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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장판 전국시대- 양성 實驗室 속 묵가의 實驗事故
서형석
서론
아주 어린 여자 아이가 서있다. 지켜보고 있겠다는 언니의 말을 듣고 기다리고 있는 모양이다. 이 여자 아이 너머로 많은 아이들이 한 사내의 뒤를 따르고 있다. 이처럼 영화 ‘묵공’은 한 여자 아이의 모습으로부터 시작한다. 이 첫 장면의 의미는 영화를 다 보고서야 알 수가 있었다. 영화의 처음과 끝은 전쟁으로 인해 고아가 된 아이들과 길을 떠나는 주인공 ‘혁리’의 모습을 보여주며 수미쌍관을 이루고 있다. ‘언니가 지켜볼 꺼야”라는 말이 무엇이었는지를 궁금하게 만들며 영화는 시작되었다.
중국의 전국시대라는 말에서 볼 수 있듯이 영화의 배경이 되고 있는 전국시대는 전란이 끊이지 않는 혼란의 시대였다. 조나라에게 성을 통째로 빼앗길 위기에 처한 양성의 양왕은 묵가에 도움을 요청하지만 소식이 없자, 항복문서를 조나라 장군에게 전달하려던 찰나, 주인공 혁리가 등장하면서 상황은 반전되었다. 비록 묵가의 반대를 무릅쓰고 홀로 양성을 구하기 위해 나타난 그였지만, 등장부터 조나라 군대 일부를 물러가게 만들며, 혁리는 백성들에게 희망을 불어넣고 맞서 싸워야 함의 중요성을 설파한다. 자유를 지키기 위해, 비참한 삶을 면하기 위해서는 대군 조나라 군대에 맞서서 싸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의 목적은 조나라 ‘항엄중’의 대군으로부터 양성을 지켜내는 것, 즉 ‘수성(守城)’하는 것이었다. 영화 ‘묵공(墨攻)’의 시작이었다.
본론1. 그들이 싸우는 이유
조나라의 10만 대군을 이끌고 있는 항엄중은 연나라를 공격하러 가는 길목에 있는 작은 성 양성에 가도(假道)를 요청한다. 인구가 4,000명 밖에 되지 않는 양 나라로써 이는 나라를 통째로 내놓으라는 말과도 같았다. 묵가로부터의 구원병에 대한 소식이 없자, 양왕은 항복을 할지, 항전을 할지, 한 나라의 지도자로서 자신의 백성과 나라를 걸고 커다란 결정에 놓이게 되었다. 이 때 묵가로부터 혁리가 양성의 수성을 위해 도움을 건네었고 조나라와 양나라의 전쟁은 시작되었다. 양왕과 그의 신하들은 스스로 양성을 지켜낼 힘이 없었으므로 군사 전권을 고민 끝에 혁리에게 넘겨주었고, 이 전쟁은 조나라와 양나라 전쟁보다는 본질적으로 조나라의 명장 ‘항엄중’과 묵가로부터의 구세주나 다름 없었던 ‘혁리’간의 전쟁 양상을 보이게 된다. 항엄중은 분명 조나라 장군으로써 연전연승하며 많은 공을 쌓아왔을 것이며, 경험 또한 풍부할 것이었다. 반면 혁리는 이전까지 단 한번도 전쟁에 참가해 보지 못했고 수성 또한 처음이었다. 이 두 사람은 각각 자신의 명예를 잇고 더 쌓아가기 위해서, 처음이지만 자신의 이념을 실천에 옮기고자 전투에 임하게 된다.
