시가 소반을 떨어뜨린다. 그 소리가 커서 좌우 사람들이 놀랐는데 정조는 "다친 사람 없느냐" 묻는다. 여유로운 모습이다.과거 장영실이 만든 가마가 부서져 장영실을 처벌했던 세종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다.
"나라는 백성에게 의지하고, 백성은 나라에 의지하니, 백성이 있은 뒤에야 나라가 있게 된다."
< 백성을 사랑했던 군주 >
E.H 카 의 <<역사란 무엇인가>> 를 통해 역사의 기록을 대할 때 무조건 받아들이지 말고, 그것을 기록한 역사가를 먼저 알아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앞서 이야기 한 것처럼 역사는 한 개인에 의해 쓰여진 기록물에 불과 하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변수가 많이 작용한다. 역사가의 신분, 시대, 권력자와의 관계 등 여려가지가 있다. 때문에 그 후 역사책을 대할 때 한번쯤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저자의 견해가 옳은 것일까? 한쪽으로 치우친 주장에 불과한 것은 아닌지 말이다.
때문에 정조의 <<일득록>>을 읽을 때 에도 그런 시각을 유지하려 애썼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왕의 곁에서 기록하는 신하들의 기록은 아무리 군주라도 함부로 열람하지 못했다고 한다. 궁금증에 못이겨 기록을 보고자 하는 임금이 있었던 건 사실이지만, 그 때마다 신하들이 발벗고 나서 절대 보지 못하게 했다고 하니 어느정도는 신빙성이 있는 기록이라고 생각한다.
조선왕조실록에도 정조의 모습은 <<일득록>> 과 다르지 않다. 그렇다. 정조는 백성을 사랑하고, 독서를 즐기고, 담배를 좋아했던 군주였다.그런 정조는 항상 암살에 시달렸다고 한다. 때문에 밤늦게 까지 잠들지 못하고 그 시간을 이용해 독서 했다고 전해진다. 정신에 서늘한 긴장감을 유지하며 늦은 밤 독서했을 정조의 모습이 떠오른다. 정조에게는 간밤에 했던 독서가 자신의 안위를 지키는 방법 이었던 것이다. 그 때 했던 독서가 고스란히 정조의 내공이 되어 훗 날 보좌에 올라 국가를 다스리는 데 많은 영향을 끼친 것이다.
모름지기 한 국가의 지도자는 독서를 많이 해야 한다. 그래야 사리분별 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 권력이라는 것은 인간의 이성을 마비 시켜버리는 속성이 있기 때문에 시야를 좁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분별을 하지 못하면 누가 충신인지 간신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현명해야 한다. 과거 故김대중 대통령은 독서를 많이 했던 대통령으로 유명하다. 민주화 운동으로 수감되었을때 이희호 여사와 주고 받았던 옥중서신에 보면 대부분이 독서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감옥에서 보냈던 시간을 독서로 채웠던 것이다. 읽었던 책의 수준또한 높다. 당대의 고전은 물론이고, 일어와 영어로 된 책들도 읽었다고 하니 김대중 대통령의 지적 수준을 가늠할 수 있다.
독서를 함에 있어 실천의 중요성은 누차 강조해서 더 새로울 것이 없다. 여기서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독서는 인품과 인격으로 까지 이어진다고 생각한다. 독서는 단순히 지식습득의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점점 알게 된다. 옛 말에 '책을 읽지 않으면 뛰어다니는 고깃덩어리'에 불과하다는 이야기 를 들은 적이 있다. 좀 심한 말이지만, 말 속에 뼈가 있다.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은 참 정확한 말인듯 하다.
<<일득록>> 을 읽으며 한 나라의 군주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다. 조선에 이런 훌륭한 군주가 있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