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할머니는 5년의 암투병 끝에 저세상으로 떠나셨다. 투병 생활 내내 할머니는 고통스러워 하셨는데 아버지는 어떻게든 건강을 되찾게 해드리려고 백방으로 약을 찾아 돌아다니셨었다. 어디선가 암에 좋다는 소리만 들으면 곧장 그곳으로 달려가셨고 암에 좋다는 약은 전부 구해드렸다. 그러나 지극정성으로 병 간호를 하고 매일 제일 좋은 링겔맞게 해드렸지만 차도는 별로 없었다. 오히려 더욱 고통스러워 하셨고 괴로워하셨다.

할머니는 수술을 상당히 두려워하셨다. 아버지가 몇번을 권했지만 그때마다 거절하셨다. 사실 이때 수술을 해도 소용이 없었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지만 아버지는 희망의 끈을 놓고 싶지 않으셨던 것이다. 고통이 궁극에 이르렀을 무렵 할머니는 어머니를 붙들고 차라리 편하게 죽을 수 있게 도와달라고 애원하셨다고 한다. 어머니는 절대로 그럴 수 없다면서 그때 함께 많이 우셨다고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에 나에게 말씀해주셨다.

아버지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할머니가 수술을 받으실 것을 설득했는데 할머니도 나중엔 이를 수락해 수술 날짜를 잡게 되었다. 고통 때문에 그만 살고 싶다고 말씀하셨던 할머니는 수술실에 들어가기전에 어머니를 불러 우시면서 더 살고 싶다고 지금 죽고 싶지 않다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고통 때문에 말로는 항상 빨리 죽고 싶다고 하셨지만 실은 더 살고 싶으셨던 것이다. 하지만 몇차례의 수술은 할머니의 건강만 악화시켰을 뿐 전혀 도움이 되질 못했다. 결국 할머니는 수술 후유증으로 괴로워하시다가 생을 마감하셨다.

이 책은 사람들이 꺼려하는 죽음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저자는 유한한 인생을 받아드리고 죽음에 대해 미리 준비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남아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자신의 몸이나 재산, 장례절차 등을 미리 정해두는 것이 좋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열심히 인생을 사는 사람에겐 다소 거북한 주제일수도 있겠지만 피할 수 없는 것이 죽음이기에 저자의 말은 진지하게 죽음을 생각하게 한다.

이 책은 총 6파트로 구성이 되어 있다. 그 내용이 무엇인지는 지금부터 하나씩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겠다.

첫 번째 파트에서는 '인간다운, 너무나 인간다운'이라는 제목으로 저자는 죽음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있다. 여기서 내가 주목한 것은 "더는 미룰 수 없다."라고 말한 부분이다. 저자는 "죽음 문제를 제대로 외면할 수 있기 위해서라도 한 번은 죽음에 '푹 빠져야'합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맞는 말이라 생각한다. 죽음을 외면하기만 하다가 생각지도 못하게 죽음을 맞이하게 되면 자신도 그렇고 남겨진 가족에게도 상당히 곤혹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난 한때 죽음에 직면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막상 죽으려고 하니 만가지 생각이 내 머릿속을 감쌌다. 나는 어디로 가게 되는걸까 부터 시작해서 가족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하는 등의 생각이 나를 심란하게 만들었다. 다행히 난 이 위기를 잘 극복했는데 이를 통해 난 죽음이라는 것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두 번째 파트에서는 '근원의, 궁극의 성찰'이라는 타이틀로 저자는 죽음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늘어놓고 있다. 이 파트에서 내 눈을 사로잡은 것은 '다음 세대의 자리'라는 소파트였다. 여기서 저자는 "우리에게도 한평생 살았다면 다음 세대를 위해 자리를 양보할 의무가 있습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 말에 난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만약 우리 전세대가 죽지 않고 계속 살았다면 우리에게 돌아올 몫은 거의 없었을지도 모른다. 어느 누가 영원히 죽지 않는데 자신의 재산과 소유물들을 물려주려 하겠는가 이말이다. 앞서 간 세대가 죽었기 때문에 자연스레 우린 그들이 보유했던 것을 물려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니 우리도 다음세대를 위해서 우리가 받은 것은 잘 물려줘야 한다고 본다.