혁리의 수성술로 인해 항엄중은 두 번이나 대패를 맛보게 된다. 그 동안 쌓아 올린 명예의 금자탑에 혹여 누가될까 두려워 항엄중은 계속해서 양성을 공격하게 되고 많은 희생이 뒤 따랐다. 인구 4000여명 밖에 되지 않는 조그마한 성의 비정규 군에 의해 그 보다 많은 수의 병력을 잃은 것은 항엄중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주었을 것이다. 영화 말미 항엄중의 조나라 대군은 혁리의 전술로 인해 끝내 또 다시 패배하고 만다. 항엄중은 도망가는 것 보다 그곳에서 죽음을 선택, 전쟁의 시대에서 항엄중의 명예욕은 극에 달하고 끝을 맺는다. 반면 혁리는 연이은 수성의 성공으로 양성안 백성들에게 커다란 지지를 받지만 권력자들의 시기와 모략으로 인해 역적 취급을 받고 배신당하게 된다. 하지만 마지막 결전에서 위기에 처한 양 나라를 위해 그는 돌아왔고 자신을 배신한 양나라에 또 다시 승리를 안겨다 주었다. 인류애를 실천하기 위해 처음 뛰어든 전장에서 그는 끝까지 자신의 이상을 위해 싸운 것이다. 항엄중과 혁리 둘 모두 대단한 고집쟁이였다. 각각의 이념적 가치를 주변의 어떠한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고수해 나갔던 것이다. 그 둘은 이 전쟁에서 자신의 이념을 지켜나가기 위해 싸웠다. 항엄중은 개인적인 명예욕을 지키고자, 혁리는 묵가의 겸애적 가치를 현실 상황에 적용하여 실천하고자 전쟁에 임한다. 이 상극되는 이념의 대립은 어중간한 선에서 끝을 맺을 수 없는 것이었다. 항엄중의 공성이 성공하느냐, 혁리의 수성이 성공하느냐 둘 중에 하나로 귀결 될 수 밖에 없는 문제였다.
본론2. 전쟁의 합리화 그리고 혼란
극단으로 치우쳐서 생각해보면 전국의 시대에 평화를 가져오기 위한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카리스마적 지도자에 의해 힘으로 천하를 평정하여 반발을 억제하고 강제적으로 하나로 만드는 것과 수많은 파편화된 점들 하나 하나가 서로 균형을 이루고 견제해가며 혼란을 안정시키는 것이 그 두 가지이다. 두 쪽 모두 혼란을 안정시킨다는 것, 결국 평화를 이루게 하겠다는 목표는 같지만 방법론에서 커다란 차이가 생겨나는 것이다. 묵가는 난세의 원인을 서로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라 여기고 난세를 교정하기 위한 방법으로서 서로 차별 없이 사랑해야 한다는 ‘겸애(兼愛)’주장했다. 묵가의 평화 사상은 비공(非攻)으로서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여 남을 공격하기 위한 전쟁을 하지 않음으로써 낭비하지 않음을 통해 해악을 없애버리면 자연히 천하에 평화는 찾아 온다는 것이다. 서로를 인정하고 싸우지 않는 세상이 묵가가 바라본 평화로운 상태, 즉 영화 속 주인공 혁리가 꿈꾸었던 세상이었던 것이다. 반면 조나라는 주변나라들을 차례 차례 정복함으로써 천하의 패권을 쥠으로써 혼란을 평정하고자 하였다. 그 커다란 목표 아래서 양나라와의 싸움은 과정 중에 아주 조그만 조각에 불과했을 지 모른다. 천하를 손에 얻고자 한다면 그 보다 더 크고 어려운 전쟁을 이겨내야만 했기 때문이다. 조나라와 장군 항엄중이 꿈꾸었던 세상은 조나라 밑으로 모든 나라들을 정복하여 강력한 힘 아래 하나된 통일 제국을 이루는 것이었다.
