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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처음 읽은 건 2016년.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는 지금보다 더 나쓰메 소세키에 대해 알지 못하던 때라.. 어떤 흐름 없이 <마음>을 읽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불구하고 눈에 보이는 것들로 충분히 공감하고, 화가 났던 기억..전기3부작을 읽으면서, 후기3부작에 <마음>이 포함되어 있음을 알았다. 더 정확하게는 '후기에고'3부작. 그런데 에고라는 관점보다, 한 작가의 작품을 연이어 읽으면서 보이는 것들이 있어 좋았다. 소세키 소설을 관통하는 주제가운데 하나는 '죽음'이였다. 설핏 보면 개인의 죽음처럼 보이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는데 <마음>까지 읽고 난 후 <강상중과 함께 읽는 나쓰메 소세키>덕분에 개인의 죽음 밑에 깔려 있는..주제와 마주했고, 작가 개인에게 찾아온 육체적 정신적 고통이 소설에 짙게 깔려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마음>을 끝내고 2년 후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는 설명때문일까..<마음>은 왠지 작가 자신이 스스로에게 써내려간 진혼곡은 아니었을까 하는 기분마저 들게 했다.
이번에도 마치님이 번역해주신 덕분에...저 문장을 표지로 정한 이유에 대해 곱씹어 볼 수 있었다. 처음에는 너무 어려운 말 처럼 다가왔는데..읽기를 반복하면서 조금..알 것 같은 기분이....현실과 이상의 충돌은 개인에 국한된 문제일수도 있겠지만,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가벼운지에 대해 생각해 볼 있었다.(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함부로 말할 수 없는 경고의 메세지!!).처음 읽을때는 배신의 아픔을 경험한 적이 있어..주인공처럼 사람을 믿을수 없는 그 마음에 격한 공감을 하며 읽었더랬다. 그런데 두번째 읽기에서 내가 놀란 건 노년으로 가는 시점에서 바라보는 죽음에 대한 고통과 불안이 보였다.당당히 노년을 맞을줄 알았으나. 여기 저기 몸이 아프다고 아우성 치고 있는 순간이라...주인공의 목소리 보다, 주인공의 입을 통해 들려주는 주변인들의 모습에 감정이입이 되고 말았던 거다. '죽음'이란 주제는 소세키에게 찾아온 육체적 정신적 고통이 어느 정도 작용하고 있음을 알았다.더해 메이지시대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거라 이해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더불어 그때는 그저 질투로만 생각했던 k와의 관계를 동성애 시선으로 바라볼 수 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도 새로운 발견이었다. 처음 읽을 때는 단순히 삼각관계로만 바라보았던 것 같다. 선생님의 질투가 인간의 이중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런데 이번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약한 존재이며, 언제든 나쁜 인간이 될 수 있고, 배신당할 수 도..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살아가는 것이 조금은 편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비록 비겁한 변명처럼 들릴수 있다 해도 말이다. 선생님의 고통에 대해 그럼에도 극복할 수 없는 거였을까..라고 묻고 싶은 마음이 나도 모르게 일어나기도 했고.. 다행(?)히 라면 담담히 선생님의 유서를 읽고 있는'나'는... 그럼에도 여전히 살아 있다는 사실이다. 읽는 내내 고통스럽기도 했지만, <문>을 읽을 때 안도했던 것처럼 어떤 안도감이 드는 기분이 든 것도 신기한 경험이라 생각했다. 해서 <마음>으로 당분간 나쓰메 소세키 작품은 그만 읽어야 겠다고 생각했으나... 실질적 데뷔작 나는 고양이.... 까지 읽어보고 싶어졌다.
일본 작가 가운데 가장 좋아하는 작가를 꼽으라고 하면 이제는 망설임 없이 나쓰메 소세키라고 답할 수 있을 만큼 소세키가 좋아졌다. 100년 전에 쓰인 작품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내 마음에 꼭 맞아 떨어지는 소재와 인물, 전개가 특히 좋다.
소세키의 작품의 주인공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어떤 유복한 집안의 ‘도련님’인 경우가 많다. 도련님이 아니면 ‘서생’이거나 ‘학생’이니 어찌되었건 결국 그 부류 특유의 ‘태평함’이 그득한 인물이 되어버리고 만다. 그리고 그 태평함에서 세상에 대한 남다른 통찰을 끌어내는 점에 특히 감탄하게 된다.
소설 <그 후>의 ‘그 후’는 여러 가지 의미를 지녔다고 한다. <산시로>에서 이야기했다는 대학생활 ‘그 후’이자, 학생에서 성숙한 성인이 되었다는 의미에서 ‘그 후’이고, 소설의 결말 이후를 의미하는 ‘그 후’이기도 하단다.
