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우리의 소유가 아니고 우리를 찾아서 오는 존재이다. 이 존재는 저 멀고, 높고 그리고 완전히 열려있는 곳에서부터 우리를 정하여 찾아오는 것이다. 그리고 수태 그리고 출산을 통하여 좁아지는 의식 안으로 들어와 육화(incarnation)되는 존재인 것이다. 이렇게 아이의 존재를 파악하는 점은 인지학(人智學;Anthroposophy)의 관점인 것으로 우리에게는 다소 생소한 것이다. 일반학문에서 파악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지만 여기 라히마 볼드윈 댄시(Rahima Baldwin Dancy)의 이 책; 《당신은 당신 아이의 첫 번째 선생님입니다》에서는 이러한 부분을 아주 잘 파악하여 쉬운 말로 우리에게 설명하고 있다.
라히마 볼드윈 댄시는 평생 동안 자신의 전문직을 통하여 아이에 대한 존재를 연구하였고 이는 단순히 책을 통하여 연구한 것이 아니고 산부인과 특히 산파역을 수행하는 실질적인 일을 통하여 얻고 파악한 점을 인지학의 관점에서 설명하고 있다.
아이는 텅 비어있는 ‘깡통'이고 그 빈속에 어른이 채워주는 것이 교육이 아니고, 이미 아이는 무엇인가로 꽉 채워져 있고, 그 무엇인가는 이미 아이가 가지고 온 것이며, 바로 그것을 밖으로 끄집어 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교육이다라고 보는 발도르프 교육학의 근원인 인지학을 토대로 파악하는 것이다. 이러한 것을 출생 과정과 유아시기를 통하여 그리고 학교 가기 전까지의 어린 아이의 발달 과정을 설명하고 나름대로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현대사회에서 젊은 부모들이 아이를 양육하는데 어려운 점들이 많고, 수많은 육아법의 홍수 속에서 어쩔 줄 모르는 현대인에게 확신을 심어주는 그리고 아이교육의 잣대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러한 부분은 미국의 대학이나 연구소에서 최근부터 관심을 갖는 연구결과들을 비교하여 아이 양육의 토대를 확고하게 해준다.
예로 바로 태어나는 아이의 상태를 아이의 관점에서 파악하여 아이가 어떠한 경험을 하고 있는지, 아이에게는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 자연 분만의 과정이 왜 중요한지, 그리고 바로 태어난 아이들의 상태가 아이마다 어떻게 다른지 그리고 어떻게 바로 태어난 아이에게 대해주어야 할지 등에 대하여 실질적이고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는 주로 감각기관의 보호와 보존을 중요시하고 있다. 이때에 우리가 이 아이를 어떻게 도와야 할 지에 대하여 매우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이해를 돕고 있다. 이렇게 태어난 아이가 점차적으로 주위 환경을 자신의 감각기관을 통하여 세상을 배워나가고 파악하며 성장 과정은 “아래로 향하며 깨어난다”(Growing down and Waking Up)는 부분에서는 육체 안으로의 성장을 의미하며 육화를 표현하고 있다. 생후 일년 사이의 신체발달과정과 지능의 발달, 감성의 발달에 대하여 설명하고 그리고 이때에 발달하는 원초적인 언어 발달을 설명하여 이때에 양육자가 어떻게 아이를 이해하고 도와주어야 할지를 설명하고 있다. 또한 걷기를 배울 때에 상태를 파악하고 이를 도와주는 방법과 자세에 대하여 얘기하고 생후 삼 년 사이에 아이들에서 나타나는 문제점들을 열거하여 도와주는 방법들, 예로 우는 아이, 젖떼기, 아버지의 역할과 어머니의 역할, 예방접종의 문제, 모두 차별되는 아이들(개성)의 문제, 용변 훈련 등등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그 후 아이들의 ‘놀이’에 대한 이해와 놀이를 통한 상상력의 발달, 창조적인 놀이는 무엇인가? 어떠한 놀이감이 적당한가? 그리고 이 시기의 예술적인 재능과 음악적인 재능을 키워주고 그것이 왜 인간 발달에 중요한지, 그리고 가정생활에서의 리듬과 훈련이 중요한지 등 또한 현대 물질사회에서의 문제점들인 컴퓨터, 텔레비전 등과 아이 교육과의 관계를 아주 실질적으로 설명을 하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점들은 특히 현대사회에서 아이교육을 하는데 필수적으로 알아야 하고 제대로 아이를 양육하고 교육하는데 필요한 내용을 담고 있는 책으로 이 현대 산업사회에서 보기 드문 보물과 같은 책이다.
