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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발행일 | 2008년 10월 1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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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288쪽 | 392g | 128*188*20mm |
ISBN13 | 9788992492430 |
ISBN10 | 899249243X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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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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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와라 신야의 여행관은 독특하고 남다르다.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즐거움보다는 깊은 사색과 구도를, 화려하고 정돈된 관광지보다는 뒷골목의 거친 손과 주름진 얼굴에 더 관심이 많다. 그렇다고 파울로 코엘료의 순례자처럼 고상하지도 목가적이지도 않은, 오히려 각 나라마다의 윤락가를 찾아 헤매며 창녀들의 사진을 찍어대고, 환락가에서의 일화를 거침없이 소개하는 다분히 세속적인 여행자다. 신야의 여행 에세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내면 속에 자리한 섬세한 구도의 자세를 발견하게 된다. 한 마디로 말해서 후지와라 신야의 <동양기행>은 성(聖)과 속(俗)이 극단적으로 양분화 되어 있다고 표현할 수 있겠으며 아마도 이러한 성과 속의 양분화적 태도가 동양의 모습일지도 모르겠다는, 더 나아가서 동서양을 막론한 모든 인간들에게 내재되어 있는 모습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한 마리의 발정난 곤충이었다’라며 서슴없이 마초적 발언을 내뱉으면서, 바람이 불었기 때문에, 나비의 시체가 길을 가로막았기 때문에 여행지가 바뀌고만다는 이 여행자를 덮어 놓고 미워할 수가 없다. 한국의 뒷골목 윤락가에서 벌어졌던 창녀들과의 일화를 몇 페이지에 걸쳐 주절거리는 이 일본인에게 적지 않은 분노를 느끼면서도 우리도 잘 알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는 판소리를 듣고 감동하고, 서울의 겨울 거리를 ‘영혼’이라고 표현하는 이 일본인 여행자를 더러운 왜놈이라고 치부해버리지만도 못하겠다.
14년 전쯤 그러니까 대략 중학생이었을 때 후지와라 신야의 <인도 방랑>이라는 책을 접했을 때의 신선함과 충격이 되살아난다. 요즘에야 서점에만 가면 눈에 밟히는 책이 여행 관련서적이고 그 종류도 다양하고, 그 나라도 다양하고, 각각의 여행가들마다의 글을 쓰는 스타일도 가지각색이고, 사진도 화려하고 세련되지만 그 때만해도 여행서적이라 하면 제목이 <미국>, <중국> 등의 나라 이름들이 대문짝만하게 찍혀 있는 두터운 책자에 도표화 되어 있는 열차시간표, 호텔 전화번호, 관광지의 약도와 간략한 설명, 증명사진만한 크기의 청흑백 사진과 그림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 책자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렇듯 무미건조한 여행관련 서적들 사이에서 신야의 인도 방랑은 단연 내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사실전달과 도표, 통계에 치우치기보다는 자신의 느낌과 생각을 담아 여행지에서의 생생함과 동시에 아련함을 활자 안에 고스란히 채워 넣었다. 아, 여행책자를 이렇게도 쓸 수 있는 것이구나 하는 감탄과 감동에 사로잡혔지만 사실 당시에 신야의 글을 얼마나 이해했는지는 모르겠다. 성인이 되고 매 해 쏟아져 나오는 세련되고 독특한 여타의 여행서적들에 익숙해지면서 신야가 주었던 감동과 놀라움은 잊혀졌다. 그리고 14년 후,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된 신야의 <동양기행>은 그의 독특한 여행관과 유려한 글솜씨, 마음으로 담아 낸 사진들-그가 사진을 다루는 솜씨는 실로 대단하다-로 인하여 다시 한 번 그 시절의 감동을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공중의 떠도는 새의 무리를 세어본다는 것은 삶과 죽음을 시작하려는 인간의 수를 세어보는 것만큼이나 무모하다...새들은 갑자기 사라졌다가 나타났고, 둘은 하나가 되고, 셋은 다섯이 되고, 다섯은 무無가 되고, 무에서 다시 하나가 나타나고, 그 하나가 둘로 나뉘었다. 내 눈은 24마리로 세었고, 다시 32마리로 세었고, 때로는 18마리로 세었다. 그러다가 문득 환영이라고 생각했다. 어느 순간에는 헤아릴 수 없이 무한하다고 생각했다. (후지와라 신야의 동양기행 1권 중 p. 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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