<그 후>의 주인공 다이스케의 현재 상황을 적어보면 나이는 서른이고, 아버지와 형님에게 경제적인 부분에서 신세를 지고 있다.
다이스케의 아버지는 꾸준히, 최근 들어 더욱 빈번히, 다이스케에게 결혼할 것을 요구하고 있고, 형수는 다이스케의 편을 들고는 있지만 역시 꾸준히 결혼을 권한다. 형님은 태평해서 이렇다 저렇다 말은 하지 않고 있으며, 다이스케 본인은 일단 결혼할 의사가 없는 상태다.
이정도가 다이스케와 가족 사이의 형편이다.
다이스케의 친구와의 관계는 조금 더 복잡할 수 있다. 친구가 많아서라기보다 3년 전까지 가장 친했던 한 친구와 그의 아내로 인해서다.
<그 후>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화두를 단편적으로 뽑아보면 ‘결혼’과 ‘안정’이 될 것이다. 결혼은 말 그대로 결혼이기에 더 덧붙일 말이 없지만 안정은 경제적 안정을 위한 ‘일’과 심리적 안정을 위한 ‘결혼’, 아버지 그리고 가족과의 관계의 안정을 위한 ‘수용’ 등을 의미할 수 있다. 거기에 결혼을 통한 심리적인 안정도 무시할 수 없기에 결국 결혼과 안정은 직접적인 상관관계에 있다고 말해도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다이스케가 어떤 인물인가 하면, 다음 구절들을 보자.
「“전 현실성과 열정을 갖고 있습니다. 단지 그걸 현실적인 인간관계에 응용할 수 없을 뿐입니다.”
“왜 그렇지?”
다이스케는 다시 대답이 궁해졌다. 다이스케에 따르면, 성실성이건 열정이건 완성된 상태로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돌과 쇳덩이가 맞부딪치면 불꽃이 튀듯이 상대에 따라 마찰이 잘되었을 때 두 당사자 간에 일어나는 현상이다.자신에게 내재해 있다기보다는 오히려 정신적 교류 작용인 것이다. 따라서 상대방과 사이가 좋지 않아서는 성실성이나 열정이 생길 리가 없다._51쪽」
「다이스케는 의자에 앉아 도쿄 생활을 다시 시작하는 부부의 미래를 생각했다. 히라오카는 3년 전에 신바시에서 헤어질 때와는 완전히 딴 사람이 되었다. 그는 인생에서 처세라는 사다리를 한두 계단 오르다가 헛디뎌 떨어진 것이나 다름없다. 다만 그 순간 너무 높이 올라가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지만 남의 눈에 띌 정도로 상처를 입지는 않았어도 실제로 정신적으로는 이미 큰 타격을 입은 듯했다. 처음 재회했을 때 다이스케는 그런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지난 3년 동안 자신에게 일어난 변화를 생각해봤을 때 어쩌면 자신의 내면에서 일어난 변화 때문에 그런 느낌이 든 것은 아닐까도 싶었다._66쪽」
「“왜 일을 하지 않는 건가?”
“왜 일을 하지 않느냐고? 그건 내 탓이 아니야. 즉 세상 탓이지. 좀 더 과장해서 말하자면 일본과 서양의 관계에 문제가 있어서 일하지 않는 거네. 우선 일본만큼 빚이 많아 어려움을 겪는 나라는 없을 것이네. 자넨 그 빚을 언제쯤 갚을 수 있을 것 같은가? -중략- 모두 빡빡하게 교육을 받고 그 후에는 눈이 돌 정도로 혹사를 당하니 모두가 하나같이 신경쇠약에 걸려버리지. 한번 이야기를 해보게나. 그들 대부분이 바보일 테니까. 자신의 일과 자신의 현재, 단지 눈앞의 일 외에는 아무 생각도 없지. 생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지쳐 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 -중략- 그러나 이건 아니야. 지금과 같은 상태라면 나는 오히려 나 자신만을 위해 살 수밖에 없네. 그래서 자네 말처럼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내게 가장 걸맞은 것과 접촉하며 만족하고 있네. 나서서 다른 사람들이 내 생각을 따르도록 하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이야기니 말일세.”_104~105쪽」
「가끔씩 그렇지만 지금 그의 기분은 전체적으로 어두운 편이었다. 그래서 지나치게 밝은 것을 대하면 그 모순을 견디기 힘들었다. 개옥잠화 잎도 한참 바라보고 있으면 곧 싫어질 정도였다.