뜻은 같았지만 이러한 방법론적 차이, 동상이몽 같은 상황에서 공격을 하는 자와 방어하는 자가 갈리게 된다. 하나의 제국을 만들고자 하는 자의 공성과 다극화 속에 존중을 통해 평화를 이루고자 하는 자의 수성이 맞붙게 된 것이다. 혼란의 시대, 중국 전국시대의 현실에서 이 생각이 다른 둘 사이에 전쟁은 어쩔 수 없는 것이었고 전쟁으로 인한 희생은 공격하는 쪽에서도, 방어하는 쪽에서도 필연적이었다. 공격이나 방어나 누가 먼저 싸움을 걸었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 싸움의 한 가운데서 상황을 지켜보면 공격하는 자나 방어하는 자나 그 차이를 찾을 수가 없다. 서로 살기 위해 상대를 죽여야 한다는 것, 그래야 자신이 살 수 있다는 것에는 차이가 없는 것이다. 공격하는 자든, 방어하는 자든, 살아남은 자든 아니면 죽은 자든 저마다 사연은 있는 것이고, 그들 모두가 시대의 희생자일 뿐이다. 항엄중의 말대로 전장에서는 살아남은 자가 승리한다고 하지만, 혁리의 말대로 승리한다고 죽은 자들이 살아 돌아오는 것도 아니다. 전쟁은 모두에게 상처를 남겼다. 혁리 또한 방어전을 고수하지만 가치 혼란을 느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묵가는 ‘비공’ 평화사상으로 여기기 때문에 먼저 공격하는 일이 없다. 따라서 자신의 존립을 유지하기 위해 수성술이 발달하였고, 전쟁에서는 방어에 중점을 두어 ‘묵수(墨守)’라는 말이 생겨났다. 그렇지만 현실에서 공격하는 자나 방어하는 자나 그 잔인함과 잔혹함에는 차이가 없었다. 혁리 스스로가 생각해 낸 전략에 의해 죽어가는 조나라의 병사들 한 가운데서 그는 혼란을 겪는다.
본론3. 兼愛와 別愛 그 경계에 서서
혁리가 이러한 가치관의 혼란을 느끼고 있음을 간파한 사람이 한 명 있었다. 그 사람은 양나라의 기마부대장 일열이라는 여인이었다. 그녀는 혁리 자신과는 아무 관련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양나라를 위기에서 구해주고 최선을 다하는 그의 모습에 고마움과 동시에 이성으로서의 감정을 느끼게 되고 영화 중반에는 노골적으로 혁리의 사랑을 얻고자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사실 혁리에게 양성은 아무 관련이 없는 것이 아니었다. 겸애의 실천을 위해 묵자가 설한 것처럼 남의 나라 보기를 제 나라 보듯 하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에게 자신의 것, 남의 것 등의 차별을 두는 행위와 사고는 옳지 않은 것이었다. 그러나 혁리는 전쟁의 경험과 승리를 통해 가치의 혼란을 느끼고 있었다. 자신의 전술에 의해 죽어간 적군들을 바라보며 묵가의 비공이라는 것이, 묵수라는 것이 현실에서 공격하는 자와 무슨 차이가 있는지 의문을 품고 스스로 갈등하고 있었던 중이었다. 그러한 찰나에 일열은 혁리에게 다가와 사랑을 갈구한다. 혁리는 이에 “미안하다”라는 말로 일열의 구애에 거절한다. 일열은 이 상황에도 묵가의 겸애를 비판하며 자신이 원하는 것은 옳건 그르건 오직 혁리과 함께하고 푼 것이라며 혁리의 혼란을 더 부추긴다. 혁리는 변화해 간다. 묵가는 무엇을 바라고 일을 하지 않는다며 거절했던 선물들도 차츰 일이 끝나면 돌려주겠다는 단서를 남기고 받고, 역적으로 몰려 쫓겨난 와중에도 일열로부터 받은 새 신을 돌려주어야 한다며 고민한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돌려주어야 한다는 강박관념 자체가 혁리가 일열에게 어느 순간부터인가 집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혁리가 전투 중 구해준 서양인 노예로부터 들은 이야기도 혁리의 위험한 담장 걷기를 부채질한다. 모두를 사랑한다는 것은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것과 같다는 서양인 노예의 말은 혁리가 차별적 사랑과 묵가의 무차별적 사랑 그 경계에 서서 깊이 고민하게 만든다.
