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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매일 | 2008년 08월 27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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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무게, 크기 | 102분 | 130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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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와 90년대를 지나는 그때 그 추억의 시간 동안 수많은 홍콩영화들이 국내 영화팬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한국 드라마와 노래가 한류라는 이름으로 아시아 젊은이들에게 요즘 인기를 얻고 있듯이 그 당시에는 성룡, 주윤발, 유덕화, 장국영, 왕조현, 이연걸, 임청하 등의 스타를 내세운 홍콩영화가 아시아 젊은이들 사이에 큰 인기를 누렸었죠. 프론트 로딩과 다이아몬드 헤드 등의 신기술을 내세웠던 최신 VTR 기기들의 등장과 비디오대여점의 전국적인 도입은 부담없는 가격으로 집에서 두 시간 정도를 즐겁게 보낼 수 있는 홍콩영화의 인기를 더욱 부채질했습니다. 그렇게 큰 인기를 누리던 홍콩영화는 점점 쇠퇴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중국으로의 반환을 앞둔 90년대 후반의 홍콩의 풍경도 풍경이거니와 하나의 영화가 흥행을 하면 비슷비슷한 아류작들이 줄지어 나오면서 홍콩영화를 사랑했던 관객들이 점차 지쳐갔던 것도 인기 쇠퇴의 이유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이렇게 아류작을 찍어내던 홍콩영화 감독의 이름으로 늘 꼽히는 이가 있었으니 그 이름이 바로 왕정입니다. 영화평론가들은 왕정 때문에 홍콩영화의 인기가 시들었다고 혹평하기도 하고 네티즌들 역시도 어느 정도 그에 동의하곤 하죠. 하지만 이 왕정이란 감독은, 숱한 아류작의 남발로 관객들을 질리게 만들었다는 비난도 받고 있긴 합니다만 정전자(도신) 등 꽤나 흥행한 영화도 만들어냈던 감독이기도 합니다. 오우삼, 서극, 정소동, 왕가위처럼 한국의 영화팬들이 이름을 기억할 수 있을 정도로 유명감독이면서도 요상한 아류작들을 찍어냈기에 비난을 독차지했다고도 할 수 있겠죠. 이름조차 기억되지 못하면서 아류작을 연신 만들어낸 홍콩의 영화감독들도 꽤 많이 있었을텐데 왕정 감독은 그나마 관객들에게 이름이 알려져 있는데다가 유덕화 등의 스타배우들을 출연시켜 속편 아닌 속편을 이어갔기에 평론가들과 영화팬들에게 딱 찍혀 버렸다고나 할까요.
이 영화 정장추녀자의 연출을 담당한 감독이 바로 그 문제의 감독 왕정입니다. 잘 차려 입은 신사가 여자를 쫒아간다 정도로 해석될 수 있는 제목의 이 영화는 주윤발과 증지위, 진백상, 장만옥이 출연했습니다. 1편 이후에도 꾸준히 속편이 나왔다고 하며 2000년대에도 이 영화의 컨셉을 살린 속편이 나오기도 했다고 합니다. 정장추녀자 1편은 1987년 당시 당시 큰 인기를 누렸던 영웅본색 1편을 적극적으로 패러디했는데 2000년대에 등장한 속편의 경우 증지위를 비롯한 무간도의 배우들을 출연시켜 무간도 속 상황을 코믹하게 패러디했다고 하네요. 자동차 정비소의 얼뜨기 남자 세 명은 남자로서의 자존심에서는 좀처럼 지지 않으려고 하는 설익은 청춘들이죠. 고급 외제차를 탄 돈 많은 남자와 자동차 경주를 벌이는가 하면 해외여행의 단꿈을 꾸며 외국에 나가보기도 합니다. 현실은 정비공이지만 그럴싸한 모습으로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여자에게 다가가는 이들의 모습은 흡사 우리네 옛 코미디 영화 남자 미용사 속 구봉서의 모습을 보는듯 합니다.