게다가 그는 현대 일본 사회의 한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어떤 불안에 지배당하기 시작했다. 그 불안은 사람들이 서로 신뢰하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야만적인 현상이었다. 그는 그런 심적 현상으로 인해 마음이 크게 동요되었다. 그는 신을 향한 믿음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게다가 이성적이어서 신을 믿기 어려운 성격이었다. 그렇지만 인간 상호 간에 믿음을 갖고 있다면 굳이 신에게 의지할 필요가 없다고 믿고 있었다. 서로를 의심하는 데서 오는 고통에서 해탈하기 위해 신은 비로소 존재 의의를 갖는다고 해석했다. 따라서 신이 존재하는 나라에서는 사람들이 거짓말을 일삼을 것이라고 단정했다. 하지만 현재의 일본은 신에게도, 인간에게도 믿음이 없는 나라라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이것을 전적으로 일본의 경제 상황 때문이라고 결론지었다._155~156쪽」
「그와 동시에 현재 그들 부부의 관계가 좋지 않다는 것을 필수조건으로 해서 미치요를 향한 다이스케의 애정이 더욱 깊어지고 있다는 사실 또한 부정할 수 없었다. 미치요가 히라오카와 결혼하기 전에 다이스케와 미치요가 얼마나 깊은 사이였는지는 차치하고라도 그는 현재의 미치요를 결코 내버려둘 수 없었다. 그는 병든 미치요를 예전의 미치요보다 가엾게 여겼다. 그는 아이를 잃은 미치요를 예전의 미치요보다 가엾게 여겼다. 그는 남편의 사랑을 잃은 미치요를 예전의 미치요보다 가엾게 여겼다. 다만 다이스케는 이들 부부 사이에 끼어들어 영원히 갈라놓으려 할 만큼 대담하지 않았다.그의 사랑은 그렇게 무분별하지 않았다._226쪽」
다이스케는 무기력해 보이지만 무능력한 사람은 아니다. 둔감해 보이지만 섬세하고 민감한 정신의 소유자다. 태평해 보이지만 강단이 있고, 우유부단해 보이지만 고집이 있다. 하지만 어떤 설명과 논리와 주장을 가져다 붙여도 일반적 시선에서 봤을 때 다이스케는 한심하기 짝이 없는 부유하고 태평한 도련님의 사고를 갖고 살아가는 잉여인간으로 밖에 여겨지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왜 일하지 않느냐?’는 히라오카의 말에 ‘일’의 철학적 의의까지를 떠올리는 다이스케다. 인간의 존재와 진정한 가치에 대해 궁구하는 ‘생각하는 존재’다. 모두가 ‘체념’했다고 여길지 모를 다이스케의 면모는 ‘깨달음’그 후에 찾아온 변화라고 하는 것이 옳다.
다이스케는 자신의 오른쪽 손을 가슴에 얹고 심장의 고동을 느끼고 혈액의 흐름을 떠올리곤 한다. 그리고 그 흐름은 생명을 떠올리게 함과 동시에 죽음 역시 잊지 못하게 한다.
「그는 가슴에 손은 얹은 채 고동 소리 아래로 따뜻한 선홍색 피가 부드럽게 흘러가는 모습을 상상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생명이다 하고 생각했다. 자신은 지금 흐르는 생명을 손바닥으로 누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바닥에 느껴지는 시곗바늘과 같은 울림은 자신을 죽음으로 이끄는 경종이다. 이런 경종을 듣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면, 피를 담는 자루가 시간을 담는 자루의 역할을 하지 않는다면 얼마나 마음이 편할까? 틀림없이 삶을 더 음미하며 살아갈 수 있을 텐데. 다이스케는 자신도 모르게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그는 격렬한 피의 흐름과 무관한 평온한 심장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삶에 집착이 강한 남자다. 그는 누운 채 이따금 왼쪽 가슴 위에 손을 얹고, 만일 이곳을 쇠망치로 강하게 얻어맞는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한다. 건강하게 살아 있으면서도 그렇게 살아 있다는 사실을 기적에 가까운 요행으로 느끼기조차 한다._17쪽」
생명의 고동이 죽음의 경종일 수 있다는 생각이나, 살아 있음을 기적에 가까운 요행으로 느끼는 따위의 성향은 다이스케를 허무주의에 빠져있는 ‘한심한’으로 보이게 한다. 그런 그를 지켜보는 다른 사람까지 무기력하게 만들어버리고 마는 무뢰한 보다 더 질이 나쁜 존재로서의 한심한말이다. 하지만 3년 전의 다이스케와 3년 간의 다이스케를 모르는 상태에서 현재의 다이스케를 심판하는 건 지나친 처사다. 그 후 이전과 그 후 이후를 두루 살피고 난 후 심판에 들어가도 늦지 않을 것이다.