영화의 종반 혁리는 이 경계 선상에서 일열에 대한 차별적 사랑으로 한 발짝 내딛게 된다. 혁리를 역적으로 몰고 양성 내에 그를 추종하는 무리를 처단하는 과정에서 양왕에게 바른 소리를 했던 일열은 감옥에 갇혀 말도 못하는 신세가 된다. 이러한 일열을 구하기 위해 혁리는 마지막 전쟁 중 감옥으로 향하고 애타게 그녀의 이름을 부른다. 혁리가 완전히 선을 넘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혁리가 부르는 소리를 듣고도 대답을 할 수 없는 일열 또한 애가 탄다. 두 사람을 이어준 신발 조각으로 혁리는 일열을 발견하게 되었지만 이미 때가 늦어 그녀는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아마도 혁리에게 있어서 첫 ‘차별적’ 사랑이었을지 모르는 일열을 그는 지켜내지 못했다. 두 사람 모두 끝에 가서 마음은 통했을지언정 실제 사랑으로 인한 직접적 소통을 나누지는 못했지만, 혁리의 일열과의 첫(차별적)사랑은 비극적으로 끝을 맺었다. 영화 속에서 보여지는 양성안 水攻이 혁리의 전략이었다면 감옥 안에 물이 차올라 벌어진 일열의 죽음은 혁리의 탓으로, 이는 혁리를 더 괴롭게 했을 것이다. 이로써 혁리는 그의 첫 차별적 사랑을 실행할 동기 부여 개체를 상실했다. 유가가 강조하고, 보통사람들이 따르던 차별적 사랑과 묵가가 강조하던 차별 없는 사랑의 아슬아슬한 경계선에 서있던 혁리는 잠시 일열로 인해 차별적 사랑에 발을 디딘 것처럼 보였지만 일열의 상실과 동시에 그는 본래 자신이 있던 쪽으로 발길을 옮긴다. 영화 말미 전쟁의 상처로서 남은 고아들과 함께 길을 떠나는 그의 뒷모습은 이를 말해주고 있다. 다시 그는 겸애의 실천을 위해 나아간 것이다.
본론4. 전쟁이 남긴 것 - 尙同과 尙賢 그리고 현실의 벽
묵가가 주창한 겸애의 방법 중에는 겸애를 위한 정치적 방법으로써 상동(尙同)과 상현(尙賢)이 있다. 묵가는 상동과 상현을 통해 상향 편준화의 방법론으로써 도덕적 자질과 실용적 업무 능력을 갖춘 이를 정치 지도자로 삼고 서로가 이에 같아짐에 이르게 되면 겸애가 이루어지고 평화에 이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즉 묵가 사상에 의하면 덕과 함께 능력을 갖고 있는 자는 나라를 이롭게 하여 공공성 확대에 도움이 되고, 그렇지 않은 자는 나라를 위태롭게 하고 공공성을 헤치므로 권력 구조 속에 상하 이동에 있어서 개방적인 성격을 띄고 있다. 구조적으로 이미 높낮이가 있는 불평등한 구조를 지니지만 상하 이동에 여지를 남겨둠으로써 평등적 구조를 지향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 속에서도 혁리는 조나라의 대군에 맞서는 궁수들을 누가 이끌 것인가 하는 문제에 있어서 미천한 출신의 한 장수의 실력과 덕을 보고 중용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 천한 장수와 실력을 겨누었던 양나라 왕자 양적에게는 당신의 신분이 실력을 더 좋아 보이게 하는 것뿐이라며 세상을 더 많이 배우라는 충고까지 했다. 조나라 대군에 맞서 인재를 등용하고 전술을 펼치는데 신분의 상하고하를 막론하고 실력으로서 평가하고, 실제 전투에서는 양나라 (specialist가 아닌) 백성들로 이루어진 비정규군 모두가 혁리의 지도 아래, 자신들의 나라를 지키기 위해 싸우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전쟁의 과정 중에는 묵가의 상동과 상현이라는 가르침이 잘 적용되어 실천 된 것이다. 영화 묵공의 영어 제목인 A battle of Wits에서 Wit이라는 단어에 주목해 보면 우리가 흔히 ‘저 사람 위트 있다’라는 말처럼 상황에 대한 재빠른 대응이나 기지를 일컫고 있다. 영화 내내 위트를 발휘하고 있는 사람은 주인공 혁리 자신일 것이다. 그는 십 만 대군과 비정규군 4000명의 싸움에서 자신의 기지를 다해 양성을 구해낸다. 혁리는 덕이 있고 실력이 있는 지도자감이었다. 백성들은 그러한 혁리에 대해 노래를 부르며 받들고 추앙하였다.