약간의 해프닝을 거친 뒤 이 영화는 영웅본색 1편을 재미있게 패러디하며 시작됩니다. 자동차 정비소에 영웅본색 1편 속 적룡의 뒷모습(!)을 갖춘 남자가 찾아오더니 소개서를 받아 왔다면서 취업을 부탁합니다. 그러자 정비소 사장 왈. 사업은 무슨 사업, 감옥에서 나왔다고 솔직하게 하라며 대꾸하죠. 이 장면은 영웅본색 1편의 장면을 고스란히 패러디한 것이죠. 정비소 사장님과 취업을 부탁하는 남자와의 대화가 오가는 뒤에 영웅본색 1편의 주윤발이 서있습니다. 웃음을 참느라 주윤발이 그 장면을 어떻게 촬영했을지 궁금할 지경이죠. 영웅본색 1편 패러디는 이에 그치지 않습니다. 영웅본색 1편 풍림각 총격전 상황을 그대로 재현해놓고 총격전이 오갔던 풍림각 식당 안에 증지위를 데려다놓습니다. 증지위는 소마(주윤발) 복장의 킬러가 화분에 총을 숨기는 것을 보고 호들갑을 떨죠. 무슨 일이냐고 묻는 옆사람에게 영웅본색 1편도 못 봤냐고 되묻는 증지위... 이 영화는 이런 식으로 영웅본색 1편의 명장면들을 패러디하며 관객에게 즐거움을 선사합니다.
그렇게 영웅본색 1편의 패러디로 시작했던 영화는 주윤발, 진백상, 증지위가 장만옥을 만나는 것으로 이야기를 진행시킵니다. 정장을 멋지게 차려입은 주윤발은 돈 많은 신사 인것처럼 행세를 하지만 그는 사실 가난한 정비공이었고 주윤발이 호감을 가지게 된 어여쁜 아가씨 장만옥에겐 진짜 부자 조덕주가 유혹의 눈길을 주기 시작하죠. 장만옥이 연기하는 여주인공 역시도 신분을 어느 정도 숨기고 행세하는 허영녀 캐릭터입니다. 구봉서 주연의 남자 미용사(http://blog.yes24.com/document/8004127)에서 주인공 구봉서가 프랑스 유학파 미용사 앙드레 행세를 하는 동안 남정임이 연기하는 여주인공 역시도 동네 세탁소에 맡겨진 비싼 옷을 빌려 입고 몰래 귀공녀 행세를 하는 상황이라 이 영화 속 남녀 주인공의 모습과 어느 정도 비슷하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영웅본색, 첩혈쌍웅의 이미지가 강하긴 하지만 주윤발이란 배우는 코미디 연기에도 아주 강점이 있는 배우입니다. 주윤발의 이러한 두 가지 이미지가 한 영화에 나란히 나왔던 작품이 바로 왕정 감독이 연출했던 정전자(도신)었었죠. 머리를 다쳐 기억을 잃어버린 지적 장애인을 연기할 때와 카지노 도박계의 멋쟁이 승부사를 연기할 때의 연기적 반전은 상당한 영화적 재미를 가져다주었답니다.