다이스케는 3년 간 많이 변했고, 그 때의 애송이가 아닌 성숙한 한 사람의 성인이 되었으며 그 변신이 너무나 극적이었던 이유로 세상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경지까지 들어가게 되었고 그 결과 태평하면서 무기력한 존재로 보이게 되었던 것이 아닐까.
하지만 이런 말들은 사실 다 의미가 없다. 결국 다이스케는 자신이 3년 전에 했던 행동을 오래 전부터 후회하고 또 후회하고 있었다는 것이 이 이야기의 결론일 것이기 때문이다. 체념했던 3년 전부터 이후의 3년을 보내며 깨달았고 그 깨달음 ‘그 후’의 선택과 행동이 <그 후>가 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후>의 그 후는 무척 혼란스럽고 까마득하며 막연하기만 하다.
이범선의 <오발탄>에서처럼 어디로 가는지, 어디로 가야하는지 도무지 짐작도 하지 못하게 되어버린 상태로 이야기가 끝나버리기 때문이다.
소세키는 <그 후>에서 일본의 국내 정세와 교육 정책, 국외 정세와 국제 정세까지 두루 살피고 있다. 선진국이라는 신기루를 좇아 거품을 쌓아올리는 당시 일본의 정책을 비판할 뿐 아니라 생계를 위해 일을 하는 것이 당연한, 결국 일을 하기 위한 일을 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일의 본래의 가치와 동떨어진 시대상도 비판한다.
정략적인 결혼을 통해 경제적인 안정을 꾀하려는 시도 역시 경제적 안정을 위해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곱게 보지 않는다. 하지만 우스운 사실은 소세키가 그리고 있는 다이스케라는 인물이 집안에서 권하는 결혼을 끝까지 거절하는 이유가 달리 마음에 두고 있는 여자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세속적인 이유라는 것이다.
정신적으로나 사상적으로 성숙한 성인을 자처하는 다이스케가 3년 전 자신의 마음을 속이고 가장 친한 친구에게 보냈던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내려놓지 못해 가족의 뜻을 저버리고 결국 가장 친한 친구와 의절하면서까지 뒤늦게나마 사랑하는 사람을 되찾으려고 시도하는 모습은 동정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다.
뭔가 가볍게 읽고 가볍게 적어보려던 감상이 어디서부터인지 길을 잘못 들어서 심각한 결론에 닿고만 느낌이다. 다음에 한 번 더 읽고 조금 더 가볍게 정리해보고 싶다.
<우미인초 (虞美人草> .
잠들어 있는 천지에 봄에서 뽐아낸 진한 자줏빛 한 점을 선명하게 떨어뜨려놓은 것 같은 여자
전작들에서는 고양이나 서생들을 통해 인간의 사유등을 표현했다면 이번에는 구체적인 인물들을 통한 서사적인 이야기들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더욱 호기심을 자극한다.
봄의 고요함을 깨고 등장한 자줏빛의 한 여인,. 그 여인을 둘러싼 인간들의 삼각, 사각관계들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남녀상렬지사 그러한 사랑이야기라기 보다는 관계의 이야기.. 한 세대를 살아가는 다양한 인간들의 내면이 이야기였다는 생각이 든다.
제목의 이미지와는 다른 두 남자의 등장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호리호리하고 마른 체구, 가까이 할 수 없는 먼 데를 바라보는.. 이라고 표현되는 고노와 각진 채구, 높고 어둡고 해가 들지 않은 곳에서의 화창한 봄의 세계라 표현되는 ..무네치카.. 그 둘의 교토에 있는 히에이진산의 등반으로... 성향이 다른 두 남자, 그들의 대화나 등반에 임하는 모습등에서 각각의 캐릭터를 표현하는 다양한 은유로 첫 1장을 넘기기가 쉽지 않았다. 다시 읽기를 몇 번 반복하다가 문장 하나하나의 의미에 너무 비중을 두면 전반적인 흐름을 느낄 수가 없을 듯 하여 일단은 각 인물들의 대립구도를 먼저 파악하고 그들의 성향에 익숙해지면 은유의 묘사들을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노의 여동생이자 매혹적인 자줏빛의 여인 후지오, 무네치가의 여동생이며 가정적인 여인 이토코
과거의 어두운 구멍에서 벗어나고 싶은 박사지망생 오노, 오노가 어려웠던 시절 교토에서 신세를 졌던 고도 선생과 그의 딸 사요코 그리고 고노의 친모는 아니지만 후지오의 어머니인 수수께끼의 여인..