묵가가 주장한 상동과 상현이 실제 현실에서 잘 적용이 되었다면 혁리는 지도자가 되어 마땅한 인물임이 분명했다. 그러나 현실은 그것을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았다. 당장의 위기를 넘기자 양왕과 그의 신하들은 혁리를 경계했고 백성들의 혁리 추앙 움직임을 경계하였다. 결국 양나라 지도부는 혁리를 역적으로 몰아 죽이려 들고 그를 따르던 무리들도 함께 제거 대상으로 지목 받아 처벌된다. 혁리라는 존재는 양나라 지도자들에게 위기의 순간 그들의 무능을 메워 줄 메시아적 존재로서 필요가치가 있었지만, 위기가 지나간 후에는 그저 권력 유지에 방해가 되는 경쟁자에 불과했다. 혁리를 역적으로 몰아가기 전 전쟁에서 승리한 후, 양나라 궁전 안에서 양왕은 신하들과 혁리를 어떻게 할 것인지 이야기 나눈다. 전쟁의 순간, 혼란의 순간에 묵가의 사상은 필요하지만, 혼란이 사라진 후 평화의 시대에 묵가의 사상은 적합하지 않다. 중국 대륙의 전국시대, 전쟁을 막고 혼란을 막고자 하며 비공으로서 전쟁에 반대했던 묵가의 사상이 아이러니하게도 전쟁의 시대에 필요로 하고 평화의 시대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말이었다. 결국 이들에게 묵가의 사상은 전쟁을 위해 필요한 도구적 기술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도구는 필요가 없어지면 잊혀지고 버려진다. 이러한 논의 선상에서 전쟁이 지나간 후 양나라 지도부에게 혁리를 역적으로 몰아 제거해버리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리고 이것이 현실이었다. 혁리는 자신의 묵가적 이상을 실천하고자 노력하였으나 현실의 벽을 넘어서는데 실패하였다.
이 위기로부터 혁리의 묵가 사상에 감명받아 그를 탈출시키고 따르고자 한 양나라 왕자 양적도 자신의 군사들 손에 죽게 되고, 혁리에 의해 실력으로 발탁되어 궁수부대를 이끌었던 장수도 혁리의 편에 섰다가 손을 잃게 된다. 일련의 사태 속 혼란을 틈타 항엄중은 양성을 공격했고 성공한 듯 보였으나, 역적으로 몰렸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등장한 혁리에 의해 또 다시 실패를 맛보고 양나라 사람들에 의해 불타 죽게 된다. 끝까지 자신의 명예를 지키고 생을 마감한 것이었다. 명예에 살고 명예에 죽은 항엄중이었지만 그 또한 생명을 잃음으로써 세상에서 사라졌다. 혁리는 다시 한번 양성을 구했으나 일열을 잃었다. 또 다시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승자는 아무도 없는 듯 보였다. 이 모순된 현실 상황 속에서 홀로 얼굴 만면에 큰 웃음을 보이고 있는 유일한 자는 양나라의 양왕 뿐이었다.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는 무능한 모습을 보이다가도, 혁리에 의해 또 다시 얻은 기회를 잡아 항엄중을 불태우며 그의 마지막 순간을 즐기고 있었다. 결국 전쟁 끝에 최후에 웃는 자는 양왕밖에 없었다고 생각했지만 영화 마지막 양왕 또한 5년 뒤 모반에 의해 죽음에 이르렀음을 영화는 알려주고 있다. 모두가 상실의 슬픔과 고통을 겪으며 영화는 막을 내린 것이다. 전쟁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상실의 아픔을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고아들이 서 있었다.