세 번째 파트에서는 '그날 이후'라는 제목으로 저자는 죽음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펼치고 있다. 여기서 내 눈길이 머문 곳은 "없던 일이 될 수는 없다."라고 말한 부분이다. 저자는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을 항상 의식하고 살아갈 때 우리는 현재의 삶과 그 삶을 이루는 것들을 죽음 앞에서도 허무해질 수 없는 중요성과 가치를 가진 것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죽음을 당연한 것으로 자연현상의 일부로 받아들인다면 우리가 죽음에 직면했을 때 허무한 생각이 들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 것 같다. 내가 죽음을 진지하게 생각했을 때 난 어차피 죽는데 왜 살아야하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이때 난 이 모습 이 능력으로 한번밖에 살 수 없으니 더욱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음에 이르러서야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면 죽음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보는 것이 그리 나쁜 것 같지는 않다.

네 번째 파트에서는 "정성껏 준비하라."라는 타이틀로 저자는 죽음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 파트에서 내 주의를 끈 것은 '남겨질 사람들을 위한 준비'라는 소파트였다. 여기서 저자는 한평생 살면서 자기의 행복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행복도 중요하게 여기고 마음 써 온 사람이라면 당연히 죽은 후에도 남게 될 이들이 곤란에 빠지지 않고 잘 살아가게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만약 자신이 재산이 있는데 죽기전에 제대로 처리하지 않고 간다면 뒤에 남은 사람들은 그것 때문에 다툴 수도 있다. 우리집은 다행히 이런 분쟁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재산분배를 일찍 끝냈다. 미리 재산을 나누는 과정에서 타툼이 없지는 않았지만 다행히 큰 싸움으로는 번지지 않았다. 다른건 몰라도 이거 하나만큼은 할아버지가 잘 하셨다는 생각이 든다.

다섯 번째 파트에서는 '해피엔딩'이라는 제목으로 저자는 죽음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피력하고 있다. 여기서 내 눈길을 끈 것은 '인생성적표'라는 소파트였다. 저자는 아무리 문전까지 볼을 잘 몰고 왔다고 해도 마지막 순간에 골을 넣지 못하는 축구팀을 실력 있다고 보기 힘든 것처럼 우리의 인생에도 그런 측면이 있다고 본다. 그만큼 죽기전의 시기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화룡점정이란 말이 있다. 용의 그림을 아무리 멋들어지게 그려도 눈을 그려넣지 않으면 가치가 없다는 것이다. 인생도 마찬가지로 아무리 잘 살아왔다고 해도 뒷마무리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아주 나쁜 평가를 받게 될지도 모른다. 난 마지막을 멋지게 마무리해서 아름다운 이름을 세상에 남기고 싶다.

마지막 여섯 번째 파트에서는 '깨어있는 날의 선택'이라는 제목으로 저자는 죽음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마무리짓고 있다. 이 파트에서 내가 주목한 것은 '선택의 장애물'을 말한 부분이다. 여기서 저자는 환자의 자율성 무시하는 풍토에 대해 지적하고 있다. 회복이 불가능한 환자에게는 수술보다는 죽음을 편안하게 준비하게 하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이런 상황에 놓이게 되면 가족들이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는다. 우리 할머니도 처음엔 수술을 원치 않으셨다. 하지만 아버지는 결코 물러서지 않으셨다. 결국엔 할머니는 아버지의 청을 뿌리치지 못하고 그 힘든 수술을 몇차례나 받으셨다. 할머니는 암으로 고생하시는 동안 그 극심한 고통 때문에 빨리 죽고 싶어하셨지만 죽음을 앞둔 시기에는 더 살고 싶어 하셨다. 어느 것이 더 현명한 처사인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죽음을 앞둔 사람이 아무리 고통에 힘겨워 죽고 싶다고 말해도 그 말은 진심이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역시 죽음에 대한 문제는 쉬운 것이 아니란 생각이 든다.

사람은 반드시 죽는다. 어느 누구도 죽음을 빗겨갈 수는 없다. 죽음을 외면하기만 하거나 삶을 허무하게 생각한다면 이 책을 한번 읽어보길 권한다.

인상적인 어구

"선한 삶을 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