각 장은 이들중 2명씩을 내세워 극적 구도와 대립구도를 보여준다.
공간의 배경은 교토와 한창 발전하기 시작한 도쿄를 비교하며 옛것과 문명을 이야기하고 인물들의 갈등을 보여주는 배경으로 박람회장이 등장한다.
1907년(메이지 40년) 3월 20일부터 7월 31일까지 도쿄의 우에노 공원에서 열린 박람회로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는 당시의 일본의 대표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양과자를 먹고 홍차를 마시며 일루미네이션의 화려함의 세계를 즐기는.. 그러한 장소에 대한 동경과 함께 그 세태를 풍자하는 지식인들의 모습을 볼 수 있고 이 모든 것들이 교차하는 이곳에서 이 이야기의 본격적인 갈등구조가 탄생한다.
여동생등과 함께 박람회를 간 고노와 무네치카 일행이 찻집에서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오노 일행을 발견한다. 오노는 마침 도쿄로 올라온 고도선생과 사요코를 데리고 박람회장을 찾았다. 그들을 바라보는 4명의 시선 그러나 서로 다른 생각에 맘이 혼란스럽다..
이야기의 대부분은 그 상황의 묘사보다는 인물들의 내면을 묘사한다. 그 인물을 어떤 색깔이나 사물등에 비유하고 그렇게 비유하게 된 작가의 철학들이 보여진다. 처음에는 그것에 적응하는데 약간 힘들었는데 오히려 그러한 묘사들이 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힘인 듯 하다.
고노의 일기장에 적힌 그의 사색은 작가의 철학이 그대로 들어난 글이라는 생각이 든다.
소세키의 이전의 책에 등장했던 인물들과도 어찌보면 비슷한 면도 많아 보인다. 비슷한 인물들을 가지고 어떤 상황을 만들어 다른 극적인 이야기로 이끌어가는 것.. 그것이 이 작가의 탁월함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 보게 된다.
이 책의 인물들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대의 대표적인 인물들인 듯 하다.
현실보다는 이상을 추구하는 자, 낙관적이며 행복을 추구하는 자,불우한 과거에서 벗어나기 위해 인정보다는 앞으로의 가능성을 선택하고 싶은 자, 자신이 사랑하는 자를 차지하지 못한 괴로움을 견디지 못하는 자, 상황에 따라 말을 바꾸며 자신의 원하는 대로 일을 도모하는 자...
100년전에 쓰여진 글이지만 비슷한 부류의 사람들이 항상 존재했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껴본다,.
그렇기에 각각의 인물 위주로 책을 다시 한번 되새겨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비극은 희극보다 위대하다. 이를 일컬어 죽음은 모든 장애를 봉쇄하기에 위대하다고 말하는 이가 있다. 돌이킬 수 없는 운명의 나락에 떨어져 빠져나올 수 없기에 위대하다는 것은 흐르는 물이 되돌아오지 않기에 위대하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운명은 단지 최후의 결말을 고하기 때문에 위대한 것만은 아니다. 홀연히 삶이 변해 죽음이 되기에 위대한 것이다.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을 때 잊고 있던 죽음이 불쑥 나타나기 때문에 위대한 것이다..(p433)
나쓰메 소세키 전집 1차분인 4권의 책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도련님> <풀베개> <태풍>을 읽으면서 내가 서포터즈가 아니었다면 쉽게 접하지 못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고전은 읽어야지 하는 맘은 있지만 선뜻 손이 가지 않고 일단은 최근의 글들에 먼저 손이 가게 된다. 그리고 읽고 나면 역시 읽기를 잘 했어.. 하는 뿌듯함이 있다. 그래서 의무적으로라도 한 달에 한 두권 고전을 꼭 읽어야지.. 하지만 그것도 그리 쉽게 되지 않는다.
서포터즈가 되어 약간의 의무감을 가지고 만나게 된 나쓰메 소세키...그 의무감은 그의 책읽기에 박차를 가하게 된 좋은 긴장이 되었던 것 같다. 그 결과 읽으면 읽을 수록 그의 작품에 대한 이해와 흥미가 더해지는 듯 하다. 그러한 그의 전집 1차분이 마무리 되고 2차분이 출간되기까지 기다림의 시간을 갖었었는데 더욱 산뜻하게 단장을 하고 우리를 찾아온 그의 새로운 이야기들.. 첫 이야기인 우미인초부터 기대를 져버리지 않는다.
가는 봄이여,
비파를 안은 무거운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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