결론. 현실과 이상의 간극을 극복하지 못한 실패
전국시대를 평정한 것은 이번 전쟁을 일으켰던 조나라도, 전쟁에서 살아남은 양나라도 아니었다. 두 나라는 모두 진나라에 의해 멸망 당하고 진시황제는 중국의 혼란을 수습하고 법가를 바탕으로 중국 대륙에 통일 제국을 이룩하였다. 결국 항엄중, 혁리는 천하를 평화롭게 하겠다는 커다란 목표를 이루는데 주체가 되지 못하고 사라졌다. 항엄중과 같은 방식일지 모르는 패권을 통한 진나라의 통일에서도 항엄중은 주체가 되지 못하였고, 원작 만화에 의하면 혁리는 중국에서의 이상을 이루지 못하고 동쪽으로 떠나 당시 미개했던 일본땅에서 여생을 마감하게 된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보이는 전쟁고아들과 길을 떠나는 혁리의 모습이 또 다른 시작이라는 여운을 주는 반면 원작 만화의 결말은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전국시대 중국에서 그의 묵가적 사상의 실천과 현실화라는 실험은 실패로 끝났다. 그래도 그는 포기하지 않고 새로운 대안으로서 일본 땅을 밟은 것이다. 진나라도 딱딱하고 융통성 없는 법가사상으로는 제국을 오래 유지하지 못하고 시황제 사후 쇠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
춘추전국시대를 거치며 중국 대륙은 혼란 속에 하나의 커다란 정치적 실험의 장이었다. 사상들이 저마다의 방법론과 이상을 갖고서 서로 경쟁하였다. 그 중에는 유가처럼 지금까지 우리의 삶에 영향을 주고 있는 것도 있고 잊혀지거나, 텍스트를 통해서만 확인할 수 있는 사상들도 있다. 영화 속에서 전쟁은 묵가 사상에 대한 현실대입의 하나의 실험의 장으로써 작용하고 있고, 현실과 이상의 괴리로 인해 벌어지는 영화 속 아이러니들은 혁리의 고민과 그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상징하고 있다. 또한 먼저 공격을 하지 않는 묵가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며 ‘묵공’이라 명명된 영화 제목의 역설은 결국 전쟁이라는 현실에서 공격하는 자나 방어하는 자나 당사자들에게 있어서 가치 중립적이고, 攻과 守가 별 반 차이 없음을 나타내고 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도 꿈꾸는 목표는 같을지라도 그 과정에서의 방법론에는 저마다 차이가 나기 마련이다. 혼란과 파괴를 궁극의 목표로 여기는 이는 극히 드물 것이다. 조화와 평화를 소망하는 이들이 대다수일 지라도 그 것에 이르는 길은 사람들 저마다의 생각만큼 다양하다. 아무리 바보 같은 방법일지라도, 아무리 이루기 힘든 것일지라도, 사람들은 이상을 꿈꾸며 그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한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 간극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 그것이 인간의 삶인 것이다. 묵가의 겸애와 비공은 어떻게 보면 비현실적일지도 모르나, 치열한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개인이나, 냉전이 끝난 이후에도 대립과 반목을 반복하고 있는 국제 관계 상황, 그리고 특히 우리가 살고 있는 냉전의 유산 한반도에서는 묵가의 사상을 한번쯤 다시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무엇이든지 지나치면 독이 되겠지만 상대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도가의 겸애와 비공의 뜻을 다시 한번 곱씹어 보면, 영화 속 혁리의 노력은 헛된 것이 아니었으며, 우리들에게도 필요한 것이 결국 이것들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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