허영록(한국슈타이너교육예술협회 회장. 강남대 교수)
이 책은 “아이를 잘 기르기 위한 육아 책”의 범주에 들긴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성공할 수 있는 영리하고 똑똑한(때로는 영악한) 아이로 키우기 위해 부모에게 이러저러한 가르침을 제시하는 그런 종류의 책은 아니다. 하지만 이 시대에 참으로 필요한 소중한 책이 아닌가 싶다. 현대 물질 문명 속에서 소홀히 취급되고 있는 인간의 귀한 영혼과 정신을 믿는 슈타이너의 “인지학”과 “교육학”에 근거를 둔 아주 특별한 육아 책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 점차 소개되고 있는 슈타이너의 인지학을 조금씩 공부하고 있던 즈음에 이 책을 만난 나는, 이 책을 통해서 아주 많은 배움과 영감을 얻었다. 한 문장 한 문장 우리말로 옮겨가면서 “아! 그렇구나! 그래서 그때 아이가 그렇게 행동한 거구나!” 하며 무릎을 친 적이 많았다. 솔직히 10여 년 가까운 세월동안 어린 두 아이의 부모노릇을 하면서 나는 많은 갈등과 어려움을 겪었다. 세대차이가 극심하고 변화무쌍한 현대를 사는 나는 멋모르고 부모가 되어서 어떻게 아이를 키워야하는지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 오리무중 속을 헤매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깊은 반성도 들었다. 물론 이 시대에도 “공부 잘하고” “똑똑한” “능력 있는” 아이로 키워야한다는 집단 무의식과 “영재 교육”이니 “조기 영어 교육” “컴퓨터 교육”이니 하면서 부모들을 욕심사납게 몰아가는 분위기가 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서점에 깔린 많은 육아 책들은 나름대로 장점도 있지만 서로 모순되는 것도 많았고, 어쩌면 그렇게 “내 아이만 똑똑히 키우자”고 목소리를 높이는지, 어쩜 그리 이기적인지, 어쩜 그렇게 아이의 행복에 대해 무심한지 어떤 때는 조금 신물이 나기도 했었다.
그런데 이 책은 그런 책들과는 아주 달랐다! 아이의 몸과 마음은 물론 영혼까지 존중하는 새롭고 따스한 시선이 참으로 신선하고 놀라웠다. 이 책은 아이가 태어나서 만 여섯 살이 될 때까지 각 시기에 맞게, 아이의 조화로운 발달을 부모가 어떻게 도울 수 있는지, 그 어린 영혼이 이 세상의 삶에 적응해나가는 과정을 부모는 어떻게 지켜봐야 하는지, 어떠한 안내를 하면서 부모가 함께 가야 하는지를 아주 섬세하고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또한 일상 속에서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는 생생한 활동들(주로 수채화 그리기나 노래 부르기, 이야기 들려주기 같은 예술 활동들과 자연을 느끼게 하는 순수한 놀이들)이 많이 소개되어 있다.
번역을 하면서 나는 아홉 살, 다섯 살이 되어 가는 두 딸과 이런 저런 활동을 같이 해보았다. 젖은 종이로 수채화도 그려보고, 녹음된 음악을 트는 대신 직접 우리의 목소리로 신나게 노래도 불러보고, 함께 손잡고 뒷산을 오르고, 춤도 추었다. 그 순간 순간이 얼마나 풍요롭고 아름다웠는지! 우리의 삶은 항상 변화하지만 그 속에 어떤 순환과 리듬이 늘 함께 있음도 다시금 확인하게 되었으며, 아이 기르기에 그 리듬을 적용하고자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이 책을 읽는 부모들도 나와 같은 기쁨과 풍요를 틀림없이 누릴 수 있으리라고 확신한다. 또한 아이를 위해서 뿐만이 아니라 부모인 우리 자신을 위해서, ‘아이와 함께 행복해지기 위해서’, 인간으로 태어난 우리가 누구이고 왜 이 세상에 왔는지 우리는 물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요즈음엔 자주 드는 생각이다.
(나를 포함해서) 이 책을 읽는 많은 부모들이 ‘아이 기르기’의 무한한 기쁨과 고통과 풍요로움을 깊이 체험하면서, 그것을 통해 자기 성찰을 하고, 삶과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에 도달할 수 있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래본다.
역자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