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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08년 11월 24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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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255쪽 | 440g | 148*210*20mm |
ISBN13 | 9788996129929 |
ISBN10 | 89961299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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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8월 30일 ~ 2024년 09월 30일
2024년 09월 01일 ~ 2024년 09월 30일
상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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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이가 낯선 친구들 데려왔다. 방문을 닫고 저희들끼리 속닥거린다. 나는 뭔가 볼일이라도 있는 것처럼 방문을 연다. 별로 할 말이 없다. "저, 간식 뭐 줄까?" 딸의 못마땅한 표정은 내 심사가 눈치채였다는 반증이리라. 그리 오래지않아 딸의 친구가 갔다. 나는 참지 못하고 묻는다. "걔, 공부 잘하니?" 아마 그 아이가 뭔가 못마땅했었나 보다. 내가. 남의 집 아이가 공부를 잘하거나 못하거나, 뭐 어쩌겠다는 계획이 있는 것도 아닌데, 내 아이도 그리 성적이 좋지 않으면서, <어린 왕자>를 읽은 이래 그처럼 유치한 질문을 하지 않겠다 다짐해 놓고도 입에서 튀어나와 버린 질문. 어쩌나. 딸의 실망한 표정과 하루 종일 속으로 싸우면서 생각했다.
도대체 공부를 잘한다는 게 무슨 의미일까?
시험 성적이 높다는 뜻일까? 나는 소도시에서 고등학교까지 나왔고, 그때까지는 소위 '공부 잘한다'는 소리를 들어왔던 것 같다. 그러나 기억에 뭐 특별히 공부를 했던 것 같지는 않다. 당시에도 과외라는 게 있었는데, 내 아버지는 별다른 방법을 써서 성적을 높이는 일이 가소롭다고 여겨, 무조건 교과서만 보게 했다. 심지어 참고서 사 주는 일에도 인색했고, 몸을 똑바로 하여 공부해야 된다며 회초리를 들고 등 뒤에 서 있기 다반사였다. 온갖 것에 간섭이 심했던 아버지는, 공부는 무릇 정신이 맑은 새벽에 해야 한다며, 밤에는 책을 읽고 있어도 불을 꺼버리고 꼭두새벽에 깨워 감시의 눈길을 부라리기도 했었다. 그 불만이 아버지 아닌 엄마에게로 쏟아져 유독 엄마에게만 가시 돋힌 말을 뱉어내곤 했던 건 그야말로 어린 날의 치기에 다름아니었다. 그리고 어느 날 아버지가 그 불손한 모습을 보았다. 6학년이었던 나는 발가벗긴 채 추운 골목길로 내쫓겼다.
"인간 안 될 것은 공부시키는 게 죄다."
그 말이 가슴에 와 박혔다. 아마 조금은 생각하게 되었던 것 같다. 공부가 인간됨과 어느 정도 상관이 있으리라는 것. <공부를 잘해서도덕적 인간에 이르는 길>(이하 <공도인>)이란 책 제목이 예사롭게 보아넘겨지지 않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20년 전 이맘때 언땅에 묻힌 아버지를 떠올리게 한.
돌이켜 보면, 공부란 도덕적 인간을 기르는 일 외에 그 무엇도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이양호 저자가 강하게 주장하듯 경쟁력이 공부의 '목적'일 수 없고, 경쟁력 운운이야말로 세상을 이처럼 '비열한 거리'로 바꿔 놓은 장본인에 다름 아니다. 경쟁력을 기르기 위해 하는 공부는 공부가 아니라 '욈'이고 '베껴 씀'이다. 그것을 통해 어떻게 바른 인간이 길러질 수 있으랴. 그저 이기고자 하는, 생존욕구만 남은 다른 동물과 비슷해질 수밖에. 공자가 말한 '學'이 달달 욈, 혹은 남을 이기고자 하는 수단일 수 없음은 당연한데, 우리 어른들은 툭하면 자녀에게 공부하라면서, 공자의 말을 가져다 붙인다. 웃길 노릇.
무슨 공부를 어떻게 할까? 그러면?