영웅본색과 첩혈쌍웅으로 대표되는 낭만파 킬러는 물론이고 대장부일기 등에서의 코미디 연기도 잘했던 주윤발은 가을날의 동화로 대표되는 로맨스물에서도 강점을 보였습니다. 왕정 감독 특유의 코미디 영화 정장추녀자 속에서도 주윤발의 로맨틱한 매력은 빛을 잃지 않았습니다. 관객들은 여주인공 장만옥과 주인공 주윤발이 맺어지길 바라게 됩니다. 배우들의 이름을 고스란히 캐릭터의 이름으로 사용한 이 영화는 가난한 정비공들의 좌충우돌 연애소동극을 거쳐 재벌 조덕주의 악행을 슬쩍 비춰줍니다. 장만옥을 둘러싼 세 사람의 삼각관계는 노점상, 경찰관, 마취제까지 동원되는 해프닝을 거쳐 주윤발 장만옥 커플의 사랑의 결실을 향해 달려갑니다. 조덕주의 음모에 빠진 장만옥을 구하기 위해 조덕주의 파티장에 몰래 침입한 증지위, 진백상, 정비소 사장님 이 세 명이 회색 로마군인 동상으로 분장하고 조덕주의 욕실에 등장, 오줌을 샤워온수 물줄기인양 목욕 중인 조덕주에게 내뿜으며 조덕주를 희롱하는 장면은 지금 봐도 웃긴 장면이기도 합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역시 꽤 재미있습니다. 거짓말로 자신의 신분을 숨기던 남녀는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커플이 됩니다. 유성을 보며 소원을 비는 주윤발과 장만옥의 티격태격 달콤한 장면 역시도 나름의 명장면이라고 할 수 있겠죠. 20년 후의 모습이라면서 주윤발과 장만옥, 진백상, 증지위의 나이 든 모습을 보여주는 엔딩 장면도 이 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명장면이기도 합니다. 욕정을 위해 범법행위마저 마다하지 않았던, 젊은 날의 조덕주는 그 20년 후엔, 영웅본색 1편의 다리 다친 소마(주윤발)가 절름발이 노숙자 행색을 하고 있던 바로 그 모습이 되어 절뚝거리며 자동차 유리를 닦고 있습니다. 영화 내내 배 나오고 키 작다고 놀림 받았던 증지위는 영웅본색 1편의 젊은 보스 아성(이자웅)이 보여줬던 으리으리한 모습으로 걸어나오며, 절름발이 조덕주에게 몇 장의 지폐를 나눠주죠.
영웅본색 속 보스의 모습으로 멋지게 나타난 증지위가 왕년의 바람둥이 재벌이자 지금은 절름발이 노숙자 신세가 된 조덕주에게 호기롭게 지폐 몇 장을 뿌린 뒤 고급 승용차 안에 들어가려다가 차량 문에 얼굴을 부딪힙니다. 그리고 그 장면에서 영화가 끝나죠. 잦은 아류작 제작으로 홍콩영화의 쇠퇴를 앞당겼다는 비난을 받기도 하는 왕정 감독이지만 이 영화를 보면 패러디를 이용한 코미디물에 있어서만큼은 상당한 재능을 가지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코미디 영화뿐만 아니라 정전자(도신) 같은 영화도 연출했고 최근에는 도성풍운 시리즈를 통해 주윤발과 다시 손을 잡고 중화권 극장가를 주름잡는 흥행작을 만들고 있다고 합니다. 비난하지 않을 수 없는 3류 영화와 나름의 수작을 만들어 냈던 왕정 감독은 홍콩영화계의 원로배우 겸 감독 왕천림의 아들이기도 하며 왕천림이란 이 노(老) 영화인은 두기봉 감독의 영화 흑사회 1,2편에서 조직의 원로 역을 맡기도 했었는데 2010년 11월에 사망했다고 하는군요 .
1987년에 개봉한 이 영화 정장추녀자에서는 주윤발, 증지위, 진백상, 장만옥 외에 영화 속 단역으로 출연한 왕정 감독의 젊은 시절 모습과 신인 시절의 장민, 이후 용형호제 2를 통해 한국관객들에게도 이름을 알리게 되는 정유령의 모습 역시 볼 수 있습니다. 왕정 감독은 이후 떠오르는 신예 주성치와 손을 잡고 코미디 영화를 여러 편 만들어내게 됩니다. 정장추녀자에서 보여줬던 왕정 특유의 패러디 감각이 주성치와 손을 잡으면서 더욱 빛을 발한 셈이랄까요. 왕정과 손을 잡았던 주성치는 이후 유진위 감독과 작품을 같이 하며 서유기 선리기연 등의 명작을 만들어냅니다. 왕가위 감독의 야심작이었던 동사서독 프로젝트에 제작자로 나섰다가 동사서독 촬영이 지연되는 과정에서 중경삼림(왕가위 감독), 동성서취(유진위 감독) 두 편의 영화가 만들어지게 되었죠. 그리고 이 과정에서 생겨난, 사랑에도 유통기한이 있었다면 만년이었으면 좋겠다로 대표되는 왕가위적인 영화적 감성은, 유진위 감독이 연출을 맡은 주성치의 서유기 시리즈로 고스란히 이어지게 되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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