<공도인>에서는 '빼어나고 고운 얼굴을 지닌 선비들', 예컨대 정도전, 세종, 이순신, 허난설헌, 허준, 김홍도, 정약용, 김만덕, 최제우, 최시형, 한용운, 함석헌, 윤동주, 김구, 전태일, 윤상원 등을 본받는 일을 공부라고 하였다. 그를 위해 다섯 씨를 싹틔워야 한다고 했는데, 솜씨, 맵시(씨), 맘씨, 말씨(말의 씨), 글씨(글의 씨)가 그것이다. 언제부터인가 글씨를 아무렇게나 쓰는것이 창의성과 비슷하다고 여기는 풍조에 대해 못마땅하던 내게는 반가운 이야기.
그리고 배울 과목은 언어 마당에서 우리말, 영어(외국어), 한문. 헤아림 마당에서 수학, 과학, 생명체, 눈여겨보기와 책읽기. 예술 마당에서 음악과 춤, 미술. 삶 마당에서 먹거리 기르기와 먹거리 만들기, 몸 기르기, 손재주 등으로 갈래지어 설명해 놓았다. 각각을 왜, 어떻게 배울 것인가에 대해 세세히 적어놓았는데, 그 시선과 깊이가 참 감탄스럽다. 그가 '헤아리다'라고 한 말은 우리가 흔히 '사유'라고 하는 말에 해당되는데, 수학과 과학, 생명체, 눈여겨보기와 책읽기가 왜 사유의 과목인지,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책에 '판때리다' 즉 판단하다, '고갱이' 즉 '정수', 헤아림 즉 '사유' 등의 순수한 토박이말을 자주 쓰는 것은 우리말이 철학을 다루는 언어가 되지 못하고 문학의 일부에서만 다듬어지고 깊어져 온 것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이다.
그는 '지금이라도 우리말에 품과 정성을 들이지 않는다면, 우리말은 언제까지나 깊이 없는 말이 될 것'(91쪽)이라 경고했다. "존재,라는 말 한 마디로 한 권의 철학책이 나오는데, '있음'으로 그러지를 못하는 것"에 대해 저자 만큼이나 독자인 나도 안타까움이 새삼 몰려왔다. 그랬구나.
사실 이 책은 공부에 대한 저자의 실천철학을 드러낸 책이기도 하고, 이양호 저자가 꿈꾸는 '현대식 서당'에 대한 안내서이기도 하다.
그가 왜 앞으로 세울 대안학교에 대해 이처럼 긴 설명을 하는가에 대해, 그를 만나본 사람은 공감한다. 세울 학교에 대한 설명이 곧 철학책이 되고, 공부에 대한 개념을 잡아주는 원론서가 되고, 실제 공부를 할 수 있게 이끄는 방법론이 된다는 것에 대해 공감할 수 밖에 없다. 듣기 좋은 말 한두 마디로 자신만의 교육철학과 실천의지가 다 보이면 좋겠지만 그건 그야말로 어불성설. 그는 적어도 자신이 꿈꾸는 학교에 대해 이만큼이나 깊은 생각과 포부와 실천의지를 지닌 사람이다.
이양호 저자를 두 번 보았다. 한번은 저자간담회에서, 또 한번은 두 사람으로 구성된 인터뷰단에 끼어서. 맑은 사람이라는 느낌이 두 번 모두에서 전해졌다. 부드럽지만 꼿꼿한 성정이리라, 여겨졌다. 그래서 믿음이 갔다. 그가 세울 학교에 대해. 적어도 평등이라는 것이 어느 정도는 실현될 학교에 대해.
작금의 평등은 경제적 평등, 돈앞의 평등이라는 그의 말은 재삼 확인할 필요 없는 진실이다. 배우고 싶어 하는 모든 이에게 똑같은 금액의 돈을 내라고 하는 것은 불평등이다. 하지만 그게 실천되지 않는 사회다. 그가 그걸 이루어 보겠다고 한다. 어찌 보면 요원할 듯도 한, 그러나 저자는 내년이나 내후년으로 학교 세울 날을 생각하고 있었다. 현실적 어려움이 한두 가지 일까! 그래서 더욱 뜻을 같이하는 이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꿈을 함께 꿔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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